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1화 (261/270)
  • 261화

    타다닥!

    대장삵이 돌로 된 바닥을 박찼다. 그러고는 공중에서 팽글 몸을 돌리며 팀원들이 대지 골렘과 싸우고 있는 전쟁터를 내달렸다.

    “멍청한 두더지 녀석. 혼자서 달려들 때부터 알아봤다.”

    신장이 무려 두 배가 차이 나고 흙과 모래, 자갈과 돌 그리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대지 골렘의 체중은 카누토의 열 배가 넘었다. 상대할 수 없는 존재에게 일기토를 건 불꽃두더지 파수병의 최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이라면 야만신의 은총으로 그가 죽기 전에 역소환되었다는 점이었다.

    ‘이래서 전사는 안 돼. 근육이 머리까지 침투한 정말 바보 같은 놈들이야.’

    상식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 곳에 뛰어든 매듭의 전사 카누토의 모습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를 3인칭으로 본다면 능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대장삵은 1인칭으로 전장을 보고 있었다. 만약 카누토가 일기토를 걸지 않았다면 해당 대지 골렘은 ‘증원군’의 형태로 적을 노렸을 것이고, 필멸자가 너무나도 쉽게 죽을 수 있었다.

    군대의 싸움은 정면과 정면의 싸움이다. 측면 공격이 감행되는 순간 와해가 일어난다. 지금 상황도 같았다. 인간은 특히나 패닉을 잘 일으키고 공포를 잘 느낀다. 생존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이 동물이다. 인간 또한 동물이었다.

    파수병은 1+1=2가 아님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홀로 막아섰다. 때로는 계란 같은 방패를 쥐고 우박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남들은 그 비유를 들으면 낄낄거리기 바쁘겠지만 전쟁터에서는 아니었다. 전쟁과 전투는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행한다면 실로 참군인이라고 할 수 있었고, 행하지 못한다면 빤스런 해병대나 다름없었다. 상황에 따라서 갈대처럼 휘둘리지 않고 굳세게 군화를 앞으로 내밀 수 있는 군인 정신은 훈련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비슷한 결과만 얻을 뿐이다. 그마저도 불확실성이 높았다.

    ‘용케도 발 하나를 붕괴시켜 놓았네.’

    화염을 다룰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덕에 대장삵은 물의 주문을 이용해서 손쉽게 대지 골렘의 팔 하나를 붕괴시켜 기어가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무력화되었는데, 파석 전갈 골렘이 소환한 대지 골렘은 재생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이시은은 곳곳을 돕는 척하면서 상황을 판단했다.

    ‘생각보다 힘든 싸움이야.’

    안 그래도 태산박이 겁을 줬다. 네크로맨서들에게 경계심을 드러내어 그들을 위축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싸움을 겪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배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이시은과 음모를 함께하기로 했지만 네크로맨서들 또한 살고 싶어 하는 한 명의 인간에 불과했다.

    더더욱 레이드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몇 마리나 죽여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산박이 이를 숨긴 건 ‘불명확한 변수’를 하나 추가시킨 결과가 됐다. 이것 또한 능히 배신을 저지하게 했다.

    ‘역시 사장님이야.’

    그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타협을 건네는 것이었다.

    ‘이쯤으로 하고, 좋게 좋게 그냥 가자. 눈감아 줄게.’

    태산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말로 안타깝게도 이시은은 그냥 여기서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배신은 막판에 하는 거라고 여기지. 그렇지만 난 달라.’

    죽고 싶다. 이곳에서 그와 함께. 현실로 돌아가는 일 없이 똑같이 죽는 것이다.

    이 판단에는 여러 가지 근거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보스 몬스터의 강함이다. 강하기에 보스 몬스터의 전력 분석이 끝난다면 네크로맨서들이 위축될 수 있었다. 이시은의 배신이 던전 공략 전력의 약화를 요구하고 있어서였다.

    그렇기에 인천 네크로맨서 협력자가 딴마음을 품기 전에 이시은이 먼저 칼을 뽑아야 했다. 그들이 겁을 먹고 배신하기 전에, 판단할 수 없어서 애매모호한 순간에 배신해야 했다.

    이시은은 품에서 양피지를 꺼냈다. 수작업으로 만든 양피지였다. 그곳에는 주문과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이를 단번에 찢었다. 하늘 위로 붉은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 화염은 곧 이시은의 마음에 따라서 서충호를 노렸다.

    화르르르!

    이글거리는 화염이 서 팀장의 등에 들러붙었다.

    “윽? 흐, 흐아아아아아악!!”

    끔찍한 화상의 고통, 이글거리는 온도가 번져 나갔다. 어마어마한 격통에 서충호가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이를 본 네크로맨서들이 어리바리를 깠다.

    “죽여!”

    이시은의 말에 네크로맨서들이 이를 악물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적패 네크로맨서의 명에 따라 한탕을 크게 베어 먹을 시간이었다.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수단이 있겠지.’

    ‘존버 하면 어차피 던전은 붕괴된다.’

    ‘이시은 적패 네크로맨서라면 무슨 방도가 있는지도 모르지.’

    현실에서의 정보 판단은 객관적이지 못했다. 빅 테이터나 게임처럼 잘 수치화되어서 나올 수가 없었다. 싸우는데 통계표 만드는 소리를 하는 자는 있을 수 없었다. 머릿속에 스마트폰이 들어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네크로맨서 협력자 세 명은 순식간에 배신을 했다.

    특히 이시은이 화염구를 통해서 화려하게 서충호를 공격한 것이 컸다. 포스코 타워에 적을 둔 네크로맨서는 이시은과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알 필요 없었다. 그저 죽음의 신이 원했기에 배신을 해야 한다는 간단한 변명이면 충분했다.

    특출난 이가 특별하지 않은 이유를 통해서 로열 로드에 올라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동참했다. 사람을 죽이고, 인간 백정이 되는 길을 웃으면서 수락하며 악수를 하였다. 명장의 밑에 머물 수 있다면 그 부관 또한 큰 대접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일을 마무리한다면 난 그녀의 최측근으로서 등용되어 성공할 수 있다! 인생이라는 길에 큰 획을 남길 수 있어!’

    그 배신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동귀어진 하려는 이시은에게나 근거가 있는 일이었고, 그 외에는 낮에 만난 도깨비불이나 다름없었다.

    “미, 미친 새끼들아!!”

    스님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대지 골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방 직업이 두들겨 패서 붕괴시키려고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 피해를 보고 있는데 그 순간에 후방 직업이 통수를 쳤다. 끔찍했다. 등골이 오싹해진 스님 하나가 그대로 도망쳤다.

    퍽!

    이시은이 준비해 온 석궁이 박살이 난 갑옷 사이에 정확하게 박혔고 스님이 옆으로 고꾸라져서 데굴데굴 산 아래로 떨어져 갔다. 먼지가 일어났고, 굴러떨어진 스님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화살이 옆구리에 박힌 채 수십 바퀴를 구르고 돌과 부딪쳤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피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이대로 정신을 계속 잃고 있으면 출혈로 죽음에 이를 것이 분명했다.

    “후퇴!”

    산박은 후퇴를 명령했다. 더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대지 골렘에 묶이고 파석 전갈 골렘까지 살아있는 상태에 네크로맨서 네 명과 중위 언데드 4기를 상대로 후퇴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외눈붉은곰은 역소환. 파수병도 역소환.’

    산박은 이미 두 마리의 소환체를 잃었다. 반면 네크로맨서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보스 몬스터에서 배신을 할 줄은 예상 못 했다. 이미 몇 개고 태산박이 장애물을 걸었다. 그걸 뛰어넘고 바로 검은 단검을 들어 올려 목젖을 겨눈다……? 어려운 일이다. 강한 추진력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산박은 그것을 지금 보고 있었다.

    ‘안일했다고 하기에는 현실이라는 놈은 가혹하지.’

    태산박은 그 암울함 속에서 취해야 할 것을 취했다. 먼저 대장삵에게 손짓하며 서충호를 보살피도록 했다. 동시에 난쟁이 텃밭꾼을 소환했다.

    “겍?”

    곳곳에서 싸우는 소리에 난쟁이 텃밭꾼들이 움츠러들었다.

    “가라! 날 지켜라!”

    “무리다! 무리! 이, 이런 상황은 거짓이다! 히이이익!”

    텃밭꾼들이 산박의 명령을 무시하고 양팔을 벌린 채 허둥지둥 도망쳤다. 쓰고 있던 모자가 아래로 떨어졌는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워낙 시끄럽게 어린이 소리를 내질렀기에 파석 전갈이 텃밭꾼의 위로 튀어나왔다. 난쟁이 텃밭꾼은 단번에 찢겨 죽고 시체가 흐물흐물해졌다. 주문으로 만들어진 텃밭꾼은 그렇게 사라져 갔다.

    다른 멍청한 텃밭꾼들은 도망도 황당하게 쳤다. 언데드와 딱 마주하는 곳으로 도망가거나 대지 골렘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도망조차도 제대로 칠 줄 모르는 어리숙한 겁쟁이들이었다.

    그 덕에 오히려 시간을 번 산박이 정원사 카멜에게 외쳤다.

    “서충호를 지켜줘!”

    “걱정 마세요, 드루이드여. 당신의 친구는 제가 지켜 줄게요.”

    나뭇잎이 수채화처럼 번져 나가며 허공에 나뭇가지를 수놓았고 곧 형태가 만들어지며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인간 형태의 모습이 서충호에게 달려갔다.

    ‘서충호만은 살려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였다. 그가 죽으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후방 직업인 드루이드에게 직업에 하자가 있는 A급 전사는 무조건 지켜야 하는 존재였다. 그걸 알기에 이시은은 서충호를 먼저 조져 버렸다. 화염구에 노출되어 그 열기에 정신력이 그대로 증발해 버린 서충호는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대장삵에 카멜까지 충호에게 보낸 산박에게 시은과 언데드가 접근했다. 다른 네크로맨서와 언데드는 스님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뼈 소리를 내는 ‘레드 스컬 워리어’의 공격을 정신없이 막던 스님의 머리 위로 전갈의 꼬리가 내려쳐졌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스님은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그대로 죽어 버렸다. 허물어지는 스님의 뒤에 있던 파석 전갈 골렘이 그대로 돌진을 감행했다.

    “끄아아악!”

    그 여파에 왼팔이 휩쓸려 쓰러진 스님이 고통스럽게 고함을 내질렀다. 팔 관절이 기괴하게 꺾여 버렸다. 방패로 공격을 막지 못한 결과였다.

    언데드 또한 성하지 못했다. 네크로맨서가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파석 전갈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꼬리를 땅에 집어넣더니 화강암을 크게 뽑아 올려서 터트려 버렸다.

    퍼버버벅!

    도망치던 네크로맨서의 몸이 이리저리 엉망진창 흔들리며 쓰러졌다.

    “으으으…….”

    네크로맨서가 몸을 돌려 주문을 읊었다.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그대로 깔려 방어 주문과 함께 짓이겨졌다.

    스님들은 산박의 명령에 따라서 후퇴하였기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였으며 각개격파당하고 있었다.

    파석 전갈에 의해서 네크로맨서와 스님, 언데드가 죽어가는 사이에 대장삵은 서충호를 챙기고 있었다. 카멜 또한 충호에게 도달했다. 서충호를 응급 처치 한 대장삵이 카멜에게 외쳤다.

    “이놈을 적당히 숨겨놔! 난 산박한테 간다!”

    “제가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이럴 시간이 없어! 그리고 난 이놈을 못 옮겨! 이놈 덩치를 봐!”

    이에 카멜이 수긍하고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서충호를 고치처럼 만들어 운반하기 시작했다. 제법 멀리 가야 했는데, 돌만 가득한 지역이라서 어디 숨길 곳이 없어서였다.

    “이런 X발!”

    “좀 도와주고 가지! 피해! 죽는다!”

    “도망만 쳐서는 방법이 없다니까! 아이템은?”

    “제기랄, 흙에 쓸려 내려갔지!”

    용용 형제는 대지 골렘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스님들이 갑자기 튀어 버렸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문제는 카멜이나 대장삵이나 싸우고 있는 그들을 무시하고 서충호만 챙기고 빠졌다는 점이었다. 소비 아이템을 묶어놓은 혁대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딘가 땅에 굴러다니고 있을 터였다. 결국 지지부진 간잽이질로 대지 골렘을 침묵시켜야 했다.

    상황은 단 5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극단적으로 흘러갔다. 처음 호기롭게 이시은을 도와줬던 네크로맨서는 파석 전갈 골렘에게 죽어가고 있었고, 언데드와 스님은 공멸했다. 서충호는 등판에 마법 불꽃이 들러붙어서 정신을 잃었다. 화상의 고통에 30초 이상 버텨내며 어떻게든 마법 불꽃은 끄고 기절한 것만으로도 서충호의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붕괴했다. 보스 몬스터가 있는 상황에서의 배신은 전멸을 의미했다. 하지만 시은은 거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태산박이 가장 아끼는 서충호를 조져 버렸고, 그 이후에는 곧바로 산박만 보며 달렸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쾌활한 웃음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걸 바라보고 있는 산박은 혼자 있을 뿐이었다. 그는 물러나면서 완드를 추켜올렸다. 빛이 흩뿌려졌다.

    “프로스트 매지션 프로토콜 스타트.”

    산박이 순식간에 얼음 마법을 사용했다.

    “서클 오브 프로스트(Circle of Frost).”

    쩌저저저적!

    산박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혹한의 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만으로도 접근하기가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척 봐도 산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마법이기도 했다.

    ‘시간을 끌 생각이겠지. 하지만 어림도 없는 생각이에요, 사장님. 전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트리플 엘리멘탈 로브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원시 정령이 소환되어서 앞으로 질주했다. 얼음이 녹아내렸다. 그곳으로 시은과 블랙 좀비 가드가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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