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 * *
여덟 시 뉴스의 시청률이 팍 올라섰다. SNS에서도 난리였고, 대구 사는 사람이 세종시까지 올라가서 사과를 사서 올 지경이었다. 그만큼 큰 이슈였다. 고기보다 비싼 것이 과일이고, 그런 곳이 대한민국이었다.
농사짓는 농부들은 돈이 안 되고 소비가 안 된다고 피눈물 흘리는데 정작 소비자들은 금값이나 다름없는 과일에 손가락만 빨았다. 오죽하면 못난이 사과부터 시작해서 못난 것들을 사는 것이 ‘가정용’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도매가격조차도 만 원이 넘어가는 곳이 심심찮다. 소비자가 구매하는 사과는 한 박스에 1만 5천 원에서 최대 5만 원까지 팍 뛰고 있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돈에 미친 놈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이는 자본주의의 속성이었다. 종교적인 도시조차도 관광 도시가 되면 세속적으로 변하고 여행자들을 등쳐 먹는 데 노련해진다. 목적지까지 1분 더 가는 데 만 원 더 달라는 소리가 쉽게 툭 튀어나올 정도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 관광 도시의 인간들이었다. 모든 것에 무뎌져 가서 마약을 찾는 재벌 3세들처럼, 사람 등쳐 먹는 일도 무뎌지고 무뎌져서 가볍게 여기는 택시 기사처럼 되어 버린다.
―세종시에서 사과 가격이 갑자기 폭락하여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은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원정까지 나가서 사과를 구매하여 가져오고 있다고 합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모자이크가 가득했다. 동네 마트였고, 여러 사장들로부터 물건을 받아 와서 판매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사장이 입을 열었다.
―모르죠. 왜 이렇게 싸게 주는지. 근데 이렇게 사과라도 싸니까 사람들이 동네 마트로 막~ 몰려온단 말이에요. 그럼 온 김에 다른 것도 사잖아요? 행복해요, 행복해.
―물량요? 하루에도 여러 번 와요. 처음에는 25톤짜리 트럭이 하나 왔다가 여기 대로에서 사과를 옮기는데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근데 요즘에는 1톤 트럭밖에 안 와요.
―1톤 트럭 그 사람들, 죄다 과수원 농부들이에요. 직접 와서 주고 가더라고요. 하여간 어느 사람이 이걸 주도했는지는 몰라도 대단한 사람이에요.
곧 기자가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엄청난 물량을 세종시에 있는 마트에 모두 대고 있는데 과수원 농부들의 덕이 컸다고 합니다. 저희는 수소문 끝에 세종시에 사과를 판 과수원 주인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모자이크가 전혀 없었다. 새까맣고 까무잡잡했으며 주름살이 많은 농부였다. 머리에는 예비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고맙지요. 처음에는 안 믿었어요. 이 사람아, 장난치지 말라고 그랬어요.
―왜 못 믿었습니까?
―아니, 그렇잖아요. 어느 누가 그걸 그렇게 비싸게 가져가요? 40kg 한 짝에 팔아도 제 손에 떨어지는 건 3천 원도 안 됩니다. 이마저도 못 팔아서 썩은 사과가 많아요. 4천 원 주면 절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더니 노란색으로 된 플라스틱 상자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 사과 한 짝에 40kg 들어갑니다. 이걸 짝으로 마흔 상자를 팔면 11만 원 돈이 손에 쥐어집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팔면 손해고 적자를 못 벗어납니다. 그런데 안 팔면 썩으니까 그거라도 경매장에 내놔야 합니다. 그걸 생각하면 마악, 눈물이 삐져나옵니다.
그가 울컥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흙이 잔뜩 낀 손톱을 보이며 눈물을 콱 훔쳤다. 자막으로는 ‘…….’이 들어갔다.
―그걸 킬로당 5천 원 주고 한 짝에 20만 원씩 쳐서 가져가는데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것으로 다시 화면이 돌아갔다. 트럭에 열심히 사과 박스를 싣고 있는 모습. 동네 아주머니들이 너도나도 나와서 사과 10kg 박스에 포장을 돕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종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과 가격 폭락은 과수원 농부들에게 큰 선행과도 같습니다. 보통 명절이 지난 시점에 경매장에 사과를 내놓으면 한 박스에 3천 원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종종 현금 대신에 계란 한 판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울분을 토하는 농부들이 많았습니다.
이내 그래프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못난이 사과조차도 구매하려면 1만 5천 원이 넘습니다. 택배비 또한 따로 지불한다고 했을 때 기본 가격은 2만 원에 달합니다.
다른 뉴스도 매한가지였다. 어떤 공영 방송은 경상도에 직접 내려가거나 경기도, 문경 등을 인터뷰한 것을 편집하여 보여 주기도 했다. 파마를 파방파방하게 한 아줌마가 아주 성을 냈다.
―작년에 내가 추석 끝나고, 짝당 2만 원도 안 주고 경매장 그 사람들이 9천8백 원에 가져갔는데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죽을 맛이었어! 그런데 짝당 20만 원에 가져가 주니까 얼마나 좋아?
화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옆에서 목소리가 툭 튀어나오기도 했다.
―어느 과수원이 안 주겠느냐고.
다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농가에 돌아가는 돈과 소비자에게 들어가는 사과 가격의 차이에는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합니다.
곳곳의 포털에서도 사과 가격에 대한 쟁점이 불거졌다. 정치인들은 눈치를 싹 보며 상황이 어찌 될지를 훑어봤다. 특히 보수 정치인들은 가장 먼저 눈알을 데룩데룩 굴려야 했다. 농가의 나이대는 높은 편이고, 그들의 표 지지 기반이었다.
반면 사과를 판매하는 중간 유통업자들의 세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 돈맛을 아는 정치인이 수두룩했다. 그렇기에 빠르게 판단하지 못했다.
“거기 경찰이죠? 앞에 트럭이 안 나가요! 지금 15분째 이러고 있는데 뭐 합니까?”
빵빵!
“비켜 주세요! 저 빨리 가야 한다고요!”
그 속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중개업자들이 트럭을 몰고 세종시 청사 앞 도로를 봉쇄해 버렸다. 묵직묵직한 화물 트럭을 앞세우는 경매쟁이들과 유통업자들 그리고 그 업으로 돈 벌어먹는 이들로 청사 앞이 북새통을 이뤘다.
“어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시장 어딨어! 이게 나라냐!!”
“꺄악!”
잔뜩 흥분한 민원인은 9급 공무원의 머리채를 잡기도 했다. 실로 난폭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올 돈이 턱 사라졌다. 광전사마냥 날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못했는데, 만만한 게 공무원이기 때문이었다. 수틀리면 가족들 좀 추려내서 민원 넣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쩔쩔맨다.
이곳에 유통업계의 웃대가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돈 쓰기 바쁜 게 그들이다. 최상위 포식자가 되면 그런 것에 일일이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처럼 벌금 물기 딱 좋고 체포되는 일에 나설 양반들이 아니었다. 관리직도 마찬가지였다. 잘리는 건 현장직이었다. 돈의 계급이며, 직함으로서의 계급이었다.
세종시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수십 명을 체포했지만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그만큼 중개업자들과 전국 사과 협회에서 단단히 독이 올라서 세종시로 덤벼들었다. 그곳에 흉수가 있다고 여겼다.
특히 배둔국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흐름을 탔다.’
배둔국이 웃었다. 애초에 자신은 더는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었다. 집도 나왔고, 호텔에서 지내고 있었다. 과수원 주인들이 서로서로 연락을 돌리고 배둔국에게 연락을 했다.
―야, 이 씨벌놈의 짱깨 새…….
뚝!
이를 틈타서 중개하는 놈들도 전화를 돌렸지만 깔끔하게 차단을 먹이면 그만이었다. 거기에 스트레스도 전혀 없었다. 욕을 먹기만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겠지만, 배둔국은 이들에게 복수할 수 있었다.
‘진짜 사람은 배경이 있어야 한다니까.’
부모 믿고 빚 없이 개원하는 의사와 빚내고 개원하는 의사는 시작점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적자가 나도 그냥 자본으로 밀어 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당연히 전국 사과 협회와 세종 은행을 콱 박살 내기 위해서였다.
‘이대로 한 달만 있어도 박살이 나겠는데?’
그렇게 히죽거리던 배둔국은 장지건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예! 사장님! 하하하! 뉴스 보셨습니까? 저희가 이겼습니다! 이대로 한 달, 아니, 보름만 되어도 세종시는 저희의 겁니다!”
―그것 말인데요. 슬슬 끝내세요.
“예? 아니, 왜요? 이대로 가면 대승입니다, 대승!”
―저야 모르지요. 어르신께서 그만하라고 하십니다.
그 말에 배둔국이 가슴을 쾅쾅 쳤다. 답답해도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지금 멈추면 저 새끼들 또 기어올라 옵니다!”
―어르신 말씀입니다.
“예. 일단은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예. 사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통화를 마친 배둔국은 바로 차를 끌고 장 노인을 찾아갔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정의 구현이 눈앞에 있는데 이를 하지 않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 * *
전국 사과 협회에 속해있는 박강민 이사가 차에서 내렸다. 그는 몇 번이나 머리통이 깨져야 했다. 실제로 그의 머리카락 사이에는 다섯 바늘이나 꿰맨 흔적이 있었다.
농부들 상대하는 것이 전국 사과 협회였다. 그 협회장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못 배워 먹고 손에 흙이나 묻히면서 지렁이처럼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약자를 상대할 때에는 깡패처럼 굴어야지 제대로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 그 덕에 그 밑에 있는 이들은 관리직임에도 일이 터지면 상처를 달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도망치지 않고 일하고 있는 건 모두 돈 때문이었다. 깽값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자기 자식도 화장시켜줄 수 없는 세상이 자본주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모도 없는 게 공산주의 세상이었다. 어느 쪽이든 빛과 어둠은 존재했다.
“여기인가?”
“예, 이사님.”
그의 말에 수행원이 냉큼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계단은 낮았지만 대문의 문턱 하나만큼은 높았다. 오래되어 보이는 한옥 집이었고, 규모가 상당했다. 이미 계단 위에는 사람 하나가 나와 있었다.
박강민 이사는 계단에 올라서며 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상대에게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반갑습니다. 연락드렸던 박강민 이사라고 합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참 많으십니다. 저는 장지건이라고 합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 잘 부탁하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굽신거리며 예의를 갖췄다.
장 노인의 앞에 앉자마자 박강민 이사가 대역 죄인처럼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아예 무릎까지 딱 꿇었다.
“죄송합니다. 설마 배둔국 사장의 뒤에 연기 가문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어허! 이 사람이 왜 이래? 누가 보면 자네를 죽이려는 줄 알겠어. 그런데, 협회장이 올 줄 알았는데, 이거 실망이로군.”
“지금 외국에 있으셔서……. 돌아오려고 해도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동남아시아에 계시는데 그쪽 인프라가 열악해서…….”
“음, 음.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거짓말이었다. 금방도 골통 터지고 병원에서 꿰매고 왔다. 여기에 속을 장 노인이 아니지만 부드럽게 넘겼다.
“이것은 저희의 작은 성의입니다.”
서류 봉투를 건네자 장 노인이 장지건에게 턱짓했다. 그가 이를 개봉하여 안에 것을 확인했다.
“차명 계좌입니다. 안에 든 스마트폰을 통해서 들어가시면 마음껏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판타지 쇼크’로 인해서 죽은 사람만큼 차명 계좌가 존재했다. 이후의 일을 정비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감당이 안 된다는 게 옳았다. 사실상 포기 상태였다. 그 덕에 대한민국은 조금 더 어두워졌지만 예산난, 인력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국가는 더더욱 심했다.
장 노인이 손짓하자 스마트폰이 건네졌다. 간단한 서류 내용에 따라서 인터넷 뱅킹에 접속하자 액수가 그 눈에 들어왔다. 80억.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미안하지만 이번 일로 인한 손해를 메꿀 가격은 아니군.”
‘현재까지 구매한 사과의 양은 15만 톤.’
현금으로는 75억. 과수원 주인들이 하나같이 싼값에도 통쾌하게 대량을 건네줬다.
하지만 연기 가문은 전국 사과 협회와만 싸운 게 아니었다. 제2금융권에 속하는 지방 은행인 세종 은행과도 싸웠다. 혈족들을 움직이기 위해서 돈도 제법 뿌려야 했다.
이에 박강민 이사가 스마트폰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50억이 들어 있습니다.”
과수원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고혈 빨아서 가득 돈을 챙긴 것이 전국 사과 협회였다. 배달 앱보다 먼저 플랫폼을 장악하고 사과 생산하는 농가를 주먹으로 쥐어짜던 것이 전국 사과 협회였다. 돈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저 사는 세계가 달랐다.
연기 가문은 연기 가문대로 오랫동안 나랏돈 먹으면서 꾸준히 재력을 쌓아왔다. 이 또한 사는 세계가 달랐다.
“그 정도면 퉁칠 수 있겠어. 하지만 성의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힘들군.”
“저희 사정도 봐주십시오.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겠습니다.”
“허허, 이거 참…….”
장 노인이 웃었다. 그리고 술을 가져오라 명했다. 안줏거리와 함께 술이 올라왔다. 상은 당연히 겸상이 아니라 독상으로, 각자의 앞에 따로 놓였다.
이에 박강민 이사가 침을 삼켰다. 술자리를 준비했다는 건 그만큼 자신들의 제안을 허락할 공산이 크다는 소리였다.
장 노인은 작은 목함 하나를 꺼내서 박강민 이사에게 전달했다. 그가 곧바로 목함을 열어봤다. 호박색의 젤리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뭡니까?”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의 사과 시장을 집어삼킬 혁신 던전 아이템이지.”
융합 주문으로 만들 수 있는 ‘나무 생육 호박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건아, 말해줘라. 어떤 것인지.”
그가 이에 관해 설명하자 박강민 이사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아쉽구먼, 서로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당장 눈앞에서 이리저리 눈알 굴리는 꼴이 참 보잘것없군. 배웅은 하지 않겠네.”
“예? 아! 자, 자자자, 잠시! 어르신!”
그가 소리를 쳤지만, 순식간에 집 밖으로 내쳐졌다. 이를 해결하려면 협회장이 와야 할 것이었다. 그게 장 노인이 원하는 바였다.
‘이번 일이 끝나면 배둔국도 대가리가 커지겠지.’
그 전에 한번 부딪쳐야 했다. 장 노인, 박강민 이사의 머릿속에서는 일반 시민들이야 어찌 되든지 알 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