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8화 (268/270)
  • 268화

    “실례합니다. 난동을 부렸다고 들었는데, 여러분들이 맞으십니까?”

    경례하며 경찰들이 묻자 가만히 있던 인천 네크로맨서가 하나 일어나서 대뜸 물었다.

    “직함.”

    “예?”

    “직함이랑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요.”

    “허허.”

    “하하.”

    경찰 두 명이 웃어 넘어가려고 했다. 괜히 고개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주제를 돌리려는 모습이었다. 이에 네크로맨서가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네모난 붉은 아이콘이 확 눈에 보였다. 녹음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말씀을 안 해주시네요? 여기 CCTV도 많지 않나요?”

    “아! 저, 하하, 사람을 왜 이렇게 곤란하게 만듭니까. 당장 대답하지 않았을 뿐이죠. 그리고 굳이 말을 안 해도 됩니다.”

    “그것도 녹음했습니다.”

    “…….”

    경찰 두 명의 표정이 싹 굳었다. 이내 그들이 직함과 이름을 말하자 네크로맨서가 주도권을 낚아채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제삼자가 이러쿵저러쿵 신고를 했나 본데, 저희들 그렇게 문제 일으키고 다니는 사람들 아닙니다.”

    명함을 건넸고, 이를 받아들자 경찰들이 고개가 살짝 숙어졌다.

    포스코 타워에 속해있는 네크로맨서는 그 정도로 대단한 자였다. 인맥 하나 없는 일개 경찰에 비하면 대단히 조심해야 하는 상대다.

    “실례했습니다. 혹시 다른 분들도?”

    “언데드 보면 모르세요?”

    “아아… 예. 하지만 이게 자꾸 신고가 들어오면 저희도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한 번 신고 들어간 거 아닌가요? 왜 자꾸라는 말씀을 하시지…….”

    경찰들은 연신 말실수라며 둘러내며 꽁지를 바짝 내려서 도망쳤다. 이를 본 간호사들은 썩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분명 몸싸움을 했는데 왜 CCTV도 확인 안 하고 그냥 가는 거야?”

    “보통 사람들이 아닌가 봐. 그냥 조용히 있자.”

    ‘태움’을 통해서 눈치가 바짝 자라난 간호사들이 냉큼 눈을 내리깔았다. 불태워진 만큼 그들의 정신은 평범하지 않았다. 인간을 ‘태우는’ 것 같은 행위의 태움을 자행하고, 방관하며, 지켜보았다.

    그런 이들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그냥 뒤로 밀어버렸다.

    그렇게 외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음에도 너무나도 쉽게 현실을 도피했다. 그저 자신에게 닥친 일들에 시선을 고정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경찰들이 도망치고 나서 수술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장 노인이 포스코 타워와 타협하는 것처럼 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태산박이 정신을 차리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열기가 타오를 것이다.

    * * *

    위이이이잉!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공항을 송서아가 서둘러 빠져나왔다. 대유준은 렌터카를 대여해서 그녀를 태웠다. 다른 경호원은 준석이 전부였다.

    기존에 따라오던 경호원들은 뒤처지다가 이내 쫓아오지를 못했다.

    막힘없이 비행기에 올라타고 뒤에 오는 이들을 무시한 채 그대로 전세기를 띄웠기 때문이다. 그 덕에 곧바로 전화가 울렸다.

    [증쪼부♡]

    ‘아, 이럴 때… 어떡하지…….’

    동래 송가(家)의 일인자. 증조할아버지 송공명. 그가 연락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미행당했고, 놈들을 일거에 소탕하지 못해서 경호원을 다닥다닥 붙인 것 또한 송공명이었다.

    차기 가주로 송서아를 지명하려고 그녀의 커리어를 득달같이 올리려는 것 또한 송공명 가주였는데, 이번에 경호원을 뿌리치고 갑자기 인천으로 전세기를 써버렸으니, 연락이 안 올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서아야, 너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니? 경호원들을 왜 그렇게 놔두고 가? 전세기는 또 뭐고.

    “그게…요, 호오, 흐응… 허허허헝! 할아버지이이이……!”

    ―너 울어? 우는 거니? 서아야?

    “으허허허허헝!”

    서아가 눈물이 터졌다. 첫 연애였고, 서로 한눈에 반했다. 꿀이 떨어지는 연애 초기에 연인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이에 대해서 말을 하려고 하니까 감정이 갑자기 쏟아졌다.

    모든 게 처음 있는 일이었고, 콩깍지 또한 단단히 씌워져 있었다. 가문의 반대 때문에 사랑이 돈독해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위기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는 감정이 사랑이었다.

    반면 가주 또한 처음이었다.

    ‘서아가 울어? 우리 서아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경쟁자와 붙여놓기만 하면 승승장구. 자신의 재능을 우뚝 세운 진짜 천재가 그녀였다.

    하면 성과를 내기에 거침없이 계단을 올라가는 삶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은 드물었다. 가문에서 찬밥 신세라 겨우 중산층처럼 평범하게 살았던 부모님도 자식 덕을 봐서 놀러 다니기 바쁘고, 오빠들도 부산 금융에서 일하고 있었다.

    엘리트 집안 그 자체였다. 안팎으로 돌부리 하나 없이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스포츠카처럼 내달렸다.

    계속 울기만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자 가주가 스마트폰을 얼굴에서 멀리 띄우면서 고함을 질렀다.

    “닥치는 대로 인천으로 올라가! 서아한테 붙은 애들한테 보고하라고 하고! 회사 헬기도 띄워!”

    “예!”

    사람들이 튀어나갔다. 다행스럽게도 경호원 다용도 앱이 보급되어 있었기에 위치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사수가 운전대를 잡자 부사수가 깜짝 놀랐다.

    “형님, 제가 운전할게요.”

    “지랄 말고, 옆에 타! 굼벵이처럼 방어 운전만 하는 놈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

    “예!”

    군말하지 않고, 서둘러 조수석으로 달려 나갔다. 차가 그대로 엔진음을 강하게 일으키며 뻗어 나갔다. KTX나 SRT를 이용하는 이들도 있었고, 대기 시간이 있지만,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분산해서 가기로 했다.

    그사이에 진정한 송서아가 가주에게 말했다.

    ―저 산박 씨 없으면 못 살아효오오오엉엉엉.

    “지, 진정을 하고, 서아야. 심호흡을 하렴.”

    ―흐읍, 흐어엉. 흐읍! 흐어어엉!

    “…….”

    사랑은 금방 식을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야 듣는 이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최대한 다독이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어른이 윽박지르면 그 아이는 그냥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찐따가 될 뿐이다.

    동시에 관계성도 나빠져서 나중에 호되게 보복당할 수 있었다. 철저한 무관심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식을 보는 건 고통스럽다. 자신이 한 짓을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족 관계에서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내 취향대로 움직이게 하여도 그 결과까지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는 그걸 잘 알았다. 혈족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건 지나친 관심과 격렬한 뒤엉킴이 아니다. 적정선의 거리와 상황에 따른 유동적인 관심이었다.

    겨우 진정한 서아와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진짜로 남자 문제가 봉착하자 그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서아야. 납치를 하겠니, 뭘 하겠니?”

    ―잔잔벼락 사업 예상 수익률, 투자자들한테 말씀하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레벨업 하는 드루이드 가만히 두겠어요?

    “부산이 있는데 그러려고…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구나. 그래도 냉정하게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네.

    “…그리고 그 아이, 내랑 한 번 같이 보자꾸나. 그 정도는 되겠지? 날 이렇게 놀라게 했잖니. 그렇게 사랑하는데, 확실하게 잡아둬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알겠어요…….

    서아가 이내 수긍했다.

    “잘 마무리해라. 부산 이름 대면 곧 죽을 놈도 보내주지 않느냐.”

    ―네.

    통화를 끊은 서아가 눈을 감았다.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스팀…할까요? 건조되니까 인공 눈물 이제 넣으시라니까요. 아가씨.”

    “한번 넣으면 평생 넣어야 하잖아요.”

    물이 끓는 소리가 자동차 안에서 흘러나왔다. 랜트카임에도 이를 구비하고 있는 이유는 배낭에서 눈 찜질 할 걸 가져와서였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산박은 아직도 수술하고 있었다. 단순한 내과 수술이 아니었다. 난잡하게 얽혀있는 해독제의 성분을 해소하고, 키메라 독까지 처리해야 했다. 대장삵이 액체를 붙들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 나아가서 신성력을 비롯한 다양한 힘이 깃들어있는 의료 장비 또한 새로 투입되었다. 비보험 치료가 가능할 정도로 선지급한 것이 포스코 타워였다.

    흉측한 것은 장 노인은 자신의 돈을 아끼려고 했다는 점이다.

    ‘다른 놈이 할 건데 내가 왜?’

    이성적인 판단이었고, 들킬 염려도 없었다. 상황이 매우 급했기에 누가 뭘 어떻게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나중에 다뤄지지도 않는다.

    낸 놈이 중요하지, 안 낸 놈을 눈에 불을 켜고 잡지는 않는다. 그런 걸 하는 건 없는 돈 쪼개서 가정 꾸리는 사람이 알 수 없는 지출을 손으로 짚으며 가족 구성원의 머리채를 잡는 경우다.

    “이건 또 뭐야?”

    무려 4시간 만에 등장한 송서아에게 네크로맨서가 다가왔다.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소속이?”

    인사도 없이 곧바로 소속을 물었다. 네크로맨서는 자신이 작성한 중위 언데드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포스코 타워. 그쪽은 소속이 어디지?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보통은 아닌 것 같은데…….”

    보통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반말은 유지했다. 인천을 지배하는 단체에 소속된 자부심이 있었다. 보통은 전혀 꿇리지 않는다.

    “부산 은행 지점장. 여기 책임자는 누구야?”

    이에 백패 네크로맨서가 길을 비켰다. 송서아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던 황패 네크로맨서 중 홀로 남은 경왜(慶矮)가 일어섰다.

    그가 명함을 건네자 송서아도 명함을 건넸다.

    “부하 직원이 왜 이렇게 건방져?”

    “그쪽 말도…….”

    입을 나불거리려던 경왜가 입을 다물었다.

    “동래 가문의 직계입니까? 방계입니까?”

    “방계면 어떻고, 직계면 어때?”

    서아가 명함을 눈앞에서 버렸다. 산박을 잡아먹으려고 온 놈들이었다. 예의가 전혀 없었다.

    ‘이런 X발년이.’

    경왜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하지만 행동을 취할 수는 없었다. 말하는 것을 보니 직계로 보였고, 그중에서도 제법 영향력이 있어 보였다.

    아무리 황패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결국 포스코 타워에 속한 직장인이나 다름없었다. 갑질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있고, 없고는 그가 정하는 게 아니었다. 사회가 정한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그는 상대에 따라서는 피지배계층이었다.

    “가.”

    “저…….”

    “가라고.”

    “그게 아니라, 제 말씀을 좀 들어보시지요.”

    “자꾸 부르면 우리 증조부 할아버지 부를 거야. 누군지 알아?”

    송서아가 아빠 부르기를 뛰어넘어선 증조부 할아버지 부르기를 시전했다.

    “누구신지…….”

    “누구긴 누구겠어? 동래 가문의 가주님이시지. 거기까지 상황이 굴러가게 해줘?”

    “아닙니다……. 하지만 이대로 포스코 타워가 물러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시은 적패 네크로맨서는 인천 네크로맨서의 다크호스였습니다.”

    송서아가 손사래를 쳤다. 더는 듣기 싫다는 뜻이다. 그런 걸 받아줄 정신머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경왜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1층 로비에서 정보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연락은 바로 왔다.

    “누구던?”

    “차기 가주 후보에 올라있는 분이십니다. 건드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항구 때문에 인천과 부산은 밀접한 사이 아닙니까. 서로 얽혀있는 이득이 많고, 부산은 특히 일본 시장과 미국과도 이어져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말할 것도 없고요.”

    고작 56국과 동남아시아 항로가 있는 인천과는 달랐다.

    하물며 동남아시아는 부산도 개척하고 있는 시장이었다. 서울이 폐허가 된 이후 부산은 제2의 수도라고 불리고 있을 정도였다. 서울이 있을 때조차도 서울 다음은 부산인데 인천이 무슨 수로 부산을 이긴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태산박, 이 새끼. 사타구니를 놀려서 동래 가문의 차기 가주 후보자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었구나.’

    역시 여자나 남자나 밤일을 잘 해야 했다.

    ‘더러운 세상이다.’

    아직 첫날밤은 물론이고 송서아의 첫키스도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황패 네크로맨서 경왜는 오해를 단단히 했다.

    네크로맨서들이 빠져나간 곳에 장 노인이 서둘러 송서아에게 다가왔다. 둘은 이미 안면식이 있었다.

    “고생하셨어요.”

    “아, 당연히 해야 하는 걸 뭘 그런가. 허허허.”

    ‘안 그래도 호랑이 한 마리가 있는데, 또 한 마리를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장 노인은 이미 네크로맨서와 했던 약속은 까맣게 잊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지 오래였다. 구두 약속을 믿는 놈이 병신이다. 인감 찍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쉽게 봐서는 안 된다.

    황패 네크로맨서 둘만 똥물을 먹은 셈이다.

    “잘 막아주게. 내가 입을 놀려서 놈들이 얌전히 있었으니…….”

    “그럼요. 이제는 저한테 맡기세요.”

    “근데 눈이 퉁퉁 부어있는데 괜찮은가?”

    “아… 네……. 찜질을 했는데도 티가 나나요?”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장 노인이 손짓하며 서충호도 앉게 했다. 그러나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했던 것이 태산박이었다.

    이를 지키기로 했다. 그 모습을 장 노인이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이내 송서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쯧, 어디서 저런 놈을...’

    덕분에 일이 틀어졌다. 아쉽고, 또 아쉬웠다. 그런 장 노인을 바라보는 서충호는 장 노인의 그림자가 유독 어둡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겠지.’

    그가 속으로 한숨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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