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3화 (243/270)

243화

* * *

“안 된다니까!”

쾅!

사무실에서 용두태 사장이 책상을 크게 후려갈겼다. 배둔국이 일어섰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에 용두태 사장도 일어서서 볼을 긁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고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용두태는 1톤 트럭을 몰고 다니는 이들을 관리하며 세종시에서 안 끼는 데가 없는 트럭 인력 사장 중에서도 인망이 두툼한 자였다.

특히 그럴 수 있는 이유는 1톤 트럭 사장들을 대우해 주고 그들의 경조사를 챙기며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똑같은 트럭 사장들의 연락책이 되어서였다. 스스로 발품 팔고 연락을 돌리며 나서서 사회 활동 하기에 그들로부터 완장을 받은 것이다. 숫자가 제법 모이자 양심적으로 돈도 내주면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자가 바로 1톤 트럭 사장 용두태였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상대는……. 알잖아. 우리가 건들 사람이 아니야. 자네도 손 떼고 와. 점점 유통이 중요해지고 있어. 트럭 모는 사장님들만 한곳에 잔뜩 모아둬도 거기서 나오는 돈이 제법 된다고. 내가 확실하게 밀어줄게.”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그가 몸을 돌리자 결국 용두태 사장이 다시 그를 불렀다.

“잠깐만, 배 사장……!”

배둔국이 발걸음을 멈췄다. 용두태 사장이 그를 끌고 왔다. 그러더니 이내 서랍에서 무언가를 챙겨서 서류 봉투에 넣어 건넸다.

“1억이야.”

“사장님……. 감사합니다.”

“투자하는 거야! 그냥 주는 건 당연히 아니고. 그리고 여기. 제법 성질 급한 놈들이고, 아직 결혼도 안 한 놈들이야. 사업 이야기에 넘어갈지도 몰라.”

용두태는 명단도 하나 넘겼다. 젊은 혈기로 똘똘 뭉친 놈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혈기가 있어야 연기 가문과 박치기라도 한 번은 할 것이었다. 패배한다면 꼬랑지 말고 도망갈 뿐인 놈들이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이 정도밖에 못 해줘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진작에 힘들 때 사장님을 찾아올 걸 그랬습니다.”

“이 사람이? 돈 달라고 오면 한 푼도 안 주는 게 나야! 그저 비전이 있어 보여서 간잽이질 하는 거지.”

“1억에 사람 명단 주는 게 무슨 간잽이질입니까.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어여 가봐.”

배둔국은 그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총알 1억. 남에게 내세울 X대가리 하나 없는 것이 배둔국이었다. 1억조차도 아쉬웠는데 운이 좋았다.

그는 그 외에도 닥치는 대로 자신이 아는 인맥을 방문해서 함께할 것을 부탁하고 설득하려 했다. 대부분 거절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미쳤어? 배 사장! 세종시 사과 통제하니까 자네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아? 정신 똑바로 차려! 다시는 이런 일로 날 부르지 말게!”

막 딴 막걸리를 그냥 두고 서둘러 자리를 일어나는 자들도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그를 심히 염려하는 자들도 있었다.

“자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공무원이 매일같이 찾아와서 점검하고 가면, 장사가 되겠어? 죄다 편법이고 불법이야! 법 지키면서 사업하는 놈 중에 돈 많이 벌거나 장사 멋들어지게 하는 놈들은 난놈들뿐이야. 근데 자네는 난놈이 아니야. 날려면 도움닫기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이 날개도 달아 줘야지. 근데 누가 달아 주냐고. 달아줄 사람이 있냐, 이 말이야. 제발 공무원 건들지 말게. 사람 귀찮게 하는 데 도가 튼 놈들이야.”

출퇴근 도장까지도 지문을 위조해 찍어놓고 동료들 대신 착실하게 챙겨주는 게 공무원이라는 도둑놈들이었다. 그 정도로 불법, 편법 취득을 거리끼지 않으며 서로 죄를 공유하는 공무원들은 끈끈한 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주 조심해야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장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중간 관리직에 해당하는 5~7급 공무원을 상대하는 건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었다. 인맥을 통해서 공무원을 이기는 직업을 가진 자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엉망진창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배둔국은 상처를 입고, 위로받고, 거절당했다. 치고, 박고, 부딪쳤다.

결국 그는 하나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거리낌 없이 억 단위를 펑펑 쓸 수 있는 연기 가문에 비하면 보잘것없었지만, 배둔국은 만족했다.

‘이걸로 연기 가문과 얼추 비슷하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

발악 개발악, 똥밭에서 뒹굴어 봤자 결국은 똥밭이다. 배둔국과 인연을 가진 이들 중에서 가장 크게 그에게 힘을 준 것은 결국 처음 만난 용두태 사장이었다. 그래도 배둔국은 웃었다.

그는 차를 끌고 세종시에 있는 옥시모론 기업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 인근에 있는 카페에서 2층으로 올라가자 이미 태산박이 커피를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배둔국과 악수하고 인사를 나눴다.

“눈이 퀭하십니다.”

산박이 그를 보며 웃었다. 통화 이후, 일주일이 지나서 마주하게 됐다. 배둔국의 얼굴은 좋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립밤을 발랐음에도 입술이 트고 갈라진 게 보였다. 퀭한 눈 밑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전보다 더 열이 차오르는 기분이고, 컨디션도 좋습니다.”

살면서 평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몇 없다. 하나의 목적, 그 목표를 움켜쥐는 건 힘든 일이었다.

중산층 집안은 아이의 성장 설계까지 부모가 관여하여 목표를 잡는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가진 자들이고, 배운 자들이었다. 땡볕 아래에서 먼지 뒤집어쓰면서 살라고 말한다면 열 명 중 몇 명이 그렇게 살겠다고 기꺼이 외치겠는가. 모두가 원하는 게 관리직이고,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그 인간의 심리를 모르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힘들고 고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자들이었다. 달마다 백만 원 꽂히는 삶과 달마다 5백, 천만 원씩 꽂히는 삶은 확연하게 달랐다.

중형차 뽑았다고 좋아해도 한 달에 수십만 원씩 할부금 갚아 나가다 보면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게 되기 마련이다. 돈은 그러한 것이다. 간사한 사람의 마음을 더욱 간사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배둔국은 기회를 그 두 손으로 잡아챌 수 있었다. 오랫동안 그를 찾아오지 않은 기회가 운 좋게 찾아왔다. 닥치는 대로 달려들 정도로 마음의 장작을 태울 수 있었다. 그 결과, 태산박을 끌어낼 수 있었다.

‘여기서 보여줘야 한다.’

모든 것이 갈라질 것이다. 이것저것 해보고 이놈 저놈 만나보고 그 날것을 마주한 배둔국이 가진 마음의 재산, 지식의 재산은 상당했다. ‘촉’이 있었다. 한 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실패한다면 나는 퇴장해야겠지. 길어 봤자 3년 혹은 5년 내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바스러질 것이다.’

반항한다면 죽을 수도 있었다. 명퇴를 요구하며 벽만 볼 수 있도록 세팅을 마쳐놓은 아무것도 없는 책상에 앉은 것처럼……. 그렇게 될 것이었다.

‘반대로 내가 한 방 먹인다면, 난 이대로 계속 사업을 진행하고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겠지.’

그것뿐이다. 밥 빌어먹는 것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미래가 조금 더 보장되는 것뿐이었다. 배경 없는 놈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대장군까지 오르는 것뿐이었다.

하물며 배둔국이라면 대장군은 고사하고 장군도 하기 힘들었다. 그가 올라설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라도 오르고자 하면 목숨에 준하는 것을 내걸어야 했다.

‘베팅할 만하다.’

태산박은 배둔국에게 바짝 숙여 살라 말했다. 그게 현실적이며 최대한 많은 이득을 가지고 떠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돈으로 재기를 꿈꾸든가, 현상 유지 하며 소소하게 벌어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것도 가능했다. 그는 그렇게까지 먼 곳을 내다보며 해결안을 내줬다. 조금 거칠었지만, 그마저도 감사하게 여겨야 했다.

‘진실한 남자다. 베팅할 가치가 있다.’

배둔국은 가진 카드를 모두 꺼내 보였다. 산박이 가방에서 나오는 서류들을 훑었다. 그중에는 돈도 제법 있었지만 산박은 돈부터 그에게 돌려줬다.

“왜 받지 않는 것입니까?”

“돈으로는 날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의미 없어서 다시 건네드리는 것뿐입니다. 다른 걸 보여 주시죠.”

“…예.”

뇌물이 통하지 않는 게 태산박이었다. 물론 이 돈을 받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돈을 받는 순간 ‘변수’가 생긴다.

‘아직은.’

그 변수를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권력을 잡고 세상에 군림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돈을 탐닉한다. 그 돈을 탐닉하는 순간 자신의 사회인으로서의 수명이 빛나도록 타오르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쳇바퀴 도는 햄스터가 지쳐 쓰러지듯이, 끝없이 쏟아지는 모래시계 속의 모래처럼 빠르게 사라진다는 걸 몰랐다.

인간 백정으로 살아가며 남의 피로, 사람의 죽음으로 생존했던 태산박은 이를 잘 알았다.

“사장님께서는 전에 대전 상인 공회에 유통을 대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걸 제가 이어서 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태산박이 눈을 반짝였다.

“할 수 있겠습니까?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하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사과 팔면서 유통은 빠삭합니다. 다 거기서 거깁니다.”

이에 태산박이 고개를 저었다.

“다릅니다.”

단언했다. 던전 아이템 취급했다가 욕심부리고 골로 간 놈들은 셀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배둔국의 자신감은 오히려 태산박이 부정적인 태도를 내비치도록 만들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뒷말을 이어 나갔다.

“전에 말씀을 드렸을 겁니다. 쥐 죽은 듯이 납작하게 살면 적어도 3년은 잘 버시다가 빠져나가게 될 겁니다.”

이곳에 그가 있을 자리는 없음을 말했다. 그래도 배둔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유통이 욕심을 부리면 배가 갈리지요. 하지만 저는 다르다는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나만 맡겨 주십시오. 1년, 5년, 10년. 그때까지 버텨 보이겠습니다.”

그가 납작 엎드렸다. 그 모습은 실로 그럴듯해 보였으나 아쉽게도 태산박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배둔국은 지금 자신이 준 답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에 불과했다.

‘당장은 그렇게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장기간 그렇게 하기란 힘들었다. 그 각오? 우습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간에게 대나무가 되라 말하는 것과 같았다. 남의 말에 따라 평생 고행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잘 없었다.

‘한 번쯤은 믿어줘도 되겠지.’

믿을지 안 믿을지, 그런 놈인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은 시험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인삼 사업을 해볼 생각이 있습니까?”

“예?”

배둔국이 어리둥절해했다. 태산박이 누구인가. 연기 가문과 연을 튼 던전 기업인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삼이라니? 당황스러웠다.

“제 사람 중에 한 명이 삼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법 튼실한 놈인데, 마진도 제법 됩니다만… 아무래도 던전 사용자라서 그렇게 큰 수익은 되지 않습니다.”

“그걸 해결하라는 소리입니까?”

“예. 최소 3년. 그동안 저를 보고 했던 결단을 지켜 나간다면 제 기업에 들어오게 해드리겠습니다.”

“태 사장님의 기업에 취직하라는 소리입니까?”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큼 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따로 있겠습니까? 설마, 월급 걱정 하시는 건 아니시지요?”

그가 농담을 던지자 배둔국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믿고 봐주십시오. 훌륭히 해내겠습니다.”

그 정수리를 보며 산박은 그에게 시험지를 건네줬다. 서충호가 관리하는 인삼의 유통을 맡길 심산이었다.

“가져갈 마진은 10%. 서충호 팀장이 가져갈 마진은 90%입니다. 최대한 값 올려서 팔아 보세요.”

“예!”

터무니없는 요구였지만 배둔국은 냉큼 수락했다. 그 끝에는 태산박 아래로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지금부터 죽은 것처럼 사회 활동 하셔야 할 겁니다.”

“누우라면 눕겠습니다.”

“좋습니다. 필요한 건 서 팀장의 연락처를 줄 테니 논의하십시오. 제가 미리 연락을 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남을 끝마친 태산박은 또 다른 이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이 팀장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장님, 너무 흥분하지 말고 들으세요.

“예.”

―저 3레벨이 되었어요.

“축하합니다.”

―…제 말은 너무 흥분하지 말라는 소리였어요.

“와! 3레벨! 대단해요!”

―아! 진짜!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직원 중에서는 제가 1등이잖아요.

“회사 차원에서는 2등 아닙니까?”

―어쨌든 축하해 주셔야죠.

“조촐하게 상여금이나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공개적인 자리에서요. 오랜만에 날 잡아 주세요.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두 번째 3레벨 달성자의 말이다. 안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요즘 잘 안 모이기도 했으니까, 이런 일도 있어야지.’

사장 처지에서는 회식이 있기는 있어야 했다. 서로 간의 교류는 술과 음식이 곁들어져야지 긍정적인 법이었다.

“좋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사장님! 한우인가요?

“꿈도 꾸지 마세요.”

지금 터트릴 축포는 없었다. 태산박은 길강합 주임에게 연락해서 회사 전체 회식을 잡으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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