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6화 (246/270)
  • 246화

    * * *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갔소!”

    “맞다! 맞다! 우리가 얼마나 애지중지 돌봐 줬는데 그걸 그냥 가져가 버렸나! 이거 문제 있다니까!”

    평상에서 막걸리를 두고 쪽파에 찹쌀과 밀가루를 섞은 반죽을 묻혀 바짝 구운 것을 간장에 팍 찍어 입에 넣으며 너도나도 분통을 터트렸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지 않겠냐고…….”

    그들은 상황에 맞지 않는 속담을 엉뚱하게 내뱉기도 했다. 취기가 잔뜩 오른 두 명은 곧 다른 사람들에게도 서서히 자신들의 생각을 전염병처럼 퍼뜨렸다.

    “이장! 자네뿐이야! 장 어르신에게 한번 말해 보라고.”

    “안 된다니까. 몇 번을…….”

    ‘이런…….’

    그렇게 말하던 노갑비는 그를 찾아온 이들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모두 결연한 표정이었다.

    돈이 크게 유통되지 않는 동네다. 대부분 자급자족하고, 가끔 자식이 보내오는 용돈이 전부였다. 그런 곳에 꽃가루 덕분에 꽃 냄새가 물씬 나는 고급 꿀이 생산되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꽃가루가 있는 꿀은 확실하다. 그 덕에 제법 재미를 본 것이 그들이었다.

    그게 손에서 사라지고 몇 주나 흘렀다. 그 그리움은 매일매일 커질 수밖에 없었고 또 그들을 거친 파도 속에 휩쓸리게 하였다. 마을이 파국으로 치닫거나 큰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으면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내가 안 가면, 날 어쩌기라도 할 셈인가?”

    “모두 함께 장 어르신을 찾아갈 거요. 20년 넘게 교류한 것이 와촌리와 장 어르신 아니오! 분명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오. 그걸 계속 막고 있는 건, 이장, 당신 아니오!!”

    “분명 돈 먹었다니까! 그 젊은 사장한테 뒷돈을 먹었으니 장 어르신한테 안 가고 저렇게 버티고 있는 거지.”

    “그 무슨 말 같잖은 소리요? 태 사장은 장 어르신이 추천해서 여기에 왔소! 그가 제 발로 떠났는데 장 어르신에게 간들 무엇이 바뀌겠소!”

    너도나도 악다구니를 썼다.

    “바뀌지! 바뀌고말고! 그놈도 장 어르신의 하수인에 불과해!”

    결국 노갑비는 사람을 여럿 데리고 장 노인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혼자 가지 못한 건 그를 의심하는 이들이 많아서였다. 그렇다고 그를 끌어내리지는 못했다. 그를 이장에 앉힌 건 장 노인이었다.

    와촌리의 마을 회관이 그럴듯한 건 모두 장 노인의 돈 때문이었다. 그 영향력은 연례행사처럼 마을 회관에 크고 작은 돈을 쓰면서 이어져 왔고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덕을 노갑비 이장이 봤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술을 마시고 분노한 군중에게 두들겨 맞지 않은 건 개인적으로 큰 행운이었다.

    ‘빌어먹을, 될 대로 되라지. 이제 내 손을 떠났어.’

    노갑비는 그에게 연락도 못 했다. 전화로는 그를 설득할 수 없을 거라 여기는 마을 사람들 때문이었다.

    쿵쿵쿵!

    대문을 두드렸다. 곧 문이 열리며 사내가 한 명 나왔다. 드루이드 사과 과수원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어서 그 일을 돕기 위해서 온 집안사람 중 한 명인 장지문이었다.

    그는 눈 밑이 퀭했는데, 게임에 미친 놈이었다. 영화는 밤새워서 보면 문화인, 게임은 밤새워서 하면 마약 중독보다도 더 심각한 의존 증세에 시달리는 인간쓰레기 정신병자였다. 그것이 바로 전 세계의 게임하는 이들이 받는 취급이었다.

    최근에는 돈을 벌기가 힘들어진 정신과 의사들이 게임 중독에 대한 명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면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한 명이 만 원 주고 게임 중독 검사를 받는다면 10만 명만 검사를 받아도 10억이다. 엄청난 시장 개척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 덕에 고위험 고혈압 환자를 지정하는 혈압 수치 또한 매년 낮아지고 있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고위험 고혈압 환자로 지정되는 허들이 천차만별로 차이가 났다.

    모두 돈이다. 그 법칙을 모르는 이들은 결코 돈을 끌어모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를 안다면 알뜰 폰과 저축 은행에 관심이 가게 될 것이었다.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게임에 모든 취미 시간을 투자했던 장지문은 그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했다. 부모에 의해서 내쳐지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폭력적이지 않은 부모 덕분에 부모의 돈으로 구매한 컴퓨터는 지킬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서른 살까지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장지문은 죄수처럼 사과 과수원에서 일하는 신세가 되었다. 돈을 벌지 않는 자, 취미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연기 가문이었다.

    가문의 일원 중 6할이 공무원이었기에 아주 엄격했다. 나머지 4할은 당연히 공무원이 되지 못한 ‘가문의 실패자’들이었다. 장지건도 그중 하나였다. 공부는 재능이 90%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구십니까?”

    “아, 저는 와촌리에서 온 이장, 노갑비라고 합니다. 마을 문제 때문에 어르신을 만나 뵈려고 왔습니다.”

    “아……. 그래요? 들어오세요. 제가 안내를 해드릴게요.”

    말을 하면서도 장지문은 오늘 어떤 게임을 어떤 변태 플레이로 어떻게 고인물처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덕에 현실을 무식하고 흐리멍덩하게 보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르신! 와촌리에서 이장이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우렁찬 호통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끄럽다! 지금 중요한 사람과 만나고 있으니 다른 곳에서 기다리라고 하여라!”

    “예!”

    욕을 먹었지만 장지문은 무덤덤했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서였다.

    뒤에서 듣던 이들은 찔끔했는데 장지문은 웃음기마저 내비치며 호탕하게 대답하는 모습에 노갑비가 혀를 내둘렀다.

    ‘역시 장 가문의 일원이군! 장 어르신의 호통에 웃으며 대답하다니?’

    “좀 기다리셔야겠는데요?”

    “예.”

    그 말을 하고 장지문은 척척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다섯 명이 자신을 그냥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엥? 왜 따라오세요? 전 컴퓨터 하러 가는데요.”

    “그럼 저희는 어디에서 기다립니까?”

    “그냥 거기 앉아서 기다리면 되잖아요.”

    “…….”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나? 손님을 그냥 복도에 앉혀?’

    노갑비 이장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성질 급하고 술도 좀 마신 마을 사람 하나가 장지문에게 삿대질을 했다. 원래라면 수그리고 조아리며 무릎을 꿇었을 터였다. 그게 계급 차이가 만들어 내는 굴종이었다. 백화점에서 높은 사람에게 허리처럼 고개를 숙이고 한 달에 1억 쓰는 여사님에게 뺨을 처맞아도 내일 출근해야 하는 인간이 가져야 하는 것이 현대의 굴종이며 노예 계급이었다.

    “손님을 그냥 복도에 멍하게 있으라니, 그게 말이오?”

    “아! 죄송해요. 하하하!”

    그가 순하게 웃었다. 그 쉬워 보이고 나약한 모습에 마을 사람들의 입이 빵 터졌다.

    “응, 쯧쯧! 젊은 친구! 어서 손님방으로 안내해.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아~ 예.”

    “나 때는 말이야, 웃어르신이 있으면…….”

    “아주 옛날에는 군대에서 구르다 와서 젊은이들이 아주 빠삭빠삭했다던데…….”

    “너도 군대 안 갔잖아.”

    “교련, 교련.”

    마을 사람들은 헛소리를 내뱉으며 손님방에 들어섰다. 곧 간단한 간식이 상 위에 놓여 들어왔다. 상을 내리는 여자에게 마을 사람이 툭 내뱉었다.

    “술은 없나?”

    “없다.”

    “어엉?”

    갑자기 반말을 들은 노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장 어르신의 손님인 나에게 반말을 한 거냐?”

    그 모습에 노갑비가 서둘러 일어나며 그 입을 틀어막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의를 시키겠습니다.”

    “이장님만 봐서 와촌리 사람들은 교양이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간편화가 이루어진 한복을 입은 여자가 단아하게 물러갔다.

    “누, 누구요?”

    “누구긴 누구겠냐? 여기 있는 젊은 여자들 죄다 연기 가문의 여식들이다. 사원 관리하려면 여자도 있어야 하고 남자도 있어야 한다. 전 집안이 번갈아 가면서 분기별로 봉사하고 간다.”

    물론 달마다 주는 돈도 두둑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안 주고 자식들 굴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딸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게 사원 관리에 투입되는 일이었다. 하는 일에 비해서 고수입이 보장되어 있고, SNS에 사원 사진만 올려도 있는 집안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연기 가문의 대저택은 기와집이며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어디에서든 찍든 그림이 된다.

    “근데 어찌 이장 얼굴을 아나?”

    “인수인계가 그만큼 철저하다는 거다.”

    시골 촌구석 나부랭이 따위가 그걸 알 리가 없다.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었다.

    곧 그들은 장 노인과 대면할 수 있었다.

    “누구야? 건방지게 입 놀린 놈이! 여기가 어딘지 정녕 모르는 것인가!”

    “죄, 죄송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연락도 없이 찾아왔으면서 가문의 여식에게 한 소리를 한 놈부터 혼냈다.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제법 멀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를 통해서 가문 내 장 노인의 평판은 더 좋아지고, 오면 바로 장 노인을 만날 수 있다고 여기는 와촌리의 촌놈들도 조질 수 있었다.

    “그리고 노갑비 이장.”

    “예, 어르신!”

    “태 사장이 양봉 사업 빼버렸다며?”

    “예. 죄송합니다.”

    “줘도 못 먹는 건 괜찮아. 근데 내 평판마저 떨어뜨리는 일은 용서할 수가 없어. 이 자리에서 날 실망시키지는 않을 거라 기대하네.”

    그 말에 노갑비 이장은 땀을 삐질 흘렸다. 마을 사람을 관리하지 못해서 여기까지 와버렸고, 장 노인에게 뒤처리를 맡기려는 게 그였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는데 지금 보니 아주 잘못 생각한 듯했다.

    ‘큰일 났다.’

    절로 고개를 조아리며 눈도 마주치지 못하자 다른 마을 사람이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어르신!”

    “누가 너보고 입을 열라고 했어?”

    “예? 죄, 죄송합니다.”

    장 노인은 술을 오직 노갑비 이장에게만 따라줬다. 그가 이를 공손히 받아서 마셨다.

    “마을 사람들이 양봉 사업을 놓친 것에 크게 후회하고 있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사 하고 어르신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쯧쯧.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사람을 더 미치게 한다지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태 사장은 내 밑에 있는 사람이 아니야.”

    “어르신……. 그래도 뒷배는 연기 가문이지 않겠습니까? 하는 걸 보면 제법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던데, 다 연기 장가(家)의 위세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도와주신다면 두고두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알지. 와촌리 사람들이 제공하는 노동력, 결코 싼 게 아니지. 한데 이번에는 안 되네. 태 사장의 뒷배는 우리 연기 가문뿐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 말고 물러가게나.”

    탁.

    장 노인 또한 술 한 잔을 마시고 술잔을 내려놓으며 단언했다.

    “놓쳤다고 생각하게.”

    장 노인의 눈이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도 향했다.

    “알아들었는가?”

    “예…….”

    이장 앞에서는 폭력도 불사하려 했던 사람들이 장 노인 앞에서는 쥐새끼처럼 쪼그라들어서 벌벌 떨며 대답했다. 반론 하나 내뱉지 못했다. 호쾌한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한 조각도 찾을 수 없었다.

    되돌아가는 길, 그들은 그 어떤 말도 나누지 못했다. 우물 밖에 나온 개구리가 뱀에 잡아먹힌 것처럼 축 늘어졌다.

    * * *

    부산 북쪽. 양산시. 태산박은 흘러내려 가는 낙동강을 바라보았다. 어디에 나루터라도 있는 건지 작은 나무배로 관광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강 옆에 놓인 산책로에서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를 건너 산박은 근처에 있는 ‘가산 농원’에 들어섰다. 전화를 받고 국산 1톤 트럭을 몰고 나온 이의 거친 손과 악수를 나누었다. 흙을 만지는 사람의 손이었다.

    “밭일을 오래 하셨나 봅니다.”

    “예. 햇수로 9년 됩니다.”

    “그런데 왜 농원을 파시려는 건지……?”

    “애들 때문이죠. 학원도 안 보냈는데, 공부에 재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부산으로 갑니다. 거기 목수 하시는 형님이 계신데…….”

    자식 때문에 9년간 있던 터를 버리는 모습은 실로 존경스러운 모습이었다.

    “사장님께서는 왜 여길 사시려는 겁니까?”

    “농사지으려고 사죠. 요즘 스마트 농법이 좋다고 하잖습니까. 건물 하나 짓고 거기에 농작물 키워서 프리미엄으로 파는 거죠.”

    “아~! 요즘 그런 거 많이들 하죠. 바나나 아시죠? 대구에 바나나 하시는 분 있는데 스마트 농법으로 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노동력 절감이 크게 된다고, 허리 아프기 전에 하라고 난리를 쳤었죠. 하하하!”

    봄바람 같은 잡담을 나누며 산박은 가산 농원을 트럭을 타고 둘러봤다.

    ‘하자는 없다.’

    딱 좋았다. 건물 하나 올리고 거기서 꽃 키우고 양봉하면 그만이었다. 산박은 전체적으로 유리를 사용해서 햇빛을 잘 받는 온실을 만들 생각을 가졌다.

    “그… 결정은 하셨는지?”

    “전화 때 말씀하셨던 제안 말씀이십니까?”

    “예. 천 평입니까, 3천 평입니까?”

    산박이 미소를 지었다.

    평당 10만 원. 1천 평만 딱 구매하여 1억을 쓸 생각을 했던 것이 태산박이었다. 하지만 농부가 제안을 했다. 자기 땅이 3천 평이니 다 가져가면 2억에 퉁쳐 주겠다고 했다. 즉, 평당 10만 원이 평당 6.6만 원으로 내려간다.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 나쁜 거래는 아니지.’

    백 평 혹은 2백 평짜리 온실을 꾸준히 지어도 몇 년은 걸릴 터였다. 그래도 산박은 나쁘지 않은 투자라 생각했고, 대출을 받아 2억을 가져온 상태였다.

    “3천 평 다 가져가겠습니다.”

    “바로 근처 법률 사무소로 모시겠습니다. 리무진은 아니지만요.”

    서로 웃는 낯으로 땅과 돈을 교환했다. 산박은 적은 돈으로 많은 땅을 움켜쥐었고, 농부는 3억이라는 제법 큰돈을 알차게 쓸어 담았다. 목수 일을 하게 되면 농지 관리는 불가능에 가까운 걸 잘 알고 있었다. 평당 10만 원을 6.6만 원으로 과감하게 뚝 자른 것도 아주 유효한 전략이었다.

    ‘1억보다는 2억이지.’

    땅보다는 현금이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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