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8화 (248/270)

248화

서충호의 회식은 기폭제나 다름없었다. 고작 옥시모론 던전 기업의 세 번째 3레벨 던전 사용자가 탄생한 것뿐이라 해도 그것이 3레벨 던전 공략의 물꼬를 튼 것은 틀림없었다. 이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는 건 산박이 응당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나중에 가서 한다면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고민할 것은 ‘2레벨 전담 팀’에 대한 것이었다. 전담 팀장의 부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자신은 물론이고, 이시은과 서충호 또한 끝없이 성장하고 싶어 한다.

‘굉려는 2레벨 전담 팀장으로 남고 싶어 하지만 장 노인 때문에 그럴 수 없지.’

만약 장굉려의 대체자가 온다면 장굉려는 2레벨 전담 팀에 남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장 노인은 나에게 뭔가를 건네야 한다.’

연기 가문의 인원이 옥시모론 기업에 한 명 더 들어오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공무원 가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던전 사용자는 백정이나 다름없다. 고기를 도축해서 팔고 피 냄새가 나는 백정이었다. 애초에 장굉려가 던전 사용자인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던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돈이다. 해외에서는 어린아이의 뼈까지도 패션 아이템으로 쓸 수 있었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 타락한 의사 하나만 있으면 된다. 아니! 그것은 타락조차도 아니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그저 세속적인 의사였다.

물론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면 무기 징역까지 처할 수 있었다. 정치인까지 청렴해야 하는데 다른 놈들이 청렴하지 못하다? 가만두고 있을 리가 없었다. 마음에 거슬려서라도 조지고 볼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의 구현은 표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장굉려는 제외.’

그 외에는 딱히 맡길 사람이 없었다. 길탕만? 그는 확실히 B급 전사지만 그래도 옥시모론의 던전 사용자 자원을 생각한다면 아쉽다.

‘우리 기업이 3레벨 던전 공략을 하게 된다면 1레벨 전담 팀에서 2레벨로 오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청 팀과 함께해야 한다.’

이는 현재 보여지고 있는 옥시모론 팀의 상황과도 맞지 않았다. 즉, 또 하나의 던전 기업과 깊은 관계를 맺어서 그럴듯한 모양새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2레벨 팀원을 버릴 수는 없었다.

산박이 여기까지 생각하는 것은 그가 지나칠 정도로 전담 팀에 집착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지나치다? 그럴 리가. 에스컬레이터 시스템은 꼭 필요하다.’

목숨 걸고 싸우는 게 던전이다. 그는 바닥부터 시작했고, 나쁜 던전 사용자를 몇 번이나 만나왔다. 현실에서도 던전에서도 인간은 인간을 잡아먹는다. 그 속에서 살아남고 특출난 던전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에스컬레이터 시스템이 꼭 필요했다. 소위 엘리트 시스템이라 해도 무방했다.

1레벨 던전부터 옥시모론 기업에 들어와서 그 실력을 입증하고 안주한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도 2레벨 던전 공략을 노릴 생각을 단단히 하는 인간은 평범하다고 할 수 없었다.

‘평범해 보여도 그 심지는 굵다.’

설사 2레벨에 잔류한다고 해도 전담 팀에서 활동하며 옥시모론 기업의 이름을 날릴 수 있고, 던전 경제에 도움이 되며 수익을 올린다.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도 자주 안 하는 던전 사용자의 특징상 꾸준한 벌이는 회사의 재정에 도움이 된다. 이 던전 전담 팀은 옥시모론 기업의 중요한 기둥이나 다름없었다.

‘점점 규모가 커지면 적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명성을 얻으면 돈 많은 이들이 단순히 ‘레벨’과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서 찾아온다. 조금이라도 오래 앉을 수 있게 체력 하나 올리기 위해서 수백만 원은 물론이고 수천만 원도 쓸 수 있었다.

그게 학부모라는 괴물이었다. 괴물이 득실거리는 곳에 애를 던져놓고 레벨 업 하기를 고대한다. 혹은 지능이나 지혜를 올리는 걸 선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성인이 되고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하는 이들도 찾아온다. 최소 2레벨까지 찍는 게 보편화되고 있었다. 지능은 암기에 도움이 되고, 지혜는 고위직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덕목이었다.

‘길탕만을 설득해 봐야겠다.’

짝짝짝짝!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에 산박이 바닥을 바라보던 시선을 위로 올렸다. 서충호가 짧게 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감사를 표했다.

‘많이도 준비했네. 하긴…….’

자신은 후발 주자라고 여기고 있으니 노력한 것일 터다. 실제로 산박도 이번 회식에 조금 더 돈을 많이 썼다.

“다음은! 사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와아아아!”

짝짝짝!

태산박이 단상에 올라섰다.

“대회식을 자주 안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또 하게 되었네요. 그래서 오늘은 3만 원은 못 드립니다. 하하하.”

사원들 모두 웃었다. 그들의 눈은 단상 아래에 준비된 태블릿 PC에 있었다. 모두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항상 세종시에서 서울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가야 하는 게 던전 사용자들이었다. 모두 최신식 태블릿 PC가 딱 적혀진 박스에 눈길이 가있었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경품 추첨은 항상 마지막에 이루어진다.

“오늘 이렇게 와주신 거 감사합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경품에 당첨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번에 저희 옥시모론 기업에 세 번째 3레벨 던전 사용자가 탄생했습니다. 전 세계를 생각하면 그저 한 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이 작은 기업의 발전에…….”

산박은 1분간 빠르게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고 이내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이 팀장과 서 팀장에게 3레벨 장비를 선물하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앞으로 나와 주세요.”

“와아아아아!”

3레벨 던전 장비. 가격은 최소 1천500만 원에서 최대 몇 억까지 하는 미쳐버린 시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차 한 대 값에 달한다. 그것도 장비 하나가! 기업들의 담합이 극한으로 심화된 세계가 본격적으로 그 악독함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던전 사용자의 몸값이 제법 물이 오르는 것이 체감되는 지점이었다.

“먼저 오늘의 주인공 서충호 팀장!”

산박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두 번째 대회식이었고, 첫 번째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이 정도는 해줘야 서충호를 대우해 줬다고 할 수 있었다. 후발 주자지만 앞으로 더 달려가서 선두를 잡아채라는 의미였다.

“진흙 폭주 흉갑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충호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시가로 3천만 원짜리였다. 2억 대출을 받은 산박의 돈 씀씀이는 리스크가 매우 컸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돈이라도 보고 옥시모론 기업에 있을 것이었다.

‘3레벨 던전을 클리어하는 순간 서충호는 자신이 A급 전사라는 걸 더더욱 잘 알게 되겠지.’

두 번, 세 번 혹은 열 번의 3레벨 공략 이후에 대기업 오퍼를 받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그가 뱀의 머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혹은 그 이상임을 보여줘야 했다.

‘이직은 커리어의 꽃이니까.’

실력 있는 이들에게는 연봉 상승의 기회였다. 이를 막으려면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 그 수준에 오르지 못했을 때 얹어주는 것만큼 회사에 애착을 두게 하는 방법도 없었다. 그게 산박이 큰 출혈을 감내하고 그들에게 3레벨 장비를 주는 이유였다. 이미 시험을 통과하고 신뢰를 쌓았기에 과감한 투자가 가능했다. 애사심이 있는 사원에게 이 정도도 못 해주면 이직해도 인정해야 한다.

자기 자리로 돌아온 서충호는 장비에 붙어있는 설명서를 떼서 확인했다. 가격표도 붙어 있었다.

‘허업, 미친, 3천만 원!’

중형 SUV 혹은 준대형차를 구매해도 괜찮은 가격이었다.

충호는 서둘러 설명서로 눈을 돌렸다. 진흙 폭주 흉갑의 가장 큰 특징은 ‘자동 발사’ 기능이었다. 부채꼴의 인화성 진흙을 사용자의 의지를 감지하여 바로 발사한다. 따로 시동어가 필요 없었다.

동시에 경상 직후 갑옷 자체에서 출혈 방지 및 생명 유지를 위한 마법 진흙이 분비된다. 이 마법 진흙은 치료의 효과도 있고 활력 회복 및 다채로운 회복 활동에 관여한다. 이는 상대의 마법 공격에 당한 것도 상쇄시켜서 피해를 경감시켜 주기에 매우 효과적인 흉갑이었다.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던전 사용자 입장에서 전신 갑주는 입을 만한 것이 아니었기에 흉갑이면서 방어와 견제 둘 다 가능한 진흙 폭주 흉갑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시은 또한 하사품을 받았다. 사장이 내려주는 선물은 하사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 작은 영주관에서 이루어지는 논공행상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예의를 차린 이시은은 살짝 몸을 틀어서 주먹을 들어 올리며 흔들어 댔다. 보는 이들 모두 술이 들어가 있었기에 단번에 호응이 이루어졌다. 미녀이기도 한 그녀였기에 더더욱 큰 호응이 쏟아졌다.

순회공연 돌듯이 돌아다니며 축하를 받은 그녀가 자리에 앉았다.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 장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서충호처럼 자기가 쓸 수 있는, 혹은 쓸지도 모르는 장비들을 숙지하고 있지 않다는 건 이시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트리플 엘리멘탈 로브.’

3천만 원짜리 물건이었다. 불, 바람, 대지의 광분 원시 정령을 소환한다. 소환된 광분 원시 정령은 앞으로만 내달리며 일직선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휩쓸고 사그라진다. 정령이란 것은 자아가 있으면 그 효율성이 형편없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아가 없는 광분 원시 정령만 쓸 수 있었다.

‘역시 사장님이야.’

예외는 태산박의 수호 정령이었다. 자연을 지킨다는 마음은 드루이드나 수호 정령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훌륭한 파트너였으며 정원사 카멜은 자연 수호를 위해서 드루이드의 잘못된 명령도 몇 번이나 들어주는 인내심 끝판왕 식물 정령이었다.

“다음은~! 여러분이 고대하시고 고대하신 경품 추첨입니다!”

“와아아아!!”

다섯 개의 제품 박스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자! 보세요! 여기 아직 안 뜯어진 거 보이시죠? 지금 바로 매장에서 구매해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스페이스 갤럭시 태블릿 T30 최신형 다섯 개입니다! 원합니까!!”

“원합니다!”

“원합니다!”

빠르게 추첨이 진행됐다. 희비가 엇갈렸고, 회식이 끝이 났다.

* * *

산박은 오랜만에 사무실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사업 현황을 정리하며 길강합 주임을 통해서 길탕만을 2레벨 전담 팀장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융합 주문, 나무 생육 호박젤리. 그 덕에 드루이드 사과 과수원의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전기를 두른 담장이 설치될 정도였다. CCTV는 말할 것도 없었고, 최근에는 세종시 외곽의 소형 건물을 통째로 사서 실내 과수원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보안이 중요해진 시기였다.

연기 가문은 확실하게 산박을 챙겨주고 있었다. 동시에 잔잔벼락의 무기가 생산되고 있지 않아도 지급되고 있는 로열티도 있었다.

‘그 외 자잘한 것까지 합치면 월 800.’

무지막지한 성장세였다. 법인이었기에 세금도 10%만 일괄적으로 내면 그만이었다.

“길 주임, 잠깐 봅시다.”

“예, 사장님!”

길 주임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마주 보고 앉아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질질 끌 필요가 없었다.

“길탕만 씨를 2레벨 전담 팀장으로 만들고 싶은데, 도와줬으면 합니다.”

매우 고분고분한 부탁 조였다. 하지만 그 말에는 거대한 힘이 존재했다. 길강합 주임은 그에게 많은 부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B22

“탕만을요? 서 팀장이랑 죽이 잘 맞아서 3레벨 갈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설득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해봅시다. 저도 같이 가서 두 명이 함께.”

나쁘지 않은 구도였다. 탕만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긴 했다. 2:1이니까.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길 주임이 대답을 하지 않고 우물쭈물거렸다.

“뭡니까?”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산박이 예상하지 못한 고민에 휩싸여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에 산박이 냉정한 어투로 물었다. 그의 냉철한 이성이 위기를 감지했다.

‘이런 변수는 원하지 않는데…….’

던전 사용자가 되기를 포기한 길강합은 사무실 아니면 갈 곳이 없었다. 하지만 틈틈이 그를 봐주기만 하면 훌륭한 사무원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런 모습이라니.

“저, 사장님.”

그가 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많이 구겨진 것이 가지고 다닌 지 1주는 지난 것 같았다.

산박은 이를 받아서 펼쳤다. 그리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것은 1레벨 던전 클리어를 뜻하는 증명서였다. 종종 이를 요구하는 곳이 있기에 증명서를 배부하는데, 그것이 강합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서류에 적혀있는 이름은 당연히 길강합이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셨습니까?”

“예. 탕만에게 2레벨 전담 팀장을 시키신다면, 이후에 제가 인수인계를 받고 싶습니다.”

산박은 고개를 저었다. 길강합의 직업은 ‘전사’였다. 거기에 운이 없어서 그렇지, 그는 A급 전방 직업을 보유한 자였다.

‘길강합은 장신이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살도 찌웠다.’

운동도 꾸준히 했기에 물렁살도 아니었다.

“길 주임은 2레벨에서 멈출 사람이 아닌데,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산박이 그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를 데리고 있는 또 다른 이유. 나중에 꽃을 피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길강합이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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