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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화 (259/270)
  • 259화

    서충호 또한 공격적인 장비를 소지하고 있었다. 잔잔벼락의 무기였다. 옥시모론 기업 소속의 팀원에게만 지급되는 무기였다. 용용 형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 또한 옥시모론 던전 기업의 가족이었다.

    그 덕에 대지 골렘과의 전투 진형은 손쉽게 배치할 수 있었다. 대지 골렘 타격 능력이 적은 안심사 스님들이 정면, 용용 형제는 좌측, 서충호는 우측을 맡았다. 산박은 충호를 서포트. 네크로맨서는 중앙과 좌측을 맡았고, 언데드는 1기만 후방을 지키고 나머지 셋은 뒤를 치기로 했다.

    조용히 잠자고 있는 대지 골렘은 평범한 땅과 구분할 수가 없었다. 아주 잘 숨어 있었고, 흙과 동화되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몰랐겠지.’

    그곳을 지나갔다면 진형 붕괴가 일어났을 것이고, 재수 없으면 한 명이 죽었을지도 몰랐다. 목이 부러지거나 쇼크사해서 이미 죽은 놈을 살리는 치료 주문은 없었다.

    “소나무 향기 외뿔.”

    소나무 향이 강하게 뿜어져서 공기 중에 퍼져 나갔다. 순식간에 지혜 +2만큼의 주문력이 상승했다.

    “떡갈나무 옷 피부.”

    산박이 전사들에게 보호 주문을 사용했다. 장비에 얇게 도포되는 형식의 주문이었다. 낮은 보호력을 주지만 힘의 소모가 매우 낮은 편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방어 주문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산박이 사용하면 확실하게 달랐다. 시각적인 효과부터 짙었고, 체감도 약간 달랐다. 가죽 방어구를 하나 입은 것처럼 무게가 늘어난 기분마저 들었다. 평범하지 않은 지혜와 주문을 통한 지혜 상승까지 노린 상태에서 주문을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작하세요. 가벼운 거로요.”

    “물어뜯어라.”

    이시은의 말에 그녀가 끼고 있는 고스트 러시 가죽 장갑에서 유령이 모습을 드러내 질주했다. 사악한 검은색을 지닌 악령은 거침없이 대지 골렘이 있는 흙으로 들어갔다.

    드드드득!

    흙이 크게 들썩이며 대지 골렘이 단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괴성을 지르지는 않았다. 대신 화강암이 서로 부딪치며 둔중한 소리를 냈다. 대지 골렘은 모래와 화강암 그리고 주변에 있는 흙을 둘렀다. 두더지 하나가 거기에 휩쓸렸는데 곤죽이 되어서 피를 쏟아내고 단말마의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한 채 죽었다.

    쿵쿵!

    놈은 주문을 사용한 이시은을 정확하게 노리지 않고 그냥 가장 가까이에 있는 스님을 노렸다. 제대로 관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문을 맞았기에 시은에게 어그로가 끌리지 않았다. 게임이었다면 그렇게 어그로가 끌렸겠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놈이 때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막아아앗!”

    스님들이 악다구니를 내질렀다. 이런 짓거리를 몇 번이나 했는지 제법 기세가 단단했다. 대지 골렘의 발 차기가 들어갔다.

    쾅!

    무식한 소리가 울리며 스님 하나가 그대로 발라당 뒤집어졌다. 흙과 모래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어푸풋!”

    눈을 감으면서도 스님들은 서둘러 뭉쳤다. 주먹이 내려쳐졌다.

    꽝!

    무릎이 단번에 꿇려졌다. 스님 하나가 방패에서 빛을 뿜어냈다. 방패의 앞에 원형의 방어 막이 생성되었지만 골렘이 다른 주먹으로 내려치자마자 깨졌다. 척 봐도 2.5m는 되어 보이는 중형 괴물이다. 무식함이 도를 지나쳤다.

    스님들이 버티는 사이에 다른 이들도 냉큼 달려들었다. 산박은 굳이 싸우지 않고 지켜봤다. 소환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장삵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주문을 읊었다. 3레벨 물의 주문, ‘저지 폭포’를 사용했다. 물이 쏟아져 내렸다. 대지 골렘을 짓눌렀다. 무거운 물 속에서도 대지 골렘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흙이 물에 의해서 제법 녹았지만 진흙이 화강암에 똘똘 뭉쳤다.

    쑥!

    잔잔벼락의 쇼트 소드가 대지 골렘의 무릎을 찔렀다. 마법으로 생성된 전류는 물을 만났음에도 퍼지지 않았다. 실제 전류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대지 골렘의 한쪽 다리가 순간적으로 무너지고 왼팔이 땅을 짚었다. 스님들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곳곳에서 놈을 두들겨 팼다. 아이스 메이스로 찜질을 할 때마다 흙과 화강암 그리고 자갈 따위가 떨어져 나갔다. 대지 골렘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켁켁! 퉤퉷!”

    스님들은 입에서 흙을 뱉어내기 바빴다. 발 차기에 맞은 스님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채 쓰러져 끙끙 앓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치료수를 먹여줬다. 겨우 정신을 차려서 일어서려던 스님이 마치 감전된 것처럼 퍼덕거렸다.

    “윽!”

    그는 방패를 손에서 놓았다. 손목이 퉁퉁 붓다 못해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팔로 이어지는 근육 자체가 뭉개져서 손이 이상해졌다. 치료수로 치료하면서도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대지 골렘이 확실히 엄청난 놈이긴 하네요.”

    한 방에 한 놈을 전력 이탈 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 치료수도 제법 소비하게 하였다. 산박은 고민 끝에 이 레이드 던전의 난이도를 격상시켰다.

    ‘대지 골렘이 강하다.’

    그런데 대지 골렘이 일반적으로 튀어나오는 놈이었다. 무서운 던전이다. 이 상황에서 보스 몬스터에 준하는 것들도 잡아야 했다.

    골렘의 핵은 거대했다. 사람의 상체만큼이나 컸다. 2.5m에 달하는 놈이니 그 심장이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작업은 그냥 채광이나 다름없는 막노동이었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레이드 팀이었을 때나 그렇다. 작은 언덕이나 다름없는 곳이 거칠게 파헤쳐졌다.

    “크어어!”

    외눈붉은곰 한 마리면 금방이었다.

    “왜 일찍 안 꺼내셨습니까?”

    “제가 힘이 남아돕니까? 주문 사용자가 주문을 아끼는 건 기본이지요. 이해해 주십시오.”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손 근육과 뼈가 어긋났던 스님의 말에 산박이 부드럽게 말하며 그 어깨를 토닥였다. 스님도 더는 반론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러니까!

    주문력은 한계가 있으며, 남용하는 것보다 아껴서 똥 되는 게 낫다. 똥이 되기 전에 주문을 쓰는 놈은 주문 사용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냥 머리에 근육만 가득 찬 전사라고 할 수 있었다.

    곰을 통해서 골렘의 심장을 캐내고, 이를 배낭에 집어넣었다. 툭 튀어나왔지만 상관없었다.

    “사장님, 이건 얼마나 합니까?”

    서충호의 말에 산박이 대꾸했다.

    “백만 원에 팔립니다. 동력원으로 쓰이는데, 던전 사용자한테는 큰돈이 안 되죠.”

    “빌어먹을 기업 새끼들.”

    초월의 힘을 원료로 사용하는 동력원에 사용되는데, 당연히 그 정도 발전소를 쓴다면 보통 일에는 쓰이지 않는다. 제법 돈 많은 곳에서나 쓸 법했다. 구매할 사람이 적기에 담합하기도 좋았다. 실제 가치는 5백만 원을 넘어서지만 던전 사용자들에게는 백만 원만 들어오는 셈이었다.

    10kg에 2천5백 원 하는 시금치가 소비자에게는 1kg에 5천 원 넘게 팔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자본주의의 위력이다. 산지 직송이라고 해도 비슷하게 받아먹는다. 양심이고 나발이고 내 지갑이 두툼해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게 범인의 생각이며 사상이다. 너는 싸게 팔았으면 좋겠고, 나는 비싸게 팔면 좋겠다는 심리가 만들어낸 잔혹한 대척점이었다.

    그건 던전 경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동보다 자본이 더 가치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였다. 경제학의 기본이지만, 대한민국은 경제학을 필수 과목으로 내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경제 노예가 많았다.

    ‘물론 이제는 알아도 못 하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 별수 없었다. 그 사회 계층으로 올라가려면 던전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강해질 수 있으니까.’

    나, 자체의 생산력을 높일 수 있었다. 연봉 또한 혈연, 지연, 학연과 관계없이 성장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어떻게든 도전하고, 그 자리에 안주하거나 죽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공하기 위해서 들어와 놓고 전담 팀에 남는 이들이 대단히 많았다.

    ‘김각두를 데리고 오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를 데리고 오려면 김연정도 있어야 한다. 애초에 두 사람 모두 아직도 2레벨이었다. 두 명을 합치면 열네 명으로 들어왔을 터다. 안전해지지만 오래 걸리는 방식이었다.

    다만 김연정이 걸어준 보호 주문은 공간을 뛰어넘어 산박에게 유지되고 있었다.

    “외눈붉은곰으로 대지 골렘 전투에서 우위를 가져가지는 않겠습니다. 치료를 따로 해줘야 해서… 유지력이 낮습니다.”

    한번 크게 다치면 역소환되고 다시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혹은 치료를 해줘야 했다. 야만신의 소환 북에서 소환 가능한 외눈붉은곰의 특징이었다. 그 때문에 자주 사용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여기에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여유가 없어지면 목적이 행동에 나타나는 법이지.’

    쉬운 전투에서는 행동에 목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여유롭기에 숨기기 좋았다. 반면 어려운 전투에서는 목적이 툭 튀어나올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전력을 낮춰야 했다.

    ‘첫 3레벨 전투니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다.’

    자주 공략하고 수월하게 끝낸 2레벨 던전에서는 그런 변명 따위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3레벨 던전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대지 골렘 때문이다.’

    강하다. 그런데 가장 일반적인 놈이다. 3레벨이 왜 레이드 던전이라 불리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협력하지 않으면 괴물을 때려잡는 게 힘들었으며 부상은 달고 나아가야 했다.

    “이걸 씹으세요. 기본 지급 물품입니다.”

    산박이 배낭에서 길쭉한 잎을 꺼내 건넸다. 색깔이 무슨 곰팡이 썩은 색깔이었고 점도 곳곳에 묻어나 있어서 씹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잎이었다.

    “신경 안정 효과를 주는 겁니다.”

    “아……! 이 비싼 걸……. 3만 원이나 하는 걸…….”

    스님이 대단히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안정 잎’은 수요가 많아서 비싼 편이었다. 자주 써야 하면서 비싼 편이면 솔직히 구매하기가 꺼려진다. 그걸 준비해 온 산박은 감동적인 사장님이었다.

    반면 산박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숙지를 하라고 했는데 보급품 목록을 읽지도 않았구나.’

    기가 찼다. 사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전사라니, 돌중다웠다.

    와그작!

    감자칩 먹는 소리가 났다. 3만 원이 그냥 허공에 사라졌다. 맛은 평범하게 쓴맛이고, 콧물이 주룩 흘러내릴 정도로 농후한 식물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크으응!”

    코에서 철철 흐르는 콧물을 뿜어낸 스님이 일어섰다. 할 만했다. 치료되었음에도 욱신거렸던 손목과 팔이 나아졌다.

    “본인 배낭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뭐가 있는지 재확인하여 숙지하도록 하세요.”

    산박은 스님을 지적하지 않고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에 다시 모든 이들이 기본 보급품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중에 잔잔벼락은 없었다.

    ‘너무 호구처럼 보이니까.’

    여러 번 사용 가능한 장비까지 대여해 주는 건 지나치다. 옥시모론에 속한 자들에게만 지급했다. 옥시모론에 속한 이들의 기를 세워주기 위한 장비로 잔잔벼락 무기는 나쁘지 않았다. 저레벨 장비였지만 이런 레이드 던전에서도 소비품으로 쓸 만했다.

    ‘대지 골렘에게 특히 효과적이지.’

    특수한 힘으로만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물리력을 이용해서 무식하게 흙이나 돌을 떨어뜨려야 했다.

    레이드 팀은 한 번의 전투로 자신들을 더욱 강화시켰다. 보급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은 이를 보완했고, 대지 골렘에 대한 경험이 전체적으로 쌓였다.

    “하산하겠습니다.”

    곧바로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종종 대지 골렘을 만났는데, 제법 고전했다. 전과 다르게 갑자기 튀어나와서였다. 탐색 마법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흙먼지와 돌에 맞아서 타박상을 입으면서 천천히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던 도중에 나무가 사라지고 돌이 가득한 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 200m 반경으로 이루어진 넓은 돌무더기였으며, 그 아래에 계곡 길이 보였다. 산과 산이 마주하면서 생긴 자연적인 길이었고 물이 흐른 흔적이 보였다.

    “척 봐도 이 돌무더기 지역은 뭔가가 있어 보이는데…….”

    선두에 있던 스님들의 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췄다. 산박의 호출 소리가 들리자 모두 모여들었다. 3레벨 던전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걸 봤기에 산박에게는 모든 것이 잘 보였다.

    “이 레이드 던전은 보스 몬스터를 여럿 잡아야지 나갈 수 있습니다.”

    “사장님, 정확하게 몇 마리요?”

    이시은이 순수한 표정으로 물었다. 산박은 자신의 경계심을 숨기며 웃으면서 말했다.

    “거기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세 마리.’

    그가 거짓말을 뱉었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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