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4화 (244/270)
  • 244화

    <레이드 던전 준비>

    길강합 주임은 문자로 사원들에게 일정을 보내고 그다음에는 개인 메신저를 이용해서 이 차적으로 또 메시지를 날렸다. 팀장들에게는 개별적으로 통화까지 했다. 사원들에게 하나씩 만들게 한 업무용 이메일로도 똑같은 내용을 보냈다. 그래야 뒷말이 없었다.

    “네. 안녕하십니까. 길 주임입니다, 서 팀장님~!”

    ―아이고, 문자 확인했습니다.

    서로 엄살을 떨었다.

    “그간 한번 크게 모인 적이 없지 않습니까. 이 팀장이 3레벨에 도달해서 축하할 겸 자리를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이 그렇게 말했습니까?

    “예. 이 팀장이 전화를 했다고 하더군요. 명분상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길 주임이 기름칠을 했다. 이게 통할지 안 통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만, 잘못된 기름칠이었다. 태산박을 변호했기에 서 팀장과 이 팀장이 서로 기분 나쁘게 될 수밖에 없는 간사한 이간질이었다.

    물론 길 주임에게 있어서 이건 이간질이 아니었다. 그로서는 태 사장에게 불만을 품는 듯한 서 팀장을 달랜 것에 불과했다.

    ‘개보다 못한 년이.’

    서충호는 속으로 이시은을 욕했다. 딱 봐도 자신을 짓누르려고 하는 짓처럼 여겨졌다. 길 주임이 말실수를 했기에 생긴 오해였다.

    하지만 실제로 오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시은은 어찌 되었든 3레벨 레이드 던전에서 승부를 보려고 하고 있었기에 스트레스가 쌓여가며 점점 빈틈이 생기고 있었다. 그 반동으로 서충호를 괴롭히려는 심리가 삐쭉 튀어나와서 뚝뚝 흘러나왔고, 이런 만남이 기획되었다. 즉흥적인 충동으로 태 사장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 이빨을 서충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림자 기사라는 B급 직업 외에는 모든 면에서 A급인 것이 서충호였다. 자신을 향해서 이빨을 들이밀어 물지는 않고 뾰족한 이빨로 쿡 누르기만 하는 이시은의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단번에 파악했다.

    절로 분노가 차올랐지만 그는 속으로 삭였다. 그건 그가 분노를 조절할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분노 조절 장애를 고치는 치료사가 그의 곁에 있어서였다.

    바로 태산박이다. 그 냉철한 눈과 마주하면 자신도 모르게 체면을 차리게 되고 이성적이 된다. 사람을 강제로 진정시키는 효과가 그에게는 있었다. 물론 이를 깨닫지 못하는 벌레들도 있었지만 서충호는 아니었다.

    ‘냉혈한이라고는 할 수 없지.’

    서충호를 여러모로 도와주고 있는 게 산박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삼 사업에 사람도 하나 붙여줬다. 배둔국이다. 그 덕에 서 팀장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삼을 잘 팔아서 그 마진 90%가 통장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위대한 일이다. 30만 원짜리 택배 부업조차도 남에게 안 주려는 게 사람 심리였다. 좋은 건 혼자 먹어야 하는데, 태산박은 달랐다.

    ‘돈을 준다.’

    ‘자존심을 빼앗지 않는다.’

    그 뒤에 자신에게 필요한 걸 요구한다. 그리고 그건 기본적인 요구에 불과했다. 2레벨 던전을 공략하는 팀장이 되어라. 3레벨이 될 때까지 노력해라.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그런 기본적인 것만 지키면 된다. 그 속에서 반짝 빛이 난다면 팀장도 될 수 있고 곁에 머무를 수도 있으며 종종 상여금도 뜬금없이 튀어나왔다.

    으드득!

    그렇기에 서충호는 참았다.

    이를 가는 소리에 길 주임이 침을 삼키고는 약간의 침묵 뒤에 물었다.

    “기분이 나쁘신가 봅니다.”

    ―아닙니다. 그저 제가 먼저 3레벨이 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 팀장과 저는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겠습니까.

    “예, 예. 그렇지요. 그럼 회식에는 참가 안 하시는 겁니까?”

    ―갑니다. 사장님께서 오시지 않습니까. 불참할 수는 없습니다.

    “예. 그럼…….”

    강합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서충호의 분노가 느껴질 정도였다.

    전화를 끊은 서충호는 머리를 크게 헝클었다.

    ‘아쉽다.’

    듀얼 클래스를 지닌 이시은을 따라잡는 건 매우 고된 일이었다. 거기에 서충호는 그 어떤 신의 선택도 받지 못했다.

    반면 이시은은 그 특출남 때문에 죽음의 신과 마녀의 신으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고 있었다. 거침없이 사람을 죽이는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두 명의 신이었다.

    실제로 이시은은 그 누구도 모르게 그들에게 인신 공양을 하기도 했다. 그 덕에 ‘시체 묘지’와 ‘원한의 잔’을 받을 수 있었다. 둘 다 카르마를 더 많이 획득하게 해주는 신의 은총이었다.

    길 주임은 이시은에게도 연락을 했다.

    ―서 팀장에게 연락은 했나요?

    “예? 네.”

    ―어떻던가요?

    “그게……. 아쉽다고…….”

    스마트폰 너머에서 고혹적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것만으로도 길 주임은 귀가 간지러워졌다. 이시은은 그 뒤로는 부드럽게 넘어갔다.

    1레벨 던전 전담 팀장인 매주궤는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전화를 받았다.

    ―죄, 죄송합니다! 폰을 진동으로 해놔서……!

    “예? 아뇨. 그렇게 사과할 것까지는…….”

    매주궤는 서둘러 사과했다. 여친과 함께 ‘모여봐요 행복의 숲’을 하느라 전화가 온 줄 몰랐다고는 죽어도 말 못 했다. 자존심 따위 없는 매주궤는 사과해서 빠르게 일정을 해치울 생각뿐이었다.

    ―꼭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와의 통화는 가장 빨리 끝났다. 그는 청춘사업을 하는 데 신경이 많이 가있는 상태였다. 후방 직업이라서 늠름하게 뒤에서 함정 토템만 설치하면 되기 때문! 그 덕에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여유가 없으면 청춘사업에 뜻을 둬서는 안 된다. 서로 괴로울 뿐이라는 걸 매주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였지만 그래도 태산박이 회식 명령을 내리자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누가 갑인지 확실하게 아는 모습이었다.

    * * *

    세종시 종촌동, 온더더키친. 옥시모론 기업의 던전 사용자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길쭉하게 탁자가 놓이고, 모두 의자에 착석해 준비된 간단한 먹거리를 먹으며 태산박을 기다렸다. 그는 조금 늦게 왔는데, 모두 와촌리의 촌놈들 때문이었다.

    ‘어디가 좋을까. 골치가 아프다.’

    어려운 건 아니지만 일거양득을 원하는 산박이었기에 노력하고 있었다. 더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곳곳을 훑어보고 사업을 시작해야 했다.

    ‘양봉 사업은 인력도 이미 확보해 놨다.’

    꿀통백까마귀, 난쟁이 텃밭꾼이 있었다. 수호 정령인 정원사 카멜도 쓸 수 있었지만 그녀가 거부했다. 수호 정령의 의무에 반(反)해서였다. 너무 정직한 이유라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장님!”

    그가 도착하자 너도나도 그에게 굽신거렸다. 지내다 보니 다른 던전 기업에 대해서도 심심찮게 귀에 들려오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에 비하면 옥시모론 기업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해 주기 때문이다. 그 간단한 것만으로도 사람은 크게 감동했다. 그들은 이성적인 인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감성을 지닌 모순적 존재였다. 하나를 빼면 부족하고 하나를 집어넣으면 비대칭인 안타까운 존재였다.

    태산박은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길 주임을 통해서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말했다. 물론 그 끝에는 농담도 던졌다.

    “저희 회사가 가족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힘들 때만큼은 가족 같은 곳입니다. 하하하!”

    모두가 태 사장의 말에 호응하며 웃었다.

    “여기 테이블 하나당 해물리소토랑 닭다리살스테이크샐러드 기본으로 세팅해 주시고요, 그 외에 개인식은 개인별로 따로 주문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산박의 말에 길 주임이 나섰다.

    “자자! 이 집이 목살스테이크가 정말 장난 아니랍니다!”

    그렇게 은근슬쩍 행정 처리를 쉽게 만들고 종업원과 함께 테이블마다 주문을 도와줬다.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를 썼다. 이럴 때 나서서 정리를 해줘야 사무원 소리 듣기 좋았다. 또 남들 놀 때 일하는 모습은 산박에게 점수를 따기도 좋아 보였다.

    “역시 스테이크지.”

    너도나도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이 집은 1인분이 2인분 같은 집이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미리 검색해본 이들이 많았다. 그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정보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회식 때는 삼겹살에 소주가 국룰이지만 그건 꼰대들이나 할 법한 소리였다. 맥주, 전통주, 소주까지 테이블에 놓였다.

    식사하는 사이에는 테이블 이동이 잘 없었지만 술이 제법 들어가고 안줏거리가 나오면서 곳곳으로 사람들이 이동하여 빠르게 교류하기 시작했다.

    아싸 타입은 자기 의자를 사수하기 위해서 참다가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딴 사람이 자기 의자에 앉은 걸 확인하고 황망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눈치껏 안면이 있는 이의 근처에 의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인싸들의 정글. 아싸는 결코 살아남지 못했다.

    그 속에서도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 팀장과 서 팀장이었다.

    ‘필요한 일이지. 사장님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으로 일을 도모하는 척을 해야 해.’

    이시은의 목적은 ‘단기전’을 노리는 그녀의 노림수를 숨기기 위해서 라인을 굳건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4레벨, 5레벨까지 넘보는 것처럼 행동하기 위해서는 자기 패거리를 굳건히 하고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야 했다.

    반면 서충호는 그녀의 그런 행동 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후방 직업과 전방 직업이 확 갈렸다. 2레벨 던전 사용자들의 사이에는 제법 날카로운 기 싸움이 존재했다.

    서충호와 전방 직업 패거리가 모인 곳에 이시은이 술병을 들고 움직였다. 치하를 하듯이 태산박이 지나간 직후였다. 척 봐도 신경을 긁으러 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서 팀장님도 한잔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뭘요. 오히려 많이 늦은 감이 있죠~ 사장님이 3레벨 오르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저 하나 3레벨이 된 거잖아요.”

    서충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침을 삼키며 술잔을 잡아서 단숨에 마셨다. 이시은의 고소해하는 표정이 절로 보였다.

    긁은 건 단 한 번에 불과했다. 그 이상은 싸움이 날 수 있었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재밌겠지만 그런 급발진은 내 의도가 드러날 수 있어.’

    산박이 경계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 이 팀장은 상식적인 선에서 서 팀장과 잡담을 떠들었다.

    서충호의 감정이 조금 풀어졌을 때, 이시은이 일어났다. 그리고 또 한 번 긁었다. 강중강. 나쁘지 않은 수법이었다.

    “서 팀장님도 전담 팀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안정적이라던데.”

    “그럴 거면 그냥 공무원 했겠죠.”

    이시은은 마음 같아서는 ‘인구 1억 5천 중 공무원의 숫자는 250만뿐이잖아요.’라고 대꾸해 주고 싶었지만 웃음 한 번 날려주고 되돌아갔다.

    서 팀장과 같은 전방 직업인 2레벨 던전 사용자들이 분개했다.

    “무슨 말을 저렇게…….”

    “술 당기게 만드는 데는 귀신같은 팀장입니다.”

    서충호는 웃으면서 가볍게 그 의견에 동의했지만 손으로는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강하게 술잔을 쥐었다.

    ‘분하다.’

    실력으로는 그가 이시은보다 조금 아래일 수밖에 없었다. 현실은 착하다고 재능 하나 더 던져주는 것도 아니고 악하다고 재능 하나 덜 던져주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 운이었다.

    그사이에 매주궤는 헤실거리면서 태산박에게 다가가서 손을 싹싹 파리처럼 비비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부탁을 하나 받았는데, 그걸 말하려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헤헤,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요.”

    “네. 말해 보세요.”

    태산박은 그렇게 말하면서 능숙하게 술잔을 건넸다. 매주궤가 냉큼 술잔을 받아 들었다.

    쪼르륵.

    가장 도수가 강한 소주가 잔에 담겼다. 가벼운 맥주, 적당한 전통주 사이에서 소주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위해 도수 30도를 유지하고 있는 강한 술이었다. 시뻘건 두꺼비가 그려진 라벨이 붙은 소주병을 손에서 놓고 산박도 잔을 들었다. 잔과 잔이 부딪쳤다.

    ‘윽.’

    매주궤는 이를 원샷 하며 인상을 확 찡그렸다. 목 넘김이 장난이 아니었다.

    “후으!”

    ‘호쾌하다!’

    기분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마치 몸을 낭떠러지에 내던졌을 때와 비슷할 정도로 짜릿했다. 눈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콜라를 마신 듯한 기분보다 더했다.

    “2레벨 공략 팀에 속하고 싶다고 하는 이가 있는데, 카르마도 제법 모았습니다. 말씀만 해주신다면 바로 2레벨로 레벨 업 할 수 있습니다.”

    “실력은요?”

    “제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덩치가 산만 합니다.”

    “정령 검사, 김은섭. 맞습니까?”

    그 특징에 산박이 그 이름을 논하였다. 매주궤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정답을 맞혔다. 자신의 회사에 다니는 사원의 프로필은 모두 암기하고 있는 게 산박이었다.

    “여,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직업은 그저 그렇지만 육체 능력이 뛰어나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2레벨 던전 사용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까?”

    “예. 물론 옥시모론 기업에서 공략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산박이 눈을 빛냈다.

    ‘나쁘지 않다.’

    키 185cm, 체중 138kg를 지닌 김은섭은 훌륭한 전력이 될 수 있었다.

    “날 맞춰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주궤가 고개를 숙였다. 물론 산박은 그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청탁받았는데 어깨에 힘은 한번 주고 가셔야죠.”

    산박이 지갑을 꺼내서 10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을 꺼내 그에게 줬다.

    “그냥 주는 거 아닙니다. 김은섭 씨와 단독으로 만나서 이야기 한번 잘해 보세요.”

    “아, 예!”

    얼떨결에 그 돈을 받은 매주궤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돈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기에 급히 고개를 숙였다. 돈 앞에서 몸은 솔직한 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