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1화 (251/270)
  • 2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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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서아와 꾸준히 통화하고 일상 속에서도 메신저를 주고받은 산박은 세종 공원 던전 훈련소의 리모델링이 끝났음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빨리 끝났다고요? (깜짝 놀라며 땀을 뻘뻘 흘리고 눈이 커진 고양이 이모티콘)]

    [돈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죠. (자신감을 드러내는 강아지 이모티콘)]

    [수요일에 세종시에 갈 생각이에요. 금요일에 가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일정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했어요.]

    의미심장한 요일이었다. 당연히 이를 가족들이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에 대해 자신의 의도가 아님을 송서아가 언급했다. 산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요일에 올라오세요. 같이 맛집 가요. 제가 알아놓고 있을게요.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으세요?]

    [음……. 제가 다 잘 먹어서요. 너무 매운 것만 아니면 괜찮아요.]

    산박은 일을 하러 간다며 마지막으로 문자를 남겼고, 송서아 또한 일 힘내라고 애교 섞인 이모티콘을 전송시키고 스마트폰을 닫았다.

    ‘던전 훈련소를 통해서 팀원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면 더 확실하게 계획을 짤 수 있다.’

    개개인이 어느 정도 수준의 파괴력을 지녔는지, 지구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세세한 능력치로 환산할 수 있었다. 감각이 좋은 이를 선두에 세우는 것 또한 가능했다.

    ‘그게 존재하는 건 다분히 기업적인 이유 때문이다.’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선별에 있어서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했다. 그리고 던전 훈련소는 충분히 그 지표를 만들 수 있었다. 던전 사용자와 던전 사용자가 서로 물어뜯을 수 있었고, 기업이 충분히 근거를 들어서 던전 사용자를 협박하고 제어할 수 있었다.

    ‘보통은 4레벨 던전을 클리어한 기업이면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여겨지지.’

    그 정도 되면 파벌 싸움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기업의 덩치가 최소 100인이 넘어간다. 제법 큰 돈이 얽히면서 안팎으로 직원이 많아지는 순간을 맞이하며 혼란의 도가니가 이루어진다.

    사내 정치가 없을 수가 없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백 명이 모이면 그중 최소 스무 명은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걸 좋아한다. 80:20의 법칙은 어디에나 대충 적용 가능한 유용한 법칙이었다.

    ‘모든 건 예방이 중요한 법이다.’

    일어나기 전에 대처한다면 많은 자원을 아낄 수 있었다. 인간 백정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본 적이 있었던 태산박이다. 그 행위는 금방 그만뒀지만 거기서 배운 수많은 지혜는 아직도 그를 많이 도와주고 있었다.

    그 결론은 1931년에 모습을 드러낸 하인리히 법칙과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었다. 한 명은 지식을 통해서 얻은 진리였고 다른 한 명은 사람을 죽여서 이를 얻었다. 1:29:300의 법칙이 주는 교훈은 항상 사소한 것이 큰 재해를 일으킨다는 점이었다. 초기에 바짝 긴장하는 건 대단히 중요했다.

    지금도 같았다. 사장인 산박의 입장에서 팩트로 한 대 정도 팰 수 있는 수단이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던전 사용자들을 압박할 수 있었다. 작은 한마디, 잽처럼 툭툭 치는 견제만 해도 상대는 위축될 것이고, 훅처럼 녹다운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의사 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근거로도 쓸 수 있었다.

    ‘그게 내 손으로 들어온다.’

    송서아가 지닌 재력으로 구매를 비롯해서 리모델링까지 이행했다. 지분은 산박이 가져갈 수 없었다. 송서아는 그걸 그대로 줄 정도로 비이성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건 아니다.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며, 언제든지 틀어질 수 있어서였다.

    그저 서아가 가진 던전 훈련소를 옥시모론 기업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빌려 쓰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산박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이라 여겼다.

    생각보다 그녀는 워커홀릭이었고, 산박 또한 일에 미쳐 사는 남자였다. 주말 연애를 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행복해했고, 각자에게 더 나아가야 할 꿈이 있었기에 평일에는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서로 비슷했기에 두 사람은 싸움조차도 한번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녀와 헤어질 상황은 오지 않는다.’

    신중한 것이 양반 가문이다. 최소 3년 연애 이후에 약혼을 하고 그다음에 또 몇 년을 보내다가 결혼을 하게 될 것이었다. 사람은 오래 있어 봐도 그 속을 알 수 없었지만 충분히 긴 시간은 사람을 파악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충분한 조사도 이루어지겠지.’

    그 구간을 버텨내는 데 필요한 건 깨끗함이었다. 그리고 태산박은 깨끗한 인간으로 사회에 등록되어 있었다. ‘신부님’이 모든 걸 자신의 죄로 삼고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 희생은 수백의 인간을 도륙한 태산박이라는 비틀어진 청부 암살자의 감성마저 송두리째 바꿀 정도로 위대한 희생이었다. 쩍쩍 갈라진 사막에 뿌려지는 봄비처럼 산박은 그 희생으로부터 수많은 상처를 회복하고 후회를 강력한 열정으로 바꿀 수 있었다.

    ‘깨끗함 말고 또 필요한 게 있지.’

    그럴듯한 직업이며, 특출난 모습이 필요했다.

    ‘동래 송가(家)의 데릴사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결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며, 가문과 가문의 교집합이었다. 그 한 부분이 없는 태산박에게 필요한 건 개인으로서의 가치였다.

    ‘그것도 한 가문과 동등하며, 자신들의 가문을 드높이 세울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레이드 던전 기업은 충분히 동래 가문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특출난 가치였다. 부산은 이제야 던전 경제에 서서히 발을 들이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양반 가문이 천박한 백정 경제에 쉽게 손을 뻗을 수는 없었을 터다. 허나 현실은 냉혹한 것이라, 경쟁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곳에 발을 들이밀어야 했다.

    태산박은 그 선봉장이 되기에 충분했다. 송가의 가문명도 쓰지 않았기에 표면적으로라도 동래 가문이 괴물 피로 먹고사는 백정 놈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 수 있었다.

    동시에 법적으로 가족이 된다. 산박을 흔들 가문은 존재하지도 않았기에 동래 가문으로서는 입지가 좋고 볕도 잘 내려오는 땅을 얻은 셈이었다. 산박에게 이득이고 동래 가문에게도 이득이다. 서아와의 관계 또한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 생각을 순식간에 마친 산박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산박은 지금 오두막에 있었는데 거실에는 테이블이 있었고 그 위에는 온갖 장비가 펼쳐져 있었다. 장비를 손질하며 송서아와 대화를 한 것.

    그중에 장비 하나를 산박이 들어 올렸다. ‘그림자 털가죽 얇은 조끼’였다.

    ‘은신에 도움을 주는 장비.’

    방호력 또한 제법 있었다. 다만, 산박은 그 장비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처단자는 볼 수 있었고, 나에게 아무런 효력을 주지 못했지.’

    그건 대단히 의미심장한 현상이었다. 그 때문에 산박은 이 얇은 조끼를 거의 상시 입고 다니는 중이었다.

    열린 목함에서 산박이 새로운 3레벨 장비를 들어 올렸다. 틈틈이 모은 돈으로 구매한 것이었다. 다양한 목적을 지닌 통장 중에는 자신의 장비를 구매하기 위한 돈을 모으는 통장도 존재했다. 귀찮은 일이었지만 명확한 소비를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었다.

    ‘별빛 체인 목걸이’. 별 형태의 체인이 계속해서 서로 엮이면서 만들어진 단순한 은목걸이였다. 효과는 당연히 별과 관련된 주문을 크게 보완해 주는 것이었다. 그저 보조적인 3레벨 던전 아이템이었기에 값이 싼 것이 특징이었다.

    ‘실험적인 물건이지.’

    정식 명칭은 Starlight chain necklace - Alpha test model.KR이다. 개발 중에 구매층이 적다는 것을 이유로 양산화에 실패, 이런저런 소규모 가게에 싼값에 들어간 장신구였다. 목함에 보관되어서 상태가 좋은 것을 발품 팔아서 싸게 구매했다. 현재 산박에게는 제법 중요한 물건이었다.

    산박은 이를 손에 쥐고 빛에 가져다 댔다. 별의 모양을 한 체인은 형광등 빛을 투명하게 투과시켰다. 신기한 놈이었다. 산박은 목걸이를 다시 목함에 담고 이를 챙겼다. 나머지 장비도 정리했다.

    현대는 치안이 좋은 시대였기에 굳이 모든 걸 착용하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 편의성이 안 좋은 것들뿐이었다. 심지어 신축성이 좋은 ‘빅 오버슈트’조차도 장시간 입고 있으면 불편함이 생겼다. 타이트한 감각 때문에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고무로 만든 옷과 비슷한 기분을 주니까.’

    산박은 오두막을 나와서 개인 낚시터를 빠져나와 렌터카를 탔다. 그 목적지의 끝은 김각두와 김연정이 사는 집이었다.

    벨을 누르자, 곧 안에 있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세요…….”

    두 사람 모두 나와서 그를 맞이해 줬다.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해서 서둘러 왔습니다.”

    “예.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산박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술판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도수가 낮은 맥주뿐이었다. 김연정이 마실 건 생수뿐이었다.

    “회를 시켰습니까?”

    “예. 귀한 손님이 오시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 산박이 크게 죄송해했다.

    “이런 거 안 하셔도 됩니다. 좋은 거 먹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하하하. 그렇게 화를 내시니까 제가 무슨 엄청 비싼 걸 사 온 것 같습니다. 그냥 흔하디흔한 광어회입니다.”

    “어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혈세 믿고 시세 지키려고 닥치는 대로 폐사시키는 게 광어 아닙니까.”

    폐사하면 70~80%를 그대로 혈세로 보상받는다. 어부들이 쥐고 있는 단단한 철 밥통이었다. 회는 비싸게 팔고, 폐사시키는 양식 광어의 양은 매년 증가하고 있었다.

    이를 모르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법이 황당한 곳에서 악용되고 있는 걸 전혀 몰랐다. 이런저런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는 산박도 최근에 안 것이었다.

    “그런 건 처음 듣습니다만…….”

    “그야 연막을 하나 깔았으니까요.”

    제법 안주 맛이 당기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산박이 시작했다.

    “어민들 힘든 거 누가 모릅니까? 양식 수산물 재해 보험에 뛰어드는 민간 보험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험사라는 것들은 손해 보는 싸움은 안 합니다. 계산 다 보고 들어오고 가입시킵니다.”

    산박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 처지에서는 이득이 안 되는 싸움판인데 들어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정 지분을 국가가 부담합니다. 그 국가 부담률이 50%까지 치솟았습니다.”

    “근데 그건 어부한테 주는 돈 아닙니까?”

    “그럼 민간 보험사가 안 들어오겠지요? 거기에 대한 지원금도 존재합니다. 지금은 몇 할인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3할은 넘을 겁니다.”

    “아!”

    그제야 김각두와 김연정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 바퀴 돌려 가는 것뿐임에도 기가 막힌 노다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국가가 50% 대주는 보험에 가입 못 하는 병신도 없고, 광어값 내려가게 내버려 두는 어부도 없습니다. 남은 건 돈 잔치입니다.”

    “그럼 양식장 운영하는 사람들과 보험사가 한통속이라는 말입니까?”

    “1만 마리에 1억. 보통 제대로 양식하는 곳은 10만 마리는 키웁니다. 보험사 부담은 쇼부 치면 그만이죠. 보험사 입장에서도 나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면서 산박이 입을 놀렸다.

    “4월이 되면 수온이 딱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폐사시키기 딱 좋은 날입니다.”

    꿀꺽.

    좋은 뜻에서 만들어진 것을 악용해서 오는 이득이 상당했다.

    “10만 마리 폐사시키면 3억에 달하는 혈세를 뜯어먹을 수 있겠네요. 보험사와 나눠 먹으면 1.5억. 다른 양식장과 경쟁하는 것보다 더 이득이죠. 뭐, 관련자한테도 성의 표시는 해야 하니까… 실제로는 1억 정도 가져갈 겁니다.”

    지역 카르텔은 내부 고발자를 직위 해임 시킬 수 있고 고발당한 이는 그저 감봉에 처할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중앙 정부의 돈을 타 먹는 건 용돈 놀이였다.

    산박이 그런 걸 알고도 악용하지 않는 건 그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신부님이 죽고 나서 새로 태어났음을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산박이 젓가락으로 광어회를 초장에 찍어서 입에 가져갔다. 광어가 지닌 감칠맛의 향연이 그의 입을 기쁘게 만들었다.

    “맛있네요. 광어값 내려갈까 봐 폐사시키기엔 너무 아까운 식재료 아닙니까? 어서 드세요.”

    “아, 예!”

    맥주와 회는 썩 좋은 궁합은 아니었으나 산박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김각두는 술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공처가니까.

    맥주를 한 병 비우고 근황을 묻고, 맥주를 한 병 또 비우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 두 명 모두 똑같은 스킬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사장님이 생각나서요.”

    “무슨 스킬입니까?”

    “아실지는 모르겠는데, ‘쌍둥이 성별의 비호’입니다.”

    이에 산박이 즉답했다.

    “잘 알죠. 대상자가 자신을 포함해서 두 명뿐인 제한적인 신성 보호 아닙니까.”

    “네. 근데 저희 두 명 모두 똑같은 스킬을 얻어서요. 그렇게 하면 하나가 비죠.”

    “그걸 저한테 부여하겠다는 말씀입니까?”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똑같은 스킬이지만 약간 차이가 존재했다. 둘의 직업이 달라서였다. 김각두가 먼저 말했다.

    “저에게서 스킬의 효력을 받으시면 근력과 체력 수치가 1씩 상승합니다.”

    “제가 모르는 사실이네요.”

    “신의 선택을 받은 성기사라, 똑같은 스킬이지만 다른 사람은 이 정도로 큰 보정은 받지 못합니다.”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김연정에게로 향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지능과 지혜를 올려줘요.”

    이에 산박이 즉답했다.

    “연정 씨의 비호를 받겠습니다. 김각두 씨가 더 강해지려면 근력과 체력 증가는 양보해야지요.”

    “사장님…….”

    “또! 연정 씨 또한 체력 수치가 현재 가장 중요하니까요.”

    이에 두 사람 모두 감사를 표했다. 그들 또한 내심 체력 수치를 주는 김각두의 비호를 원해서였다. 덕분에 산박은 그들에게 감사 표현을 받고, 실익도 얻어냈다.

    ‘운이 좋군.’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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