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5화 (245/270)
  • 245화

    * * *

    대회식이 끝났다. 모두 태산박 사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체감했다.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다.’

    사람을 대하는 게 능숙했고, 무엇보다 서 팀장과 이 팀장 그리고 매 팀장이 그를 매우 깍듯하게 모셨다. 항상 일선에서 함께 싸웠기에 던전 사용자들이 가지는 팀장들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높았다. 그런 자들의 충성심을 받는 태산박을 함부로 할 사람은 없었다.

    ‘여기서 무조건 존버 해야 한다.’

    또한 알 박기를 단단히 결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회식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3만 원이라는 돈이 쑤욱 들어와서였다.

    ‘회식에 참가하면 돈 주는 회사.’

    큰돈은 아니다. 그래도 치킨 두 마리 값은 된다. 유명 브랜드의 올리브유가 좔좔 흐르는 비싼 치킨은 먹을 수 없어도 겉바속촉의 후라이드와 매콤달콤한 양념치킨을 다른 수많은 브랜드에서 시켜 먹을 수 있는 돈은 되었다.

    이는 크다. 현대 사회는 ‘닭의 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닭 소비량이 많은 시대였다. 후대에는 이 시대를 닭의 시대라고 말할 수도 있을 정도로 닭을 많이 먹는 것이 현대인이었다. 치킨값 주는 회식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 돈을 차비로 쓸 사람은 없었다.

    이 세계는 그런 곳이다. 모든 것이 붕괴된 세상이었다. 발전한 것처럼 보여도 골목길 으슥한 곳에서는 퀭한 눈을 한 아이가 멍하게 대로를 바라보는 곳이었다.

    ‘판타지 쇼크’는 전 세계적인 규모로 일어났고, 대한 제국의 서울은 폐허가 되었다. 제국이라는 이름을 간직하지 못하고 민국이 되었다. 그나마 대한을 지켰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한민족의 민족성을 가지고 제국이라 칭할 수 없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근면한 민족임에도 아직도 서울은 폐허인 곳이 많았다. 물론 다른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태산박이 가는 길에 사원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서 고개를 조아렸다. 그 뒤에 끼리끼리 마음을 맞춰서 2차를 이어 나갔다. 1레벨 전담 팀 또한 2차를 가고 헤어졌다. 헤어질 때의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잠깐만 이야기 좀 합시다.”

    매주궤가 김은섭을 잡았다. 1차만 하고 가려는 걸 억지로 붙들어서 안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2차가 끝나고도 매주궤가 그를 잡자 한숨부터 나왔다.

    그러나 반항은 하지 못했다. 의외로 매주궤는 1레벨 전담 팀원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었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강압적이지 않은 매주궤를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렇기에 몇 번의 실수가 있어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편이었다. 띨띨한 놈보다 개새끼가 훨씬 더 지랄맞기 때문이다. 오히려 매주궤 정도면 좋은 팀장이었다.

    “지금 곧 새벽인데요.”

    “사장님한테 말씀을 드렸습니다. 2레벨 간다는 거요.”

    “아!”

    김은섭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인간의 간사함이 절로 보였지만 매주궤는 쉽게 넘어갔다. 애초에 그런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편의점에서 따뜻한 것을 사고 육포도 구매했다. 그리고 편의점 안에 있는 식사 장소에 앉았다. 협소했지만 매주궤는 개의치 않았다.

    반면 김은섭은 벽을 보고 먹는 게 익숙지 않은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약간 옆으로 앉아서 시야를 확보했다. 집이 제법 살면서도 판타지에 대한 로망 하나로 던전 사용자가 된 김은섭에게 있어서 편의점에서 벽을 보고 먹어야 하는 식탁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태산박. 눈이 부시도록 빛을 향해 나아가는 그는 김은섭에게 큰 동기를 부여해 줬다.

    ‘처음에는 안 그랬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여기서 내 꿈을 펼친다.’

    자신과 함께 들어왔던 오축균 그리고 예흠은 둘 다 거지꼴이 되었다. 쓸데없이 사업을 키웠다가 빚지고 회사로 들어가서 개처럼 부려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옥시모론에 뼈를 묻겠다는 김은섭의 생각은 더더욱 확고해졌다.

    옥시모론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자신도 있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남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바로 ‘샤인’이었다. 겨울바람, 동굴 바람, 모닥불 바람 등 바람이 그를 돕고 있었다. 물론 이는 김은섭의 착각이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체중이었다.

    어찌 되었건 김은섭은 옥시모론 기업에서 자신의 레벨을 높이고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초월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 적어도 지금보다 더 강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게 판타지를 좋아하는 그의 꿈이었다. 이를 안전하게 달성하기에는 옥시모론 기업이 최고였다.

    ‘용 기사 직업을 지닌 예흠이 떠난 건 아쉽다.’

    은섭은 정령 검사처럼 독특한 직업을 지닌 예흠과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덩치가 크고 체중이 대단하여서 사람들이 잘 다가오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키는 덩치였다.

    사람들의 웃음을 위해서 개그맨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비웃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개그맨들은 하나같이 어쩔 수 없이 비싼 차를 구매하곤 한다. 술자리에서 대뜸 끼어들어 자기 웃겨 보라고 하는 짐승 같은 놈들에게 비싼 외제 차가 잘 먹혀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핑크색을 좋아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큰 덩치에 의외로 핑크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에 대한 경계심을 푸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줘서였다.

    어찌 되었든 커다란 덩치 탓에 은섭은 예흠과 친해지지 못했고, 예흠은 오축균과 함께 옥시모론 기업을 나가 버렸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2레벨 던전 공략에 매달리게 되었다. 동기와 협력하여 2레벨에 같이 가는 게 가장 나아 보였지만 단독으로 승급하게 된 셈이었다. 그 부담 때문에 매주궤에게 부탁을 했다.

    “한번 만나 보겠다고 했어요. 면접이라고 생각하고 단단히 준비하세요. 어지간히 바보 같은 짓만 하지 않으면 될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매주궤는 자신이 받았던 돈 50만 원을 척 앞으로 내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고 가지라고 준 돈이 아닌 것 같다.’

    “어? 이건…….”

    “태 사장님이 주시는 겁니다. 1레벨 전담 팀에서 고생했다고 주시는 걸 겁니다.”

    “아! 가, 감사합니다.”

    김은섭은 대단히 감사해했다. 아무리 잘사는 집에 살아도 용돈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돈 많은 집이라 더더욱 깐깐했다. CMA 같은 저축 통장을 통해서 귀찮게 돈을 쓸 정도였다.

    “2레벨 가서 날 바로 잊는 건 아니겠죠?”

    “흐흐흐.”

    은섭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를 보며 매주궤는 실로 감탄했다.

    ‘역시 돈이다.’

    3만 원만 받아도 좋아하는 사람들, 50만 원 받고 입이 귀에 걸린 은섭. 그걸 본 매주궤는 감탄, 또 감탄했다. 적은 돈도 쓰기 나름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기 싫은 회식 자리에 무조건 참석하게 될 마력이 충분히 있었다.

    물론 50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는 최저 임금 백만 원을 맞춰주는 곳도 많이 없었다.

    산박이 현재 올라선 위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단순 돈이라면 썩어 넘친다고 해도 무방했다. 무식하게 사치를 부리지 않고 사람에게만 투자하는 산박에게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억짜리 가짜 스포츠카에 쓸 돈이 사람에게 백만 원씩 들어간다면 백 명이나 동원할 수 있었다. 옥시모론 기업의 사원은 쉰 명도 안 된다. 산박에게는 그만큼 여유가 있는 셈이었다.

    2일 뒤, 김은섭은 태산박과 마주했다. 삼겹살집에서 마주했는데, 단순히 태산박의 습관이었다. 그는 카페보다는 삼겹살집에서 고기와 술을 놓고 대화하는 걸 더 선호했다.

    송서아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가 카페를 선호해서였다. 산박은 카페와 고깃집 사이에서 여자와 다툴 정도로 고깃집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치이이익!

    산박은 집게로 삼겹살을 눌렀다. 지방이 빠져나오며 빠르게 타올랐다. 지방이 타는 냄새, 그 소리! 이것이야말로 행복이다. 수비드가 더 좋다고 말하는 이와 말싸움할 시간에 한 점 더 구워서 먹는 게 이득이었다. 72시간 동안 데워서 먹을 바에는 72시간 동안 꾸준히 더 많은 양의 삼겹살을 불판에 구워서 먹는 게 더 이득이었다.

    ‘육즙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겉이 바짝 타고 기름이 듬뿍 묻은 삼겹살 두 점! 상추 위에 깻잎, 마늘 하나와 쌈장, 짠맛을 곁들이기 위해서 새우젓도 조금. 단번에 한입에 꿀꺽!

    ‘으음……! 이거지.’

    첫입을 먹고 난 다음에는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전담 팀 생활은 어땠습니까?”

    “좋았습니다. 매주궤 팀장님은 부드러운 분이셨고, 던전에서 잘 따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정령 검사 은섭은 순진하게 대답했다. 산박으로서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매주궤는 훌륭한 1레벨 전담 팀장에 어울리는 자였다. 거기서 옥시모론 기업에 만족한 이는 레벨이 오르더라도 계속 회사에 속하고 싶어 할 터였다. 그게 매주궤 팀장이 있는 이유였고 적자를 내는 1레벨 전담 팀이 계속 유지되는 사유였다.

    산박은 기름진 삼겹살에 기름장을 듬뿍 찍어서 입에 넣었다. 썩 맛이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술의 콤비네이션이 그런 생각을 지닌 고기 모독자의 뚝배기를 깨버렸다. 술이 말끔하게 기름을 쓸고 내려가는 그 기분은 천상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하려고 기름진 삼겹살에 기름장을 먹는 것이었다.

    꿀꺽.

    은섭은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맛있게 먹다니, 실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너튜브에서 먹방을 찍어도 될 정도였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쌈.’

    향신료 폭탄 쌈! 그 뒤에 이어지는 기름진 삼겹살과 기름장의 맹공격 속에서 해일처럼 몰려오는 소주 한 잔. 구성 또한 멋들어졌다.

    아삭!

    이에 그치지 않고 소주의 쓴맛이 아직 남아있을 때 새콤달콤한 겉절이 한 점까지 놓치지 않고 씹어 먹었다.

    “정령 검사는 그렇게 좋은 직업이 아니라는 거 알고 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전방에 서더라도 주인공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대우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옙.”

    산박이 잔을 들어 올렸다.

    “물론 다른 2레벨 던전 공략보다는 훨씬 형편이 좋습니다. 이 또한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은섭이 양손으로 공손히 잔을 들어 올려서 짠을 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소주였기에 독했다. 소주병에 붙어있는 붉은 배경의 두꺼비가 얼마나 도수가 높은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마실 만한 건 아니었다. 그저 소주 한 병을 놓고 두 명이서 한 홉씩만 마시는 정도로 마쳤다.

    그 뒤로는 고기와 함께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전보다 훨씬 발전했다.’

    산박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오랫동안 지켜보고 키울 만했다. 옥시모론 회사에 들어온 직후의 김은섭과 지금의 김은섭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근면한 한국인다웠다. 1년 전의 자신과 1년 후의 자신이 너무나도 다른 것이 한국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시간의 영속성을 믿으며 자신 또한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을 굳게 신봉하고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산박이 손을 건넸다. 결격 사유는 없었다. 있다면 2레벨 던전 공략 도중 드러날 것이었다.

    꽈악!

    두 사람은 굳세게 악수를 했다. 무엇보다 138kg에 달하는 괴물 인간은 던전 어디서든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충호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패기가 없다.’

    아쉬운 일이었다. 허나 산박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단단히 각인해 줬다. 세상사 모르는 일이니까.

    * * *

    산박은 양봉 사업을 펼칠 곳을 지정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낸 결과였다.

    그곳은 경상남도 양산시였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사업차 서아를 만나러 갈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 모습이었다.

    ‘나쁘지 않지. 지금 내가 최대한 이용할 수 있다.’

    소득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세금이 늘어난다. 양봉 사업을 통한 수익금은 옥시모론 기업의 소득으로 잡아놔야 했다.

    ‘낙동강을 통해서 부산으로 빠르게 내려갈 수도 있지.’

    도로 또한 이용할 만하다. 산 위에 지은 부산은 모래와 돌을 섞은 쌀처럼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도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도로는 도로였다.

    특히 상남자들이 좋아할 법했다. 여덟 갈래로 나뉘는 지옥 같은 갈림길에 섰을 때, 운전대를 잡은 이들의 감각은 칼날 위에 선 것처럼 날카로워져야지 그 도로를 살아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부산 최속의 택시 기사를 가리는 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어찌 되었든 부산 근처에 있는 도시인 양산시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그 도시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낙동강 근처에는 농원도 많았다.

    ‘하나 구매해서 양봉 사업 하면 그만.’

    잘 팔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양질의 벌꿀이었다. 옥시모론의 사원들에게만 싼값에 구매해서 선물용으로 써먹으라고 이야기해도 너도나도 구매할 것이었다. 좋은 벌꿀은 정말 비싸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효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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