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3화 (253/270)
  • 253화

    * * *

    세종 공원에 있는 던전 훈련소는 입지가 제법 좋았다. 번화가에서 그리 멀지도 않았다. 도로 또한 잘 마련되어 있는 게 세종시였다. 계획도시의 장점이었다.

    “확인했습니다, 명예 회장님!”

    태산박의 직원증을 확인한 경비원이 냉큼 경례를 올렸다. 차가 들어가고, 검은 고급차도 우르르 몰려서 들어갔다. 그들 또한 방문증을 미리 소지하고 있었다. 유효 기간은 단 2일에 불과했다.

    바로 주차를 하고, 산박은 건물을 훑어보았다.

    ‘몰라볼 정도로 깨끗해졌다.’

    리모델링이 끝나서 외관조차도 새 건물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산책로 한 바퀴 돌아요.”

    산박과 서아가 손을 잡은 채 회사 주변을 돌았다. 간단히 건물 한 바퀴 도는 것이지만 꽃밭, 나무, 구불구불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벤치 또한 그 구불구불한 산책로에 제법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휴게실이 있지 않았나요?”

    “필요 없어서 뺐어요. 대신 밖으로 이렇게 산책로를 설치하고 벤치를 놓았죠. 일할 시간에는 일만 해야겠죠?”

    “그렇죠…….”

    “오해하지 마세요. 휴게실이 없는 건 아니에요. 밖에 정자를 놔뒀어요.”

    산책로의 퀄리티는 좋았다. 세 종류에 불과하지만 스트레칭을 하는 곳도 마련되어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가자 이미 경비한테서 소식을 들은 직원이 소리를 내질렀다.

    “어서 오십시오!”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냉큼 고개를 처박았다. 리모델링 전에는 실업 급여를 받도록 해주고, 그 이후에 그대로 다시 취직시켰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이 하늘만큼 높았다.

    “수고하세요.”

    간단하게 인사를 받아주며 송서아가 지나갔다. 산박도 가볍게 인사를 받아주고 서아와 함께 1층에 있는 직원 사무실로 향했다. 주인은 서아였지만 주인 행세는 산박이 하게 될 것이기에 자연스러웠다.

    원래 휴게실이 있던 자리는 휴게실을 무너뜨리고 사무실 공간을 더욱 넓힌 것은 물론이고 개방형 사무실로 바뀌어 있었다. 탁 트인 사무실은 시야를 넓게 해서 답답함이 없었다.

    “좋네요.”

    “나쁘지 않죠?”

    그녀만큼 경력 있는 젊은 여성도 없었다. 특히 자신의 가치를 내보이지 못했을 때 밑바닥부터 은행 일을 시작했던 게 그녀였다. 노동하는 시간보다 딴짓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칸막이가 있는 사무실 풍경은 가장 피해야 할 일이었다. 일하지 않고 월급을 받아먹기 바쁜 놈들을 가려내어 일의 능률을 올리는 건 관리직 종사자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직원이 느긋하면 기업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지.’

    뭐든지 해야 했다. 그리고 성과를 내야 한다. 수많은 걸 고민하고 더 높은 가치를 내보여야 했다. 그건 던전 훈련소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은 자신의 가치를 창출하고 생산을 바로 해야 했다. 성장하여 투자자에게 보답해야 했다. 최소한 고객에게라도 보답해야 했다.

    직원 입장에서는 화나고 힘든 일이지만, 남의 밑에서 돈 번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똑같은 장소, 다른 회사에 재취업한 직원들은 아직도 어수선해 보였다.

    “제가 대충 최신식 시스템을 도입해 놨어요. 지금은 사내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좀 어지러워 보일 수 있는데, 진정되면 볼만하실 거예요.”

    그녀가 거침없이 사무실을 걸어갔다. 몇 번 헤집어 놓았는지 그녀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빡빡한 관리자다운 모습이었다.

    “귀신 보듯이 보네요.”

    “귀신보다 더해야죠. 옥시모론 기업만 대여하는 게 아니니까요. 매출이 떨어지면 직원 내보내야 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때가 되면 어차피 똑같이 봐요.”

    송서아가 속삭였다. 회사에서의 관리는 직함이 더해지나 안 더해지나 그뿐인 관계에 불과했다. 그 이상을 원하지도 않았다.

    직원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도 회사에서 나가면 거기서 끝인 경우가 많았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 혹은 자신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 이상 직장 내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사그라들다가 이내 눈으로는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작아진다. 결국,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소원해지는 게 사람의 인연이었다.

    많은 CEO들이 기업을 반짝 성장시키고 큰돈 쥐고 곧바로 나 몰라라 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평범한 직장인도 이직하고 나면 볼 일이 잘 없어서 서먹서먹해진다. 회사에서 만들어진 관계가 깊게 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었다.

    그렇기에 송서아 또한 그들을 독하게 대하고 있었다. 던전 훈련소의 매출 유지는 생각하는 것만큼 어렵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프로젝트와 이벤트를 통해서 던전 사용자들이 찾아오게 하지 못한다면 직원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었다.

    “김응헌 님은 어딨어요?”

    서아의 말에 산박이 고개를 갸웃했다.

    “님이라뇨? 대단하신 분입니까?”

    “직급 파괴 현상은 요즘 대한민국 기업의 이슈죠. 부산 은행도 그렇게 하려고 검토 중이에요. 대기업이 하면 자연스럽게 그걸 저희도 차용하는 편이죠. 그는 ‘책임’이라는 직함을 받고 있어요. 외부 인력이죠.”

    “송서아 회장님! 죄송합니다. 갑자기 업무 전화가 와서요.”

    김응헌이 다급히 달려와서 고개를 급히 숙였다. 인사를 하고 나서 뒤늦게 풀어진 넥타이를 고쳐 맸다. 정치는 못해도 일은 잘할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이쪽은…….”

    송서아가 나서서 두 사람을 소개해 줬다. 그다음에 서로 굳게 악수를 했다.

    “김응헌 책임이라고 합니다. 외부 감사를 맡고 있습니다. 퇴직 준비 하는데 이런 자리에 불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부른 건 아닙니다.”

    “태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송 지점장님께서 나서셨겠습니까? 아니지요. 아, 사장이란다. 하하! 여기서는 태 명예 회장님이시지…요…….”

    그는 혼자서 웃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일은 잘해요. 높은 직급에 못 올라가서 나와야 했지만요. 애초에 부산 은행 직원도 아니라서 제가 크게 도와줄 수도 없었죠.”

    “아, 그래요? 이거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아닙니다. 늙어서 할 수 있는 거야 현상 유지뿐이지요.”

    그가 자신을 낮췄다. PR의 시대에 가장 어리석은 짓이었다. 왜 회사를 퇴사했어야 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시설을 둘러보시겠습니까?”

    “예.”

    그가 앞장섰다. 빠삭하게 모든 걸 파악하고 있는 외부 감사만큼 회사 직원에게 무서운 게 없었다.

    “책임 직함에 있는 사람은 몇 명입니까?”

    “넷요. 밑의 직원들은 재계약을 많이 했지만, 던전 훈련소는 사실 관리자가 많이 있을 이유가 없죠. 제 사람을 통해서 감사를 맡기고, 시설 유지 보수, 영업, 인사에 각각 한 명요.”

    대단히 적었다.

    “전에는 관리직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걸로 인건비도 많이 줄였어요. 밑에 사람 다섯은 잘라야 관리자 하나 자르는 거거든요.”

    예산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산박은 그 뒤로 만족스럽게 리모델링된 던전 훈련소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마지막까지 가지 않았다.

    “전화요?”

    “네. 그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요.”

    송한치 상무와의 전화 통화를 송서아가 권유했다. 그녀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요. 저는 제 위치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 위치에 오랫동안 있을 생각도 없어요.”

    산박은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서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조금 떨어진 곳으로 멀어져 갔고, 산박은 산책로를 걸어가며 전화를 걸었다.

    ‘오히려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솔직히 말해서 현재 산박은 서류로 본다면 화딱지가 나는 인간에 불과했다. 눈부시게 뛰어오르고 있지만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마땅찮다. 그런데도 서아의 가족들은 산박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었다.

    ‘그만큼 송서아가 가족 내에서 영향력이 크다는 소리다.’

    그녀 덕분에 부산 금융의 높은 곳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 오빠들이 서아를 보고 쩔쩔매고 있었다. 산박은 이 사실까지는 몰랐지만 막장으로 산박을 두들기지 않는 것만 봐도 대충 추측할 수 있었다.

    통화음은 길지 않았다.

    ―어, 일단 잠깐만! 이 대리가 연락해서 알아봐. 나머지 사람들은 그 회사 직접 찾아가서라도 알아봐! 식당이건 뭐건 제대로 알아보라고! 잠복이라도 해!

    ―예!

    송한치 상무는 일단 전화를 받아두고 명령을 내린 뒤에 상황을 정리하고 그제야 산박과의 통화를 진행했다.

    ―여보세요? 태 사장?

    “예.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상무님.”

    ―이렇게 예의가 바른 사람이 왜 이렇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일이 어찌 될지 알고 그러셨어요? 자주 봐야 할지도 모르는 사이잖아? 안 그래요?

    반말과 존대가 널뛰기를 했다. 그도 지금 간을 보고 있었다. 산박은 거기에 놀아나고 싶지는 않았다.

    “던전도 다녀야 하고 사업도 새로 시작하고 있어서 바빴습니다. 언제 한번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빌미를 제공해도 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름이 아니라 던전 훈련소를 얻으셨다고.

    송한치 상무가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남자답지 못한 괘씸한 놈을 처단하기 위해서 송곳니를 내비쳤다. 꼴사납게 여자로부터 비싼 것 하나 얻어먹은 놈을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대여했습니다. 명의도 제 것이 아니지요.”

    ―그럼 본인 위치도 잘 알겠네? 안 그래요?

    “예. 알고 있습니다.”

    산박은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행동으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 그래? 그럼 믿겠습니다.

    “예. 믿으십시오.”

    그 말에 이내 송한치가 싸늘하게 말했다.

    ―조용히 적당히 잘 대처하는 게 좋을 거야. 자신이 지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걸 항상 생각해야 할 거다. 지켜보고 있으니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서아를 믿고 태평한 것 같은데, 그게 언제까지 가는지 보자고.

    “서아 씨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잘하는데요. 항상 듣고 있습니다. 매년 가족 선물도 잊지 않고, 사이가 좋다고 들었습니다. 멀리 있는 미국에서도 가족 생일이면 꼭 돌아와서 함께한다고 하더군요.”

    ―잘 알고 있군.

    “그런 서아 씨를 저는 신뢰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 둬도 부끄럽지 않은 여성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제가 서아 씨를 믿고 있는 겁니다. 오히려 제가 태평하게 있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눈치를 본다면 서아 씨가 남자를 잘못 본 거죠. 근데 서아 씨 정도 되는 똑똑한 분이 남자를 잘못 보겠습니까?”

    스마트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송한치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래도 자네는 안 돼. 어쩔 수가 없어. 세상이 그래. 결혼은 끝이 아니야. 새로운 시작이야. 결혼하면 다 끝났다고 말하는 놈들은 부모한테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놈들이지. 현실은 언제나 가혹한 법이다. 그걸 잘 알고 있어야 할 거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끝까지 공손한 모습에 결국 송한치는 경고장을 날리고 물러서야 했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이놈은 진심이다. 진짜 동래 송가(家)에 들어올 생각을 하고 있다.’

    송서아의 데릴사위가 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처구니없었다. 한편으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이렇게 호탕한 놈을 본 적이 없어서였다.

    그렇다고 좋은 감정을 지니지는 못했다. 내 여동생이 배경 하나 듬직하지 못한 자와 결혼한다는 것이니까. 제한 없는 경쟁에서 이는 큰 부담이었다.

    * * *

    3일 뒤, 태산박은 서충호를 호출했다.

    “제가 첫 번째입니까?”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저고요. 이미 기록 다 해놓았습니다.”

    산박은 제대로 측정하지는 않았다. 오직 후방 직업으로서의 측정만 마쳤다. 후방 지원을 하는 드루이드의 면모만 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든 걸 공개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의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었고, 등록한 지표만으로도 3레벨 던전에서 활약할 수 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 더 많은 걸 보여줄 이유가 없었다.

    ‘사장이니까 틱틱거릴 놈도 없지.’

    “사장님 거도 볼 수 있습니까?”

    “측정 끝나고 보세요.”

    “예.”

    던전 사용자로서 서충호에 대한 모든 것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모든 데이터가 착실하게 수치로 변해갔다.

    “합! 핫! 합! 핫!”

    서충호가 기합을 내지르며 15m를 달렸다가 단번에 몸을 돌려서 다시 되돌아오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지칠 때까지 반복하면서 착실하게 데이터가 쌓여갔다. 종종 휴식을 하면서 설문지도 썼다.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몇 종류입니까? 사장님, 이게 필요합니까? 전 그렇게 많은 종류는 못 다루는데요.”

    “그대로 쓰세요. 그래도 장병기는 제법 점수가 높다더군요.”

    “아……. 장병기는 하나뿐인데…….”

    무기를 통한 다양한 자세에서의 파괴력도 측정했다. 필요하다면 모든 상황에서의 전투력을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림자 기사만이 지닌 그림자 마법 또한 사용했다. 썩 좋은 점수는 받지 못했다. 파괴력도 낮았고 자주 사용할 수 없었으며 오래 유지되지 않아서였다.

    검사는 검사 두 시간 휴식 한 시간의 루틴을 두 번 반복하여 총 여섯 시간에 걸쳐서 오래 지속되었다.

    결과표는 요약본으로 나왔다. 등급으로 표시되었다. 이를 서충호와 태산박 모두 한 장씩 들고 훑어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좋지 않아서 서충호가 앓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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