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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게 예술이다-7화 (7/237)
  • 7화. 5살, 자본을 불려 저금하다

    15분 전.

    “할머니께 어떻게 말한다.”

    회갑연으로 정신없는 시간, 동생들과 떨어져 홀로 고민에 휩싸였다.

    할머니에게 은행에 함께 가자 말하고 싶었지만, 구실이 부족했다.

    “할멈, 여기 닭 좀 더 줘. 아가야, 술 좀 더 가져온나.”

    “고진이 엄마, 여기 보쌈 한 접시 더.”

    엄마와 큰엄마는 밀려오는 주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이들은.

    “으아아앙.”

    울거나.

    “엄마, 나 쉬이!”

    바지를 내리거나.

    쨍그랑─!!

    사고 치느라 바빴다.

    휴.

    나오는 건 긴 한숨뿐. 올 때까지 좋았는데, 현실은 왜 이리 피곤한지.

    아이들과 거리를 쓰윽 더 벌렸다.

    사건과 사고가 넘나드는 공간에서 도망쳤다.

    “형님은 좋겠수다. 손자 잘 둬서, 이런 멋진 그림도 받고 말이오.”

    “그러게 말이오. 내 살다 저런 다섯 살은 또 처음이요. 허허.”

    그때 할아버지와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지나가려던 걸음을 우뚝 멈춰 귀를 가져갔다.

    “그만 돌려 봐. 그러다 찢어지겠어.”

    어제는 그렇게 부끄러워하더니, 그림 가지고 자랑 삼매경에 빠져 계신다.

    귀여운 분. 후후.

    “이거 잘하면, 꿩 먹고 알 먹고 일타이피를 노려볼 수 있겠는걸?”

    머릿속으로 번뜩이는 멋진 아이디어가 스쳐 갔다.

    두 눈동자에 곧 ‘원(₩)’ 단위가 떠올랐다.

    입가에는 욕심쟁이 놀부의 미소가 가미되었다. 한강은 후다닥 집으로 뛰어 들어가 드로잉 북을 포함하여 미술용품이 들어있는 노란 가방을 챙겨 들었다.

    ***

    “할아버지.”

    “어, 여기는 왜 왔어. 저짝 가서 놀지 않고.”

    한열이 주변을 경계하고 나섰다. 가자미눈이 되어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오, 이게 누구야. 우리 한강이 아니야.”

    “안녕하세요!”

    “허허, 예의도 바르고. 누구랑 달라.”

    “헤헤. 감사합니다.”

    한강은 아이의 해맑은 모습을 보였다.

    “한데, 그건 뭐냐?”

    한강의 손에 들린 노란 가방에 한열이 물었다.

    “그림 용품이 들어있는 가방요.”

    “그림?”

    “호.”

    해맑게 웃는 한강의 모습, 그런 한강에게서 흘러나온 음성에 자리한 사람들이 진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럼, 이 할아버지도 그려주련?”

    그중 유독 붉게 달아오른 중년인이 물었다.

    “안 돼. 주정뱅이 술을 곱게 처마실 것이지. 어디서 귀한 손주 힘들게 하려고.”

    한열은 절대 안 된다며 손으로 한강을 보호했다.

    “누가 구두쇠 할아버지 아니랄까 봐.”

    “쯧쯧, 저러니 욕을 먹지.”

    한열의 행동에 분위기가 싸늘하다.

    “할아버지, 용돈을 받으면서 그리면 되잖아요.”

    “용돈? 용돈이 필요한 게야?”

    “네!”

    “어린 녀석이 뭔 용돈?”

    시작도 하기 전에 현실의 장벽을 느꼈다. 주름 짓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살짝 움찔했지만.

    여기에 굴복해 뜻을 포기할 한강이 아니었다.

    “매일 할아버지께 그림을 그려주고도 싶은데, 이게 너무 비싸요. 엄마랑 아빠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제 손으로 돈을 벌어서 엄마랑 아빠를 돕고 싶어요.”

    이유는 가져다 붙이면 그만이다.

    현실 속에 보이는 진실과 눈으로 보이지 않는 거짓을 적절히 섞어 아이가 품을 수 있는 생각을 적절히 표현을 하였다.

    물론, 이건 한강의 생각일 뿐.

    “으앙, 졸려. 졸립다고!”

    “싫어, 안 먹어!”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땡깡 소리.

    “......”

    “......”

    사람들의 시선이 저 멀리 옮겨졌다 돌아왔다. 보통 다섯 살들의 모습이 저랬다.

    한데, 한강은 그들과 확연히 달랐다. 의젓하고 올곧다.

    심지어 부모의 어려움을 돕기를 바랐다.

    “허허, 내 자식보다 낫구만. 비켜봐. 네 손주에게 나도 그려달라 그래야겠구만.”

    “어허, 연장자가 먼저인 거 몰라?”

    “이거 왜 이러실까? 순서는 지키라고. 고스톱도 이짝으로 순서가 돌아가는데, 순서는 지켜야제.”

    기다리던 대답은 할아버지였는데, 할아버지가 아닌 친구분들에게서 들려왔다.

    “허, 남의 환갑잔치에 와서 쯧쯧. 망할 늙은이들. 한강아, 이 할아비들 그리는 데 힘들지 않겠누?”

    덕화에게는 까탈스럽고 무심한 아버지이지만, 이 순간 한강에게만큼은 온정으로 감싸는 유한열이다.

    “네, 할아버지. 유치원에서도 집에서도 많이 그려봤는걸요.”

    거짓말이지만, 어떠랴.

    듣기 좋으면 그만이었다.

    “내 손주 그림이여. 주머닛돈 후하게 터는 게 좋을 거여.”

    한열은 예의 큰 눈에 힘을 주어 경고를 하였다.

    “왜 네가 난리야. 값은 주인이 치러야지. 한강아, 그렇지? 그림 한 장에 얼마더냐?”

    한열에게 핀잔을 준 좌측에 위치한 베레모를 쓴 노인이 인자한 얼굴로 물었다.

    “만 원이요.”

    “뭐?”

    베레모 노인은 깜짝 놀랐다. 천 원이나 부르면 많이 불렀다 생각했는데,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푸른 잎을 주문했다.

    “만 원요!”

    ‘그냥 만 원 주세요. 잘 그려줄 테니 말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천 원을 부를까 하다 생각을 바꿨다. 이곳에 자리한 할아버지들 주머니는 제법 풍족하다. 만 원 한 장 사라진다 하여 티조차 나지 않았다.

    “허허, 녀석하고는. 만 원이 어떤 돈인 줄은 알고.”

    “알아요. 엄마한테 용돈 안 받아도 미술공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다는 것 정도는요.”

    “요 맹랑한 녀석 같으니. 좋다. 이 할애비가 만 원 줄 테니까, 잘 그려줘야 한다.”

    “네!”

    대체로 어르신들은 돈에 대한 욕심이 없다. 더욱이 현금이 많기로 유명한 이곳에 거주하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이제 실력 발휘를 해볼까.’

    그림에 뜻은 없었지만, 가장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었다.

    핑계도 좋기에 펜을 들기로 하였다.

    사사삭.

    노란 화구 가방의 단단한 면에 드로잉 북을 고정해 자세를 잡았다.

    덥수룩한 검은 수염 사이로 보이는 하얀 수염이 이번 그림의 핵심. 하지만 수염 때문에 얼굴의 윤곽과 인상이 죽으면 안 된다.

    피부 톤은 연하게 명함을 주고, 서서히 수염을 살려 나갔다.

    ‘끝으로 지우개 모서리를 이용하면...’

    약 30분의 시간. 빠르게 완성된 그림은 누가 보더라도 상 건너에 자리한 베레모를 쓴 노인이었다.

    한강은 지우개를 이용해 검게 칠해진 수염을 지우개를 이용해 하얗게 표현을 하였다.

    ‘어차피 입시로 낼 그림도 아니고, 이 정도면 적당하지.’

    애초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릴 생각은 없었다. 제대로 그리게 되면 반나절 이상이 걸리는 게 그림이었다.

    그걸 속성으로 그려 30분 만에 끝냈다. 사실 지금 그림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

    그러나.

    ‘30분에 만원이면 거저지.’

    100% 장사꾼 마인드로 그림을 그렸다.

    매우 만족스럽다.

    “여기요. 할아버지.”

    프로들 눈에는 한참 부족한 작품이겠으나, 다섯 살 나이로 30분 만에 그려낸 완성도는 모두를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허, 허허. 좋구나. 요 끝에 있는 건, 네 사인이냐?”

    “네, 할아버지. 마음에 드세요?”

    사인은 작가의 흔적.

    비록 완성된 그림은 아니나, 한강은 유치원 선생인 이하나를 떠올려 흔적을 남겼다.

    “아주 마음에 들어. 허허. 고맙구나. 고마워. 허허.”

    노인은 매우 만족한 듯 허허 웃으며 종이가 상할까 싶어 옆에 자리한 작은 박스에 그림을 넣었다.

    그러고는 박스를 소중히 품속에 안아 들었다.

    “나도 부탁할까. 아가.”

    “만 원입니다.”

    “허허.”

    선결제는 필수. 추가로 들어오는 만 원을 가방에 넣고 방긋 웃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해가 서서히 기울어 산등성이에 다다를 즈음.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모든 작업이 끝났다. 한강은 만족한 미소를 입가에 품고 정중히 허리를 숙여 배꼽 인사를 하였다.

    “그래, 그래. 덕분에 좋은 추억을 가져간다.”

    자리는 어느 틈에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 모두 만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 원에 그림을 산 중년인들은 허허하고 웃으며 길을 떠났다.

    “아주 쏠쏠해.”

    오늘의 수익은 6만 원.

    이번 생에 가장 많은 수익을 낸 날이 되었다.

    ***

    회갑연이 끝나고 모든 정리가 끝난 저녁 시간.

    “한강아, 얼마 벌었어? 엄마한테 슬쩍 말해봐.”

    허리를 두들기고 방으로 들어오는 미화는 아들 옆에 앉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바쁘게 일하느라 정신은 없었지만, 눈과 귀가 있었기에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주 잘 알았다.

    “6만 원요.”

    한강은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숨긴다고 숨겨질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와, 우리 아들 부자네. 엄마보다 낫다야. 호호.”

    미화의 하루 일당은 1만 원을 조금 넘기는 수준.

    6만 원이면 최소가 5일은 일해야 받아볼 수 있는 거금이었다. 한데, 아들은 단 세 시간 만에 6만 원을 벌어들였다.

    무척 영악하고 똑똑한 아들의 모습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엄마, 3만 원 드릴게요.”

    가방에서 3만 원을 꺼내, 엄마에게 건넸다.

    “응? 이걸 왜. 아들이 힘들여서 번 돈인데. 엄마한테 줘.”

    “엄마, 애들 용돈 주고, 나머지는 엄마 옷 사 입으시라고요. 저 때문에 돈도 많이 쓰셨잖아요.”

    집으로 돌아가기 전, 없는 형편에 예의상 지갑을 열어 동생들에게 용돈을 줄 것이다. 그런 엄마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하였다.

    미술용품들을 산다고 무리를 하시기도 했고, 이렇게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옷도 너무 낡았어. 지금 시대에 이 정도면... 보탬이 되겠지.’

    남자야 그렇지만, 엄마는 여자.

    한창 꾸미는 걸 좋아할 나이다.

    돈을 벌어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용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생각했다.

    “아들...”

    미화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모습에 깊게 감동을 하였다.

    “담엔 지금보다 더 많이 드릴게요.”

    “미안해. 아들. 엄마가 너무 미안해. 우리 아들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해서. 흑흑.”

    몸도 마음도 힘든 날이었다. 그런 날에 아들의 한마디는 눈물 댐을 무너트리기 충분했다.

    ‘정말이에요. 조금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평생을 돈 걱정 없이 살게 해드릴게요.’

    한강은 각오를 다지며, 하루빨리 성공할 것을 다짐하였다.

    “할머니!”

    다음 날, 한강은 후다닥 달려 할머니가 있는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이따 시장 간다고 하셨죠?”

    “그랬지. 왜?”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

    아주 우연히 들은 정보. 그렇지 않아도 할머니에게 부탁해 시내로 나가려 하였는데, 아주 자연스러운 기회가 찾아왔다.

    “어이구, 할미랑 같이 있고 싶었구나. 그러자. 할미랑 가자.”

    “아자!”

    “녀석하고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강조하며 연기하기도 힘들다. 한데, 할머니 앞에서는 그 행동조차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머니, 괜찮으시겠어요.”

    옥순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미화가 걱정이 가득한 눈빛을 던졌다.

    “한강이가 얼마나 말도 잘 듣고 착하냐. 난 괜찮다.”

    옥순은 인자한 눈으로 한강을 내려봤다.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괜찮대도. 마침 혼자 가기 적적했는데, 한강이가 있어 심심하지 않고 좋을 거 같아.”

    “어머님이 그러시다면, 잘 부탁드려요. 한강아, 할머니 손 꼭 잡고 말 잘 들어야 한다? 알았지?”

    미화가 걱정이 되는지, 몇 번이고 한강에게 주의를 주었다.

    “말 잘 들을게요.”

    “그래, 잘 다녀오고.”

    “네!”

    한강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50대의 정신을 가진 한강으로서 지금의 순간이 고역일 수 있었지만,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아. 확실히 전생과는 많은 게 달라. 천하의 내가 이런 작은 거 하나에 좋아하게 될 날이 오다니. 후후.’

    한강은 속과 다른 해맑은 얼굴로 할머니 손을 꼭 붙들고 산에서 내려갔다.

    “저, 할머니...”

    산 중턱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내려온 지 30여 분이 지난 시점. 찾아다니던 은행 간판이 시야로 들어왔다.

    “왜? 뭐 먹고 싶어?”

    시장 주변은 먹을 거 천지였다.

    족발, 떡볶이, 순대 등등.

    군침 도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아니요. 은행에 들렀음 해서요. 어제 그림 그리면서 받은 용돈을 통장에 넣고 싶어요.”

    내려오면서 어제 벌어들인 돈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드렸다. 할머니도 알고 있던 내용이었는지, 조용히 웃으시기만 했지만.

    “아이쿠, 기특도 해라. 그래서 할머니를 따라왔구나?”

    “아, 아니에요. 할머니랑 같이 있고 싶어서 따라온 거예요.”

    “후후, 괜찮아. 가자.”

    한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머리카락이 참으로 부드럽다.

    옥순은 한강을 데리고 은행으로 향했다.

    “할머니 여기요.”

    한강은 가방에서 돈을 꺼내 할머니에게 건넸다.

    “와, 우리 새끼 부자네. 여기서 좀만 기다려. 할미가 금방 올게.”

    가까운 거리에 배치되어 있는 의자에 한강을 앉히고 옥순은 창구로 향했다.

    “입금이 완료됐습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창구직원은 통장을 옥순에게 돌려주었다.

    “수고해요.”

    친절한 미소에 옥순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한강아, 여기 통장 있다.”

    “감사합니다!”

    내미는 통장을 받아들었다. 드디어 모든 돈이 통장에 입금이 되었다.

    재산이 조금씩 늘어나는 기쁨에 가슴이 설렜다.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야.’

    한강은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든 통장을 펼쳤다.

    “어라?!”

    통장을 펼쳐, 통장 종이에 찍힌 숫자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잘못 봤나 싶어 손으로 눈을 문질러 본 다음 통장을 확인했다.

    “......”

    하지만 통장에 찍힌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한강은 고개를 천천히 들어 시선을 위로 가져가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

    할머니가 귀엽다는 듯, 희미하게 웃고 계셨다.

    “한강아, 이 다음에 커서도 지금처럼 훌륭하게 자라야 한다. 알았지.”

    “할머니, 감사합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이 은혜 꼭 갚을게요.”

    생각지도 못한 할머니의 후원.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시선을 통장에 가져갔다.

    [입금된 금액: ₩ 555,000]

    [잔액 : ₩ 635,000]

    마음이 따스하다.

    할머니께 큰 은혜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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