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1화 (11/237)

11화. 5살, 실력 발휘 (1)

“야, 이 새끼야! 너 미쳤어. 누구 목 날아가는 꼴 보고 싶어 환장했냐고. 어!”

KBC 보도본부실.

중년남성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남자를 향해 연신 삿대질을 해대며 고성을 터트렸다.

“웬일로 특종을 따오나 했더니, 또 사고를 쳐. 어!”

남자는 다름 아닌 이억수로 최근 이석필 계장 자리에 있던 그림을 대상으로 잘못 인식하여, 기사로 내보냈다.

덕분에 공모전 주최 측으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아야 하였다.

“내가 네놈 때문에 욕이나 먹고 사는 개새끼야.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보도본부 팀장은 위로 끌려가, 장장 한 시간여 동안 지옥 열차에 탑승했다.

머리끝까지 올라가 터진 스트레스와 분노는 당연히 이억수 기자에게 향했다.

“내가 말했지. 일 그따위로 할 거면 당장 짐 싸고 나가라고. 너 당장 나가. 당장!”

“팀장님, 참으세요. 억수가 일부러 그랬겠습니까. 다 잘해보려 그런걸. 또 그렇게.”

억수의 선임이 급히 나서 말렸다.

“야, 너 빨리 잘못했다 말하지 않고 뭐 해.”

중간에 끼어든 중년인은 팀장의 화를 달래며 중재에 나섰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억수는 그의 도움에 가까스로 용기를 짜내어 입술을 뗐다.

“잘할 겁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시죠.”

“내가 저 자식만 보면 혈압이 올라. 알아?”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더 잘 가르치겠습니다. 저랑 위로 올라가 한잔하시죠.”

“휴... 하.”

중년인은 팀장을 잡아끌어 억수를 지나쳐 위로 올라갔다.

“하아...”

억수는 어깨를 축 늘어트려 자리로 돌아갔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리나 했다.

***

[KBC 보도본부에서 깊이 사죄글 올립니다. 최근 있었던 어린이 그림대회 공모전에 혼란을 드린 점...]

“뭐라고, 이 작품이 대상이 아니라고?”

신문을 접한 40대로 보이는 남성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최고의 걸작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아이의 그림이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

“고작 이게 대상이라...”

너무도 뛰어난 작품을 봐서인지, 새로이 대상이라 기록된 작품은 눈에 차지 않았다. 오히려 경멸스럽기까지 했다.

“생각해 보면 이해는 가. 다섯 살이 이렇게 그릴 수 있다는 게...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신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양반다리를 하며 고심에 빠졌다.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고심하지도 않았을 터다.

웬만해서 이러지 않는데, 그림이 무척 탐이 났다.

“만약에 말이야, 아주 만약에... 저 그림이 정말로 다섯 살이 그린 거라면 어떨까?”

신문에 보이는 모든 정보를 맹신하지 않았다. 사회의 더러운 꼴은 다 보고 살았기에 기사에 나와 있는 그대로를 믿는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약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을 하였다.

“대상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이 50만 원. 그렇다면 저 그림의 최소 가치는 50만 원이란 소리가 되겠지. 좋아 결정했다.”

남자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규정 위반이든 어떻든 아이를 만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진짜 그렇다면, 저 그림. 내가 사겠어.”

남자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걸음은 참뜻 유치원으로 향했다.

꼭, 해당 그림의 주인을 찾아 그림을 구입하겠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현상은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당사자인 한강도 몰랐고, 유치원으로 향하는 남자도 몰랐다.

***

“이 아이더냐? 연서야.”

“네, 맞아요. 교수님.”

연서는 이화여대 남수영 교수를 만났다. 너무 분한 나머지, 한강의 소식을 남수영 교수에게 알렸다.

“정말 대단하구나. 다섯 살이 이 정도의 그림이라니...”

결코, 다섯 살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는 창작에 예술성까지 모든 것이 이 그림에 녹아있었다.

심지어 채색도 뛰어나, 크게 흠잡을 곳도 없었다.

“저도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정말 거짓말 같았다고요. 제가 직접 보고 있는데도. 하...”

공모전에 내기 위해 받아 들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손끝에서 전해오는 전율은 아직도 심장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나도 그 아이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있을까?”

남수영은 그림에 꽂혀, 눈을 떼지 못했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요. 교수님이 원하시는데.”

“고맙구나. 하면 내일 아침 일찍 어떠냐?”

이렇게 만나보고 싶던 사람이 또 있었을까? 남수영 교수의 얼굴에 홍조마저 생겨났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럼 내일 보자꾸나.”

“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자신이 발견한 보석을 만나보고자 하신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연서는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띠며 두 손을 가슴에 얹었다.

두근거림이 손바닥으로 전달됐다.

‘어디 두고 보라고. 절대 그 그림이 거짓이 아니란 걸 증명해, 그때 재수 없던 작자의 코를 뭉개버리려니까! 감히 나 오연서를 건드려...’

연서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때의 분함, 배로 갚아주리라 다짐을 하였다.

***

[XX 유치원 유한강(5) 규정 위반으로 탈락된 작품으로...]

“뭐, 내가 규정 위반을 했다고?”

심한 불쾌감이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허허, 어이가 없구만. 이거였나? 내가 수상을 하지 못했던 이유가.”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었다.

왜, 수상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는지를.

개새끼들.

“어쩐다. 어떻게 해야 빅엿을 먹일 수 있을까?”

전생이었다면 모든 자본을 이용해,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었을 터인데.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이는 고작 다섯 살.

참 활용도나 가성비가 좋지 않은 몸과 나이였다.

“정말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제한적이야. 하지만, 공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빠르다 하였다. 절대 잊지 않으마.”

시간이 벌써 유치원 갈 시간이 되었다. 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복수를 다짐하고, 민망한 노란 가방의 끈을 어깨에 걸친 채 밖으로 나갔다.

“한강아,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잘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

엄마를 뒤로하고 막 도착한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눈을 감고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버스는 골목 곳곳을 돌아 유치원으로 빠르게 이동을 하였다.

빵빵─!!

“깜짝이야.”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지다 깜박 잠들던 중, 클랙슨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이봐요. 거기서들 뭐 하세요. 비켜요!”

버스 운전기사가 고성을 터트렸다.

“무슨 일이래?”

딱히 누구한테 물어본 건 아니었다. 그냥 궁금증에 나온 혼잣말이었다.

“와, 사람들 많다.”

“진짜 완전 많다.”

그때 앞에 앉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저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가 정차할 자리에 진을 치고 있었다.

무슨 일로 유치원 앞에 저리 모여 있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모두 창문 닫아요. 선생님이 올 때까지 여기서 가만히 있어요. 알겠죠?”

“네!”

아이들은 열린 창문을 닫았다.

한강도 창문을 닫고 기다렸다.

웅성웅성.

방금 전보다 더 시끄럽게 변했다.

“그림....”

“우리가 사...”

“아이를 만...”

손을 귀에 모아 창문에 붙여, 바깥소리를 들었다.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왔지만, 정확하게 들려오지 않았다.

“정말 시끄럽군.”

원인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와 우는 소리에 바깥소리가 묻혔다.

가장 중요한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휴, 별수 없지. 이게 아이들 잘못도 아니고.”

“으아아앙.”

연달아 터지는 울음소리.

“뚝!”

짧고 강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뚝!”

옆에 자리한 아이는 울던 걸 멈추고, 시선을 정면에 가져갔다.

엄마와 선생보다 옆에 있는 친구가 더 무서웠다.

“그래, 착하지. 끝났나 보군. 조용한 걸 보아.”

소란스럽던 차 안이 조용해졌다. 한강은 친구인 아이를 손으로 토닥여 주며 칭찬을 하였다.

이윽고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을 앞으로 던졌다.

“모두 내릴게요.”

이하나 선생은 지친 모습으로 한강을 보며 싱긋 웃었다.

“한강이는 가장 마지막에 선생님과 내리자.”

“네.”

무슨 일일까?

갑자기.

한강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이유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 이 아이가 그 주인공인가요?”

“허허, 저런 작은 아이가.”

모두가 유치원으로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린 한강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이 사람... 아저씨들은 누구죠?”

버스에서 내리다 말고 발판에 올라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호기심, 관심 등이 뭉친 시선들이 느껴졌다.

“한강아, 이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은 신문에서 너를 보고 찾아왔대.”

모두 돌려보내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지만, 유치원 선생들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결국 백기를 들고 한강과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기로 하였다.

대신 조건은 한강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모전 그림 있지? 그걸 보고, 한강이의 그림 실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대. 그걸 확인 후 한강이의 그림을 사고 싶다는데, 음...”

말하다 보니 다섯 살짜리 아이한테 별걸 다 말한다 생각했다.

웃긴 건, 그 모든 이야기를 이해했다는 행동을 보이는 한강이었다.

“...어떻게 할까? 한강아.”

이제는 적응할 법하지만 역시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의 생각도 중요하다 생각하기에 진지하게 물었다.

‘이것 봐라? 내 그림을 사겠다고?!’

한강의 눈이 반짝 빛을 뿌렸다.

두 눈동자에 황금빛 기류가 맺히는 착각마저 들었다.

“돈과 관련된 문제는 부모님을 대동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전 아직 미성년자니까요. 그리고 그림은 분명히 제가 그린 게 맞아요.”

한강은 티 나지 않도록 희미한 미소를 그리다, 표정을 고쳐 말했다.

“그럼에도 제 실력에 대해 의심이 들어 직접 보고자 하신다면, 여기 계신 선생님과 원장님께 허락을 구하는 게 먼저라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은 부모님을 대신한 저의 책임자이자 보호자이십니다. 그렇기에 거절한다면, 전 어떤 것도 할 생각이 없어요.”

두둔!

“......”

“......”

“......”

한강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방금 자신들이 무엇을 들었는지, 사고가 잠시간 정지해 버렸다.

‘이래서 그랬구나.’

‘무슨 아이가...’

‘요즘 다섯 살은 다 저런가?’

‘저게 가능한 어휘야?!’

‘중2씩이나 된 아들놈보다 몇 배는 낫네. 허허.’

순식간에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신기한 동물을 바라보듯, 한강을 넋 놓고 바라봤다.

‘이거 잘만 이용하면 개놈들에게 빅엿도 날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른다.

하나, 적어도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충분한 재력이 있지 않고서야, 지금과 같은 일은 말도 안 되지. 게다가 복장과 손에 찬 액세서리들... 내 눈은 못 속인다.’

부자들은 각자의 취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

거기에 활용되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소리.

그리고 누가 부자들은 부자란 티를 내지 않는다 했을까?

그냥 티를 내지 않아도 입고 있는 모든 것들이 기본적인 부를 말해주기에 애써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을 뿐이다.

“선생님, 꼭 좀 부탁합니다.”

“저, 저 그러니까...”

이하나 선생은 다시 돌아온 총알에 눈이 어질어질했다.

‘이 사람들아, 고작 선생이 뭔 힘이 있겠냐고. 원장에게 말해야지.’

목소리를 내어 저들의 방향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던 차.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한강이도 좋다 했으니까. 대신 조건이 있어요.”

‘어라? 뭐야? 갑자기 이건?! 겨우 선생이 이렇게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야?!’

한강은 이하나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상식 밖의 행동이기에 말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괜한 불똥이 튀어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조건이 뭡니까?”

“들어줄 수 있는 조건이면 들어드리리다.”

한강은 일단 가만히 지켜보기로 하였다.

여기서 다섯 살이 나서는 건, 좋지 못하였기에 이하나의 선택에 맡기기로 하였다.

“신문을 봤다면 아시겠죠. 신문에 나온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요. 직접 보시고 우리 한강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그것이 제가 원하는 조건이에요.”

이하나는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그보다 본인의 일도 아닌 걸 여태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다라...’

남자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

한강은 진심으로 하나에게 설레고 반했다. 당연히 여자가 아닌, 참된 스승이자 교육자라는 점에서.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혹시, 그 조건, 나도 함께해도 될까요?”

그때였다.

사람들이 모인 방향과 다른 장소에서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누가...?!’

한강의 고개가 돌아가고.

“당연히... 연서? 그런데 옆은 누구...”

하나의 시선도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닿았다.

익숙한 얼굴에 반가움도 잠시.

옆쪽에 자리한 중년여성을 본 순간.

‘저분이 여기에? 그렇다는 건 설마...’

너무도 잘 아는 얼굴이 그곳에 있어 깜짝 놀랐다.

‘일이 아주 재밌게 되었어. 아무래도 하늘은 내 편을 들어주는 모양이야. 후후.’

한강은 슬며시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전생에 자신의 그림을 잠시간 지도해준 여성을 보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