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9화 (249/270)
  • 249화

    “그렇게 크게 생각하고 계시는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노력할 걸 그랬습니다.”

    “제가 왜 길 주임을 던전 기업 사무실에 앉혔겠습니까.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꾸하며 산박이 다시 한번 그에게 권유했다.

    “같이 3레벨 던전에 갈 생각은 없습니까?”

    길강합은 믿을 만했다. 옥시모론 기업의 사무직으로 커리어를 쌓으며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실수는 있어도 태도 자체가 올바르다. 뒤통수 안 치는 인재는 중요했다. 돈을 굴리다 보면 사기를 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였다.

    ‘그는 원년 멤버이기도 하지.’

    시간을 두고 그 심성을 확인했기에 산박의 권유는 끈질겼다. 그가 두 번, 세 번 권유하는 건 보기 힘든 일이다. 1레벨 던전 시절에는 저체중이라서 B급이었지만 지금은 살도 찌고, 직업도 원래 A급 직업인 ‘전사’였다.

    “죄송합니다. 저 나름대로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2레벨 전담 팀장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아쉽습니다…….”

    산박은 쓴맛마저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충호와 길탕만을 비교하면 아무래도 한쪽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길강합은 조금 후달릴 수는 있어도 모양새는 같이 따라갈 수 있었다.

    ‘서충호는 직업에 하자가 있고 길강합은 직업에 이점이 있으니까.’

    서로 다르기에 객관적인 판단은 내릴 수 없다. 그렇기에 둘 다 비슷하다 평가받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전방 직업 파벌 속에 또 하나의 분란이 일어날 수 있었고, 이는 사장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보통 평범한 기업과는 다르게 하나하나가 평가의 기준이며 성과 또한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이 던전 공략이었다. 얼마나 많은 적을 죽였냐부터 시작해서 팀원에게 어떤 리더로 보이는지도 극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전투를 앞에 두고 아군의 버러지 같은 부사관을 총살하는 건 베테랑 병사의 소양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전투를 이행하는 던전 공략에서 개개인의 실력은 여실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매번 위기를 겪는 회사인 셈이다. 그리고 위기는 기회가 된다. 그 기회는 사장인 산박조차도 까다롭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저 방관한다면 서충호는 베테랑 인력을 데리고 따로 회사를 차릴지도 몰랐다.

    ‘의리? 우습다.’

    예를 들어 매달 3백만 원씩 버는 인재가 매달 백만 원밖에 못 받는다면 딴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사람 한 명 살려 놨다고 그 사람의 남은 인생 30년 달라는 미친 개소리를 하는 놈은 없길 바란다.

    산박에게도 충호에게도 모두 개인의 삶과 꿈이 있다. 그 속에서 서로 협력하고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인연의 고리는 끊어질 수 없다고, 아주 끈끈하다고 말해지지만 보이지 않는 그 끈은 쉽게 사라질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만나는 이들이 반토막 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그마저도 노력하지 않으면 솜사탕 물웅덩이에 녹듯이 사라진다.

    ‘서충호를 붙잡으면서도 내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게 길강합의 3레벨 던전 공략 투입이었다. 하지만 그걸 하지 않는다니… 너무나도 아쉬웠다.

    “너무 실망하시는 것 아닙니까? 전 격려를 받을 줄 알았는데요. 2레벨 전담 팀장에 설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부족한 사람들뿐이죠. 서 팀장은 그릇이 크고요. 하지만 그건 길 주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충분히 3레벨 던전 사용자는 물론이고 나중에 저희 회사의 중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 전까지만 2레벨 전담 팀을 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사무실에서 관리직이 되고 싶네요.”

    마음의 변화가 보이는 말이었다. 던전 사용자에서 전직하여 옥시모론 기업의 사무실에서 대장 노릇을 했던 그에게는 주임 자리가 제법 매력적이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지.’

    그 훗날을 논하는 길강합의 의도는 뻔했다. 현장에서 구르던 던전 사용자가 관리직에 등용된다면 사무실과 실무진 사이에 윤활유를 듬뿍 칠할 수 있었다.

    “많이 생각하신 것 같네요.”

    산박이 웃었다. 이에 길강합 주임도 웃었다.

    “끝입니까?”

    그 말에 산박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단 하나, 꼭 해야 할 질문이 남아 있었다.

    “왜 던전으로 돌아가려고 하십니까? 2레벨 전담 팀이나 사무실 주임이나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오히려 사무실 쪽이 더 좋았다. 이에 길강합이 진지하게 말했다.

    “주임 생활 하면서 고민 많이 했습니다. 1레벨 던전 공략한 사람보다는 2레벨 전담 팀장이 더 커리어가 좋지 않겠습니까.”

    그럴듯했다.

    “무엇보다 지금 하시는 것을 보면 2레벨 공략 팀이 붕 뜨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길 주임은 의미심장한 부분을 쿡 찔렀다. 여기에 대해서 산박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제법 진실을 알려줬다.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까지 숨길 만한 건 아니었다.

    ‘곧바로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노력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게 정당한 대가였다. 시간을 쏟아부어서 산박의 의심을 어느 정도 확신으로 만들 근거를 내뱉어야 산박으로부터 답을 들을 수 있다. 보통 상황에서는 그러했다.

    그리고 길 주임은 사무실에서 산박의 심부름을 제법 했다. 그런 눈치도 없으면 진작에 1레벨 전담 팀으로 내려가든가, 사무실에 다른 실무진이 한두 명 더 들어왔을 것이다.

    “보통은 1년은 더 준비하고 3레벨 던전을 공략했을 겁니다. 아닙니까?”

    “맞습니다. 제법 조사를 하셨군요.”

    “저레벨 던전에서 레이드 던전을 공략하는 건 모든 던전 기업의 꿈 아닙니까.”

    1, 2레벨의 저레벨 던전에서 그치지 않고 3레벨 레이드 던전을 공략하는 던전 기업이 된다는 것은 X소기업에서 중견 기업이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그렇기에 어려운 일이었고, 준비가 필요했다.

    “…굳이 급하게 하시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기회를 저 또한 잡으려고 합니다.”

    2레벨 구간에서 제대로 된 정리를 하지 않고 바로 3레벨로 뛰어드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 길강합이 2레벨 전담 팀장으로 가기를 원했다. 산박은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때’를 기다린 자는 손쉽게 그 목표를 달성하기 마련이었다.

    “좋습니다. 다만 이유는 이대로 간다면 옥시모론 기업은 분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제 욕심 때문은 아닙니다.”

    “예?”

    그 말에 길강합이 깜짝 놀랐다. 이에 산박이 짐짓 진지한 분위기로 입을 뗐다.

    “2레벨 던전 때, 모든 이들이 하청을 씁니다. 하청 팀에서 사람 여럿 죽어 나가지요. 근데 그와 반대로 제대로 팀을 꾸려서 최소한의 하청 팀만 사용하는 곳이 있다면, 짜증 나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아…….”

    오퍼 팀은 소수. 하청 팀은 다수. 그게 전 세계적인 2레벨 던전 공략 방식이다. 2레벨 던전 콘셉트는 ‘물량’이다. 물량을 상대하다 보면 사람이 죽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던전 사용자라고 해도 초인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보다 강할 뿐이다. 그렇기에 하청 방식이 대두되었다. 그게 아니면 방법이 없어서였다.

    “자본주의 방식대로 하면 방법이 없는 게 맞습니다. 저희 회사의 던전 아이템 지급 수량은 평균보다 두 배 수준입니다.”

    소비 아이템을 때려 박아서 클리어하는 수준이었다. 수익은 나지만 회사가 가져가는 돈은 적었다. 그래서야 기업을 운영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산박의 목표는 기업 활동을 통한 소득 창출이 아니었다.

    ‘도시 하나를 지배할 수 있는 영향력 확보.’

    공장 하나가 들어서면 소도시 하나가 크게 부흥한다. 산박은 그것을 원했다. 그 속에서 자신과 같은 어린 시절을 겪는 이들이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대단치 않은 꿈이었다. 싸늘한 가을밤, 그 거칠고 싸늘한 바람의 손길 속에서 두꺼운 외투를 덮어주는 사회 시스템이 있기를 원했다. 시스템이 아니라 신부님에게 주워진 산박은 굶주림 속에서 살아갔다. 그렇기에 산박은 오직 그거 하나만을 원했다.

    ‘성인군자도 5일을 굶으면 남의 담장을 넘는다. 이는 반대로 먹고살 만하면 남의 담장을 넘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실로 그러했다. 직접 겪어 봤기에 더더욱 잘 알았다. 배고파서 사람의 배를 가르는 인간 백정이 된 것이 태산박과 신부님이니까.

    “어찌 되었건 2레벨 던전을 공략하면서 알게 모르게 찍힌 게 있습니다. 그래서 3레벨로 빠르게 도약해야 합니다. 거기까지만 도달하면 대우가 달라지는 거, 길 주임이라면 알 겁니다.”

    “잘 알지요.”

    그전까지 던전 사용자의 손에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이 떨어졌다면 레이드 던전은 수천만 원이다. 거기에 도달하기만 하면 그럴듯한 던전 기업 대우를 받는다. 던전 경제의 첨병이다.

    물론 이는 표면적 이유에 불과했다. 경쟁이 불러일으키는 위기감이 길강합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레이드 던전을 공략한 던전 기업이 가지는 위상이 길 주임의 귀를 감쌌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동래 가문 때문이다.’

    송서아의 오빠들이 슬금슬금 마수를 뻗고 있었다.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 만남을 회피한다면 실력 행사를 해올 것이다. 그 전에 성과를 내야 했다. 단기간 내에 3레벨 던전을 클리어해 낸다면 그들도 산박을 가볍게 보지는 못할 터였다.

    “또 서 팀장한테 말씀을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던전 훈련소 때문입니다. 벌써 뒷배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 힘을 가져야 옥시모론이 옥시모론다울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길강합 주임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깡패가 와서 돌주먹 휘두르면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거기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려면 던전 레이드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얻어야 했다.

    “내일부터라도 1레벨 전담 팀에 속해서 레벨 업을 위해서 빠르게 달리십시오. 매주궤 팀장에게는 제가 따로 말해 놓겠습니다.”

    “예.”

    길강합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태산박은 더는 길탕만을 설득할 이유가 사라졌기에 그와 만나는 걸 그만뒀다. 그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실력과 꿈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걸 아는 건 매우 기분 나쁜 일이었으니까.

    ‘다만, 이대로는 3레벨 던전 사용자 열 명을 모으지도 못한다.’

    이제 고작 세 명이었다. 일곱 명을 더 모아야 했다. 까마득하다고 여겨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이시은 팀장에게 연락을 했다.

    ‘원래는 안 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인천 네크로맨서를 끌어들인다.’

    길강합이 2레벨 전담 팀장이 된다. 그가 2레벨에 올라서면 곧바로 현재 2레벨인 팀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곳에서 3레벨이 될 사람은 3레벨이 되겠지만, 그 기간은 개인차가 심했다.

    적패 네크로맨서 이시은은 적패 중 다크호스라 불리고 있었다. 그녀는 남들과 전혀 다른 곳에서 끈질긴 생각을 해야 하는 살인 행위를 여럿 되풀이했기에 남다른 지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곧, 결과를 내기 좋았다.

    “필요할 때만 부르신다니까, 우리 사장님은.”

    통화를 끊은 이시은이 붉게 칠한 손톱으로 입술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녀는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일하는 것이기에 세종시에 있는 임대 사무실에 들어섰다. 경리가 커피를 타 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시은은 이를 양손으로 잡고 후후 분 후 한 모금 마셨다.

    “그냥 인스턴트커피네요. 너무 달아요.”

    “일하는 곳인데 달아야죠.”

    산박 또한 커피를 홀짝였다.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말에 시은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끌지 않는 게 좋아.’

    그를 방심하게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모든 일이 척척 해결되어야 했다. 거기에 3레벨 레이드 던전에 네크로맨서가 들어가는 건 시은에게 좋은 일이었다. 네크로맨서만큼 쉽게 죽일 수 있는 후방 직업도 없었다.

    ‘배신에 약한 게 네크로맨서야.’

    후방이기에 방심하고, 자신을 지키는 언데드가 있기에 안일하고, 사령술은 방어에 특화된 것이 잘 없었다. 기습 방지 사령술은 극히 드물고 딱히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던전 공략은 고레벨로 올라갈수록 분업화되기 때문이다.

    그 철저함 속에 필요한 건 방어가 아니라 공격이었다. 웬만한 건 전방 직업과 아이템을 통해서 막을 수 있었다. 당장 이시은만 해도 2레벨 던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건 아이템이지 사령술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현대는 던전 사용자들의 행동 패턴과 던전에서의 괴물에 대한 대응 절차도 확실하게 바꾸었다.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처리하는 것보다는 장비와 아이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소비가 촉진되어야 돈이 벌리고 경제가 살아나기 때문에 장비와 아이템 광고에는 엄청난 자본력이 투자되는 반면 자신의 직업에 대한 고찰, 스킬에 대한 연구와 노하우는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심지어 던전 훈련소에서 데이터화되는 것조차도 팀별 수준에 그치고, 기업 수준으로 자본이 투입되지는 않았다.

    게임에서는 레벨이 중요하다면 현실에서는 장비와 아이템이 더 중요했다. 직업은 고정된 것이지만 장비와 아이템은 돈으로 얼마든지 변동성을 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 3레벨 던전은 장비와 아이템 소지의 수량 제한이 풀린다. 3레벨 이하의 장비와 아이템을 가지는 건 여전하지만, 몇 개를 가져가든지 상관없었다.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시대지.’

    그런 구도를 왜 만든 것인지는 모른다. 이시은은 거기에 대해서 몰랐다. 산박처럼 챔피언으로 권유받지 못해서였다. 반면 산박은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었다.

    ‘이득이 있으니까.’

    확실한 건 던전을 만든 신들이나 그 던전으로 향하는 세계나 모두 이득을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제안은 당연히 받아들여야죠. 말씀만 하세요. 몇 명이나 필요하세요?”

    “세 명입니다.”

    그 말에 시은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세 명 말씀이신가요? 10인으로 가실 생각은 아니시죠?”

    “10인으로 갈 겁니다. 소비 아이템을 많이 들고요.”

    그 말에 이시은은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