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10화 (10/237)

10화. 5살, 대상이 내가 아냐?!

“정말 미안. 일이 그렇게 됐어.”

하나를 만나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강이에게 뭐라 말하지. 무척 기대하고 있던 눈치던데.”

“정말 그딴 쓰레기들만 모인 집단인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건데. 내가 정말 할 말이 없다.”

연서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자신의 판단과 선택으로 피해를 본 친구와 친구의 제자에게 무척 미안했다.

“너무 자책하지 마. 넌 한강일 위해서 그런 거잖아.”

“아냐, 여기에는 내 욕심도 있었어. 휴... 그냥 너무 나서지 말고, 지켜볼 걸 그랬나 봐.”

연서는 후회를 하였다. 일을 크게 벌여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쳤다.

공모전으로 이름을 알려 세상에 유한강을 공개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용납하지 않았다. 너무도 더러웠다.

그저 한강이 높이 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는 욕심에 비롯된 일이었는데. 미술계 혁신, 대천재의 강림.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게 만들던 말들은 바람으로 끝났다.

“연서야...”

연서는 태생이 저랬다. 그림과 관련된 일이라면 미친 듯이 나섰다.

심지어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까지 친구들에게 미술용품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미술을 사랑하는 진정한 친구가 연서이기에, 연서가 어떤 마음으로 한강을 대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미안해, 정말.”

“한강이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

하나는 연서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아냐, 그건 내가 말해주는 게 맞다고 봐. 내가 벌인 일인데.”

“아냐, 공모전이 너와 관련된 걸 한강인 몰라. 내가 말하는 게 맞다고 봐. 난 유치원 선생이고, 한강이를 책임지는 선생이잖아.”

“정말 미안하다.”

연서는 ‘미안’ 외에 다른 단어는 일절 생각지 못했다. 오로지 ‘미안’을 반복해 꺼냈다.

“알았어. 이따 한잔 어때?”

“그래. 기분도 별론데. 내가 살게.”

“오키.”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 한쪽 눈을 감아 윙크를 하였다.

찡긋.

덕분인지, 분위기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연서의 얼굴도 조금은 밝아졌다.

***

[어린이 그림대회 공모전 ‘다섯 살 대천재 등장!’ 수상자 대상은 참뜻 유치원 유한강!]

[아래는 해당 공모전에 내놓은 유한강(5)의 작품이다. 지금껏 본 적 없던 스타일로 그린 이 작품의 내용은 매우 명확하다. 나무 아래에 모여 놀다 간 흔적을 남긴 사람들에게 보내는 다섯 살 아이의 메시지. ‘나무가 쓰레기로 병들어요’ 우리 어른들은 유한강 어린이가 보내온 메시지의 의미를 가슴에 새겨...]

[대상 상금은 50만 원이다.]

“된 건가.”

한강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쓱 올라갔다.

아침에 날아온 신문기사에 떡하니 ‘참뜻 유치원, 유한강(5)’이 떠 있었다.

“될 줄 알았지만, 막상 되고 보니 기분 좋네.”

전생에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이력은 있다.

기업을 잘 이끌어 대통령상도 받았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취미로 간직하고 있던 그림으로 상을 받을 날이 올 줄이야.

기분이 무척 좋다.

“후후. 엄마랑 아빠한테 알리지 말까?”

공모전 대회가 실린 기사를 신문에서 빼내었다.

상을 받는 날, 부모님께 알려 깜짝 이벤트로 보여주고 싶었다.

놀란 얼굴, 기뻐하실 부모님을 상상하니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애들아, 안녕.”

“안녕.”

유치원에 도착했다.

아이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한강아, 잠깐 선생님이랑 이야기할까?”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걸음을 이동해 뒤쪽 서랍장에 가방을 놓고 나오던 차,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위로 가져갔다.

이하나 선생이 내려보고 있었다.

“네!”

한강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후후, 올 것이 왔구나.’

한강의 어깨가 쓱 올라갔다.

이하나 선생이 지금 보자는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공모전 그림대회 수상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한강이 야쿠르트 좋아하지.”

“네.”

하나는 야쿠르트에 빨대를 꽂아 책상 위에 올렸다.

한강은 야쿠르트를 가져와 빨대를 입에 넣고, 쭉쭉 빨았다.

‘이거 알고 있음에도 기대되고, 떨리네.’

상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리도 떨릴 줄이야.

몸이 어려져, 정신도 어려졌는지 모르겠다.

쫍쫍.

야쿠르트를 빨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휴...”

“?”

그런데, 이하나 선생의 표정이 좋지 못하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나, 엉뚱한 생각이 들던 차.

“선생님은 한강이가 어떤 누구보다도 최고라 생각해.”

‘왜 저리 어둡지. 그리고 왜 저런 말을?’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냥 ‘축하한다’ 말하면 될 일을 왜?

의문부호가 떠다녔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수상 문제를 잠시 밀어두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선생님의 기분을 풀어주는 게 먼저인 거 같다.

“그건 아니고... 한강아, 이번 공모전 말이야... 수상하지 못했다고 연락 왔어.”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나는 무척 힘들었다.

보통은 말하지 않고, 가볍게 넘어가면 그만이었지만.

한강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강이 대상이라 생각하며, 발표일만을 기다려왔다.

본인도 그렇게 자신을 하는 눈치였고, 다른 아이들과 달리 무척 어른스러운 영특한 아이였기에 말하는 게 맞다고 봤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역시...’

한강은 모든 말을 알아들었다.

“수상하지 못했다니요?”

한강은 무척 황당했다.

분명히 신문에서 대상이라며 기사까지 떴는데, 이하나 선생은 뜬금없이 수상자에 오르지 못했다 말하고 있었다.

“많이 놀랐지. 선생님도 많이 놀랐어.”

이하나 선생은 한강이 많이 놀라, 큰 충격을 받았다 생각했다.

“저, 선생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반면, 한강은 당최 이하나 선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신문에 기사로 난 마당에, 왜 이하나 선생은 아니라고 하는지를.

“응, 말해보렴.”

침착한 한강의 모습에 살짝 놀란 얼굴을 하다 이내 대견하다 여기며 귀를 기울였다.

“사실 유치원에 오기 전에 신문을 봤는데요.”

“응? 너 신문도... 보니? 아니, 글도 읽을 줄 알아?”

하나는 깜짝 놀랐다.

한문과 섞인 신문을 한강이 읽었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문을 본다는 것 자체도 놀라웠고.

“아, 미안. 신문에서 뭘 봤는데 그러니?”

그것도 잠깐 한강에게 사과를 하였다.

중요한 부분이 이게 아닌데,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을 해버렸다.

“아니에요. 잠시만요.”

“응? 한강아, 한강아 어디가.”

“교실에 다녀올게요!”

한강은 후다닥 달려 아침에 챙겨둔 신문을 가지러 갔다. 부모님에게 걸리지 않기 위하여 가방에 놓아두었다.

“참나, 챙겨오길 잘한 건가?”

한강은 머리를 벅벅 긁고, 해당 기사가 있는 부분에 색연필로 칠하고는 다시 하나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럴 목적으로 챙겨온 것이 아닌데, 확인용이 되었다.

“선생님, 여기 이거 봐주세요.”

무슨 일인가 싶어, 궁금한 시선을 보내는 하나에게 신문을 내밀어 색연필로 표한 기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린이 그림대회 공모전 ‘다섯 살 대천재 화가 등장!’ 수상자 대상은 참뜻 유치원 유한강!]

[아래는 해당 공모전에 내놓은 유한강(5)의 작품이다. 지금껏 본 적 없던 스타일로 그린 이 작품의 내용은 매우 명확하다. 나무 아래에 모여 놀다 간 흔적을 남긴 사람들에게 보내는 다섯 살 아이의 메시지. ‘나무가 쓰레기로 병들어요’...]

“우리 어른들은 유한강 어린이가 보내온 메시지의 의미를 가슴에 새겨... 뭐지?! 이상하다. 한강아, 잠깐만 여기서 기다릴래? 선생님이 아무래도 전화를 해보고 와야 할 거 같은데.”

“네, 다녀오세요.”

하나는 신문을 들고 자리를 피했다.

“음, 아무래도 무언가 꼬인 거 같아. 내가 대상이 아닐 수도 있겠어.”

혼자 남게 된 방, 한강은 만약을 대비해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만약, 수상이 아닐 시 실망으로 다가올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

“연서야, 나야. 물어볼 게 있어서.”

방을 나선 하나는 바로 연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전화 잘했다. 나도 막 전화를 할까, 찾아갈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수화기 너머, 연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서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뭔데? 말해봐.”

-아냐, 먼저 말해. 네가 더 중요한 거 같으니까.

“너 신문 봤어?”

하나는 신문을 읽지 않지만, 연서는 학원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읽었다.

신문을 읽어야 뇌가 건강해진다는 말을 종종 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오늘 발행된 신문을 읽었는지 물었다.

-너 혹시, 한강이 일이야?

“어, 맞아.”

-아무래도 같은 이유 같다. 신문에 대상 기사 뜬 거 때문에 그런 거지?

“어, 응. 봤구나. 그거 어떻게 된 거야? 한강이 대상 아니라며??”

-그래, 그거 아무래도 오보 같아. 내가 다시 확인해 봤는데, 거기 난리 났어. 지금.

“아, 아니구나.”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대를 했는데.

기대는 또다시 처참히 무너졌다.

-빌어먹을 새끼들, 이제는 하다 하다 신문사까지 지랄을 하네. 아 화나!

좀처럼 거친 말을 할 줄 모르는 연서의 입이 요즘 들어 많이 거칠어졌다.

“네가 고생이 많다. 끊을게.”

-쩝, 한강이에게 말 잘해줘.

“응. 수고해.”

-너도.

전화를 내려놓았다.

하나의 얼굴에 씁쓸함이 가득하다.

***

“한강아, 오래 기다렸지?”

“아니에요. 어떻게 됐나요?”

한강은 매우 침착했다.

‘정말 다섯 살이 맞나...’

자신과 달리 한강은 무척 강한 아이였다.

“아니라네. 잘못 나온 기사래.”

“네... 그렇군요.”

“한강아, 미안해.”

“선생님이 미안할 게 뭐 있나요. 제 실력이 부족해서겠죠. 괜찮아요.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하나는 또다시 벙쪘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이건 이것대로 크게 혼란스러웠다.

“전 교실로 가볼게요.”

“어, 그... 그래, 이따 보자.”

한강은 작은 몸을 일으켜 씩씩한 모습으로 교실로 향했다.

“민석이에게 물어봐야겠어.”

하나에게 여섯 살 조카가 있다.

언니의 조카에게 신문을 보여주어 읽어 보라 시켜봐야겠다.

당장 한강과 같은 반에 있는 아이들에게 테스트를 하고 싶지만, 한강이 있기에 언니의 조카를 테스트 대상으로 삼았다.

“후우.”

이럴 때 담배 한 대 쪽 피우고, 연기를 뱉으면 한결 나을 거 같았다.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다.

담배 대신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기분이 안 좋은걸.”

미리 대비를 하였기에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상처 또한 컸다.

“술이 마렵구나.”

아직 다 마시지 않은 야쿠르트를 쭉 빨았다.

단맛과 시원함이 어울려, 쓰라린 속을 달래주었다.

“엄마랑 아빠에게 말하지 않기를 잘했어. 신문을 가져온 것도 그렇고.”

한강은 손에 든 신문을 구겨 야쿠르트 통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말 다행이다.

크게 실망할 부모님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쩝.”

기분만 잡쳤다.

***

하나가 한강을 앉혀 대화하는 시각.

다른 한 곳은 때 아닌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분명 우리 애가 대상이라면서요.”

금목걸이를 주렁주렁 목에 건 40대로 보이는 여성은 성난 눈으로 앞에 앉은 남자를 노려봤다.

“사모님,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따님이 대상이 맞습니다. 신문사에서 착오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여성보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중년남성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정말 맞지요?”

“당연하지요. 이렇게 명단까지 만들었는데, 말입니다.”

종이를 내밀며 말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 초조했다.

“알겠어요. 만약 이번 일 잘못되면, 아빠에게 말해 처리할 테니 잘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종이를 확인한 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경고를 하였다.

“걱정 마세요. 절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거예요. 우리 딸 미래가 달린 일인데. 민서야 가자.”

여성은 이번 공모전에 대상자로 내정된 딸의 손을 잡고 방을 벗어났다.

자칫 일이 틀어지면 어떻게 될 거란 경고를 강하게 박아두는 것을 잊지 않고.

“......”

중년남성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문이 닫히고 구두 굽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이석필 계장 당장 내 방에 튀어오라고 해. 당장!”

중년남성의 고함 소리가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의 분노는 애꿎은 이석필 계장에게로 향했다.

***

저녁 시간.

철컥.

“갑자기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하나의 언니, 하영은 노크 소리에 주방에서 나와 현관문을 열어주다 동생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집에 오기 전에 무조건 연락을 하는 동생이거늘, 연락도 없이 찾아와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마저 들었다.

“무슨 일은, 우리 민석이 보러왔지.”

“민석이를?”

“그럼, 내 조카 얼굴 보고 싶어 왔다. 왜.”

“별 싱거운 년 다 보네.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민석아, 이모 왔다.”

하나는 언니를 지나쳐 거실에서 놀고 있는 민석을 불렀다.

“이모!”

TV를 보던 민석이 폴짝 뛰어 달려왔다.

“잘 있었어.”

“응!”

민석이 웃으며 반긴다.

“별 년 다 보겠네. 뭐, 아이 돌볼 사람이 생겨 좋긴 한데. 쯧쯧.”

하영은 동생을 보다 고개를 젓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혀끝을 찼다.

“헤헤, 예쁘다. 울 조카.”

그러거나 말거나 하나는 조카를 안아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

“민석아, 이모랑 재밌는 놀이 할까?”

“놀이?”

“응, 이거 읽으면 이모가 과자 사줄게.”

가방에서 챙겨온 신문을 바닥에 펼쳤다.

유치원에서 아무 신문이나 들고 퇴근한 하나였다.

“진짜? 아자! 나 글 잘 읽어.”

“그래, 그럼 이거 읽어 볼까?”

“응!”

민석은 해맑은 얼굴로 자신감을 내비쳤다.

“힝.. 이 글자 몰라. 과자 못 먹는 거야?”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게임은 끝났다.

자신감이 넘치던 민석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갔다.

“울지마, 민석아. 이모가 과자 줄게. 여기.”

“와! 이모 최고!”

금방이라도 울 거 같던 민석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민석은 새우깡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먹을 심산이었다.

“...그래, 저게 정상이지.”

다섯 살이 신문을 읽고 이해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여섯 살인 조카의 모습이 지극히 정상이었다.

“한강이가 똑똑한 거야.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한강은 천재라고.

“언니, 나 간다!”

하나는 바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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