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7화 (267/270)
  • 267화

    * * *

    이시은 때문에 인천 네크로맨서는 자연스럽게 태산박의 존재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 드루이드가 지닌 상품적 가치, 자본적 가치는 대단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부분 드루이드들은 1레벨에 머물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지만 태산박은 3레벨임에도 야망을 펼치기 바빴다.

    그 덕에 과수원 사업이 크게 사회에 노출되었고, 어렵지 않게 이를 추적할 수 있었다.

    부산 은행과의 모종의 관계 또한 주의 깊게 보고 있었으며 잔잔벼락 사업에도 태산박이 관계가 있다는 것도 중요했다.

    ‘어쨌든 지금 태산박을 못 가져가면 병신이라는 거지.’

    몸부터 빼내고, 그다음에는 힘으로, 권력으로 짓누르면 그만이다. 그렇게 도착한 포스코 타워의 네크로맨서들은 양복을 쫙 빼입고 있었고, 언데들까지 옷을 입힌 채 그들을 지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몇 번을 오가며 50명에 달하는 네크로맨서와 언데드를 토해냈다.

    황패 네크로맨서 경왜(慶矮)와 빙췌몽(氷萃夢)이 모두 동행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파벌이었지만 외부와 부딪칠 수 있었고, 부산 은행이 개입할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 황패 네크로맨서 둘을 움직이게 하였다.

    허나, 그 이상으로 큰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흑패 네크로맨서가 나서기에는 이시은이나 태산박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중요해도 다크호스에 불과했다. 무협으로 치면 후기지수(後起之秀)에 불과했다.

    중히 여겨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진짜 원로가 나설 정도는 아닌 것. 그런데도 과잉이라는 표현에 부족함이 없었다.

    양아치 무리가 서둘러 그들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깊이 숙이고 허리를 굽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박항식이. 별일 없었지?”

    “예. 지금 수술실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 시간이 많이 남겠군. 최대한의 처치는 해놨어?”

    “그게 제가 수술실에 넣은 게 아니라서요.”

    그 말에 빙췌몽이 바로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으억.”

    “네가 젤 먼저 왔다며?”

    “죄, 죄송합니다.”

    “됐다. 너한테 뭘 기대했겠냐. 이렇게 안 빼앗긴 것만 봐도 다행이지.”

    한 사람을 간호사에게 보내서 최대한의 치료를 받도록 의견을 내도록 했다. 돈은 그 자리에서 선불하겠다고 하니, 곧바로 일이 진행되었다. 아낌없이 모든 걸 동원할 것이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꿀 냄새 맡고 안 올 놈이 있겠어?”

    둘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장 노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단신(單身)에 왜소하다. 하지만 유일하게 한복을 입고 있었고, 고생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소위 잘 사는 할아버지고, 사회에서 한 가닥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

    “현대 사회에서 그놈이 그놈인데. 난 놈이 얼마나 많아?”

    장 노인은 외부에 많이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다. 연기 가문의 무너진 곳을 바로 세우는데 시간을 할애했기에 가진 세력과 권력과 비교한다면, 발이 넓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평범한 사람보다는 넓었지만, 그들이 그의 얼굴을 알 수는 없었다.

    인천에서는 공무원은 그저 노예에 불과했다. 시민을 위해서, 포스코 타워를 위해서 개처럼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품이다.

    적게는 300명, 많게는 500명을 혼자서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공무원의 삶이었다. 이들이 수술실 문으로 근접하자 공기가 달라졌다. 먼저 가장 늦게 왔던 경호업체가 막아섰다.

    방검복에 경찰용 조끼를 입고 복장과 장비를 통일한 사설 업체였다. 던전 장비까지 차고 있었고, 몸은 훈련으로 다져져 있었다.

    한 푼 두 푼으로는 고용할 수 없어 보이는 정예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수술실 너희들이 전세 냈어?”

    “미안하지만 우리도 태산박 사장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이오.”

    살이 문드러진 언데드를 대동하고 있는 네크로맨서들이 어떤 놈들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경호팀장은 그들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어림없었다.

    언데드들이 그냥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자 경호원들도 몸으로 이를 막았다.

    “이, X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 맹목적인 중위 언데드들은 무식하기 그지없었다. 그 와중에 상위 언데드 2기는 황패 네크로맨서를 호위하고 있었다. 한쪽 뒤에서 물러서 있는 이들은 경호원들이 알아서 지치기를 기다렸다.

    그게 인천의 방식이다. 칼부림이 나면 거기에 따라서 대응하면 그만이다. 쌍방이 지랄을 떨어야 속이 편하다.

    숫자도 많았기에 경호원들은 쉽사리 무력시위를 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기만 했다.

    모두 교육을 받은 이들이라 냉정했다.

    결국 지친 놈들이 공간을 내줬고, 그곳으로 황패 네크로맨서가 능숙하게 지나갔다. 한쪽 구석에 몰린 경호원들은 네크로맨서들에게 포위되어서 이도 저도 못했다.

    “빌어먹을!”

    딱 그 정도 선에서 언데드들은 멈춰 섰다. 덤비면 밀고, 그러다가 놈들이 지쳐서 물러나면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줬다.

    CCTV가 있었고, 곳곳에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뭐가 되었든 먼저 칼부림을 해대거나 던전 장비를 쓸 수는 없었다.

    꼬장꼬장해 보이는 장 노인 앞에 선 빙췌몽과 경왜가 그를 내려다봤다. 키가 작은 장 노인은 그들을 가만히 눈으로만 올려다봤다.

    “포스코 타워라고 들어는 보셨는지 모르겠네.”

    “연기 장가(家)다.”

    “사원은 있으신가?”

    장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경왜와 빙췌몽이 말을 좀 늘리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장사를 하나?”

    “안 하네만. 대신에 인천 공항 쪽에 새로 부지를 구매한 강 사장을 아는가?”

    “모르는데… 본적이 혹시 어디인지…….”

    “세종시인데. 거기 아는 자가 있어?”

    깡패 새끼들이 서로 인맥을 비교하며 자신의 서열전투력을 비교하듯이 장 노인과 황패 네크로맨서가 숙덕거렸다. 사원이 있는 양반이면, 그 지인이 어떤 놈인지 알아야 했다.

    특히 인천 네크로맨서는 도시 하나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던전 기업에 불과했다.

    현실에서는 짓눌리거나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하지만 이 경우에 교집합이 나올 수가 없었다.

    공무원 혈족과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던전 기업이다. 서로의 전투력을 극명하게 가를 정도의 인맥이 겹칠 수가 없었다.

    “공무원 가문이면 우리 포스코 타워와 척을 지면 어떻게 될지 모를 리가 없는데.”

    “총대 매고 1년에 한 번씩 세무 조사를 통해서 국민들의 혈세에 크게 기여를 하겠다니! 이거 정말 놀라운 포부인데.”

    두 명 모두 인상을 찡그렸다.

    공무원의 자살 폭탄 테러. 그것이 바로 세무 조사였다. 바짝 땅겨놓고 다 저질러 놓고 퇴사하는 것이다. 전산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있었기에 저질러 놓으면 멈출 수가 없었다.

    동시에 권력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잡초 같은 벌레들에게 자신의 돈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죽어도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게 그들의 속성이다.

    절세를 넘어서 탈세를 하는 것은 비단 권력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싸게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알게 모르게 유령 법인을 세우고, 부동산을 통해서 자식에게 재산증여를 하는 중산층도 많았다. 하지만 포스코 타워는 정도가 심했다.

    단 한 번의 세무 조사로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었다.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기에 탈세액은 매년 높아졌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것을 지적하고 자폭하는 세무 공무원이 있다면? 일본처럼 종이를 찢으면 사라지지만, 대한민국은 아니었다.

    국회 출석률이 50% 미만인 국회 의원의 자격이 박탈되는 법까지 제정된 민주주의 국가가 이 나라였다. 올해로 10년째 국회 의원의 연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뉴스까지 신년에 나올 정도로 민주주의 국뽕을 매번 주입하는 나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국회 의원들도 표를 얻기 위해서 온갖 입을 털 것이 분명했다.

    “…….”

    입을 다무는 그 모습을 보며 장 노인이 웃었다.

    “긴장 풀게. 내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그냥 5급 세무 공무원이나 7급 공무원이 느긋하기 그지없는 공무원 사회에 돌 하나 크게 던지고 은퇴하는 거지. 뭐 어려운 것이 있나. 그렇게 쉬운 일에 왜 겁을 먹은 것처럼 구나. 하하하.”

    황패 네크로맨서가 잘못 행동하여 수천억의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것이 없었다.

    ‘적패는 고사하고, 바로 백패로 계급이 강등되겠지.’

    그런 짓을 당하는 미래가 확실하게 그들에게 보이는데, 장 노인에게 입을 뻥긋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일을 저질러서 강하게 나왔다가 저 노인이 포스코 타워에 직접적으로 줄을 놓는다면…….

    흑패 네크로맨서가 나서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단숨에 타협안을 내놓아서 화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난 버려진다. 이미 우리 선을 떠났다. 흑패 네크로맨서가 와야 한다. 하지만 간단이 물러설 수는 없지.’

    간단한 이치다.

    강자와 강자는 서로 쉽게 술잔을 나누고, 먹을 것도 서로 잘 좋게 반반 나눠 먹지만, 약자 앞에서는 치킨의 목뼈 하나 던져주는 것도 매우 엄격한 태도로 내어준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자폭 공무원 테러가 가능한 장 노인과 황패 네크로맨서들의 서열은 확실하게 정해졌다.

    “연기 가문, 정말 대단한 곳입니다. 하하하.”

    “암, 아아암. 그렇고말고. 후손들이 세법도 공부하고, 행정도 공부하고,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네.”

    순식간에 태도를 달리하고 장 노인을 다독이는 모습에 장 노인 또한 웃으며 그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건 좋은 신호였다.

    “요즘 사회복지도 인기라던데…….”

    “말도 말게. 거기는 지옥이야. 거지들이 마음씨 좋다는 건 동화 속에나 있는 일이지. 사회복지 계열에 종사하는 걸 권하지는 않네.”

    “아아, 그러시군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자격지심이나 열등감, 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못 사는 놈들이야, 마음씨가 나쁜 게 당연하지요. 십만 원짜리 수표에 눈이 돌아가는 속 좁은 것들 아닙니까?”

    이들은 강자의 입장에서 신나게 떠들어대었다. 장 노인은 그것을 굳이 수정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인간에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소리는 그저 이상론에 지나지 않았다.

    ‘나(我)’를 버려야 하는데, 그런 걸 할 수 있는 인간은 종교에 몸을 담는 게 좋다.

    적어도 대형교회의 연봉 5억 목사보다는 더 좋은 목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네크로맨서들의 죽음에는 내 애도하는 바이네. 하지만 태산박 사장에게 그 부채를 지우려는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만.”

    “어르신께서 따로 보상해줄 생각이라면 물러갈 수 있는데, 어떻소.”

    “30억이면 어떤가. 목숨 값으로 충분한 것 같은데.”

    “해골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 이시은 적패 네크로맨서인데, 고작 30억을 가져가면 내 꼴이 말이 아니게 되오.”

    “50억.”

    “어렵소. 나중에 이야기 하는 게 어떤지.”

    장 노인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놈들 보소? 흑패 네크로맨서를 데려올 심산이구나.’

    예상을 뛰어넘어 태산박의 가치가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결판을 내지 않고 물러설 생각으로 보였다. 빚은 결국 누군가는 해결해야 하니까. 그걸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태산박과의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 막을 수는 없지.’

    저쪽도 세력이다. 거기에 현대의 사회 계급 꼭대기는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 싸우면 무조건 손해였기에 잘 싸우지도 않는다.

    동네 슈퍼조차도 담합을 해서 이득을 보고, 아이스크림도 함께 의논을 나눠서 용량을 낮추거나 단가를 올리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소비자만 싸대기 처맞고 뒤통수 때려 맞아 고꾸라지겠지만, 기업이 그런 걸 사정 봐줄 리는 없었다.

    이처럼 포스코 타워도 똑같았다.

    대신 그들은 한 가지를 약속받았다.

    “혼자서 먹으려고 하다가는 다 찢어지는 거 아시는지?”

    “알고말고. 오히려 포스코 타워가 태 사장의 고삐 중 하나가 되어준다면 나도 기쁘지. 내 따로 자리를 만듦세.”

    서로 명함을 교환했다.

    포스코 타워의 본래 목적은 그냥 태산박의 신변을 잡아서 이득을 보는 것이었지만 장 노인과 함께 담합하여 태산박의 목에 목줄을 채워서 고혈을 빨아먹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때, 서충호가 으르렁거렸다.

    “누구 마음대로 태 사장님의 목줄 운운합니까?”

    “누구신지?”

    “태 사장의 충견일세. 신경 안 써도 돼. 그가 깨어난다면 알아서 자신의 목에 목줄을 채우겠지.”

    태산박이 두려워하는 것은 신변이 한 쪽 세력에 흘러들어 가는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서충호를 내세웠다. 그걸 잘 아는 장 노인이 서충호를 변호했다.

    “충견이라고 해도 주인 지키다가 죽는 수가 있다.”

    황패 네크로맨서가 서충호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들은 볼일이 끝났음에도 자리를 지켰다. 장 노인이 뒤통수를 칠 수 있어서였다.

    ‘드루이드의 던전 시장 가치는 엄청나다.’

    서로 갈라 먹어야지, 혼자 독식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증거는 없었지만 정황상 잔잔벼락 사업과도 태산박은 관련이 있었다. 공장 부지가 교토 아래에 지어질 정도로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고 있었다. 그 투자금은 5년 내로 몇 배로 돌아올 것이다.

    그걸 눈에 보고도 태산박의 목에 목줄을 안 채운다는 건 병신이나 다름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새로운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들이었다. 간호사들이 신고한 것이 틀림없었다. 싸우지 않고, 무식하게 몸으로 밀고 당기기만 했지만 대단한 소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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