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0화 (260/270)
  • 260화

    레이드 던전답게 곳곳에 보스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던전마다 잡아야 하는 최소 숫자가 다 달랐다. 어떨 때는 운 좋게 한 마리를 잡았을 때 던전이 클리어되기도 했다. 수익은 보장 못 해도 던전 클리어를 통한 재미는 볼 수 있어서 던전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편이었다.

    빗물 골렘 계곡은 장기전을 요구하는 레이드 던전이었다. 밤에는 무조건 비가 내리며, 바람도 차다. 낮에는 괜찮지만 수분기가 곳곳에 남아 있어서 불쾌함은 여전하다. 그 속에서 꾸준히 나아가며 강적인 대지 골렘과의 전투를 수행하고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 이 보스 몬스터는 형태는 달라도 특징은 비슷비슷했다.

    “보스 몬스터는 말할 것도 없이 골렘입니다. 하지만 형태가 제각각이라 대응은 달라야 합니다.”

    산박은 은근슬쩍 시은의 질문을 빠르게 넘기고 보스 공략에 대해서 논하였다.

    “비탈길에서의 싸움이지만 나무가 없고…….”

    지형에 대해서 차근차근 말해주며 이를 인식시켰다. 말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는 이들을 배려했다.

    “이런 곳에서는 급히 내려가면 안 됩니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이동이 어렵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비탈길에서의 싸움에는 고저 차가 존재했다. 오르막을 오르는 것과 내리막을 내려가는 건 극명할 정도로 차이가 심했다. 인간은 그런 큰 변화에 쉽게 지칠 수밖에 없었다.

    평지를 달리는 것과는 다르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동안 근육은 다양한 힘의 적용을 받아야 하고 더 빨리 지쳤다. 그래서 산에서 싸우는 걸 즐기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었다. 산에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이 적은 이유이기도 했다.

    산에 사는 이들을 산사람이라 특정하여 얕잡아 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힘든 곳에 사는 놈들과 자신들은 다르다는 우월의 표시다. 이를 두고 자신을 산사람이라며 대단하게 여기는 이들의 꼬락서니는 실로 우습다. 차별받지 않는 사회에서나 생각할 법한 무른 생각이었다.

    많은 지칭어에 험악한 폭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를 깨닫는 건 어렵고, 이를 알고 자중하는 것은 골치가 아픈 일이며, 더욱이 오래 실천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언어를 어찌 인간이 감당하겠는가. 도기를 다루는 달인이 되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보스 몬스터의 형태에 따라서 진형이 바뀔 텐데, 처음에는 밀집해서 갔다가 놈이 어떤 태세를 지녔냐에 따라서 진형을 바꾸겠습니다.”

    보스 몬스터는 강하다. 그렇기에 선공을 쉽게 따낼 수 있었다. 땅에서 튀어나오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 넓은 면적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데 주문력을 허비해서 표적을 잡을 만큼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후공을 취하는 게 그들에게 이득이었다. 모두 수긍했다.

    “10분 뒤에 전투를 개시하겠습니다.”

    모두 흩어졌다. 준비를 마친 산박의 눈이 네크로맨서들에게로 향했다. 보스 몬스터를 앞에 두고 긴장해선지 모르겠지만 산박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어서였다.

    ‘새끼들.’

    산박은 속으로 욕을 했다. 분명 산박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대놓고 하고 있었는데, 하찮았다. 짖기만 하는 개를 본 기분이 들었다.

    반면 이시은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산박은 혼란을 느꼈다. 이시은이 대단히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임을 몰랐기에 생긴 혼란이었다.

    결국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그들과 따로 떨어져서 전투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걸로 알아들었으면 좋으련만.’

    태산박은 타협을 건넸다. 네크로맨서들 또한 이를 느꼈으나, 그들은 갈등을 움켜쥔 채로 전투에 임했다. 결정권자는 자신들이 아니었다. 이시은이었다.

    ‘싸우면 일단은 내가 우세하다.’

    3레벨 첫 공략이다. 아직은 전사가 대인전에서 강했다. 서충호는 반드시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것이 산박이었다. 용용 형제와 안심사 스님들 또한 말할 가치도 없었다. 그 속에서 이시은을 비롯한 네크로맨서들이 쉽게 칼을 들이밀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네크로맨서나 이시은이나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목이 뻐근했다. 이를 주물거리며 산박은 공략을 이행해 나갔다.

    밀집해서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에 들어섰다. 보스 몬스터는 땅에서 튀어나올 것이 분명했다. 서로 뭉쳐 있어야 서로를 도와줄 수 있었다.

    언데드들이 앞에 섰다. 바짝 긴장한 채 걸어갔다. 중앙에 도달하고 나서야 놈이 움직였다.

    드드드드!

    땅이 들썩이자 그 진원지를 찾으려고 모두 멈춰 섰다.

    “바닥!”

    고함을 내질렀고, 곧 모두 그곳에서 기민하게 물러섰다.

    보스 몬스터는 바닥에서 튀어나왔다. 정석이다. 그렇기에 잘 통한다. 실제로 한 사람도 휩쓸리지 않았지만 보스 몬스터의 시야로는 모두가 흩어진 것처럼 변했다.

    파석(破石) 전갈 골렘. 전갈 형태를 지니고 있었기에 매우 유연했다. 생명체가 아니었기에 상체만 360도 회전도 가능했다.

    푸르르륵!

    토사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이동을 방해했고, 멈춰 선 그들 중 한 명을 노렸다. 동시에 꼬리에서는 바위가 충격과 함께 폭발하며 그 파편이 하늘을 뒤덮었다. 운동력을 강하게 지닌 돌들이 메테오처럼 떨어져 내렸다.

    텅! 터더더덩!

    “우웃!”

    묵직한 방패를 들어 올린 스님들의 몸이 휘청거렸다. 하체에서는 흙 따위가 거세게 그들을 밀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돌이 떨어졌다. 균형을 잡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이시은을 제외한 네크로맨서는 죄다 넘어졌다.

    “아악!”

    두 팔로 머리를 보호하는 게 고작이었고, 주문은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공포로 적을 향해 언데드를 돌진시키지 못하고 자신을 지키는 데 썼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시은 또한 자신의 언데드를 멀리 보내지 못했다. 혼자 가봤자 개죽음이었다.

    “삵아!”

    “뚝 떨어지는 파도가 모든 것을 지키고 모든 것을 물러가게 할지어다! ‘바다뱀(Sea Serpent)의 맹공’!”

    대장삵이 감정을 담아서 영창하고 주문을 외쳤다. 바다뱀이 단번에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로 이루어진 놈이었고 심해처럼 진한 바다색이었다. 그 물줄기가 앞으로 달리는 전갈의 몸에 부딪쳤다.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그 속에서 산박이 완드를 추켜올렸다.

    ‘빅점보 프로스트 완드’.

    “프로스트 매지션 프로토콜 스타트.”

    번쩍!

    빛이 완드에서 퍼져 나갔다.

    “프로스트 스파이크. 빅헤드 프로스트.”

    송곳이 쭉 솟아나며 전갈의 몸에 부딪쳤다. 바위와 부딪치며 얼음이 산산조각 났지만 몸에 부딪치고 있는 물과 만나면서 물이 단번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머리통만 한 얼음덩어리가 전갈의 몸체를 묵직하게 후려쳤다.

    “지금이다!”

    서충호가 고함을 내질렀다. 스님들 또한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저지에 성공한다면 전투는 쉽게 끝날 수 있었다. 전갈이 벌써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크어어어!”

    외눈붉은곰이 한발 빨리 도달했다. 단번에 앞발을 휘둘렀지만 그 전에 눈이 멀어있어 시야가 막힌 곳으로 파석 전갈 골렘의 꼬리가 날아들어 그 몸을 꿰뚫었다. 외눈붉은곰이 충격에 단번에 휘청거렸고 앞발이 헛스윙을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역소환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것이다.

    고작 2레벨 소환 주문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육체 스펙만 따진다면 3레벨이나 다름없는 놈이었다. 외눈이었기에 이상하리만치 허무하게 죽었다.

    여기서 산박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곰의 위치를 반전시켜서 돌격시켰다면 저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터였다. 다만 네크로맨서와 이시은의 동태가 이상해서 거기에 신경을 쓰느라 그것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외눈붉은곰이 사라지자 자유롭게 된 전갈의 꼬리가 주변을 휩쓸었다. 돌과 자갈 그리고 모래와 흙이 꼬리와 함께 주변을 쓸어 버렸고, 이 때문에 꼬리에 공격당하지 않았음에도 너도나도 눈을 감으면 되레 걸음을 멈추거나 넘어져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방패를 지팡이처럼 바닥에 꽂으며 버티는 스님도 있었다.

    “켁!”

    그중에 한 놈은 자갈이 투구 아래를 쳐서 아예 옆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그때 공격당했으면 반드시 죽었을 터였다. 다행스럽게도 얼음 마법에 타격을 받고 이시은의 마법 공격을 받은 놈은 금방 도망쳤다.

    “웨에에엑!”

    돌에 온갖 타박상을 입은 네크로맨서가 무리해서 일어나려다가 어지러움을 느끼고 안에 것을 게워냈다. 땅이 계속 웅웅 울리고 들썩거려서 주체를 못 하고 비틀거리다가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는 네크로맨서도 보였다.

    ‘저렇게 나약할 수가!’

    지금껏 안전하게만 사냥한 덕에 저렇게 못 싸울 줄 몰랐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켜주는 언데드가 있다는 점이었다. 돌 지역이 넓어서 같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어떻게든 여기서 주문을 통해 원호를 해줘야만 했다.

    쿵쿵쿵쿵!

    스님들이 다시 한번 모여 방패를 두들겨 댔다. 수비적이고 생존력이 높았기에 응당 그들이 나서서 시선을 끌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상사에게 현실에서 뚝배기가 깨질 것이었다.

    그들은 곳곳에 타박상을 입어서 무기로 방패를 잘 치다가도 몸을 들썩였다. 고통스러워서였다. 그들에게 치료수를 뿌리던 대장삵이 산박에게 외쳤다.

    “상성이 안 좋아! 물러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전사들로 유인을 해야 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튀어 오를 때마다 파석질을 해대는데 유인은 무슨!”

    시끄럽게 방패를 두들겼기에 다시 튀어나온 파석 전갈 골렘은 역시나 스님들을 노렸다. 튀어 오르자마자 꼬리에 있는 바위가 수류탄처럼 터졌다. 돌무더기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번에는 대응이 달랐다.

    네크로맨서들이 곳곳에 방어 막을 펼쳤다. 뼛가루가 담긴 것을 뿌리기도 했고, 뭔가 검은 진액을 양손에 덕지덕지 바르기도 했다.

    매개체는 주문 사용에 있어서 탁월한 조미료로 쓸 수 있었다. 육개장에 몰래 뿌리는 라면 수프나 다름없었다. 무조건 효과가 좋아지는 매직! 그게 바로 매개체였다. 다만 펑펑 쓸 수는 없었는데, 돈 때문이었다. 그래도 보스 몬스터를 저지하지 못했기에 이것저것 다 써야만 했다.

    동시에 네크로맨서들은 3레벨 장비도 집어 들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대응 못 했지만 그건 처음이라서였고, 두 번째는 확실하게 달랐다.

    뼈로 이루어진 방어 막이 돌과 부딪쳤고, 돌은 운동성을 잃었다. 돌과 돌이 만나기도 했고 서로 부딪쳐서 반발하여 힘을 잃기도 했다. 무형의 방어 막도 유리처럼 깨졌지만 손쉽게 돌의 운동력을 상쇄시켰다.

    방어 마법은 단 3초도 유지되지 못했지만 효과적으로 파석 공격을 막아냈다. 포스코 타워가 이시은의 첫 3레벨 레이드에 어중이떠중이를 줬을 리가 없었다.

    땅에서 불이 솟아올라 골렘을 노렸다. 대기에서 수분이 들러붙어서 얼음 창이 되어 쏘아졌다. 특히 대장삵이 물의 주문을 사용한 덕에 주변에 수분이 많은 게 한몫했다. 평소보다 20% 더 넓은 표면적을 지닌 거대한 창은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했다.

    주변에 살얼음이 끼며 눈처럼 내리기도 했다. 모두 대장삵이라는 물의 마법사 덕분에 얼음 마법이 전체적으로 효과가 급증한 탓이었다.

    충격파가 주먹처럼 내리꽂혔다. 거기에 노출된 파석 전갈 골렘이 몸을 붕괴시켰다.

    “됐다!”

    누군가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처리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코 아니었다. 파석 전갈 골렘은 스스로 몸을 붕괴시켰다. 거기에서 대지 골렘 다섯이 일으켜졌다. 서로 사방팔방으로 근처에 있는 놈들을 노렸다.

    “막아!”

    산박이 악을 질렀다. 곧 다른 곳에서 땅을 자신의 몸으로 삼은 파석 전갈 골렘이 또 덤벼올 것이었다.

    불꽃두더지 파수병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놈을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그를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소환수였기에 우선순위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카누토는 오히려 그것을 좋아했다.

    ‘버티기만 하는 것으로도 공적이 쌓이니까.’

    “와라!”

    화염구가 입에서 토해졌다. 할버드가 골렘의 발 차기와 부딪쳤다. 주먹에 어깨를 맞았지만 밀려날 뿐이었다. 동글동글한 어깨 판금 갑옷 덕분에 대지 골렘의 주먹이 제대로 불꽃두더지 파수병에게 들어가지 못했다.

    카누토의 입에서 쏟아지는 불꽃에 대지 골렘의 한쪽 다리가 무너져 내렸고, 동시에 카누토가 크게 한 방을 맞고 나뒹굴었다. 정면으로 무식하게 부딪쳤기 때문에 카누토는 3합 만에 입에서 피를 토했다. 1:1로는 대지 골렘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불꽃두더지 파수병은 의연하게 몸을 일으켰다. 주먹으로 할버드의 도끼 옆면을 후려치며 놈을 도발했다. 고함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몸에 담겨있는 충격이 커도 너무 커서 꽉 막힌 것처럼 숨도 내쉬기 힘들었다.

    쾅!

    화강암과 할버드가 다시 한번 부딪쳤다. 다리를 질질 끌면서 왔기에 돌진력은 없었지만 덩치가 2.5m에 달하는 대지 골렘이라 손이 끊어질 것처럼 아파져 왔다. 그래도 카누토는 할버드를 놓지 않았다. 그는 훌륭한 파수병이었고 정예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사였다. 전사는 무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죽어서라도!

    할버드가 옆으로 크게 치우치며 두더지 파수병의 몸이 훤히 드러났다. 대지 골렘의 양 주먹이 그대로 내려쳐졌다. 이를 카누토가 왼팔을 들어 올려 막았다.

    무릎이 꿇려졌다. 왼팔의 어깨가 탈골되었는데, 너무 큰 충격력 때문이었다. 카누토는 할버드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오른팔로 재차 휘둘러지는 골렘의 공격을 또 한 번 막았다.

    쿠당탕탕!

    금속 방어구와 바닥에 깔린 돌들이 부딪히며 소음을 발생시켰다. 몇 바퀴를 구른 파수병의 머리에 길쭉한 대지 골렘의 팔이 휘둘러졌다.

    후웅!

    대가리가 그대로 깨지기 전에 카누토가 역소환되었다. 그가 사라지자 대지 골렘이 다른 놈을 찾았다. 악다구니를 쓰면서 다른 대지 골렘과 싸우고 있는 전사들을 노렸다.

    어찌나 요란하게 싸우는지 대단히 시끄러울 정도였다. 돌과 금속이 부딪치고 악다구니를 쓰며 방어구에 있는 주문까지도 아낌없이 사용했기에 요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속으로 천천히 한쪽 다리와 양팔을 이용해서 대지 골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옆 치기는 모든 것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끔찍한 전술 패배가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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