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8화 (8/237)
  • 8화. 5살, 어린이 그림대회 공모전

    1990년 4월 30일 월요일 오전 10시.

    “어머니, 저희 이만 내려갈게요. 한강아, 할머니한테 인사하자.”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큰엄마 큰아빠 안녕히 계세요. 고진아, 용진아 다음에 봐.”

    아침을 다 먹고 소화를 시킨 시간,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순으로 북한산에 남아 있는 어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갈게요. 더 나오지 마세요.”

    덕화의 인사를 끝으로 북한산을 내려갔다.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

    참으로 재밌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5월이 되었다.

    어린이날 노래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한강이 오랜만.”

    30일까지 쉬고 5월 1일 화요일 유치원에 등교했다.

    이하나가 방긋 웃는 얼굴로 한강을 반겼다.

    “할아버지 환갑잔치는 잘 보냈어?”

    “네, 이거 할머니가 싸준 떡인데, 엄마가 선생님 드리래요.”

    아까부터 손에 들린 비닐봉지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한강의 어머니가 보내온 선물이었다.

    “어머, 백설기 아냐. 내가 엄청 좋아하는 건데. 어머니께 잘 먹겠다고, 감사하다고 전해드리렴.”

    봉지에는 먹기 좋게 잘라 놓은 여섯 조각의 백설기가 들어가 있었다.

    하나는 비닐봉지를 건네받아, 한쪽에 놔두었다.

    “얘들아, 한강이가 맛있는 떡을 가져왔어요. 우리 한강이에게 잘 먹겠다고 말해주자.”

    이하나 선생을 포함해, 유치원에 근무하는 선생을 위하여 준비한 떡. 이하나는 자신의 몫을 아이들과 나누기로 하였다.

    ‘하여간, 참 좋은 사람이야. 대개 저런 여자가 이상한 남자와 엮이던데. 그러지 않기를...’

    한강은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이하나 선생의 행복이 평생 깃들기를 바랐다.

    “한강아, 고마워!”

    “잘 먹을게.”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을 따라 말했다.

    “오늘 점심에는 간식으로 떡 먹자.”

    와─!

    아이들이 환호를 한다.

    아이들을 참 잘 다루는 선생이었다.

    “오늘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그림을 그릴 거예요. 모두 준비물은 잘 챙겨왔죠?”

    네─!

    전날 오후 집으로 연락이 왔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그림을 그릴 거니, 미술용품을 챙겨오라고.

    아이들은 기대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우리가 그린 그림은 모두 어린이 그림 공모전에 나갈 거예요.”

    ‘응? 공모전? 이건 또 뭔 소리야?’

    황당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점에 웬 공모전?

    그리고 유치원에서 다섯 살이 그린 그림을 왜?

    많은 의문부호가 따라붙었지만.

    “그러니 열심히 해요. 참고로 이번 공모전은 장학금이 걸려 있어요. 장관님 상장도 받으니까, 모두 열심히 해봐요.”

    이하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열정을 태웠다.

    ‘한강아, 화이팅.’

    이 모든 건, 한강을 위한 이벤트였다.

    한강을 바라보는 하나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장학금?!”

    또 무슨 일을 벌이나 지켜보던 한강은 장학금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장학금이 걸린 대회, 이건 무조건 나가야 하는 대회였다.

    꿀꺽, 입가에 고인 침이 목으로 넘어갔다.

    “저 선생님.”

    한강이 손을 들었다.

    “장학금 대상이 얼만가요?”

    머릿속은 온통 원화와 달러가 돌아다녔다.

    “50만 원.”

    “...감사합니다.”

    한강은 얼떨떨하였다.

    50만 원이면 아빠의 월급보다 많은 돈이다.

    게다가.

    ‘장관 상장을 받으면 미래에 꽤 도움도 될 거고. 이건 반드시 내가 가져간다.’

    한강의 두 눈가에 뜨거운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확실히 별나다니까.”

    그런 한강의 변화를 조용히 지켜본 하나는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한강을 바라봤다.

    다섯 살이 과연 50만 원의 가치를 알 것이며, 장학금이 얼마인지 관심을 가질까?

    알면 알수록 묘한 아이였다.

    “그나저나 작전 성공인가?”

    뭐가 어찌 되었든 일단 한강이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건 성공을 한 거 같다.

    하나는 오늘 하루를 모두 그림에 쏟아부을 각오를 다졌다.

    “음, 주제가 자연이라...”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 대회인 만큼, 그림의 퀄리티만을 따지지 않을 터다.

    창의력과 표현능력에 상당한 점수를 주리라 봤다.

    “그렇다고 실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하얀 도화지를 보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자연, 환경, 쓰레기.

    “음, 잠만. 이거 아주 좋을 거 같은데? 저, 선생님.”

    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하나 선생을 불렀다.

    “응, 무슨 일이에요?”

    그림을 그리지 않고 고민에 빠져 있던 한강의 모습을 지켜보던 차,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호기심이 동했다.

    오늘은 어떤 그림으로 자신을 놀라게 할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스카치테이프 빌릴 수 있을까요. 얇은 걸로요.”

    “테이프? 테이프는 왜?”

    “그림에 꼭 필요해서요.”

    “음... 잠만. 테이프가 여기 어디 있을 텐데.”

    그림에 왜 스카치테이프가 필요한지 이유가 무척 궁금했지만, 일단 꾹 눌러 참기로 하고 테이프를 찾았다.

    창가에 자리한 책상 서랍을 열어 뒤적거렸다.

    “찾았다. 이거면 될까?”

    “네, 선생님.”

    한강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테이프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대체 뭘까?’

    자리로 돌아가는 한강의 뒷모습을 눈으로 조용히 좇았다.

    “마스킹 테이프가 없다는 게 아쉽네. 뭐, 꿩 대신 닭이지. 일단 이걸 테이프가 종이에 완전히 달라붙지 않게 막자.”

    한강은 테이프의 접착력을 약하게 만들기 위하여 책상을 깨끗하게 닦은 뒤 붙였다 떼어내기를 반복했다.

    찌익, 착. 찌익, 착.

    붙였다 떼기를 여러 번. 한강은 테이프의 접착력을 도화지 끝단에 붙였다 떼어내 접착력을 테스트하였다.

    “이 정도면 되겠어.”

    부드럽게 잘 떨어졌다.

    “그럼 시작하자.”

    8절지 도화지를 가로로 해놓고 접착력을 거의 잃은 테이프를 도화지 면에 세로로 정확히 3등분하여 붙였다.

    “엄마가 알고 사신지 모르지만, 꽤 좋은 물감을 사오셨어.”

    심지어 붓도 꽤 값이 나가는 튼튼한 놈이다. 한강은 엄마의 마음을 되새기며, 치약처럼 생긴 물감을 도화지에 찍어 내려갔다.

    색은 다양하다. 파란색, 붉은색, 검은색 등등.

    종류별로 3등분한 세 면에 골고루 찍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색은 어둡게 변했다.

    “준비 끝. 시작하자.”

    붓에 물기를 최소한으로 하고, 붓을 번갈아 사용해 도화지에 찍어 놓은 물감을 골고루 좌우로 퍼트렸다.

    “왼쪽에 큰 나무를 그리고, 가지를 오른쪽까지 그리고...”

    첫 면에 판타지 세계에서 볼 법한 거대한 나무를 그렸다. 나무에서 뻗은 가지를 길게 늘어트려 오른쪽 끝 면까지 연결을 하였다.

    스스스.

    오로지 물감만을 이용해 빠르게 그려나갔다.

    첫 장면은, 나무 아래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노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두 번째 장면은, 가지에 붙은 이파리가 떨어져 내렸다. 노란색, 붉은색.

    그 아래는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세 번째 장면은, 이파리라고 찾아볼 수 없는 썩은 나뭇가지들 아래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휴, 완성이다. 이제 여기서 이 테이프를 뜯어내면.”

    치이익. 도화지 면에 붙은 테이프를 천천히 떼어냈다. 물감으로 얼룩졌던 테이프가 있던 자리는 깨끗한 새하얀 면이 그림의 장면을 구분 짓게 하였다.

    “와...”

    뒤에서 감탄 소리가 들려왔다.

    “응?!”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선생님, 거기서 뭐 하세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하나 선생.

    이하나는 입을 닫는 걸 잊기라도 한 듯, 입을 벌린 채 한강의 그림을 넋 놓고 바라봤다.

    “우와...”

    뒤를 잇는 목소리. 그건 주변으로 모여든 아이들의 감탄사였다.

    “한강이 멋지다.”

    “역시 한강이야.”

    남자, 여자아이들 할 거 없이 엄지를 세웠다.

    “한강아, 이거 네 머리에서 나온 거니?”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월등한 실력에 하나는 꾹 눌러 참던 궁금증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네.”

    ‘정확히는 미래에서 가져온 지식을 응용한 거지만요.’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해 그리는 건 21세기에 유행하던 그림이다.

    그림을 조금 그린다 하는 사람들은 SNS에 올려 실력을 뽐냈다.

    ‘지금은 내가 최초인가?’

    90년대에는 찾아볼 수 없는 세련미가 넘쳐 흐른다. 한강은 만족한 얼굴로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고 작게 웃었다.

    “선생님, 이거 내면 되는 거죠?”

    “아, 어. 응...”

    넋 놓고 있던 하나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한강의 그림을 챙겼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그림 다 그림 사람은 손들고 대기.”

    “선생님 여기요!”

    “저도 그렸어요!”

    아이들이 후다닥 자리로 돌아가 손을 들어 자신의 그림을 자랑했다.

    아이들의 순진함이 담긴 그림을 보다, 한강의 그림을 보는데.

    ‘이건 너무 사기잖아...’

    편견 없이 아이들을 대하고 싶지만, 한강이 내민 작품은 그러지를 못하게 만들었다.

    실력 차이가 너무도 났다.

    “휴, 정말 천재다.”

    하나는 걸음을 옮겨 아이들의 그림을 거두면서도 신경은 온통 한강에 가 있었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모습은 정말이지 다섯 살이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대상은 따놓은 건가?”

    이번 대회의 대상은 한강이 차지하리라 확신했다. 세상에 한강이 같은 아이가 또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강에게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교실을 나섰다. 그녀의 발걸음은 빠르게 사무실로 향했다.

    ***

    “말도 안 돼. 이게 정말 다섯 살이 낼 수 있는 퀄이라고?!”

    이하나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연서는 책상 위에 올려진 그림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스타일의 그림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미 머릿속에는 상식이라는 단어가 실종됐다.

    “이거 대회에 내기 아깝다.”

    그림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당장 밖에 내놓으면 50만 원, 아니지. 그 이상은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와, 계획은 맞아떨어졌는데, 이렇게 그리면 어떻게 하라고...”

    밥 아저씨가 떠오른다.

    참 쉽죠?

    “......”

    잘 그려도 너무 잘 그렸다. 그래서 문제였다.

    설마, 이렇게까지 그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기대야 했지만, 이건 아니었다.

    “이거 내지 말까?”

    연서는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한강이가 아까 묻더라. 장학금 얼마냐고. 50만 원이라 그랬더니, 눈빛이 변했어.”

    아까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털어냈다.

    장학금부터 시작해 테이프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 부분까지.

    그야말로 돈에 사로잡힌 화신이었다. 어찌나 활활 타오르던지.

    아마, 이걸 내지 않겠다고 한다면...

    ‘절대 안 돼.’

    순간 다섯 살 아이에게 혼나는 자신을 생각했다.

    몸이 부들 떨렸다.

    “무조건 내야 돼. 한강이가 크게 실망할 거야.”

    “별수 없지. 그렇다면. 이거 내자.”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해. 돈을 떠나서 한강이에게 큰 이력이 생기는 거잖아.”

    “그렇지. 그거야... 그만 생각하련다. 나 이만 일어날게.”

    지금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연서였다. 연서는 하나에게서 건네받은 그림들을 박스에 넣었다.

    “벌써 가게?”

    “그래야지. 이것도 제출하고 내 개인적인 일도 보려면.”

    “그래, 조심히 가.”

    “결과는 이번 주 중으로 나올 거야.”

    “알았어. 고생해.”

    연서는 박스를 안아 들고 복잡한 감정을 짊어진 채, 유치원을 벗어났다.

    ***

    5월 4일 금요일.

    시청, 공모전 수상작품 회의실.

    “이거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말입니다.”

    방안에 두 명의 남성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입을 연 중년인의 얼굴에 불안감이 맺혀 있었다.

    “뭐가 말입니까? 잘 보세요. 이게 어딜 봐서 다섯 살이 그린 그림인가요? 계장님은 이게 납득이 가십니까?”

    반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중년인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아이들 그림 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두 남자의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물론, 믿기 힘들긴 합니다. 하지만 직접 확인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이석필 계장님, 우리가 어디 놀면서 일합니까? 시간이 그렇게 남아도십니까?”

    턱살을 부르르 떨며 말하는 중년인은 계속해서 심기를 건드는 계장을 향해 윽박질렀다.

    “하지만 이건...”

    “어허, 이건 확인을 해보나마나 위반행위입니다. 규정 위반이다 이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계장의 의견을 묵살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개새끼, 제 자식들은 그래서 낙하산을 태웠냐?’

    불독을 떠오르게 만드는 중년의 면상에 주먹을 꽂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는 사회적 강자이고, 자신은 약자다.

    “...알겠습니다. 국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사람이 말입니다. 눈치가 빨리야 합니다. 융통성 있게 일해야지요. 더 할 말이 없다면 나가보세요.”

    이석필 계장은 책상 위에 올려진 그림을 들고 방을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