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5화 (255/270)
  • 255화

    “상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지금 두 분 모두 3레벨 던전 사용자가 될 수 있는 상태가 맞으십니까?”

    “예.”

    “예.”

    둘 다 똑같이 대답했다. 매우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만큼 태산박의 존재가 너무 컸다. 2레벨 던전에 잔류한 기간이 적은 상태에서 자신의 기업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지금 3레벨 던전을 노리고 있었다.

    ‘한 번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버는 위치로.’

    보통 한 달에 세 번은 가는 게 3레벨 레이드 던전이었다. 최소 3천만 원은 약속되어 있고, 최대 억까지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런 존재와 자신들은 서있는 위치가 달랐다.

    “저와 같이 가주셨으면 합니다.”

    꿀꺽!

    둘이 침을 꼴깍 삼켰다. 바로 물고 싶은 떡밥이었다. 풍기는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물보다 소고기를 더 많이 집어넣어서 끓인 육수가 만들어 내는 풍미가 코끝을 살살살 흔들어 대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식욕이 돋워졌다.

    “저, 이렇게 말씀드리면 대단히 무례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두 분의 가치는 생각보다 높습니다.”

    산박이 빙긋 웃으며 손에 깍지를 끼고 등받이 의자에 기대며 턱을 조금 올렸다. 경청하는 분위기를 단번에 풍겼다. 눈은 매우 진지했다.

    마치 회사에서 첫 발표를 하는 기분에 휩싸인 용갑균이 저도 모르게 용걸섭을 바라보았다. 뭔가 분위기가 안 좋아질 수 있는 건 동생인 용갑균이 하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도 좀 부담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용갑균이 상대하는 것들은 고만고만하거나 약한 놈들뿐이었다. 양아치 스타일이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사무라이 정신과 비슷했다.

    “큼.”

    결국 형인 용걸섭이 나섰다. 갑균이 말실수하면 그 또한 피해를 보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전담 팀 꾸리는 데 안전성을 도모하기 위해서 5년 장기 계약 하기로 했잖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그걸 갑자기 확 뒤집으셨으니,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주제가 넘는 내용이라면 안 들어도 됩니다, 물론! 하하하…….”

    “제가 왜 용걸섭 씨, 용갑균 씨에게 이렇게까지 하는지 아십니까?”

    “실력… 때문이 아닌지…….”

    “맞습니다. 적어도 3레벨 던전까지는 전방 직업이 갑입니다. 후방 직업이 아무리 대단해 봤자 범위 공격 한 전투에 세 번 쓰면 대단한 겁니다. 그렇지만 턱없이 부족하죠. 보스 몬스터도 중형급이면 대부분 지치게 만든 뒤에 잡습니다.”

    그렇지 않은 건 옥시모론뿐이었다. 집중성탄 때문이었다. 마력과 별의 힘이 뒤섞이며 증폭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회수되어야 할 힘’이었으나 회수되지 않았다. 어지간한 보스는 그 힘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옥시모론 기업의 2레벨 던전 광속 공략은 산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꾸준히 2레벨 공략에 번갈아 가며 참가하여 팀원을 베테랑으로 만들었다. 여러 번 공략한 2레벨 던전에 익숙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전의 견인 역할을 한 것이 산박이며, 쌍둥이 형제였다. 그렇기에 산박이 3레벨로 가면 자연스럽게 용용 형제만 남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2레벨 전담 팀 보강 인력 장기 계약 및 포섭 프로젝트였다.

    “3레벨 던전은 저레벨 던전으로 분류되지 않고 레이드 던전이라고 불립니다. 저 또한 조금 걱정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옥시모론 기업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최대한 던전 공략을 합니다. 한 분이라도 크게 다치거나 돌아가시면 기업의 평판이 낮아집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편법을 쓰지만, 전 될 수 있으면 편법은 안 쓰려고 합니다.”

    안 쓰는 건 아니지만 안 쓰려고 노력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건 다른 기업에 비해서 대단히 양심적인 기업이라는 뜻이었다.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략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 엘리트 하청 팀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2레벨 구간에서는 조금 손해를 보겠지만 3레벨 던전에 더 완벽함을 넣고 싶습니다.”

    그 말에 용용 형제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를 받아 주시겠다는 뜻입니까?”

    “예. 옥시모론 기업은 세종 공원 던전 훈련소 또한 대여해 놓았습니다. 수련하실 때 그곳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그 말에 두 명이 혀를 내둘렀다. 던전 훈련소 이용은 대기업이나 하는 추세인데 벌써 가능한 모습은 평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산박의 뒤에 누군가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소리였다.

    ‘뒷배 있는 기업에 안 들어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여기서는 질러야 한다.’

    “하겠습니다.”

    “여기 계약서입니다. 지금 바로 인감을 찍으시겠습니까?”

    “읽어 보지도 않았는데 인감을 어떻게 찍습니까. 이해를 좀 해주시지요.”

    “하하하. 그렇죠. 아침 먹고 고민하고 점심 먹으면서 또 고민하고 카페에서 고민하다가 해가 지고 술 한잔 하면서 고민하고 나서도 안 찍는 게 인감 아닙니까.”

    산박은 전혀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인감을 찍는 순간 계약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진다. 무조건적인 책임이며, 회피 불가능한 책임이다. 그 무거움을 안다면 그냥 인감을 안 찍는 게 최고였다.

    인감은 모든 게 결정이 나고 나서 찍어야 했다. 가계약이니 뭐니 헛소리에 혹하는 순간 노예 확정이다. 지나치게 신중해 보인다고 욕먹고 쪽팔리는 기분이 들 수 있지만 거기에 휘둘린다면 그건 그냥 지능이 낮아서일 뿐이다. 리스크를 안다면 남들의 태도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굳은 심지가 원하지 않아도 생길 것이었다.

    찬찬히 계약서를 읽어 나가던 용걸섭이 하나 질문했다.

    “여기 보시면… 3레벨 이상 던전부터는 법률 전문가에 의하여 세금 포함 던전 수익금의 최대 20%를 공략한 사람들과 공평하게 나눠서 성과금으로 제공한다고 되어 있는데 너무 좋은 조건 아닙니까?”

    “옥시모론 기업의 핵심 가치입니다. 달마다 1억씩 벌면 끝입니까? 저는 많이 가져가겠죠. 근데 그렇게 하면 옥시모론 기업이 발전할 거라고 보십니까?”

    “그건…….”

    둘 다 산박의 눈치를 보며 대답하지 못했다.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돈이고 자본이다. 회사가 적자가 나든 말든 닥치는 대로 자신의 연봉을 올리는 게 사장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뉴스에 나올 정도다. 그만큼 이상한 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우물쭈물 답을 하지 못했다.

    “저와 제 기업을 지키기 위해서 10%의 변동 수치를 두고 최대 20%의 수익을 나누려고 하는 겁니다. 그럼 성공해도 사람들이 다른 기업으로 가지 않겠죠.”

    “그렇긴 합니다. 누가 직장인들한테 회사 매출 20%를 줍니까?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니며 영업해도 떨어지는 건 적습니다. 월급이죠.”

    자본주의는 노동의 가치보다 보유하고 있는 자본의 가치가 중요했다. 그것은 던전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10~15인의 공략 멤버를 구성하고 다양한 물품을 준비해야 한다. 수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순간이기에 많은 준비 단계를 요구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략 멤버 외에도 많은 이들이 힘을 써야 했다. 산박이 1레벨 시절 굳이 트럭 상인에게 큰돈을 쥐여준 까닭은 다른 게 아니었다. 3레벨 이상의 던전 공략을 내다보고 있기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미리 선점하고, 시간을 두어 파악하고, 사건이 일어나면 시험하여 그 모든 것을 알기 위함이었다.

    “3레벨 던전 준비는 어떻게, 잘되어 가고 있으십니까? 서 팀장 말대로면 곧 한다고 하셨는데…….”

    “예. 세종시에서 유통업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래로 직원도 여럿 두고 있어서 부탁하면 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요한 물품을 달라고 하면 가져오면 되는 일입니다.”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3일 뒤에 인감도장을 찍었다. 똑같은 계약서 두 부에 인감을 곳곳에 찍고 한 부씩 나눠 가졌다.

    그들이 되돌아가고, 산박은 현재 전력을 점검했다.

    ‘이걸로 두 명 추가. 옥시모론 기업은 다섯 명.’

    인천 네크로맨서 세 명. 안심사 스님 네 명.

    ‘열두 명.’

    기존 계획보다 두 명이 더 늘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팀장,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냐.’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산박은 갈피를 못 잡았다.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선택할 수 없었다.

    지혜가 높으면 헛다리를 짚기도 쉽다. 현실이란 것은 개연성 하나 없는 세상이라, 무슨 일이든지 갑자기 벌어질 수 있었다. 그 모든 걸 파악해도 그 모든 걸 대비할 수는 없었다. 자원이 없기 때문이고, 비효율적이라서였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대처밖에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상대의 의도를 모르는 것이 컸다. 단순히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같이 죽어서 끝내겠다는 마음을 지닌 이시은의 목표를 산박이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외의 모든 정황을 파악했을 때 태산박이 할 수 있는 건 인원을 늘리는 것밖에 없었다. 네크로맨서나 마녀와 관련된 신과 얽힌 이시은이 모종의 음모를 꾸밀 확률은 제법 높았다.

    ‘이시은을 무력화시키거나 죽일 방법은 있다.’

    산박은 그녀와 싸워서 질 것 같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는 다른 걸 생각해야 했다.

    ‘날 보호할 수 있는 것.’

    뜻밖의 일에 대처 가능하며, 자신의 생존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던전이었다. 던전에 들어가면 외부와 단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현재 산박으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 쓸 돈이 없다.’

    대출금은 양산시에 땅을 사고 온실을 짓는 데 사용했다. 내년에 건설되어 양봉을 시작하면 수익은 여름이나 가을에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매달 들어오는 고정 수입으로는 한 방이 있는 방어 아이템은 구매하지 못한다.

    ‘지금 입고 있는 것도 감사해야 하지.’

    결국 산박이 향한 곳은 장 노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했다. 출혈을 감수해야 할 때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먹을 것을 움켜쥔 원숭이가 철창을 나가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게 산박은 자신이 움켜쥔 것을 놓을 수 있었다.

    ‘장 노인이 좋아하겠어.’

    와촌리에 줬던 양봉 사업이 사라졌다. 답답한 와중에 이렇게 다시 태산박이 찾아가는 것이니 기꺼워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 * *

    빡빡머리가 턱이 높은 계단을 올라갔다.

    ‘떵떵거릴수록 계단이 높다더니, 딱 그 짝이구나.’

    계단의 개수는 열다섯 개도 안 되었는데 턱이 높아서 힘들었다.

    입구에서 빡빡머리를 기다리고 있는 자가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장 노인이었다.

    “어르신이 왜 마중을 나오십니까.”

    “집에 남자가 없어.”

    “요즘 남녀 차별 하면 큰일 납니다.”

    그 말에 장 노인이 껄껄 웃었다.

    “내 손녀딸들이 이런 일을 하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일하는 것보다 노는 걸 더 좋아해.”

    “아, 그랬었죠. 결혼을 대단히 일찍 보내셨다고…….”

    “딸들이 일하기 싫으면 일할 남자라도 데려와야지. 안 그래?”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결국은 자기 하기 나름이었다. 다만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좋은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뒷담화 하듯이 이야기할 건 아니었다.

    절의 자본을 담당하는 도감 스님이며 법명을 쓰지 않는 스님인 최여발이 장 노인과 독대했다.

    “그래. 태 사장이 아무것도 안 줬다지?”

    “예. 그런데도 장 어르신께서 뒤를 봐주신다니, 실력만큼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뭐, 받기도 한다네. 아무래도 태 사장이 조금 오해한 듯해서 내가 자네를 불렀네. 태 사장에게 누구를 보낼 생각이었나?”

    “C급 세 명에 B급 하나를 보낼 생각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성의 표시를 너무 안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자네를 불렀지. 받게.”

    “헤헤……. 뭘 이런 걸 다…….”

    그가 봉투를 받아 들었다. 묵직한 것이 현금이 제법 들어가 있었다. 적어도 5천만 원은 되어 보였다.

    ‘뭘 이렇게 많이…….’

    그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종교만큼 돈 많이 버는 직업도 없었다. 대형 교회의 목사는 세습 왕권을 손에 쥔 것이나 다름없으며 연봉이 5억을 넘어선다. 그들을 향한 신앙은 주님이 아니라 목사에게 향하는 우상 숭배이며 그들의 기도는 주님을 닮으려는 것이 아니라 천국으로 향하는 티켓을 구하려는 악도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교회보다 학교를. 성당보다 병원을. 전교보다 봉사와 희생을. 그런 가치는 사라지고 오로지 돈과 권력 그리고 혐오를 통한 신앙심의 고취만 남아 있었다.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갈 것이며 믿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아도 천국에 갈 것이었다.

    곧 죽어도 주말 예배에 와서 헌금하는 건 당연한 진리였다. 해가 떨어져도 헌금함에 돈을 넣어야만 한다. 불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5천만 원을 쉽게 보지는 않는다.

    “너무 큰돈이 아닙니까? 단순히 일회성 의뢰에 받기에는 큽니다. 저는 지금도 장 어르신 덕분에 두 발 벋고 살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하시면 제가 대단히 불편합니다.”

    최여발이 봉투를 다시 밀었다. 약자가 주는 돈은 대가리 깨부수더라도 가져가는 게 그였지만 강자가 주는 돈은 받기가 두려웠다.

    “받게. 던전에서 그를 든든하게 받쳐 주라는 말일세.”

    이에 최여발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그 말씀은…….”

    “태 사장은 말이야. 지나쳐. 고삐가 없다고 해야 할까……. 너무 난 놈이지. 그래서 그에게 계속해서 잘해주고 싶어져.”

    “이것저것 해주다 보면 어느새 장 어르신께 의존하기 마련입니다. 제가 그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집 하나에 기둥 하나 있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장 노인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말이 아주 잘 통하는 놈이 바로 최여발이었다.

    “그렇지. 꾸준히 해주면 알게 모르게 내가 챙겨줌세.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 태 사장과 안심사가 서로 좋은 관계로 아주 끈끈한 관계가 되는 것일세.”

    완벽한 윈윈 관계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알게 모르게 안심사와 장 노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흑자를 보는 관계인데 그 관계를 무너뜨리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

    ‘사용하지 않을수록 훌륭한 견제 도구가 될 수 있지.’

    그를 보내고 장 노인은 태 사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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