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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화 (252/270)

2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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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마취할 수 있는 강력한 극독. 인간이 던전에 들어서면서 가장 많이 연구된 분야가 바로 독에 대한 분야였다. 하지만 던전의 수준과 종류에 따라서 독은 제한되거나 효력이 낮아지고, 종종 그냥 증발하기도 했다.

그 덕에 레벨에 따른 독극물에 대한 정보는 던전 기업 내에서 높은 등급의 정보로 구분되어 있었다. 정보꾼들은 취급하지 않는 정보였는데, 걸리면 손모가지뿐만 아니라 그냥 목이 달아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독을 쓰려면 검증된 레벨 장비를 구매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시은에게 있어서 태산박을 죽이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독이었다.

‘리볼버 윈드 롱 소드’. 탄창 하나당 세 번 사용 가능하며 마력 증폭을 통한 바람 마법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는 물건이었다.

‘화염 텁 뭉게 가루’. 매캐한 독 연기를 내뿜고, 약간의 화상 대미지를 입게 한다. 보통은 대규모 상황에서 사용하지만 개인에게 사용하면 상대는 아무것도 못 할 공산이 컸다.

‘이 두 개만 해도 충분하지. 하지만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파훼되고 대처되었을 때 사용할 것이 필요했다. 그건 독일 수밖에 없었다.

이시은이 이토록 까다롭게 준비하는 까닭은 산박의 능력 때문이었다. 몇 번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도 살아갈 구멍이 존재했다. 이를 단단히 틀어막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했다.

그만큼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중시했고, 산박이 지금까지 보여준 면모를 머릿속에서 재생 가능했다. 수많은 전투를 경험하고 수많은 존재를 죽인 이시은이었기에…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맹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인천에 있는 인천 은행을 방문했다. 인천 네크로맨서가 인천의 수많은 것을 지배하게 되면서 금융 또한 만들어졌다. 적패 네크로맨서라는 직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인천 은행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가장 많은 대출이 가능했다.

“대출을 하려고요.”

“네, 고객님. 신분증을 볼 수 있을까요?”

싱긋 웃는 직원에게 시은이 적패와 자신의 주민 등록증을 건넸다. 이를 보자마자 시은은 곧바로 VIP실로 옮겨졌다. 직책이 높은 이가 시은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크게 대우해 줬다.

“포스코 타워의 네크로맨서 중 적패 네크로맨서를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별말씀을요. 그것보다는 제가 바빠서요. 최고 한도로 대출을 받고 싶은데요.”

“용도는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던전 사용자가 어디에 쓰겠어요?”

툭 내던지는 모습에 은행원이 크게 웃어 보였다.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이시은의 말투는 공격적이었다.

“적패 네크로맨서분이라면 10억까지 무이자로 대출할 수 있으십니다.”

“대단하네요. 무이자로요?”

“예. 10억 위로 1억씩 추가할 때마다 0.5%의 이자가 붙습니다.”

“예를 들면 15억을 빌리면 2.5%의 이자율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5억 대출할게요.”

“네. 바로 서류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은행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한 이시은은 곧바로 하나의 무기를 구입했다.

‘키메라 대거’.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한 무기였다. 사용 횟수는 단 한 번. 가격은 5억. 3레벨 던전을 쉽게 클리어할 수 있는 무기였지만 배보다 배꼽이 커서 잘 팔리지는 않는 상품이었다.

체력 수치를 높인 부자나 그 효능에 매료되어서 3레벨 던전을 공략할 때 사용하는 편이었다. 수천만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3레벨 던전 공략에서 5억짜리 물품이라는 게 웃겼지만 괴물 백정인 던전 사용자들을 아래로 두고 능력치만 깔짝 올리려는 부자는 많은 편이었다. 특히 정력과 체력 수치는 매우 유의미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대거의 길이는 30cm도 되지 않았다. 송곳처럼 찔러 박기 좋았고, 찔러야지만 독을 주입할 수 있었다. 3레벨 보스 몬스터도 골로 보내는 맹독이 깃들어 있었다. 과학과 신비가 합쳐져서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었다. 오직 3레벨에만 있는 독특한 무기이기도 했다.

‘사장님도 알고 있겠지.’

들키는 순간 경계심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들킬 염려는 없었다. 검신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다르게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뽑기 전에는 모른다.

만약에 만약. 만에 하나. 이를 위한 대책마저 이시은은 세웠다. 무려 5억짜리 대비책이다. 그것으로 태산박을 위한 이시은의 물품 구입은 끝났다.

‘남은 건 3레벨 던전 공략을 기다리며 네크로맨서 장비와 언데드 장비를 구매하는 것뿐.’

시은은 블랙 바 마녀 기술을 통해서 분에 넘치는 영향력과 돈을 손에 넣은 상태였다. 인천 네크로맨서는 블랙 바의 도입으로 ‘꽉 찬 두개골(Topfull Skull)’을 연구 및 성과를 낸 지 오래였으며 이는 곧 중위 언데드에게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시은은 그 덕에 인간의 시체를 포스코 타워로부터 지원받고 있었다. 그 시체의 두개골에 블랙 바를 집어넣으면 언데드는 보다 더 많은 그릇을 보유할 수 있었고 그 그릇에 더 많은 사령술을 부여할 수 있었다. 평범한 중위 언데드보다 더 강한 중위 언데드가 될 수 있었다. 자연히 언데드 장비에 돈을 많이 쓰게 되었다.

‘3레벨에 도달하면서 중위 언데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해당 레벨에 올라서면서 얻은 네크로맨서 기술과 사령술은 한 개씩.

‘블랙 좀비 가드 설치법(Black zombie Guard Installation)’, ‘백병전 부여(Hand-to-hand combat enchantment)’. 무기를 다루는 블랙 좀비 가드를 만드는 기술, 언데드에게 백병전 스킬을 부여하는 사령술. 둘 다 딱 떨어져서 나왔다.

‘운이 좋군.’

운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시은은 포스코 타워에서 지급받은 시체와 포스코 타워에 직접 돈을 주고 얻어낸 시체를 통해서 블랙 좀비 가드를 만들고 있었다. 바로 포스코 타워 11층에 있는 50평짜리 개인 작업실에서 제작하고 있었다.

‘‘꽉 찬 두개골’은 손쉽게 만들었어.’

두개골 속에 뇌와 함께 블랙 바가 꽉 들어차 있었다. 이것은 추가 그릇이 되어서 용이하게 쓰일 것이었다. 다양한 사령술을 입맛에 맞게 추가로 넣는 게 가능했다.

‘최대 15구의 시체를 한곳에 보름 이상 묵힌다. 한 달을 넘어서면 안 된다. 대기 온도는 30도를 넘어서면 안 되고, 지하 공간처럼 너무 서늘해도 안 된다. 보름이 되었을 때 늪처럼 되어 있으면 성공이다.’

무려 15구의 시체가 한곳에 뭉쳐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사각형의 투박한 구조물에 들어가 있는 시체는 피부가 녹아서 흐물거렸고 체액이 빠져나와서 늪처럼 되어 있었다. 완벽했다.

‘그다음… 냉동 혹은 갓 죽인 머리통을 투입한다.’

그곳에 시은이 준비해 뒀던 두개골을 던져 놓았다.

철퍽!

징그럽기 짝이 없는 소리가 났다. 그다음에 검은색의 쇠 지렛대를 다섯 개 집어넣었다. 쇠 지렛대에서 사령 마력이 슬슬슬 풀어 헤쳐지며 시체로 만들어진 늪이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이를 유심하게 보면서 시은은 때때로 작업을 마쳐둔 검은 가루를 준비했다. 늪이 어느 수준으로 떨어지고 뼈가 눈에 들어오자 시은은 준비해 놓았던 생가죽을 한 장씩 던졌다. 그 생가죽에는 뼈로 새겨진 온갖 사악한 저주와 사령술이 적혀 있었다. 종종 한국어도 있었는데, 중위 언데드가 말을 하게 하기 위한 장치 중의 하나였다.

자주 눈에 들어오던 뼈가 근육에 가려서 사라지자 시은은 조금 뒤에 가루를 뿌리기 시작했다. 흩뿌려지는 가루는 반짝반짝 빛을 내기도 했다. 동시에 썩은 내도 풍겼다.

이는 블랙 좀비 가드의 가장 큰 단점인 피부 탄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였다. 지금이 아니면 그 단점을 지울 수가 없었다. 피부가 생성되면서 그 피부에 가루가 뒤섞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살아있는 피부 가루’는 중위 언데드 제작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 중의 하나였다. 특히 무기를 다루는 언데드를 만든다면 필수적이나 다름없었다. 피부에 탄력이 없으면 상처를 자주 입고 뜯겨 나가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가루는 포스코 타워에서 구매할 수 있었으며 흑패 네크로맨서도 3레벨에 도달하면 구매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1g당 50만 원으로 굉장히 비싼 가루였다. 이를 족히 30g 넘게 투입했다. 1천5백만 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차피 3레벨 던전 공략으로 내 모든 게 결정된다.’

아낌없이 투자했다. 오로지 태산박을 죽인다는 목표를 위해서 미친 듯이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게 이시은이었다. 그 이후의 삶, 10년, 30년?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영영 죽일 수 없다.’

태 사장은 자신의 손을 빠르게 떠날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그가 날아올라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기 전에 그 날개를 꺾고 목을 비틀어 척추와 함께 뜯어내서 그 피를 얼굴에 묻히고 혀를 뻗어 핥아먹고 싶었다. 그게 이시은의 본심이었다. 그 외의 것은 지금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다음에 이시은은 독특한 집게를 집었다. 집게의 아랫부분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윗부분만 위아래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 집게의 끝은 팔이나 다리의 양쪽을 잡기 좋게 꺾여 두 종류의 집게가 존재했다.

‘피부가 생성되면 관절을 꾸준히 움직여 줘야 한다.’

그 과정의 기준은 오른쪽→왼쪽이며 다리→팔 순이었다. 표면적을 생각했을 때 그 표면적이 넓은 다리 관절이 더 빨리 굳기 때문이며 오른쪽이 왼쪽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은은 열심히 관절을 움직여 줬다. 이내 사각형의 시멘트 구덩이 구조물에 좀비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백색의 눈동자는 병에 걸린 것 같았고, 머리카락은 일절 없었다. 머리카락이 있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머리카락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럴듯해 보이는 중위 언데드라고 해도 죽은 것인 이상 대머리에 불과했다.

이시은은 해골학에 따라서 시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어어.”

놈이 소리를 내며 부릅떠져 있는 눈동자를 깜빡이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시은을 보며 고개를 조아렸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그래. 대머리니까 보기 싫네. 자, 가발이다.”

그녀가 대머리인 블랙 좀비 가드를 보며 혐오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가발을 던져줬다. 중위 언데드는 이를 손으로 잡아서 능숙하게 머리에 씌웠다. 이제야 제법 볼만했다.

“머릿속에 백병전 부여 사령술이 깃들어 있을 터다. 느껴져?”

“예. 지금이라도 당장 다섯을 상대로 백중세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나와서 준비한 복장을 입어라. 네 이름은 블랙이다.”

“예, 주인님.”

회백색의 눈동자가 이시은을 담았다. 그는 시멘트로 만든 사각형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와서 정해진 옷을 입었다. 이시은은 그에게 스프레이형 향수를 좌아악 뿌려주고 싸구려 남자 향수를 건네줬다.

“틈틈이 뿌려.”

“예, 주인님.”

검은색 슈트를 입은 블랙 좀비 가드는 선글라스까지 쓰자 그럴듯한 경호원으로 보였다.

“이거지.”

시은이 빙긋 웃었다. 부산 은행의 송서아를 미행할 때 본 경호원이 멋져서 내심 따라 하고 싶던 차였다.

‘앞으로 차근차근 강화하고 장비를 구입해야겠다.’

그럴듯한 3레벨 네크로맨서에게는 훌륭한 중위 언데드가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하위 언데드를 좋아하는 네크로맨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 * *

송한치 상무가 세종시로 향하려는 서아의 앞을 딱 가로막았다.

“셋째 오빠, 요즘 일이 많이 없어?”

“금융 종사자가 일이 없기는. 바빠서 죽지. 하는 만큼 들어오잖아.”

“근데 왜 자꾸 내 청춘사업에 태클을 걸어?”

“이상한 놈 만나니까 그렇지. 다른 오빠들 봐라! 아주 성화야, 성화!”

송서아가 지긋이 그를 노려보았다. 미녀가 노려보면 예쁘기만 하다. 한치는 자신의 막내 여동생의 볼을 꼬집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제 그녀도 성인. 어린애 취급 하면 발로 정강이를 걷어차인다. 진심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밖에서는 커리어 우먼인 자신이 집에서는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잘 생각해 보라니까. 부모님은 지금 허락하고 계시지만 가문 어르신들은? 어차피 안 된다니까.”

“데릴사위로 데려올 거야.”

“데릴사위도 실력이 있어야 하잖아? 서아야, 객관적으로 보면…….”

“오빠 입에서 무슨 객관적이라는 단어가 나와? 비켜!”

서아가 소리를 지르자 한치가 한 걸음 물러섰다. 귀여운 여동생 앞에서는 입도 뻥긋 못 하는 게 한치였다. 하지만 서둘러 여동생의 어깨를 잡았다.

“아~! 진짜!”

“그럼 전화 한 통화라도 하자. 그건 괜찮지? 안 그러면 진짜 쫓아가서 만날 거다.”

“…….”

한치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막는 것도 안 좋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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