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3화 (3/237)
  • 3화. 5살, 그림을 그리다

    “이걸 정말 한강이 네가 그렸다고?”

    이하나 선생이 보내온 편지를 읽은 김미화는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이 되어 그림을 바라봤다. 5살 아이가 그릴 법한 그림이 결코 아니었던 까닭.

    그림을 보는 안목이 좋다 말할 수 없지만, 지금 손에 들려있는 그림이 단시간에 그려낼 수 있는 그런 간단한 그림이 아니란 사실 정도는 잘 알았다.

    그렇기에 아들을 의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을 전공한 선생의 도움이 없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었다. 평소에 그림에 ‘그’자도 그려본 적 없는 아들이 그렸다는 사실은 쉬이 믿기 어려웠다.

    “그리기는 했는데...”

    아주 당연한 반응이라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사실을 거짓으로 말하기도 싫고, 사실을 말하자니 귀찮은 일이 생길 거 같아 두렵다.

    “했는데?”

    “그냥 엄마랑 아빠 얼굴 떠올리니까, 그려졌어요.”

    옛 성격이 어디에 가지 않는다. 에둘러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 탓에 있는 그대로 말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인생에서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다.

    전쟁터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시대면 모를 일이나, 지금과 같은 평화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다.

    오른손도 알게 하여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방법이야말로 현시대에 맞는 말이지 않을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에게 알려 도움을 청하라. 한 손보다 두 손이 낫다.’

    얼마나 좋은 말인지, 머릿속 깊이 각인해 둘 필요가 있다.

    하여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며 입증해 보이기로 하였다.

    “그 말이 정말이야?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누구라고 그랬지?”

    아, 엄마 제발. 그런 건 좀 넣어두세요.

    오그라들어요.

    “...거짓말하는 사람요.”

    발끝에서 간지럼증이 찾아왔다. 오글오글.

    닭살이 피부를 뚫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만약 거짓말이면 어떻게 할 거야?”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답답함이 심장을 후벼 팠다.

    당장 ‘아들을 믿지 못할망정, 의심부터 하는 겁니까!’ 소리를 치고 싶지만, 그랬다가 효자손에 의하여 흑역사를 찍을지 몰랐다.

    ‘그건 절대 사양이야.’

    가방에서 여분으로 남겨 둔 돌돌 말린 도화지를 꺼내어 펼쳤다.

    “제가 이 자리에서 엄마를 그려볼게요. 보시고 엄마가 결정해 주세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삼국지의 조자룡이 되어 창 대신 색연필을 들어 결연한 의지를 담았다.

    “한강아...?!”

    ‘정말 내 배에서 나온 아이가 맞는 거야?’

    다섯 살이라 부르기 어려운 어휘를 자유로이 사용하는 부분과 자신의 뜻을 확고하게 표현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볼 때면 소름이 쫙 끼쳤다.

    “엄마, 잠시만 기다리세요. 10분, 아니 5분이면 돼요.”

    “......”

    미화는 입을 다물고 아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첫째 아이는 엄마를 닮는다 하였다. 옅은 쌍꺼풀에 동그란 갈색 눈. 오뚝한 콧날 밑으로 보이는 핏기 도는 붉은 입술.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과 완전히 판박이다.

    이걸 보면 분명히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맞는데...

    스스스─

    고집스러운 눈으로 그림을 그리는 아들의 모습은.

    ‘내 아들이지만 멋져.’

    자신과 남편의 성격과는 전혀 반대인 아들의 모습에 흠뻑 반하고 말았다.

    ‘우리 엄마지만 참 미인이야. 진짜 아빠는 엄마한테 잘해야 돼. 20살에 임신시키고 군대까지 다녀온 걸 떠올리면...’

    절레절레.

    21세기에 20대로 살았다면, SNS스타로 군림해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았을 미모다.

    촌스러운 옷들로도 감출 수 없는 미모를 이런 도화지에 담기가 매우 아깝다.

    ‘돈 좀 벌고 여유가 생기면 정말 멋진 그림을 엄마에게 선물하자.’

    당장은 의심을 풀기 위한 5분짜리 그림이지만, 추후에는 다를 것이다.

    ‘맙소사.’

    한편, 한강의 손에 의하여 빠르게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보는 미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입은 커질 대로 커져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완성됐어요. 5분이라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제 실력을 보이는 데 부족하지 않을 거예요.”

    기고만장한 콧대가 위로 올라갔다.

    “넌 천재야...”

    “헤, 헤헤.”

    엄마의 칭찬 소리에 귀가 번뜩 뜨였다. 감동받은 눈빛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날 저녁.

    “허, 허허.”

    모처럼 일찍 퇴근해 집으로 들어온 남편을 자리에 앉혀 아들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덕화는 아내가 내보이는 그림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이걸 한강이가 그렸다고?”

    “그렇다니까.”

    “나 몰래 미술이라도 시킨 거야?”

    “시키기는 뭘 시켜. 그리고 시킨다 치자. 다섯 살짜리 아이가 이렇게 그린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렇지. 말이 안 되지.”

    “그 말이 안 되는 걸, 날 닮은 아들이 해냈다 이거야.”

    “너 말이 좀 이상하다?”

    “이상하긴, 맞는 말 했는데. 한강이 외모 보면 딱 나잖아.”

    “너 우리 아빠 몰라? 취미가 조각이야. 우리 집안이 손재주 하나는 타고났다고.”

    “이야기가 왜 또 그렇게 흘러가는데? 우리집도 머리 좋고, 예술성이 풍부한 사람들 많거든?!”

    그림 한 장을 두고 둘의 경쟁이 시작됐다. 다행히 중간에 한강이 없어 망정이지. 있었다면.

    ‘난 엄마 아들이 맞아요’

    한마디로 불길에 기름을 던졌을지 몰랐다.

    “그래, 그래. 내가 졌다. 그래서 어쩔 건데?”

    결국 덕화가 두 손을 위로 들어 항복 자세를 취했다. 더 이야기를 한다 해서 아내가 물러서지 않을 거 같다.

    “흥, 휴. 나도 그게 모르겠어. 자기도 알다시피 한강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아니지. 많이 다르잖아.”

    “그렇지. 많이 다르지.”

    반찬 투정도 없고, 딱히 가지고 싶어 하는 것도 없다. 심지어 의젓하기까지 하다. 거기다 더 웃긴 건.

    [엄마, 나 세뱃돈 저금하게 통장 만들어 줘요.]

    이 한마디는 집안 내 전설로 종종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대체 어디서 통장이란 말과 저금이란 말을 배워 온 것인지. 신기할 노릇이다. 현재 통장은 한강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그것도 놀라운데, 난 다섯 살이 되고 유치원 들어갈 때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집안이 어렵다는 걸 깨달은 건지.

    [도시락에 햄이나 고기는 넣지 않아도 돼요. 김치만 있어도 좋아요.]

    “내가 이 말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알아? 그 말 듣고 정말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야. 얼마나 미안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어떻게 김치만 싸줘. 절대 싫어. 고기도 많이 먹일 거고, 맛있는 거 많이 먹일 거야.”

    화색으로 물들던 미화의 얼굴에 슬픔이 깃든다. 못난 부모를 만나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고생하는 아들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우리 미술학원 보내자. 쭉 생각해 봤는데, 한강이의 재능을 이대로 썩힐 수 없다고 봐. 내가 잔업을 더 하면 돈은 더 벌 테니까. 학원비는 걱정하지 말고.”

    “정말 괜찮을까?”

    “과외 선생이 지금 유치원에서 배울 법한 건 다 배워서 국민학교 과정으로 넘어가도 된다고 했다며. 그럼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지.”

    “알았어. 그럼 내가 회사 반차 내고 알아볼게.”

    오랜만에 의지가 되는 말을 해주는 남편 덕에 미화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부족한 살림이지만, 아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리 한강이 잘 키워보자.”

    덕화는 아내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응...”

    미화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강이 아빠.”

    “미화야.”

    둘의 눈이 맞닿아 뜨거운 열기를 피우기 시작한 시각.

    작은 방에서 이부자리 위에 누운 한강은.

    “... 할 거면 좀 이따 하시지.”

    아직 어린아이의 몸이지만, 머리는 그렇지 않은 한강으로서는 눈물의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생긴다면 예쁜 여동생이 좋을 거 같습니다. 엄마. 아빠.”

    한강은 태어나 처음으로 늦은 새벽녘에 눈을 감을 수 있었다.

    ***

    꼬끼오─

    옆집에서 키우는 닭이 이른 아침을 알렸다.

    아빠는 먼저 출근하고 부엌에는 엄마가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안 해주셔도 돼요. 저 정말 괜찮아요.”

    오늘도 도시락 안은 풍년이다. 계란말이에 또 케첩...

    거기에 햄과 야채로 볶아진 밥이 도시락 안을 장식했다.

    “한강아, 이럴 땐 엄마에게 감사합니다 말하는 거야. 그리고 아들을 챙겨 주는 건 엄마 마음이야. 한 번만 더 엄마한테 그런 말 하면 혼낼 거야. 자, 해봐.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나이가 어려도 엄마는 엄마라는 것일까?

    아무래도 실수한 거 같다. 그저 집안에 지출되는 돈을 막고자 했을 뿐인 것을.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그렇게 말하니 얼마나 좋니. 자 엄마 볼에 뽀뽀.”

    와장창창, 또 머릿속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건 하지 않았음 좋겠는데.

    빵빵─

    그때 구원의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

    “어, 엄마. 유치원 봉고 왔어요. 다, 다녀오세요!”

    급한 마음에 말실수를 한 것도 모르고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가 봉고에 올라탔다.

    잠시 뒤, 한강의 입에서.

    “휴, 살았다.”

    안도의 한숨이 들려왔다.

    야쿠르트 아줌마 - 야쿠르트 주세요♩

    야쿠르트 없으면 - 요구르트 주세요♬

    요구르트 없으면 - 요쿠르트 주세요♪

    의자 위에 올라선 지휘자의 손길에 맞추어 아이들이 한목소리가 되어 노래를 불렀다.

    “그렇지. 잘한다.”

    점심시간, 아이들과 비즈니스 거래를 하기 전에 아주 좋은 노래를 유치원에 전파했다.

    “한강아, 노래 왕 좋다.”

    참새반의 꽃이라 불리는 미나가 배시시 웃는다. 양볼 안으로 쏙 들어간 보조개가 무척 귀여운 아이였다.

    “좋은 거 알려주면 어떻게 하라 했지?”

    “감사합니다.”

    “그래, 잘했어.”

    인사하는 미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참 착한 아이다.

    자, 그럼 오늘도 시작해 볼까?

    “노래도 다 불렀으니 간식 먹을 사람 모여라.”

    “나 집에서 150원 가져왔어!”

    “그거 심부름해서 번 돈?”

    “웅! 가르쳐준 대로 심부름하고 심부름값 받았어.”

    “잘했어. 자, 가져가.”

    “아싸!”

    우석이가 좋다며, 150원을 건네고 야쿠르트를 집어갔다.

    ‘정말 다섯 살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구나.’

    돈 벌기가 참 힘들다. 적어도 고등학생 정도만 된다면, 어떻게든 해볼 만할 텐데.

    이 점이 매우 아쉽게 다가온다.

    “다 팔았다.”

    오늘의 매출도 1500원 올렸다.

    “한강아.”

    깜짝, 돈을 세고 있을 때,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잠깐 선생님 좀 보자.”

    “자, 잠시만요!”

    주머니가 작아 1500원이나 하는 동전이 다 안 들어갔다. 서둘러 가방을 꺼내 챙겨온 동전 지갑 안에 동전들을 넣었다.

    ‘아직 돈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들이니... 괜찮겠지.’

    동전 지갑을 다시 가방에 넣어 두고, 후다닥 선생에게 달려갔다.

    “엄마?”

    밖으로 나가자, 엄마가 서 있었다.

    “한강아, 우리 같이 이야기하러 가자.”

    엄마가 웃으며 손을 내미신다. 반자동으로 손을 올려 엄마의 손을 잡고 선생의 뒤를 따라 교무실로 향했다.

    “네가 한강이구나. 반가워. 어머니 되시죠.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서자, 낯선 여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신입 교사인가 싶었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아 그건 아닌 거 같았다.

    “혹시 이쪽 분이...?”

    엄마는 아는 모양.

    “네, 어머니. 제가 좀 전에 말씀드린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예요.”

    “안녕하세요. 오연서예요.”

    이대 미대를 듣는 순간, 지금 어떻게 굴러가는 상황인지 알 거 같았다.

    한강의 얼굴이 대번에 와락 구겨졌다.

    ‘결국 이거였나.’

    계획에도 없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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