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4화 (254/270)
  • 254화

    산박이 서충호의 능력 요약 표를 확인했다.

    직업 C.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림자 기사의 한계였다.

    신체 능력 A.

    전사로서의 능력은 일품이다. 그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초월 능력 D.

    그림자 기사는 그림자 주문을 사용할 수 있었고, 현재로서는 낮은 수치를 지니고 있었다. 지혜 수치가 낮아서였다.

    상황 판단력 A.

    말할 것도 없었다. 팀장까지 시켜서 던전 공략에 보내고 있었다. 낮을 수가 없었다.

    정신력 A.

    멘탈 또한 강하다. 남들은 PTSD 혹은 큰 트라우마에 휩싸일 것도 이른 시일 안에 떨치고 일어난다. 어지간한 부상에도 후유증이 적었다.

    팀워크 A.

    ‘이건 좀 의문이다.’

    그가 지켜본 충호는 문제를 억지로 외면하는 게 아니라 해결하려는 의욕을 보이는 자였다. 그런 자일수록 팀에 분란이 생기기 마련이다. 좋게 풀리면 단단한 팀이 되지만 안 좋게 풀릴 공산도 컸다. 그런데 A등급이라니…….

    ‘생각보다 던전 사용자들의 능력 기대치가 낮은 걸지도.’

    종합 등급은 B 등급이었다. 주문 사용자라 초월 능력에 대한 기준이 하나 추가되었는데 그게 하필 D 등급을 받아서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사장님.”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서충호가 물러가자 산박은 상세 표를 훑었다. 스마트폰으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충호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허수아비들을 뒤에 두고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표적 판을 무기로 공격하는 수비 태세에서도 충호는 표적에 대미지를 누적시킴과 동시에 허수아비들을 효과적으로 지켜냈다.

    ‘흠잡을 데가 없다.’

    아쉬운 건 그가 그림자 기사라는 점이었다. 남들이 무위와 기술을 터득할 때 그는 그림자 주문을 종종 획득한다. 성장세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꾸준히 키우면 된다.’

    2레벨 던전을 한 달에 두 번 공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무력의 차이는 좁아질 것이고 전사로서의 스펙도 잘 갖추게 될 터였다. 다만 새로운 레벨의 던전에 들어설 때마다 매번 그 전사로서의 성장 폭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습관도 있네.’

    전사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습관이었다. 우측에 대한 방어력은 높지만 좌측에 대한 방어력은 낮았는데, 그게 다른 사람을 지키는 데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 습관을 알고 있다면 접근전에 약한 이는 충호의 좌측에 두면 안 된다. 급박한 상황에 충호의 보호를 못 받을 수 있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는 소리다. 자신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왼편에 있는 사람은 그다음에 도와주는 셈이었다.

    또 뜻밖의 일이라면 체중 이동에 관한 것이었다.

    ‘필살의 일격을 자주 쓰지 않는다는 것도 주의할 만한 점이다.’

    적을 베고 찌르는 건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적을 향해서 깊게 체중을 때려 넣지는 않는다. 그건 곧 필살의 일격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한칼에 죽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안위를 살피고 아군을 지켜보는 걸 즐긴다.’

    시야각이 대단히 넓은 탓에 자신의 앞에 있는 적에게 적당한 상처를 줘서 기세를 꺾고 마무리를 하지 않은 채 다른 아군을 도와준다. 그런 방식을 많이 선호하는 것이 서충호였다.

    전투할 때는 다른 사람을 봐도 뒷모습밖에 못 본다.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반복재생을 하지도 못하기에 짧은 순간 보는 것에 불과해서 이것저것 다 파악할 수는 없었다.

    ‘공격력은 낮지만 전열의 전투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전열의 싸움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후방을 지키다 보면 결국 승리할 수 있었기에 굳이 적을 죽이기보다는 상처를 입히고 팔팔한 뒤의 놈을 막아서는 게 더 편하다.

    ‘본능적으로 이를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면 배운 걸까.’

    모를 일이었다. 거기까지 군사학적 지식이 많지 않은 게 산박이었다.

    서충호의 경우에는 전술을 공부하는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 2레벨에서는 전사도 능히 적을 쉽게 여럿 죽이고 또 연달아서 전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입는 피해에 비해 치료 주문이 효과적이고 여분의 치료수 등도 존재한다. 굳이 적을 질질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충호 또한 적을 죽이는 것에 집중했지만 그런 면모는 3레벨에 도달하면서부터 싹 사라진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레벨 던전에서 물량을 경험하면서 범위 공격 주문이 전사보다 월등히 쉽게 적을 죽일 수 있다는 걸 깊게 체감해서였다. 그 덕에 공격력을 줄이고 버티는 것으로 습관이 변했다.

    ‘가만히 둬도 훌륭해지는데, 이렇게 고마운 인력이 다 있나.’

    반드시 끝까지 데려가야 할 사람이라는 게 더욱 명확해졌다. 레이드 던전에서는 버티는 전사가 필요하지, 죽이는 전사는 필요치 않았다.

    그다음에는 이시은 차례였다. 그녀는 바로 서충호와 태산박의 능력치를 살폈다.

    “사장님은 신체 능력 표기가 안 되어 있네요?”

    “후방 직업이 신체 능력 측정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럼 저도 안 해도 되나요?”

    “하세요.”

    “아앙~! 사장님!”

    “하세요!”

    시은이 애교를 부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미 임자가 있는 산박이었다. 다른 여자에게는 일부러라도 차갑게 대해야 했다.

    결국 시은은 땀을 흘리면서 데이터를 쌓아 나갔다. 그 속에서 산박은 이상함을 느꼈다.

    ‘신체 능력을 일부러 속이고 있네.’

    책으로 쌓는 지능, 그와 별개로 현상을 보면 진리를 깨닫는 지혜가 높은 게 산박이었다. 그 눈썰미는 보통이 아니었고, 전투 상황에서 이시은의 접근전도 몇 번 봐서 눈에 익은 상태였다.

    산박 정도 되는 지혜로운 자가 봐야지 알 수 있었다. 혹은 관련 분야에 15년 이상을 종사한 이나 알아볼 수 있는 게 몸의 완급 조절이었다. 평범한 사람에게 복서의 잽은 빠르나 느리나 그냥 빠르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판단하는 건 매우 미묘했다. 그러나 산박은 단번에 알아봤다.

    “잘하시네요.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가 봐요?”

    산박이 땀을 낸 시은에게 수건을 건네며 물었다. 이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만큼 잘 나오는 날도 없을걸요.”

    그 말에 산박이 눈웃음을 지었다.

    “이거, 여기서 멈추고 다음 날로 미뤄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시은 씨가 너무 잘 나오면 다른 전방 직업들이 어떻겠어요?”

    “아, 진짜!”

    그녀가 기뻐하며 웃었다.

    이시은은 계속해서 테스트에 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산박은 서서히 경계심을 드러냈다.

    ‘뭐 하자는 거지?’

    이시은은 자신의 능력을 조금조금 빼먹고 있었다. 그건 옳지 않은 일이었지만 산박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목적을 모르겠다.’

    그녀가 능력을 숨기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였다. 지금 지적한다면 이시은은 그냥 변명하면 그만이었다. 증거가 없었다. 컨디션이 나쁘다고 대꾸하면 끝이었다. 산박은 그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지만, 반대로 이 팀장은 산박의 눈썰미가 대단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수면에 비친 송곳니를 보고 깜짝 놀라기보다는 그 너머를 보며 늑대를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 그 늑대를 볼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좋은 의도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산박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이시은은 자신을 잘 숨긴 상태였다. 결국 산박이 할 수 있는 건 경계심을 세우는 것에 불과했다. 그 이상으로 진전하지 못했다.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이시은의 요약 등급 표를 보며 잡담을 떠들고, 그녀도 던전 훈련소를 나섰다.

    산박은 아직 3레벨이 되지 않았지만 곧 3레벨이 될 자들도 굳이 불러 능력을 측정했다. 차근차근 옥시모론 기업 내의 던전 사용자들에 대한 데이터가 자리 잡혔다.

    이를 모두 확인한 산박은 2레벨 구간에 있는 이들을 새롭게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판단이 확 바뀐 던전 사용자는 김연정과 성보성이었다.

    ‘의외지. 김연정에 대한 판단을 내가 바꾸게 될 줄이야.’

    체력이 낮기에 계속 걷고 싸워야 하는 던전 사용자로서의 기본 스펙이 낮은 게 김연정이다. 특히 보급 물자를 짊어지는 것이 어렵다. 항상 김각두가 먼저 그녀의 분만큼 더 짊어진다. A급 성기사의 체력을 갉아먹는 기생충 같은 던전 사용자였다. 거기에 성별은 중요치 않았다. 남에게 자신의 보급을 넘기는 것으로 체력 손실이 명백하게 발생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태산박은 김연정을 판단할 때 ‘-’부터 달고 시작했다. 감점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의 평가는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르다.’

    확실히 달랐다. 데이터에서 보여주는 건 대부분 산박의 판단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다양한 지표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인공적인 상황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김연정의 특별함을 알 수 있었다.

    ‘김각두에게 주문을 부여하면 효능이 증가한다.’

    비과학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마법이었기에 가능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생각보다 더 깊었다. 데이터를 통해서 이를 마주한 산박은 김연정이야말로 김각두의 강력한 후방 인력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김각두의 전력을 높인다면 보급품 정도 대신 드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지.’

    소수의 엘리트는 한 나라를 이끌 수 있다. 김각두라는 엘리트는 던전 내에서 얼마든지 2인분을 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성보성. 공성 궁수라는 독특한 직업을 지니고 있었다.

    ‘궁수는 궁수. 지금까지는 별반 다를 바가 없었지.’

    공성(Siege)이라는 단어가 무색했던 게 성보성이었다. 그전까지는 제대로 된 핵심 기술과 주문을 가지지 못해서 효력을 못 냈었다.

    성보성은 자신의 모든 걸 데이터베이스에 다시 한번 재증명하면서 이번에 새롭게 산박의 눈에 들어온 케이스였다.

    ‘키울 만하다.’

    요약 등급으로 따지자면 직업 B(A)급이 나왔다. 상황에 따라서 A급 직업이 될 수 있었다. 공성 궁수는 일종의 공성 장비를 소환하는 직업이었다. 고레벨 던전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어 보였다.

    산박은 빠르게 스마트폰을 놀려서 명단을 작성했고,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갈등이 생기면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명단은 작성 이후에도 꾸준히 갱신될 것이었다.

    ‘레이드 기업이 되고 난 뒤에는 인적 자원을 관리하는 데 더욱 신경을 써야 하지.’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손을 대기 무서울 정도로 엉망진창으로 인원이 많아지기 전에 지금 작성하는 게 좋았다.

    * * *

    “아! 긴장돼서 미치겠다.”

    야성미가 넘쳐 보이는 근육과 덩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썹이 길고 굵은 남자가 손을 비볐다. 미남이라고 할 수는 없고 훈남 내지는 매력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남자였다. 개인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셈이다. 그래도 시선은 확실하게 받았다. 탄탄한 몸매 덕분이었다.

    “뭘 그렇게 쫄고 있어? 이미 여러 번 만나 봤잖아. 뭐가 걱정이야?”

    동생 용갑균이 틱틱거리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테이블에 두 잔 놓았다. 용걸섭이 곧바로 이를 가져갔다.

    “동생아, 넌 몰라.”

    “모르긴……. 딱딱 요구하는 것만 들어주면 천사가 따로 없다니까.”

    “내가 너한테 뭘 말하겠냐.”

    형인 용걸섭이 피식 웃었다. 대책 없는 놈이다. 그래서 보통 나쁜 일이나 평판이 안 좋아질 만한 행동을 하는 건 용갑균이 맡고 있기도 했다. 적성에 딱 맞는 건 아니었지만 감내할 만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2레벨 전담 팀이며 대한민국 2레벨 던전 하청 팀 중에서도 엘리트로 소문난 쌍둥이 팀이었다.

    “왔다.”

    꾸준히 밖을 보던 용걸섭이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 산박의 모습을 단번에 포착했다. 이에 스마트폰으로 3개월 전에 헤어진 여친과 저번 달에 사귄 여친과 번갈아 가며 문자를 나누던 용갑균이 스마트폰을 빠르게 조작했다.

    “엉. 잠깐만.”

    하던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것이었다. 그걸 용걸섭은 좋지 않은 눈으로 봤다.

    “하, 이 사타구니 곧추세울 줄밖에 모르는 새끼.”

    “형은 고자잖아.”

    “고자는 무슨. 난 플라토닉 러브, 엉?”

    “남자가 순정? 누가 좋아하냐고. 여자는 능숙한 남자를 좋아해. 걸레 같은 놈이 여자한테는 멋지게 보인다고.”

    “미친 새끼.”

    서로 연애에 대해서는 대척점에 존재했다.

    곧 통유리로 된 2층에 태산박이 도착하자 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그에게 묵례했다. 이에 태산박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건넸다. 그는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제는 고개 숙이는 것도 때에 따라서 조절할 만한 자리에 올라섰다.

    꽈악.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계약을 갑자기 바꾸고 싶다고 해서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아닙니다. 하하하!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럼요! 돈 주는 사람이 갑이죠.”

    “갑이라뇨. 그런 말씀 마십시오.”

    산박이 부드럽게 말하며 자리에 앉자 두 사람도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시작부터 아주 빠릿빠릿했다.

    “저… 근데 왜 갑자기 기존 계약을 바꾸시려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에 산박은 들고 온 서류 배낭에서 서류들을 꺼냈다. 꺼낸 서류에서 가장 크게 쓰인 글씨가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2레벨 전담 팀 보강 인력 장기 계약 및 포섭]

    당연히 두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길 주임이 다시 한번 던전에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산박은 그를 돕기 위해서 2레벨 전담 팀 보강에 대한 생각을 가졌고, 자연스럽게 용갑균과 용걸섭, 두 명의 쌍둥이 전사가 생각났다. 두 사람과의 장기 계약을 통해서 안전하게 옥시모론 기업의 2레벨 전담 팀을 능숙히 만들려고 했던 게 산박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산박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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