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6화 (6/237)
  • 6화. 5살, 자본주의 미소를 걸치다

    꼬끼오─

    옆 건물에서 키우는 닭들이 새벽 6시가 되기도 전에 울어댄다.

    시계는 5시 20분.

    참으로 부지런한 백숙들이다.

    “으자자자.”

    한 번 눈을 뜨면 다시 감는 법이 없다. 다시 감는 버릇을 들이면 평생 좋지 않은 습관에 빠져들기에 가장 경계했다.

    샤아아아─

    공용욕실로 들어가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였다.

    “크, 시원타. 이 맛에 일찍 일어난다니까.”

    샤워하고 나오니, 5시 50분이 되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현관문 앞에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며 신문이 오기를 기다렸다.

    탁!

    가벼운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6시에 배달부가 신문을 던지고 사라졌다.

    “역시 아침은 신문으로 시작이지.”

    신문을 들어 활짝 펼쳤다.

    “끙, 팔이 너무 짧아.”

    자신의 키와 비견되는 크기의 신문 탓에 펼친 신문을 다시 접어, 눈에 들어오는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전국 증권사는 일제히 ‘깡통계좌 정리’에 돌입했다. 아침 동시호가에 증권안정기금이 받아줄 반대매매 물량의...]

    “...6시에 완료했다. 85년 코스피지수 1천 포인트였던 게 급락하고, 결국 5년 만에 600포인트가 무너져서 559포인트까지 추락했다라. 쯧쯧.”

    신문을 보는 한강의 이마에 작은 주름(?)이 졌다. 이마를 위로 올려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신용융자가 2조5천, 신용담보는 1조 1천억에 130%. 팔아도 상환할 수 없는 계좌가 1만5천 개. 아주 잘하는 짓이다.”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답답함이 뇌를 주물렀다.

    “재정부는 지금껏 뭐 하고 이제야 증권가에 깡통계좌를 정리하게 하는지, 정말로 한심한 족속들이야. 그나저나 이걸 지금 느꼈네. 이제부터 세로쓰기가 아니라 가로쓰기인가?”

    늘 신문기사는 세로로 읽어 내려갔는데, 지금 보는 신문은 기사가 가로로 나열돼 있었다.

    이제야 좀 익숙한 형태가 되었다.

    “이게 이 시기였지. 드디어 내년부터 외국전화회사가 생기는구나.”

    [통신 시장 내년 앞당겨 개방.]

    [데이콤 등 경영주도권 허용.]

    “이걸 부모님이 투자를 하면 정말 크게 뜰 것들인데. 주식을 무서워하시니. 쯧쯧.”

    조그마한 체구로 신문을 들고 있는 모습이 무척 우스꽝스럽다.

    신문과 키재기를 해도 좋을 정도로 한강의 몸은 무척 작았다.

    “쩝. 아쉽구나. 아쉬워.”

    하나, 한강은 그런 건 신경조차 쓰지 않고 신경을 신문에 집중했다.

    다섯 살 어린이의 말을 들을 어른이 현실적으로 몇이나 될까? 없다 보는 게 맞았다. 백날 설득해봐야 소용없는 행동.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거부감이 드는데, 부모님들이야 오죽할까?

    안타깝지만, 이 좋은 기회는 그냥 넘기는 게 좋을 거 같다.

    신문을 더 봐야 아쉬움만 가득 남을 거 같아, 덮고 집으로 가져갔다.

    “아들 벌써 일어났어.”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난 미화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내려보다 싱크대로 향해 물을 틀어 얼굴을 적셨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늘 할머니 댁에 가신다 했잖아요.”

    집에 차량이 없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야 했다. 도보와 산을 오르는 시간까지 대략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

    부지런할 필요가 있었다.

    “후후, 할머니 만나면 좋겠네. 우리 아들.”

    “네. 좋아요. 빨리 할머니 만나고 싶어요.”

    올해 할머니의 연세는 50대 초반으로 매우 젊으셨다. 아빠와 할머니의 차이가 나와 아빠의 차이일까?

    ‘빨리 뵙고 싶은 분이야.’

    90년대라 세련미는 떨어지시지만, 무척 온화하시고 정이 많으신 착한 할머니시다.

    “아빠 좀 깨울래? 엄마는 아침 준비해야겠다.”

    말끔히 준비한 한강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덕화를 깨울 것을 주문했다.

    아들의 목소리에 끔뻑 죽는 덕화였다.

    “네!”

    안방으로 들어가 하얀 난닝구에 팬티 차림으로 코를 드르렁거리는 아빠에게 향했다.

    “아빠, 일어나세요! 할머니네 가야죠.”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아빠를 깨웠다.

    “아들...”

    후다닥.

    급히 뒤로 후퇴를 하였다.

    큰 팔을 이용해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모습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진하게 흘렀다. 위험했다.

    ‘엄마는 그렇다 쳐도 아빠 품은 거절입니다. 특히, 지금 차림으로는.’

    순수하게 다섯 살이었다면 어땠을지 싶지만, 지금은 극구 사양이다.

    겨드랑이에 보이는 풍성한 겨드랑이털은. 윽.

    참기 힘들다.

    “아빠! 아빠!”

    “응, 음. 으...”

    계속되는 부름에 그제야 눈을 뜨고 일어선다. 어디선가 진한 암내가...

    “어서 씻어요. 엄마는 아침 준비하고 아빠 씻으면 씻는대요.”

    한강은 덕화를 힘겹게 재촉해 일으켜 세워 세면장으로 보냈다.

    정말 전투적인 아침이었다.

    빠아아앙─

    아침을 먹고 도보로 전철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탔다. 1시간 반 정도 걸려서야 구파발에 도착했다. 주변은 완전히 시골.

    여기가 시골인지 서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낙후된 동네였다.

    ‘전생과 비교해, 너무 극과 극이군.’

    그래도 시장은 꽤나 컸다. 시장에서 대충 장을 보고 역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택시에 올랐다.

    “북한산성으로 가주세요.”

    세 식구를 태운 택시는 익숙한 길을 따라 북한산을 올랐다.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을 따라가다 비포장길을 만났다. 이리저리 꿀렁이는 좋지 못한 승차감에 멀미를 느끼며 산 중턱에 다다랐다.

    웩─

    한강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참았던 구토를 길바닥에 시원하게 뿌렸다.

    ‘망할, 이 시대 택시는 냄새도 그렇고 정말 저질이야.’

    꿀렁꿀렁거리던 택시 냄새만 생각하면 고통 그 자체다. 담배로 찌든 냄새부터 시작하여 좋지 못한 승차감.

    언제까지 이 고통을 달고 살아야 할지 심히 부담된다.

    “많이 힘들지. 아빠 등에 업혀.”

    덕화가 한강의 앞에 등을 내보였다.

    “감사합니다.”

    걸을까 하다 고개를 가로 세게 저었다.

    여기서부터 20분은 더 걸어야 할머니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짧은 두 다리로 걷기보다 업혀 가는 게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가자.”

    아빠의 등에 업혀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후아...’

    산은 무지 높았다.

    아빠의 다리가 왜 그리 튼실한지 충분히 납득이 갔다.

    “할머니!”

    저 멀리 담배를 물고 바람을 쐬고 계시는 할머니가 보였다.

    “아이구, 내 새끼 왔누. 왜 이리 늦었어. 할미가 목 빠져라 기다렸는데.”

    한강의 목소리를 들은 할머니, 한옥순은 피우던 담배를 황급히 끄고 한강을 안아 들었다. 온화함이 잔뜩 묻은 미소에.

    “보고 싶었어요!”

    한강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맴돌았다.

    “헤헤.”

    오랜만에 할머니의 따스한 온기에 흠뻑 취했다.

    “왔으면 어여 상이나 거들어.”

    지게를 짊어진 노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홱 돌아갔다.

    “할아버지!”

    한강의 친할아버지 유한열이었다. 한강은 두 손을 벌려 흔들었다.

    “녀석하고는.”

    유한열은 심드렁한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고 시선을 아들, 덕화에게로 돌렸다.

    “뭐 해. 준비 않고.”

    “아, 네.”

    “며늘아기는 가게 좀 보고.”

    “네, 아버님.”

    한열은 지게를 내려놓고 덕화와 자리를 떴다.

    ‘참 잔정이 없는 분이야. 오자마자 일이라니. 어휴.’

    옥순과 한열은 북한산 중턱에 자리한 계곡에서 장사를 하였다. 오리, 닭, 토끼, 꿩 등등 요리를 하여 손님들에게 판매를 하였다.

    ‘그야말로 사기적인 가격이야. 절대 적자 날 일은 없겠어.’

    손익분기점은 반년 만에 넘었을 터다. 이 장소에서 장사를 하는 곳은 단 두 곳. 관광객은 평일 주말 따지지 않고 연일 만석이었다.

    “한강이는 할미랑 있자.”

    “네!!”

    ‘그러고 보니 큰집이 보이지 않네. 오랜만에 녀석들 얼굴을 보나 했는데.’

    할머니의 첫째 아들인 큰아빠. 둘째인 큰고모.

    두 집안의 형제와 남매를 오랜만에 보게 된다 생각하니, 무척 반가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장사를 도우며 살고 있는 큰아빠와 큰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고진이랑 용진이는요?”

    “절에 갔단다. 이제 내려올 시간인데, 우리 한강이가 보고 싶구나. 기다려 보자.”

    북한산 위로 자주 다니는 절이 있다. 노적사.

    제법 유명한 절이다. 몇 년 전까지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종종 다니던 절이라 아주 잘 기억한다.

    “엇, 한강이 형!”

    “횽아.”

    3, 40분 정도가 흘러 기다리던 큰집 동생들이 귀가했다. 한 살 차이인 고진과 세 살 차이인 용진이 와서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큰엄마.”

    “한강이 많이 컸네. 어른스럽고.”

    큰엄마인 홍아애가 방긋 웃어 보였다.

    아애는 한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니, 전 주방 정리하고 올게요.”

    “같이 하자구나. 한강이는 여기서 동생들과 놀고 있거라.”

    옥순과 아애가 방을 빠져나갔다. 방에는 셋만이 남겨졌다. 어린 용진이는 네발로 기어 다니기 바빴고, 한강은 고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에 바빴다.

    대화라는 것이 계곡에 놀러 가 물장구를 치며 놀자는 내용이 다였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아. 귀여운 녀석들.’

    한강은 지루할 법하지만, 고진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주었다.

    “후아, 힘들다.”

    “젊은 녀석이 그것 가지고는. 쯧쯧. 저리 허약하다니.”

    오후 5시.

    덕화가 땀을 흘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아버지 때문에. 어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일을 도우느라 기가 다 빨린 모습이다.

    “수고하셨어요.”

    “그래, 우리 한강이가 최고네. 씻고 올 테니까, 여기에 있어.”

    가족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덕화는 땀에 젖은 옷을 대충 벗고는 계곡물과 연결된 욕실로 향했다.

    “할아버지, 환갑 축하드려요. 이건 제가 할아버지랑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에요.”

    “......”

    “......”

    저녁을 마친 시간, 온 가족이 모여 밀린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자리에 한강이 불쑥 끼어들었다.

    덕화와 미화를 제외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한강의 말에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섯 살이 구사할 수 없는 어휘를 발휘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곧 신경은 한강이 내민 그림에 쏠렸다.

    “맙소사.”

    “세상에.”

    “이걸 정말 한강이 네가 그렸다고?”

    한강의 그림을 처음 본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한강의 나이는 고작 다섯 살. 성인의 반도 되지 않는 덩치를 가진 아이가 그렸다고 보기에 어려운 그림이 도화지에 펼쳐져 있었다.

    푸르른 산 아래 낡은 집. 그 중심에는 한열과 옥순이 작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옥순을 보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참으로 예쁘다.

    “네. 할머니. 헤헤.”

    “어머니, 한강이가 그림에 소질이 있어요. 얼마 전에는요...”

    놀랄 틈도 없었다. 미화는 이때다 싶었는지 아들 자랑 삼매경에 빠졌다. 덕화도 거들어 한강의 뛰어남을 자랑했다.

    “별놈이 손재주는 타고 낫구나. 허허.”

    한열도 썩 싫은 눈치가 아니었다. 도화지를 들어 티 나지 않는 따스한 미소를 슬쩍 지었다.

    그의 모습을 가만히 앉아 보는 온 가족들 얼굴에도 미소꽃이 번졌다.

    이날 저녁의 주제는 한강에서 한강으로 끝이 났다.

    에헤야 디야─

    다음 날 오후, 북한산에 경사가 벌어졌다. 한복을 입은 식구들이 어화둥둥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만수무강하세요.”

    “환갑 축하드려요.”

    “오래 사세요.”

    유한열의 환갑잔치가 북한산 넓은 공터에서 벌어졌다. 동네 주민들도 한데 어울려 잔치를 즐겼다.

    “형님은 좋겠수다. 손자 잘 둬서 이런 멋진 그림도 받고 말이오.”

    “그러게 말이오. 내 살다 저런 다섯 살은 또 처음이요. 허허.”

    한열은 동네 사람들에게 한강의 그림을 자랑하기 바빴다.

    “그만 돌려 봐. 그러다 찢어지겠어.”

    그러기를 잠시,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타기 시작한 그림이 훼손되지 않을까, 황급히 그림을 빼앗아 돌돌 말아 원통에 넣었다.

    “허허, 형님. 그러는 게 어딨습니까? 허, 그림 잘 그리는 손자 없는 늙은이들은 다 죽어야지.”

    “맞습니다. 이거 서러워서 살겠나.”

    한열의 행동에 심통 난 중년인들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나오지 않는 눈물을 짜내려 노력했다.

    그 모습들이 얼마나 애처롭던지, 그 모습들을 보는 몇몇 사람들은 웃음보를 터트리기까지 하였다.

    한편.

    “이거 잘하면 돈벌이가 되겠는데?! 흐흐.”

    근방을 지나던 한강의 입가에 자본주의 미소가 번졌다. 계곡으로 향하던 걸음을 꺾어 한강은 집으로 달려갔다.

    “잘만 살리면, 목돈 좀 건질 수 있겠어. 후후.”

    두 번째 사업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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