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6화 (266/270)

266화

* * *

소식은 일시에 퍼져나갔다.

“안녕하십니까. 던전자원공사에서 연락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공략된 던전에서 적패 네크로맨서와 흑패 네크로맨서 세 분이 돌아가시게 되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뭐라고요? 이름은요?”

“이름은 이시은…….”

네크로맨서 그것도 적패 네크로맨서의 죽음이었으며, 그 외에 흑패 네크로맨서도 셋이 죽었다. 공무원으로 밥 빌어먹는 주제에 주제 파악 못하는 공무원은 없었다.

당연히 불똥이 튀기 전에 꼬리를 살랑거리는 개처럼 헥헥거리며 보고를 올렸다.

인천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곳이다. 시장도 네크로맨서였다. 그런 곳에 공무원이 직접 보고를 올리지 않는다? 건방지다. 너무 건방져서 울릉도에 발령을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혹은 신안이라는 좋은 곳도 있다. 여자 공무원이든 남자 공무원이든 사족을 못 쓰는 동네가 신안이었다.

안심사도 해동 소식을 받았고, 곧 장 노인에게도 실패 소식이 닿았다.

“뭐라고! 사실인가!”

“제가 거짓을 논하겠습니까. 저 최여발입니다, 어르신.”

“최대한 사람들 모아서 병원으로 와주게! 부탁 좀 함세!”

“예! 어르신!”

장 노인이 바쁘게 옷을 갈아입었다. 장롱 속에 잘 간직하던 한복을 꺼냈다. 거무튀튀한 색의 한복은 정갈했다. 그가 서둘러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부산의 동래 송 가(家)는 송서아에게만 연락이 닿았다.

연애를 위해서 권력을 남용한 송서아는 자주 산박이 던전 공략을 완료하면 이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한 번 할 때마다 10만 원 돈의 보너스가 들어왔기에 공무원이 안 할 리가 없었다.

자택의 우편함 속에 현찰로 들어오기에 비리와는 상관없는 알짜배기 꿀이었다.

띠링.

문자를 받은 서아의 표정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용돈 받는 공무원이 돈에 눈이 벌어서 아주 세세한 것까지 말해줬기 때문이다. 서아는 답장을 보냈다.

[고마워요. 장 주임님. 나중에 꼭 한 번 찾아뵐게요.]

답장은 금방 왔지만 읽지 않았다. 회의 도중이었지만 서아가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확 꽂혔다. 그녀가 거치 되어있는 마이크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급히 일이 생겨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막는 이들은 없었다. 대신 당황함으로 가득 찼다.

자신의 일.

내 커리어라면 코피를 쏟든, 생리를 하든, 컨디션이 나쁘든, 상관없이 확실하게 방점을 찍는 것이 송서아 지점장이었다. 적어도 부산 은행에서 그녀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좋았다.

상사로서 할 일을 하고, 책임까지 지며, 부하 직원을 꼼꼼히 관리하며 논공행상을 확실하게 하여 밑에 사람들도 자신이 한 공을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품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사회에서 이런 페어플레이를 권장하는 그녀의 모습 덕분에 인망이 두둑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회의실을 나갔다. 그것도 지금 하고 있는 회의는 그녀가 주도하고 준비했으며 진행하는 대출 사업이었다.

[중, 소상인 골목 시장 대출 방안]

워낙 공격적인 집주인들이 많았고, 지자체가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돈을 쓸 리가 만무했다. 600억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아도 쟁여놓고 이자 받고 싶어 하는 게 지자체였다. 일부러 도와주러 와준 사람에게도 돈을 안 주고 버티며 잔금을 쥐똥만큼 찔끔찔끔 주는 걸 좋아하는 게 지자체다.

돈만 있으면 관사를 구입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지자체를 믿느니 부모 칼 찌르고 도망간 자식을 믿는 게 나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건물을 구매하는 데 도움을 주고, 대출을 갚도록 하는 방안이 부산 은행에서 일어났다. 물론 소상인에 대한 지원은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막혔다. 대신 중규모의 상인들에게 먼저 하기로 서서히 가닥이 잡히고 있었다.

그런 중요한 커리어를 놔두고 송서아가 제 발로 회의장을 나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경호원들이 급히 그녀를 따라나서며 서둘러 그녀에게 물었다.

“아가씨. 무슨 일입니까?”

“세종시로 가야겠어. 부산에서 인천 가는 비행기편 알아봐. 안 되면 전세기라도 띄워.”

“예.”

대답을 칼 같이하며 먼저 소준석이 연락을 돌렸다. 가장 먼저 그는 자신과 같이 그녀를 호위하는 대유준에게 연락했고, 그다음에는 그녀의 명령을 이행하는데 움직였다.

“으뜨뜨!”

대유준은 달리면서 커피가 넘치자 호들갑을 떨며 카페에서 나왔다. 입에는 빵이 물려있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빠른 걸음으로 그냥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1층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삐빅!

부릉!

단번에 주차장에서 차가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송서아가 로비를 가로 지나 정문으로 나와서 계단을 내려왔다. 굽이 낮은 구두였기에 굉장히 빨랐다.

끼익!

소리를 내며 고급차가 멈췄다. 경보로 달려간 준석이 뒷좌석을 열자마자 서아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꼭 쥔 채로 귀에 대고 있었다.

“예! 지점장님!”

“왜 이렇게 안 받아요? 뭐하고 계세요?”

“예? 아 이번에 야구 때문에… 랏데놈들이 이번에 부산에 구장 하나 더 짓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희 부산 블루즈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왜놈 자본으로 이루어진 놈들이 부산 야구하는데 저희들도 하나 더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송서아의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야구하면 부산 야구다. 랏데와 부산 블루즈의 라이벌 경쟁은 서울사람도 알 정도였다.

“그건 부산 금융이 해야 할 일인데, 왜 그걸 과장님이 하고 계세요?”

“증조부께서 지점장님 경력 추가한다고…….”

“지금 세종시죠?”

“예? 지금 부산입니다.”

서아가 그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그러면 다른 사람은요?”

“준달독 차장이 저 대신 영업 뛰고 있습니다.”

“알았어요. 그리고 랏데한테 지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화를 끊은 서아가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손가락이 덜덜덜 떨렸다.

“…….”

경호원들은 감히 말을 걸지 못했다. 신호음 두 번 만에 전화를 받았다.

―잠시만요. 예, 지점장님.

“지금 나와서 바로 XX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사설 경호원이든 뭐든지 끌고 가세요.”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서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행기는요?”

“전세기 준비 중입니다. 바로 인천 가시면 됩니다. 인천 쪽에 내려앉을 곳을 15분 이내에 마련해 둔다고 합니다.”

“잘했어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던전 공략에 큰 손해를 봤대요. 2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죽었대요. 그리고…….”

서아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울음소리가 입에서 울컥거리며 튀어나올랑 말랑해서였다.

빵빵!

대유준이 크락션을 미친 듯이 찔러 넣었다. 앞차가 슬금슬금 비켜섰다. 산에 지은 부산의 교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 속에서 서아는 그저 기도했다.

‘제발, 일찍 도착할 수 있기를.’

모든 이들이 태산박에게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장 노인과 안심사의 스님들이었다. 이들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산박이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던전 사용자고! 태산박인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네? 잠시만요……. 지금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수술실이요? 어디 수술실이요?”

“3층 동관 내과 수술실에 가서 간호사한테 물어보시면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어여들 가자고!”

그들과 스님 몇 명이 우르르 지나가고, 3분도 되지 않아서 양복을 입은 사람 여럿이 들어왔다. 하나같이 흉흉했다.

“여기 태산박이라고 그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간호사가 조금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바로 답해줬다. 따로 검색할 필요도 없었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이 바로 났다.

“3층 동관 내과 수술실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들이 지나갔다. 그 과정은 5분, 10분, 15분 간격으로 대중없이 일어났다. 그럴듯하게 방검복을 입고 경호원 한 팀이 들어와서 간호사에게 묻기도 했다.

바쁜 응급실이 한층 더 바빠졌다. 일단 닥치고 응급실로 쳐들어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고용된 자, 세력에 속한 자 아무 상관없이 들이닥쳤다.

먼저 올라간 장 노인은 스마트폰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하기 바빴다.

“어어, 나야. 나.”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어르신?”

“자네 채권자들 정보 많이 팔고 다니잖아. 나를 좀 도와줘야겠는데.”

“예, 어르신. 말씀만 하세요. 이름이랑 주소 그리고 핸드폰 번호만 알면 그 사람과 관련된 채권부터 모든 재정정보 다 뜹니다.”

“태산박. 대출을 많이 당겨썼어. 그 사람 채권 가진 사람들 정보 빨리, 나한테 보내주게.”

“알겠습니다. 애들 다 동원해서 최대한 빨리해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냥 저희 애들을 그 사람들한테 보낼까요?”

“그럼 더 고맙지! 나중에 두둑하게 챙겨줌세. 노리는 사람 많으니까. 빨리 움직이는 게 더 좋을 거야. 칼부림 날 수도 있으니, 든든히 챙겨서 가고.”

“아, 예? 저 어르…….”

장 노인은 매정하게 끊었다.

‘다음은…….’

그러던 찰나에 수술실에 이미 누군가 와있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수술실에 앉아있다가 그들이 보이자 그도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그 주변에는 회복물약이 그득했다.

덩치는 컸다.

‘생존자 중 하나인가?’

“누구십니까?”

서충호의 말에 장 노인이 웃으며 다가갔다.

“반갑소. 내 이름은 장…….”

충호가 손사래를 치며 그 말을 끊었다.

“알 필요 없고, 돌아가시오. 사장님은 지금 수술실에 들어갔소.”

“허허, 네가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냐?”

건방진 소리에 장 노인의 입에서도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스님들은 욕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서충호는 물러날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바위 같은 남자였다.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장 노인이 속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산박 놈. 제대로 된 놈을 하나 얻었구나.’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인덕이다. 오죽하면 덕(德)이라고 할까.

“수술실에 쳐들어갈 생각은 없다. 그리고 태산박이 죽으면 골치만 아플 뿐이다. 수술비는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

“…….”

“어허, 이놈 봐라?”

장 노인이 기가 찼다. 서충호가 그냥 입을 꾹 닫아버린 것이다. 말빨이 약한 서충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는 침묵이었다.

“어이!”

장 노인 뒤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요?”

스님이 대꾸했다.

“그쪽들도 태 사장 때문에 온 거요?”

“그렇소만.”

“우리한테 양보를 해줘야겠는데.”

“양보는 무슨. 먼저 온 사람이 임자지.”

“그쪽도 1등은 아닌데, 왜 큰소리를 쳐?”

기싸움이 진득하게 오고 갔다. 곧 진정되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러는 사이에 장 노인이 스님에게 물었다.

“저 놈, 저거. 처음에 있던 놈. 어떻게 보여? 팔 하나 없잖아. 고꾸라뜨릴 수 있겠어?”

“팔 날아갔는데, 멀쩡히 설 수 있는 놈입니다. 진짜 피지컬이 높은 놈이라, 소란이 크게 일어날 겁니다.”

“쯧쯧.”

장 노인이 혀를 찼다. 한 방에 저지 못 하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서충호는 아예 벽에 몸을 틈틈이 스트레칭해서 몸에 열기를 띄웠다. 또 몬스터 음료도 마셨다. 옆에는 인스턴트 커피도 대용량으로 뒀다.

병원이라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장 노인은 스님 둘을 이끌고 뒤늦게 온 이들과 접선했다.

“뭐야? 왜요?”

그중 하나가 시비조로 대답했다.

“어른 앞에서 왜 이렇게 험하게 굴어?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

“이 미친 할배새끼가, 돌았나?”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지랄 떨던 놈이 뒷목이 잡혀서 뒤로 넘어가 엉덩이를 땅에 찍었다. 꼴사납기 그지없었다. 형님으로 보이는 자가 나섰다.

“뭡니까?”

“뭐하는 놈들인지 궁금해서 그런다.”

“돈 받고 일하는 것뿐이오. 그러니 뒤로 가시오. 태사장 나오면 가져갈 생각마쇼.”

“누구한테 돈 받았는데? 그것만 알자.”

“일없습니다.”

소득은 없었다. 대신 경호원들은 제법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줬다. 그들도 굳이 일을 어렵게 가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뒷배가 있었다.

“부산에서 왔습니다. 부산 은행 모르시는 건 아니시죠?”

“아하… 그런데 부산 은행이 세종에 경호원을 두고 있었나?”

“사설 업체입니다.”

방검복 입고, 경찰용 조끼를 입은 이가 턱짓하며 건달 같은 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들도 사설 업쳅니다.”

“그냥 건달처럼 보이는데.”

웃음소리가 짧게 퍼져나갔다.

“그럼 우리 가문도 제법 알겠군. 경비 업체면 공무원들도 제법 잘 알아야 하지 않나? 연기 장가(家)라고 들어보지 않았나?”

“어? 예. 들어봤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 태 사장한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으니, 너무 걱정 말게. 신변을 누가 가져가는지가 중요한 거 아니겠나?”

“그건 저도 잘… 전 그냥 병원에서 못 벗어나게끔 하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래, 그래.”

장 노인이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아들이며 등을 돌렸다.

‘올 놈은 다 모였는데… 수술 끝나도 저놈 때문에 턱 막히겠군.’

그의 눈이 서충호에게로 향했다. 3일 밤낮을 뜬눈으로 보낼 기세였다. 실제로 체력이 받쳐줄 것이고, 대장삵도 있었다.

장 노인이 대장삵에게 다가갔다. 놈을 통해서 서충호의 경계심을 무너뜨릴 생각을 가졌다. 걸음을 옮기려는 장 노인의 귀에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비켜라! 인천을 적으로 두고 싶은 놈들이 있으면 나와라!”

네크로맨서와 언데드 그리고 아예 검에 갑옷까지 입은 놈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고함부터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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