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 버는 게 예술이다-2화 (2/237)
  • 2화. 5살, 눈에 띄는 아이

    응애응애─!!

    격한 타격음에 정신을 차린 날,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게 대체?!’

    머릿속으로 의문부호가 떠다니기를 몇 날 며칠.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하, 내게 멋진 일이 생겼구나. 아주 재밌어. 재밌게 됐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그날, 마지막에 깨우친 예술을 찾기로 하였다.

    ‘새롭게 시작을 해보자.’

    다시 태어난 지 일주일 이후에 든 생각이다.

    ***

    5살이 되었다.

    옹알이를 떼고 걸음마를 시작해, 이제는 제법 뜀박질도 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처음 환생이란 걸 겪었을 때 어찌나 당황을 했던지.

    1985년 3월 25일 오후 2시에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이라 짐작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88올림픽을 지나 1990년에 이르렀다.

    여기서 불리는 이름은 유한강.

    버들 류(柳), 우아할 한(嫻), 굳셀 강(强).

    우아하고 힘있게 지내라 뭐 그런 뜻으로 풀이된다.

    “정말 형편없군.”

    2층짜리 작은 주택. 반지하나 다름없는 1층에 자리한 20평 남짓한 집.

    좁은 거실에 방 2개. 화장실과 욕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아주 경제적인 구조.

    이곳이 앞으로 살아갈 ‘집’이다.

    “안방 창문 바로 앞은 연탄 창고. 거실에는 연탄을 넣을 수 있는 돌에, 정문과 뒷문이 있는 1층 집이라. 도둑이 들어 털리거나, 연탄가스에 질식해 죽기 딱 좋은 환경이야.”

    부모님은 잠든 새벽 시간, 조용히 눈을 떠 집안 경제력을 되짚어봤다.

    가히 감탄이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세상에 이런 경제적이고 위험한 집은 전생을 통틀어 처음이다.

    “이게 일반적인 서민들의 삶?”

    A부터 F까지의 등급이 있다 치면 E 정돈 되리라 봤다. 적어도 굶고 추위에 떨며 죽을 정돈 아니니.

    “작업복을 봤을 때 일반 중소기업이고.”

    작업복에 새겨진 제일(齊一)기업. ‘(주)’는 없었다.

    “중소형기업으로 짐작이 되고. 지금의 부모님 나이... 아니지... 연세를 따져보면 아빠는 45만 원 정도 받는다 치자. 엄마는 여성이란 점에서 40만 원이라 치고.”

    이거 참, 좀처럼 엄마와 아빠라는 말이 좀처럼 입에 붙지를 않는다.

    50대에 이르는 정신을 타고난 상황.

    유한강은 입에 붙지 않는 이 호칭을 부를 때면, 피부로부터 닭살이 돋는 기분을 맛봐야 하였다.

    “...그럼 대략 85만 원. 대출이 얼마인지 모르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최악은 면했나?”

    완전히 밑바닥은 아니었다.

    아빠의 성격은 조금 못난 정도. 하나 그게 꼭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만약, 대표 시절이었다면 당장 해고 감이나, 잘 이끌어 주면 발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집안 경제 개선이 우선인가?”

    일단 현 상황에서 빠져나올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자, 그럼 어떤 방법으로 가난의 인식을 바꾸고 현 환경을 탈출할 기회를 제공할지가 관건이다.

    “이 집의 지출을 최대한 막자. 이게 우선이야. 지출로 소비되는 돈을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하는 것이 제일 좋을 거 같은데. 흠,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군.”

    생각을 접고 현 몸뚱이를 둘러봤다. 혼자 나갔다가 납치당해 어디론가 끌려가기 딱 좋았다.

    “전생 가문의 스위스 계좌라도 털면 좋을 텐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역시 주식만 한 게 없겠어.”

    외국주식은 힘들고, 국내주식 종목 중 하나를 선택해 보자.

    앞으로 크게 뜰 주식들과 비상장 주식들을 머릿속으로 쭉 펼쳐 보았다.

    육성전자, 엔지전자 등 국내 대표 기업부터 시작해 쭉 나열해 봤다.

    “내가 다 기억하는 건 아니니 좀 더 지켜보자.”

    0부터 채워가는 건 또 처음. 앞으로 벌어질 미래가 무척 기대가 되었다.

    절망보다 미래에 대한 진한 흥분감이 심장에 똬리를 틀었다. 두근두근. 두근거림이 전신에 세포 단위로 퍼져갔다.

    짹짹─

    “한강아, 유치원 가야지. 일어나자.”

    유치원 갈 시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제 밤중에 일어나 무리하게 생각을 했는지, 제법 피곤하다.

    “네, 엄마.”

    떠지지 않는 눈을 힘겹게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아이들이 잠이 많은지 알 것도 같다.

    푸하, 푸하.

    공용욕실에서 수건을 목에 걸치고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세안을 했다. 찬물이 얼굴에 얹어지니 쏟아지던 졸음이 싹 달아났다.

    치카치카, 양치까지 끝.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밥은 편식하지 말고. 친구들과 싸우지도 말고.”

    “네...”

    50대 정신으로 유치원을 간다는 건,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젖비린내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그야말로 고역이요 지옥이었다.

    엄마의 충고 아닌 충고를 들으며 통근 봉고... 아니, 유치원 봉고를 기다렸다.

    마침 저쯤에서 모퉁이를 돌아 유치원 봉고가 들어왔다.

    “엄마 다녀올게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봉고에 올랐다. 노란 옷을 입은 선생님이 두 손을 주차 요원처럼 흔들며 반겨준다.

    “안녕. 한강아. 오늘도 멋지다.”

    “감사... 합니다.”

    조금은 촌스러운 머리지만, 귀여운 외모와 제법 잘 어울리는 이하나 선생님을 바라보다, 시선을 쓱 창 너머 저 멀리 옮겼다.

    “하아... 빨리 성인이고 싶다.”

    지금 심정으로는 당장 군대라도 입대해 각개전투를 받고 싶은 심정이다. 울고 떠드는 아이들의 잡음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울고 싶다.

    착하고 귀여운 아이들의 꿈동산─

    “모두 잘했어요.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고, 이따 봐요.”

    율동과 함께 하는 유치하고 낯부끄러운 노래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기다리고 기다린 시간이 찾아왔다.

    “모두 거기서 뭐 해요. 수업 시작, 모두 자리에 앉아요.”

    네─!!

    일을 막 시작하려던 차,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목소리에 응답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강이는 뭐 하니. 어서 앉아요.”

    “......”

    선생님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는다. 단발머리에 이마를 내보인 귀여운 모습.

    나이를 좀만 더 먹었다면, 대시를 해봤을 착한 외모다.

    “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 자리에 있는 게 뭘까요?”

    “크레파스요!”

    “도화지요!”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선생님 물음에 답했다. 해맑은 모습이 순수함 그 자체다.

    “맞아요. 이건 도화지고, 이건 크레파스죠. 오늘은 이 크레파스를 이용해서 부모님의 얼굴을 그려볼 거예요. 가장 잘 그린 친구에게는 여기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줄 거니까, 모두 잘 그려봐요.”

    “네!”

    ‘참 잘했어요’ 도장을 아이들에게 내보이며 방긋 웃는다. 도장 하나에 모든 걸 거는 아이들이다.

    “자, 그럼 모두 시작.”

    ‘솔’톤의 귀여운 목소리에 아이들은 제각기 원하는 색상의 크레파스를 꺼내어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를 조합해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갔다.

    “음...”

    아이들의 그림을 잠시 감상했다. 과연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의심이 드는 사이보그를 도화지에 채운다. 어떤 아이는 얼굴의 반도 안 될 몸통을 그려놓기도 하였다.

    “그림이라, 이 몸으로 잘 그려지려나?”

    전생에 접한 그림과 음악.

    한강은 새로운 감성에 젖어 크레파스를 들었다.

    “뭐, 이 정도면 괜찮겠지. 엄마 아빠라...”

    엄마의 얼굴과 아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창창한 20대의 모습. 주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다시 오지 않을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크레파스를 도화지에 가져갔다.

    “와...”

    30분이 지났을 무렵, 아이들은 자신이 그리던 걸 멈추고 한강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잠시의 멈춤도 없이 다양한 색상을 이용해 입체감 있게 그려가는 그림에 사로잡혔다.

    “맙소사.”

    참새반 이하나 선생도 아이들의 반응이 이상하여 와봤다가 푹 빠진 모습. 당장 미대에 들어가 졸업작품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걸로 보이는 작품은 전율을 일게 만들었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이하나 선생을 기점으로 하여 맴돌았다. 다른 아이들을 챙겨야 하지만, 정신이 그쪽에 집중돼 그러지를 못했다.

    “이게 한계인가? 아쉽지만 여기서 끝내자.”

    그림이 완성되었다.

    작업복을 입고 열심히 일하는 아빠의 모습, 디테일하게 제일기업 로고도 넣었다. 사랑으로 도시락을 싸주는 엄마의 모습도 담았다.

    아빠와 엄마의 사이에는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자신을 그렸다.

    굳이 제목을 짓자면 ‘씨앗’ 정도.

    “응?! 다들 왜 여기에 모여 있어? 선생님 뭐 하세요?”

    집중할 때는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1시간 정도를 걸려 완성한 그림을 보다, 뻐근한 몸을 풀기 위하여 기지개를 켜려는데, 주변에 모인 아이들과 선생이 시야로 들어왔다.

    깜박깜박.

    “한강이 대단하다. 우아...”

    “사진 같아.”

    아이들의 감탄사가 들려오고.

    “한강아, 혹시 미술 학원에 다니니?”

    이하나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아!’

    뭔 소린가 싶어 눈을 깜박이길 여러 번, 그러다 무언가를 깨달았다. 잠시 잊고 있었다.

    전생에 가지고 있던 버릇이 나오고 말았다.

    무엇이든 대충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버릇이 튀어나와, 현재 자신의 처지를 잊고 있었다.

    미술이라고는 문턱조차 가보지 않는 5살 아이가 전생보다는 못하지만 수준급 실력을 내보였으니, 지금의 반응은 너무도 당연하리라.

    “아뇨, 그냥 그리니까 됐어요.”

    뭐, 괜찮겠지.

    고작 동네 유치원 선생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 리 만무하니.

    딱히, 댈 만한 변명도 없었기에 아주 건방진 대답을 선택했다.

    “뭐? 그게 진짜야? 정말 배운 적이 없다고?!”

    “네. 선생님도 알잖아요. 우리집 사정.”

    “......”

    너무도 어른스러운 대답, 예상치 못한 반응에 몹시 당황했다.

    ‘무슨 5살 아이가...’

    아이들과 다르게 의젓한 모습에 계속 시선이 가게 만들던 아이.

    일찍 철이 들었을 거라 생각을 했지만, 지금처럼 크게 당황하기는 처음이다. 유치원에서 근무를 한 지 3년.

    한강과 같은 아이는 처음이다.

    ‘음, 그냥 대충 그릴 걸 그랬나?’

    반면, 한강은 전혀 다른 의미로 고민에 빠졌다. 직접 보기에도 유치원 5살이 그릴 법한 수준이 아닌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과하지 않는 색의 조화.

    적절하게 들어간 명암은 가족의 분위기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여러분 한강이한테 박수쳐줄까요.”

    하나는 깊은 고민 끝에 더는 묻지 않고 교실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박수를 쳐주었다.

    아이들에게 있어 칭찬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도 아이들 교육의 일환이야. 한강이는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야. 이건 선생으로서 꼭 해줘야 해! 그리고 부모님을 뵈어 한강의 이야기를 해주는 거야. 어쩌면...’

    자신이 한강의 진로를 정할 의무가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강이를 맡은 담당 유치원 선생으로서 한강의 장기를 살려줄 의무가 있다고 봤다.

    귀여운 새들이 노래하고.

    집 앞뜰 나뭇잎 춤추고.

    햇님이 방긋이 고개 들면.

    우리집 웃음꽃 피어요.

    엄마 아빠 좋아. 아빠 엄마 좋아─♪

    추억의 동요가 들려오며 수업이 끝났다.

    “한강아, 선생님이 준 종이 어머니께 꼭 줘야 해. 알았지?”

    ╔한강이 어머님께

    안녕하세요.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달’ 5월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가정은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교육의 장소입니다.

    이 글을 쓴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한강의 미래에 대한 의논을 드렸음하여...╝

    “...시간이 되실 때 유치원으로 방문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선생은 모를 거다. 50대의 정신이 어린아이의 뇌와 합쳐진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버리고 싶은 종이야.”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는 전봇대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도저히 종이를 부모님께 보여드릴 용기가 서질 않았다.

    “정말 이 나이 먹고... 쯧.”

    몇 번의 고민 끝에 종이를 가방에 넣었다. 엄마에게 전달하자.

    앞으로 어떤 귀찮은 일이 발생할지 모를 일이나, 변화하는 시대에 맡기기로 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