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5살, 음모 공모전 수상 오보와 오해
1990년 5월 4일 목요일.
참한 미술 학원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다.
[어린이 환경 그림대회]
[수상작품 통지서]
“엇, 왔다.”
기다려왔던 편지가 도착했다.
연서는 반색하며 봉투를 지익 뜯었다.
[국민학교 고학년]
[대상: XX국민학교 6학년 3반 최민서]
[최우수상: XX국민학교 4학년 1반 이영훈]
......
먼저 보이는 건, 국민학교 고학년 목록.
“대체 뭐야? 왜...?”
통틀어 한 명만 뽑는 대상이 국민학교 고학년에 있었다. 그렇다는 건, 한강이 대상이 아니란 소리가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봉투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저학년]을 지나 맨 아래로 시선을 고정했다.
[유아부]
[최우수상: XX 미술학원 이아람]
[장려상...]
“이건 말도 안 돼! 어째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수상 내역 그 어디에도 한강의 이름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확인해야 돼.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연서는 수화기를 들어 봉투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한강의 작품이 분실이 된 건 아닌지 걱정마저 들었다.
뚜뚜뚜.
“......”
20분째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안 되겠어. 직접 찾아가서 알아보자.”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서는 최근에 뽑은 90년식 엘란트라에 몸을 싣고, 액셀을 밟았다.
***
“보면 볼수록 훌륭한 그림이야. 무엇을 알리고 싶은 건지도 확실히 보여. 한데, 정말로 규정을 위반했을까?”
이석필 계장은 팔을 책상에 기댄 채, 손으로 이마를 짚고 책상 위에 올려 둔 그림을 바라봤다.
[5살, 유한강]
이면지에 나이와 이름을 적어 펜으로 빙글빙글 돌려 동그라미를 그렸다.
“만약, 정말로 이 아이의 순수한 작품이라면 우린 이 아이의 꿈을 망친 거야. 망할 국장 새끼...”
국장 지인들의 자식들도 참여한 이번 공모전의 수상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석필은 인상을 구기며 박두선 국장을 욕했다.
그러면서 피해를 보게 된 아이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가졌다.
“정말 아까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작품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대상감.
하나, 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깨끗한 직업으로 알고 있는 이 바닥은 생각 이상으로 썩어 문드러졌다.
“여기 어린이 공모전 대회 심사를 맡았던 분 불러주세요. 빨리요.”
어디선가,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이석필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창구 쪽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의 행동에 여직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 좀 불러달라는데, 아까부터 안 된다고만 해요. 공모전 심사위원 불러달라고요.”
여성은 보통을 넘는 고집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 보기 전까지 못가니까, 당장 불러주세요.”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민선 씨.”
결국, 이석필이 직접 나섰다.
“아, 계장님. 그러니까, 이분이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을 뵙고 싶다 하셔서...”
“음, 알았어요. 들어가서 일 봐요. 여기는 제가 처리하죠. 제가 심사위원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이석필 계장은 여직원을 안으로 돌려보내고 대신 일을 처리하기로 하였다.
“이번 공모전 수상작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직접 심사를 보신 게 맞으신가요?”
“그렇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나, 음... 이쪽으로 오시죠.”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석필은 주변의 시선을 느끼고 자리를 옮길 것을 권했다.
“혹시, 유한강이라는 다섯 살 작품 아시나요?”
여성은 바로 오연서였다.
연서는 제발 분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
반면, 이석필은 익숙한 이름에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여기서 그 아이의 이름이 나오다니.
“그 아이와 어떻게 되시죠?”
“선생입니다.”
‘다행이다. 분실이 아니어서. 그러면 왜 대상이 한강이가 아닌 거지?’
분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다, 걱정된 마음은 의문으로 바뀌었다.
“그러시군요.”
머리가 아파왔다. 이를 어떻게 설명을 하는 것이 좋을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학원으로 날아온 수상자 목록을 봤습니다. 전 한강이 작품이면 충분히 대상을 받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설사 못 받더라도 수상자 명단에는 있을 걸로 알았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 납득이 가게 설명 부탁드릴게요.”
“......”
모든 내막을 아는 이석필은 말이 궁해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할 말은 정해져 있었기에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양심이 그걸 방해할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아이의 작품으로 말들이 많았습니다.”
시작은 짧게.
“우린 이 그림을 규정 위반 작품으로 지정해, 심사에서 제외를 시켰습니다.”
끝은 모든 걸 타당하게 만드는 룰을 꺼내 들었다.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린가요? 규정 위반이라니요? 대체 뭐가 규정 위반이라는 거죠?”
너무 황당하면 화도 나지 않는다 했다. 지금 오연서가 딱 그랬다.
대뜸 규정 위반으로 심사에서 뺐다고?
“그 그림 선생님이 도와주신 거 아닙니까?”
“설마, 그 그림을 제가 도왔다 생각해 위반처리를 하셨다, 뭐 그런 말을 하고 계신 건가요?”
이런 황당한 일이.
그제야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거 같았다.
왜, 한강의 작품이 수상작에 오르지 못했는지를.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이 되지 않지 않습니까? 암만 뛰어난 아이가 그렸다 쳐도, 글쎄요. 제 상식선에서 그건 무척 어렵다 봅니다. 우리 솔직해지죠.”
말은 이리하고 있지만, 이석필 계장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선생의 눈을 보면 안다.
불쾌함이 가득한 저 시선.
‘진짜로 그 그림을 다섯 살이 그렸을 줄이야. 허허.’
저것이 의미하는 건, 100% 다섯 살 아이의 작품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러나.
‘그걸 인정하는 순간, 끝이야.’
어떻게 자신의 직장이 저지른 부정을 외부인에게 발설할 수 있겠나?
자칫 잘못되면 옷을 벗어야 하는 수가 있었다.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그건 피해야 하는 길이고 선택이었다.
“정말 불쾌하군요.”
“뭐가 불쾌하시다는 건지, 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의심이 간다면, 직접 아이를 만나 확인을 하면 되는 문제 아니던가요?”
“심사위원이 별도로 참가자를 만나는 건, 규정에 위반되는 행동입니다.”
“허참, 정말 어이가 없어서. 그 규정 위반이라는 거 아주 잘 써먹네요. 요즘 공무원들 규정에 위반되는 행동들 많이 하던데, 그건 되고 이건 안 된다는 건가요?”
긴 시간 봐온 건 아니지만, 선생으로서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한강이 실망할 거란 생각이 들자,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눈에 불을 켜더라.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 하나의 말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뭐라 하셔도,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설사 그 아이가 그린 게 맞다 하더라도 이미 수상자는 정해졌습니다.”
“......썩었군요. 대체 이 공모전은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행사인지 모르겠네요. 더 말해봐야, 소용없겠죠.”
“......”
“그림 주세요. 가져가겠습니다.”
“공모전 작품은...”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 주세요. 서로 피곤해지기 전에.”
눈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조금만 더 건들면 당장 물어뜯어 버릴 기세를 뿜어댔다.
얼굴에는 많은 감정이 스쳐 갔다.
“...잠시 기다리시오.”
여기서 무어라 더 말하려던 걸 멈췄다.
이석필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나 미팅룸을 나서 자리로 이동했다.
‘빌어먹을.’
***
루루, 목에 카메라를 걸치고 들어오는 남자의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어깨가 들썩들썩.
팔자걸음으로 위풍당당 창구로 다가갔다.
“하이, 예쁜 민선 씨.”
창구 앞에서 업무를 보는 여자에게 다가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 계장님 미팅 가셨어요.”
매번 있던 일인지, 민선은 가져가던 시선을 무심하게 아래로 내렸다.
“거참, 매번 매정하네. 내가 이렇게 애정을 보내며 티를 내주면...”
찌릿.
“알았어. 알았어. 거참, 째려보기는. 계장님 미팅은 언제 들어가셨는데?”
“10분 정도 되셨어요.”
“중요한 일? 언제 끝나?”
“그건 모르겠고, 공모전 관련된 일이에요.”
“알았어. 나 계장님 자리에 가 있는다. 심심하면 불러.”
“...가보세요.”
‘되게 비싸게 구네, 그게 또 매력이지만...’ 중얼거리며 싱긋 웃고는 이석필 계장의 자리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가는 길에 눈에 닿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걸 빼놓지 않았다.
쾌활한 그의 인사는 이석필 계장의 자리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다.
“이게 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리니, 보자. 우리 계장님이 뭐 하고 계셨는지.”
자리에 도착한 남자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이것 봐라?”
책상으로 시선을 던진 순간, 호기심을 유발하는 그림 한 장을 발견했다.
“공모전 심사위원을 맡으시더니, 그림을 모으는 취미를 가지셨나?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니까. 이 말이 딱 맞아. 그나저나 이거 느낌 있는데?!”
남자는 그림을 집어 들어 유심히 살폈다.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스타일의 그림이었다.
“음? 잠만, 이거 혹시...”
유명한 화가가 그린 작품이라 여기며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본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재질은 일반 8절지 도화지. 그림을 모을 거라면 액자에 끼워두지, 이렇게 아무렇게나 놓아두지 않을 터다.
남자는 도화지를 이리저리 살피다,
[참뜻 유치원]
[참새반, 5살]
[유한강]
도화지 뒷면에서 이상함을 느끼게 만든 원인을 찾아냈다.
“......유아부 공모전 작품이라고?! 맙소사.”
아주 신선을 충격을 받았다.
손에 들린 이 그림이 고작 다섯 살의 아이가 그린 공모전 작품이었던 것!
누군가 던진 야구공에 세게 맞은 기분이다.
“그렇다면, 이게 이번 공모전 대상이겠구나.”
이 이상의 작품이 유아부, 국민학교 아이들 중에 또 나올 확률은 극히 적었다. 아니,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계장님 자리에 있는 걸, 보면 대상작이 맞네. 이런 걸 들고 있었으면서 내게 전화를 하지 않으시다니. 너무 하시네. 보자보자.”
남자는 곁눈질로 주변을 쓱 훑었다. 모두 자기들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흐흐, 이런 대박 기삿거리를 내가 놓칠 수 없지. 계장님 미안하게 됐습니다. 나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수.”
목에 걸린 카메라를 들어 렌즈를 그림에 맞췄다.
셔터를 눌러 그림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았다.
찰칵찰칵.
“다섯 살 천재 화가의 등장, 공모전 대상. 제목부터가 죽이네. 죽여. 이번 기사 메인은 나다. 흐흐.”
남자의 정체는 KBC 신문기자 이억수로 제대로 된 기사를 물어오지 못한다고 매일 면박을 받기로 유명한 기자였다.
사무실에만 들어가면 숨이 턱 막혀, 늘 산소호흡기를 외쳤다.
그러다 아이들 공모전 수상작이 정해졌다는 정보에 곧장 걸음을 하였는데.
땡잡았다.
“어이, 이 기자. 거서 뭐 해.”
“아이고, 계장님. 미팅 끝나신 겁니까?”
행복한 상상에 빠지던 때, 기다리던 이석필 계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수는 그림에서 시선을 떼고, 표정을 싹 고쳤다.
“거기 뒤져봐야 기삿거리 없어. 여기에 있지 말고 어서 나가. 바쁘니까.”
억수를 옆으로 밀치고 책상에 있는 그림을 들었다.
그러면서 못마땅한 눈으로 노려보다, 발길을 돌렸다.
“또 어디 가십니까. 계장님.”
“일 없어. 가봐. 바빠.”
“공모전 수상작 나온 거 알고 있는데, 그러시기에요?”
“그거 딴 데 줬어, 신경 꺼. 그리고 앞으로 내 자리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밖에서 기다려. 간다.”
이석필은 손을 흔들고, 복도로 꺾어 모습을 감췄다.
“후후, 내가 모를 줄 알죠. 계장님. 이번 기사 제가 가져갑니다.”
이억수 기자는 사라진 이석필 계장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민선 씨, 담에 봐.”
창구를 지나가는 길, 다시 한 번 민선에게 윙크를 날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오예! 괴성과 함께.
“좀 조용히 왔다 사라질 순 없나?!”
억수가 나간 문을 바라보던 민선은.
“으, 소름 끼쳐.”
닭살이 돋은 두 팔을 두 손으로 열심히 비볐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면상을 떠올리며.
부들부들.
***
끼이익.
“여깄으니, 가져가세요.”
미팅실로 석필이 들어왔다.
석필은 그림을 연서에게 건넸다.
“수고하세요.”
연서는 더 볼 필요 없다는 듯, 그림을 받자마자 등을 돌렸다.
“한데, 말입니다.”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참지 못하고 연서를 부르던 순간.
“더 할 말이 있던가요?”
‘아니야, 물어본들 무슨 소용이야. 됐어. 이대로 보내자.’
생각이 다시 바뀌었다.
수상작에 오르지 못한 그림이 진짜로 아이가 그렸든, 아니든 그게 뭔 상관일까?
결과는 나왔고, 결과에 대한 번복은 없었다.
“아닙니다.”
“......”
또 뭔가 있나 싶어 걸음을 멈췄는데, 들려오는 말에 김이 팍 샜다.
“...흥.”
연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벗어났다.
오늘처럼 역겹고 짜증 나긴 처음이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연서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남몰래 고개를 숙였다.
그 시간.
“흐흐, 특종이다. 특종이야.”
이억수는 대박 특종을 따냈다며, 콧노래를 부르며 액셀을 강하게 밟아 신문사로 복귀하고 있었다.
진실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