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4화 (264/270)
  • 264화

    <에필로그>

    정원사 카멜이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동그랗게 움막을 만들고, 이를 은폐했다. 그리고 서둘러 빠르게 작아지며 떡잎으로 줄어들며 대장삵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저는 빠르게 사라져야 할 것 같아요. 더 이상 드루이드님의 마력을 소모시키고 싶지는 않아서요.”

    “응, 고맙다.”

    대장삵은 순수하게 감사를 표현했다. 3레벨 수준의 수호 정령이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을 터였다.

    잘 은폐된 움막에는 서충호와 태산박이 쓰러져 있었다. 대장삵은 불을 지피지는 못하고, 그저 두 사람에게 치료수를 조금씩 먹였다. 기도가 막힐 수 있었기에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흐으, 흐.”

    종종 태산박의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변할 때는 털이 곤두섰다. 호흡은 인간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척도. 간헐적으로 호흡을 멈출 때도 있었는데 간담이 서늘했다. 조금 눈물도 날 정도였다.

    그만큼 소환수를 위해서 많은 자원을 사용하는 드루이드는 사실 잘 없었다.

    대부분 산이나 들에서 살기에 식량 자체도 알아서 구해야 했고, 그게 아니어도 수준이 낮아서 궁핍하게 지내야 한다.

    귀농에 하트뿅뿅된 사람들은 모르는 진짜 야만의 삶은 굶주림과 외로운 삶이었다. 그는 수많은 드루이드를 지켜보았고, 산박만큼 야망이 강한 드루이드는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재밌었다.

    원대한 꿈을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즐거운 건 잘 없었다. 축구에서 공격수가 80m를 질주하며 수많은 수비수를 단독으로 제쳤을 때 짜릿한 감정과 비슷한 셈이다.

    그렇기에 대장삵은 산박이 죽지 않았으면 했다.

    “쿨럭.”

    서충호가 기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으… 제기랄.”

    그 두근거림은 조금 위험할 정도로 큰 고동 소리라서 충호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깨어났구나. 다행이다.”

    대장삵의 말에 서충호가 주위를 살폈다. 어두컴컴하기 그지없었다.

    “대장삵?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었지. 산박이랑 너. 둘만 살았어.”

    “…….”

    그가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달싹거렸다. 수 시간을 난동을 부린 것이 파석 전갈 골렘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건 소환수가 들러붙은 충호와 산박뿐이다.

    용용형제와 스님들은 그대로 각개격파 당하여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지 오래다. 네크로맨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 이 던전에 살아남은 건 두 명뿐이었다. 그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지만 충호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장님은? 상태는 어때?”

    “안 좋아. 금방이라도 죽을지도 모르겠다…….”

    대장삵의 침울한 말에 충호가 몸을 움직였다.

    “끄으으으으윽!”

    전신의 신경계가 비명을 내질렀다. 온몸의 근육이 아릿했고, 바짝 수축해서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를 억지로 이완하며 조금씩 충호가 무리해서 몸을 움직였다.

    “너, 괜찮아? 너도 상태가 안 좋은 건 마찬가지야.”

    “아그으으… 흐흐흑.”

    엉덩이를 들어 올렸는지, 골반 쪽에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절로 충호가 눈물을 줄줄 흘러내렸다.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것 같았다. 결국 다시 충호는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사, 살려면 사장님을 살려야 한다.’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물었다.

    “내, 내 옆구리가 너무 아파. 골반 쪽인데, 거기만 치료를 해줄 수 있겠어? 그럼 내가 불이라도 피울게.”

    “흠… 미안하지만 치료수는 이제 산박에게만 줄 거야.”

    “제기랄놈아… 따뜻해야지 뭐라도 해.”

    “주문 사용자인 나한테 물리적인 이점은 크게 와 닿지 않아. 더는 말 시키지 마. 내가 지닌 힘을 최대한도로 제어하고 있거든.”

    그 말을 끝으로 대장삵은 입을 다물었다. 몇 번이나 말을 걸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결국 충호는 기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진땀으로 범벅된 채로 움막 안에 있는 곳에 널브러진 나뭇가지들을 모았다. 그걸 대장삵은 발로 슥슥 밀어주기는 했다.

    탁! 탁!

    “크으. 흐…….”

    팔뚝으로 땅을 쿡 누르고 부싯돌 두 개를 부딪쳤다. 몇 번 할 때마다 팔뚝이 아파왔다. 땅에 계속 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뼈가 눌려서 그 사이에 있는 피부가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후우우… 흡!”

    숨을 참고 단박에 악으로 다섯 번을 내려쳤다. 손톱과 부싯돌이 부딪쳤다. 손톱이 살짝 뜯겨서 들어 올려졌다.

    “……!”

    어마어마한 고통에 충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몸이 타들어 갈 것처럼 뜨거웠다. 숨을 쉬는 것이 괴롭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시끄…….”

    말을 내뱉으려는 충호가 입을 다물었다. 안에 것이 울컥 나오려는 기분, 구토감에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숨도 내쉴 수 없었다. 조금 뒤에 안정되자 그때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탁! 탁! 탁!

    단번에 힘을 주고 다시 한 번 부싯돌을 때렸다. 겨우 불똥이 튀었고, 소복하게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왔다. 움막 밖을 바라보자 장작이 눈에 들어왔다. 기어서 이것까지 가져왔다.

    잔뜩 쓸어담아서 주변에 태울만한 잔가지는 모조리 모았다. 쌓이고 쌓여서 곳곳에 잔뜩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온몸이 땀에 젖었지만 충호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죽이고 있다는 걸 알아도 멈추지 않았다. 단순히 자신이 살려면 태산박을 살려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기였다.

    ‘빚이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는 수완이 좋은 사내가 아니었고, 하나를 주면 하나를 잘 맞춰서 주는 남자도 아니었다. 주면 그냥 비슷한 거로 갚는다.

    그렇기에 이번에 그는 산박을 위해서 움직이기로 했다. 항상 돈이 없을 때, 돈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사업을 던져준 산박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 현격히 달랐다. 그렇기에 오히려 충호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작업을 끝내고 충호가 기어서 안으로 들어왔다. 온몸이 먼지로 덮어있었고, 팔뚝부터 시작해서 멍이 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투두둑!

    동시에 무언가가 움막을 때리기 시작했다. 서충호가 깜짝 놀랐다.

    그의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이내 근육이 이완되었다.

    빗소리였다.

    숲에 숨었기에 나무를 타고 모여든 빗줄기가 굵직하게 움막을 때리는 소리였다.

    ‘이제 밤이구나. 충분히 어두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충호가 작은 모닥불에 서둘러 잔가지들을 넣고, 제법 굵고 썩은 나무를 둥글게 배치했다.

    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그 사이에 대장삵은 조용히 산박을 간호했다. 치료수를 먹이고, 심장과 가장 가까운 옆구리에 자리 잡아서 체온을 전달했다. 충호는 겨드랑이에 양손을 집어넣고 태어처럼 웅크렸다.

    하루가 지나갔다.

    이틀이 흐르고, 삼일이 건너갔다. 그 속에서 충호의 상태는 점점 좋아졌다. 그는 곧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수색해서 용케도 물약이 든 혁대를 하나 가져왔다.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회복물약은 단 두 개. 이 중 하나를 산박에게 먹이고, 다른 하나는 반을 자신의 옆구리에 살살살 발라서 치료효율을 높였다.

    “흐윽. 흐……!”

    거친 숨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작업 이후에는 나머지 절반을 산박에게 모조리 집어넣었다.

    “하루가 지났잖아. 힘도 되돌아왔을 거 아냐. 왜 아직도 눈을 못 뜨시고 계신 거지?”

    “보통 독이 아니니까. 치료보다는 붙잡아두고 있어.”

    “붙잡아두고 있다고?”

    “독 또한 액체니까.”

    “그럼 빼내면 되잖아.”

    그 말에 대장삵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사에게 말해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힘’은 움직일수록 소비가 커진다. 거기에 키메라의 독이다. 차라리 그냥 체내에 묶어두는 편이 나았다.

    ‘길도 험해.’

    혈관 곳곳에 온갖 회복 물약이 뒤섞여 있었다. 대부분 치료의 힘이지만 종류가 달랐고, 성분에도 차이가 났다. 그런 위험천만한 길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장삵이 상대를 안 해주자 결국 충호는 식량을 구했다 숲에서 과일을 따오거나 비 오고 난 뒤의 새벽에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잡아서 구워 먹었다.

    종종 썩은 나무에서 흰색 굼벵이 같은 것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는 점점 수척해졌다.

    산박은 5일 만에 눈을 떴다. 눈알만 굴려서 현재 상황을 파악해나갔다. 그리고 충호에게 말했다.

    “충호 씨…….”

    “어, 어어. 사, 사사, 사장님. 눈을 떴습니까?”

    충호가 다가왔다. 산박은 대장삵의 온기를 느꼈다.

    “삵, 너 역소환 안 되었구나?”

    “카멜 보다는 내가 있는 게 낫지. 지금 네 몸에 키메라의 독이 있거든. 이거 퍼져나가면 끝이다.”

    “고맙다. 나중에 소고기 줄게…….”

    “당연한 말을… 그 북쪽에는 소주가 정말 맛있는 데 많다던데…….”

    “뭔들 못하겠냐. 콜록.”

    바짝 메마른 입 때문에 말을 하다가도 기침이 나왔다. 기침 한 번에 몸이 굉장히 고통스러워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상상 이상으로 자신은 위험한 상태인 듯했다. 정신을 차린 것도 산박의 의지가 대단하였기에 깨어났다.

    “사장님.”

    “살아서 다행입니다.”

    “절 먼저 옮겨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등의 상처는요? 화상을 크게 입었지 않습니까.”

    “고통스럽습니다. 화상은 견딜만합니다. 방어구 덕분에… 그보다는 뼈가 좀…….”

    “폐 쪽은 아니시죠?”

    “예. 골반 쪽입니다.”

    산박이 크게 안심했다. 폐가 아프다면 그걸로 끝이다. 굉장히 위험했다. 출혈은 몇 시간 넘게 인간을 생존시킬 수 있지만, 호흡이 막히면 몇 분이 끝이다.

    “움직일 수는 있습니까?”

    “기어서 모닥불은 피웠습니다. 물약도 찾아왔긴 했는데…….”

    상태는 여전히 암울했다. 특히 먹지를 못해서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했다. 산박은 자신에게 있는 힘을 이용해서 자신과 충호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산박은 전혀 자신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제기랄…….’

    대장삵이 처치했지만, 키메라 독은 한번 산박을 훑은 지 오래였다. 다시 최대한 모았지만, 그 영향력이 다 사라진 건 아니었다.

    품을 뒤졌다. 싹이 난 씨 고구마 조그만 것이 나왔다.

    상태는 안 좋았다. 보통은 튼실한 씨 고구마를 원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100g은 넘어야 했는데 산박에게는 불필요했다. 납작하고 최대한 작은 씨 고구마를 냉동시켜서 던전 갈 때마다 소지하는 편이다.

    이를 이용해서 고구마를 단번에 수확했다. 이를 구워 먹었다.

    “흐, 흐! 허흐헙!”

    충호가 허겁지겁 먹었다. 뜨거워도 입이 데도 그 뜨끈함을 집어삼켰다. 그 이후에 조금 배가 차자 이내 꼼짝도 못 하는 산박에게 군고구마를 먹였다.

    “하… 살겠다.”

    충호가 제법 살맛이 났다. 그는 가슴을 탕탕 쳤다.

    “한 달만 버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던전은 보름이에요. 보스 몬스터가 골렘 계통이라서 카운터 치기 좋거든요.”

    산박이 던전 정보를 알려줬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이 크게 생겼다. 그때 밖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지 골렘? 어째서?”

    대장삵이 깜짝 놀랐다. 대지 골렘의 질퍽거리고 쿵쿵거리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귀를 쫑긋 세운 대장삵이 이내 입을 열었다.

    “정면이야.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네.”

    서충호가 몸을 일으켰다. 만전은 아니다. 앞으로 하루는 더 요양해야 그나마 나아지는데 여기서 더 움직였다간 또 악화될 것이다. 발 또한 절뚝거렸다. 산박의 치료도 완벽하지 않았다.

    통증이 걸을 때마다 충호를 덮쳤다.

    각성제도, 진통제도 없었다. 100m만 달려도 진땀이 쏟아질 터였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체온이 떨어지면 신체 기능은 떨어지고 심장마비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에는 망설임 한 점 없었다.

    “제가 다른 곳으로 유인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산박은 대장삵을 데려가라는 말도 못했다. 키메라 독이 퍼지면 죽음뿐이다. 몸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갑자기 심장이 크게 뛰거나, 체온이 오르락내리락했고, 구토감이 올라오기도 하다가 뼈가 으슬으슬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신기했다.

    충호가 빗속으로 사라졌다.

    몇 시간 뒤에 돌아왔는데, 팔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진흙으로 온몸이 젖어있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모닥불 옆에 쓰러졌다. 대장삵은 뜯긴 팔 부분을 치료했다. 출혈만 딱 멈추고 끝냈다.

    ‘제발 충호가 쇼크사로 죽지 않기를…….’

    산박은 그의 의지가 꺾이지 않기를 바랐다. 다음 날 충호는 눈을 떴지만, 고열에 시달렸다. 몸의 면역체계가 벌떼처럼 일어났다. 그는 군고구마를 먹었다가 토하기를 2번이나 반복했음에도 꾸역꾸역 고구마를 먹었다.

    “맛은 납니까?”

    산박의 말에 충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맛도 안 납니다. 그래도 먹어야 삽니다.”

    그는 몇십 번, 백번을 넘게 고구마를 씹어서 겨우 삼켰다.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웅크린 채 군고구마만 먹으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산박은 그 와중에 오른쪽 시력을 잃었다.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시은의 배신으로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능력 있는 자를 등용한다는 것은 그 배신의 효력이 더 무시무시하단 걸 잘 알고 있었다. 삼국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엄백호를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반대로 관우나 장료를 원하는 자는 수없이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만약 배신한다면 그 여파는 현실에서 정말 엄청날 것이다.

    능력이 있다는 자를 등용한다는 뜻은 그러한 것이다. 거대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머뭇거리다 산박이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까지 저를 위해서 희생하십니까?”

    “제가 받은 걸 되돌려주는 것뿐입니다. 흐흐.”

    충호가 낯간지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닥불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산박은 눈을 감았다.

    ‘충호의 넉넉함은 바다와도 같았구나. 내가 그를 너무 작게 봤다. 더 큰 자원을 맡겨서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너무 빨리 달린 것도 후회했다.

    몇 억짜리 장비를 둘둘 말았다면 배신을 당해도 능히 대처했을 터였다. 모든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조용한 곳에서 그 후회는 더 커져만 갔지만 다시 산박이 눈을 떴을 때 그 눈에는 강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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