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0화 (240/270)
  • 240화

    * * *

    부동 지구가 움직였다.

    “다 빼내라고. 수익률 기대하지 말고, 이 사람아.”

    ―예!

    장가(家)에는 7급~4급 사이의 공무원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건 5급 공무원들이었다. 딱 중간 관리직의 대가리고, 평범한 사람은 닿을 때도 있고 못 닿을 때도 있는 게 5급이었다.

    “응, 략림이(略林). 다름이 아니라, 자네 저번에 은행 적금 때문에 가문에서 지원을 해줬지? 그거 다시 달라는 건 아니고, 그중에 세종 은행에도 제법 넣어 뒀었지? 응응, 그래. 2천만 원? 내가 그것밖에 안 줬어? 3천만 원 따로 또 보내줄 테니까 거기 다 빼고, 아예 통장을 해지시키고! 다른 계좌 번호 말해줘.”

    장 노인은 장가의 공무원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바빴다.

    “아니야~ 별일은 없고 그렇게만 해줘. 응, 그래. 곧 결혼식? 암, 다 데리고 가야지. 내가 힘 써봄세. 응응. 하하하! 그래, 그래!”

    당연하게도 공무원은 철 밥통이고, 웬만해서는 깨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현금이 착실하게 들어오는 훌륭한 돈주머니들이었다. 나랏돈을 받아먹고 살기 때문에 경제에 크게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공무원이라는 안정직을 살기에 위험한 투자는 하지 않는 편이었다. 이러한 조건들이 쌓이면서 연기 가문의 대부분 자금은 은행에 적금 형식으로 들어가서 이자를 받아먹고 있었다.

    동상을 입어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알래스카 대게잡이에 사람들이 끝없이 들어가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자빠지는 온갖 사업들 덕분에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특히 던전 경제야말로 최고의 세계 산업 중 하나였다. 과학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쏟아져 나왔기에 사람 피로 생산하는 던전 상품들은 불경기에도 혼자서 호황을 누릴 만한 산업이었다.

    그 덕에 대출은 더욱 많아지고, 경제는 선순환의 구조로 돌아가고 있었다. 은행은 대출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 적금 금리를 자연스럽게 올렸다. 작게 노는 개미들의 돈을 모아서 크게 대출을 때려 넣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그 수혜를 부동 가문은 확실하게 누리고 있었다. 5천만 원만 보호해 주는 탓에 수많은 은행에 돈을 넣고 있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세종 은행, 제2금융권. 그곳도 예외는 아니었고, 점심시간부터 그곳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통장 해지하려고 왔습니다.”

    M 자 머리가 화려하게 벗겨진 신사가 자리에 앉았다.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 있었다.

    “토, 통장 해지요?”

    “예. 여기 신분증 있습니다.”

    신사는 고분고분한 말을 하며 신분증을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이 이를 받아 들었다. 평범한 계장에 불과한 여직원은 이내 아주 죄송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VIP 고객이셔서 바로 안쪽에서 대리님께서 봐주실 겁니다. 제가 안내를 해드릴까요?”

    “아닙니다. 해지라서 가볍게 하려고 했는데, 허허.”

    그가 서글서글 웃으면서 고분고분 그 말에 따라서 안쪽 방으로 향했다. 반투명한 유리 벽으로 막혀 있었고 투명한 유리문이 열려 고정되어 있었다. 안에 있던 대리가 황급히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하며 의자에 안내하고 문을 닫았다.

    “장칙섭 고객님, 어떤 사유로 해지하시려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집안 때문에 해지하려고 합니다.”

    “아……. 대출이나 뭐 그런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저희가 무이자로 대출해 드립니다. 굳이 통장을 다 해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중에 가면 공인 인증서부터 시작해서, 지금 OPT도 하셨는데, 또다시 발급해야 할 수 있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해지해 주세요.”

    “통장이 세 개나 되는데 전부 해지하지 마시고, 돈 때문에 그러신다면 통장 하나만 해지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장기 적금을 깨면 회수금이 크지 않습니다, 고객님.”

    “예. 알고 있습니다. 해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

    그 말에 박 대리는 더 말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단호박도 이런 단호박이 없었다.

    “인터넷 뱅킹 아이디에 공인 인증서, OTP, 체크 카드까지 모두 폐기됩니다, 고객님. 통장은 놔두시고 적금만 깨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럼요. 알고 있죠. 해지해 주세요.”

    박 대리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더 할 것도 없었다. 결국, 해지하게 되었다. 돈은 다른 통장으로 입금 진행이 이루어졌다. 마지막에 악수하며 장칙섭(章則攝)이 한마디 했다.

    “세종 은행이 요즘 참 무섭습니다. 이것저것 사람 패고 다니는 걸 마다치 않는 것 같아요.”

    “예?”

    “전국 사과 협회 말입니다. 그쪽이랑 일 하나 하고 있던데, 두고 보십시오. 그럼 수고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빠져나갔다.

    이내 곧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갑자기 VIP, 최소 1억 원에서 최대 3억 원까지 은행에 돈을 맡기고 있는 이들이 계속해서 통장 해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VIP 취급을 받고 있었기에 계장급으로는 대응할 수 없었지만 대리만으로는 손이 부족해서 계장 혹은 주임까지 통장 해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고객들이 다급히 자신의 친지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심상치 않으니 세종 은행에 예금한 돈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소리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해지 신청이 주춤했을 때, 세종 은행 본사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본사가 발칵 뒤집히는 것이 당연했다. 단 한 시간 삼십 분 만에 75억이 사라졌다.

    동시에 지라시가 돌며 세종 은행에 돈을 맡겨두던 재력가들의 돈까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미리 돈을 받은 기자의 탈을 쓴 조회 수 기생충들이 오후 열두 시를 기점으로 이미 기사를 쏟아낸 상태였다.

    [세종 은행 뱅크 런 조짐?]

    [던전 경제가 만들어낸 고금리 시대, 세종 은행의 폭주 사고 터졌다]

    [대출에 미친 은행들, 조심해야 할 때가 왔다!]

    [정치인들도 못 막는 은행들의 대출 나들이 그 첫 결과물, 세종 은행의 이번 사태가 우리나라의 이번 분기 상황과 닮은 꼴이라는 말일까요?]

    [전문가들 매우 급해졌다! 당장 세종 은행에서 돈 빼야 한다!]

    순식간이었다. 오후, 문 닫기 전까지 돈 빠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연기 가문은 이에 더욱 박차를 가해서 총 5백 명이 8백억 원을 빼버렸다. 분산 투자를 해서 한 명당 그렇게 많은 돈을 두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대단히 많은 돈이었다. 그게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가문의 힘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그들 가문원이 아니더라도 부하 직원 중에 세종 은행 쓰는 사람이 있으면 돈 5만 원 한 장 주며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공무원에게 5만 원은 상당한 금액이었다. 말단 공무원일수록 5만 원에 더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고객들도 돈을 빼냈다.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단 하루 만에 세종 은행은 곤죽이 났다. 메이저 은행이 아니고 평범한 지방 은행이었던 것이 컸다.

    개소리 짭짭 소리를 떵떵 내뱉고 다녀도 큰 처벌을 받지 않는 조회 수 기생충 기자들 덕분에 큰 파도가 일어났다. 대부분 고객이 떠나 버렸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뱅크 런이 터져 버렸다.

    대출 장사를 너무 많이 한 상태에서 퇴직금 두둑하게 받고 돈도 꼬박꼬박 나오는 공무원 가문이 손을 뺐다. 조회 수에 자기 부모도 팔아 버리는 가짜 기자들도 금일봉 받고 칼춤 추는 처형자처럼 펜 춤 추며 세종 은행을 공격했다. 조회 수가 제법 되자 다른 기자들도 너도나도 기사를 똑같이 복사해서 제목만 바꾸고 바로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호들갑 떨면서 쌈짓돈 빼고, 자식 대학 보낼 돈 빼고, 노후 자금 빼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실행했다.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돈 빼는 것도 재빨랐다. 어디서 들었는지 80대 노인도 허겁지겁 손자 손 잡고 와서는 돈을 빼 갈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데, 그 삐끗한 행동 때문에 표적이 되어서 하이에나들에게 그대로 심장까지 내줘야 했다. 너무나도 허망한 결과에 연기 장가(家)가 황당해할 지경이었다.

    일반 고객까지도 돈을 못 돌려받는 사태까지 일어나자 저녁 여덟 시 뉴스에 나오기까지 했다. 그들로서는 기습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은행 대출 상황은 막장을 달리고 있었다.

    손쉽게 세종 은행을 박살 내놓은 연기 가문은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 본래는 그렇게 압박을 가하고 세종 은행에 돈을 투자하는 투자자들에게도 접근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서둘러 멈췄다. 제2차 공격을 하지 못했다. 상대가 너무 쉽게 무너져서였다.

    “지방 은행이라도 이렇게 무너지다니, 얼마나 대출 잔치를 벌였던 거야? 은행이 돈을 안 쌓아놓고 뭐 하는 짓거리인지.”

    장 노인이 혀를 찼다. 하기사, 호랑이를 누가 잡으려고 하겠는가? 자신들을 조직적으로 노릴 덩치 큰 놈들이 없다고 여겼을 터였다. 웃대가리도 순수익보다 더 많은 돈을 챙겨 먹고 있었고, 한국은커녕 하와이에서 살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대한민국에서 쓰이지 않고 엉뚱한 외국에 풀리고 있는 셈이었다.

    ‘매국노 새끼들.’

    적어도 부동 지구에서, 대한민국 땅을 벗어난 적이 없는 장 노인 같은 극렬 보수주의자에게 있어서 그런 행위는 반민족 행위나 다름없었다. 돈은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 외국에 나가면 자국민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특히 나랏밥 먹고 사는 게 연기 가문이었다. 그들의 돈은 국민들의 혈세였다. 노르웨이에 가서 7만 원짜리 송어스테이크 하나 처먹을 바에는 국밥 열 그릇을 먹는 게 더 애국하는 일이었다. 자식이 죽어도 장례식을 못 차려주는 사람이 아직도 존재하기에 더더욱 그들은 애국 행위를 좋아했다. 연기 장가(家)만큼 민족주의가 만연하게 퍼진 가문도 없었다.

    산박 또한 이 소식을 접했다. 장지건이 연락을 넣었다.

    “예. 인터넷 뉴스로 봤습니다. 대단합니다. 앞으로 연기 가문과 끈끈한 관계를 계속 맺고 싶을 정도로 화끈한 한 방이었습니다.”

    ―회생 절차는 이루어질 겁니다. 요즘 은행 가질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운입니까? 연기 가문은 거기에 베팅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다른 기업들은 아닐 겁니다.

    무리한 대출로 고객에게 현금을 주지 못하는 순간 모든 게 붕괴했다. 제2금융권 세종 은행의 말로였다. 그저 조금만 밀었을 뿐인데 다른 이들이 알아서 곤죽을 내놓았다.

    ‘뭐 이렇게 멍청해?’

    운이 겹치긴 했지만 최소 수천억 원의 자본이 이동하는 지방 은행이 한순간에 몰락했다. 산박이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너무 허무하게 박살이 났다. 하지만 이건 산박이 연기 가문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었다.

    * * *

    경상북도. 청송군, 외곽. 방관산 근처.

    25톤 트럭이 과수원의 공터에 들어섰다. 그 뒤로 승용차도 한 대 들어왔다. 배둔국이 능숙하게 주차를 하고 나오자 과수원 주인들이 너도나도 달려왔다.

    “아이고! 사장님! 반갑습니다!!”

    “예, 예! 하하하! 사과는 준비 다 되어 있습니까?”

    “말도 마십쇼! 여 근처 창고란 창고는 싹 다 돌아서 미리 다 준비를 마쳐 두었습니다. 딱딱 방문만 하시면 사람들이 옮겨드릴 겁니다.”

    “아, 그래요? 일 처리가 빠르십니다. 사과 재고가 좀 많지요?”

    “강원도 사과를 누가 쳐줍니까. 출하량이 많아서 무식하게 물량으로 밀어붙여도 소비가 안 되니 걱정이지요.”

    “이 중간 업체가 문젭니다. 안 그렇습니까? 경매장에서 돈 떼이고, 오고 가는 데 또 돈 떼이고. 그런데 사과가 소비자한테 싸게 가겠습니까?”

    “요즘은 온라인이니 뭐니 해도 올려도 사는 사람이 없어요.”

    이에 배둔국이 때아닌 훈수를 뒀다.

    “돈을 먹여야 노출이 되니까요. 그런 거 아무 소용이 없다니까.”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쳤다.

    “내가 싹 다 사서 쉽게 팔아 드리겠습니다. 이번 달 내로 5만 톤 거래하겠습니다. 아는 사과 사장님들한테 빨리빨리 연락 돌리세요. 빨리 연락하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트럭도 렌트 가능하시면 좋고요. 아니! 아예 세종시로 가지고 오시면 즉시 입찰해 드립니다.”

    “허업.”

    그들이 까무러쳤다. 하지만 이내 배둔국에게 손을 싹싹 비볐다. 당장 25톤 트럭이 사과 상자로 가득 찼다. 트럭을 보내고도 또 다른 트럭을 마을 사람이 끌고 왔는데, 트럭에 이미 사과가 가득했다.

    “몇 톤입니까?”

    “2.5톤입니다.”

    “1톤 트럭인데?”

    “3톤도 거뜬히 짊어지고 산길 타는 놈입니다.”

    “좋아요. 삽니다. 인터넷 뱅킹도 하시죠?”

    “예. 예.”

    배둔국은 연기 가문에서 준 돈을 이용해서 단번에 사과를 구매했고, 곧바로 세종시로 보냈다.

    그와 동시에 세종시에 사과 공세가 시작되었다. 15kg에 5,990원 균일가로 싹 다 풀리기 시작했다. 때아닌 사과 세일에 주부들의 눈이 돌아갔다.

    “여, 여기 이거! 다섯 상자요!”

    “아니, 다섯 상자 남았는데 그걸 다 가져가면 어떻게 해요, 아줌마?”

    “내가 산다는데 불만 있어요?”

    그걸 두고 주부들이 맞서 싸웠다. 자기 가족 먹이는 데 남을 배려할 수는 없었다. 당장 친가에 한 박스, 외가에 한 박스, 자기 가족 한 박스 먹고 동생 집에 한 박스씩 보내면 남는 게 없었다.

    “자자, 그만 싸우시고, 내일에도 또 들어옵니다. 다른 매장에도 들어올 겁니다.”

    배둔국 덕분에 싸게 사과를 들인 마트들은 오랜만에 자부심이 넘치는 말을 하며 그들을 중재했다. 괜히 자신이 대단한 사람처럼 굴었다.

    “정말이죠?”

    “예. 아니면 지금 매장에서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지금 미리 결제하고 가시면 배송도 해드립니다.”

    “바로 할게요!”

    세종시 사과 대란이 뉴스를 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배둔국에게 국영 방송국의 기자가 접근해 왔다. 원래라면 여기서도 빵 터트려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장 노인의 명령이었다.

    “인터뷰 안 합니다.”

    ―저……!

    뚝!

    배둔국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소란스러워질 필요가 없었다. 상대는 곧 굴복할 것이었다.

    ‘물량 넘치는 게 사과 농사인데, 감히 나한테 싸움을 걸어? 내 뒷배를 전혀 모른 죄, 아주 끝까지 가보자!’

    은행에서도 난동질을 피우며 경찰에게 끌려 나간 배둔국이었다. 깡 하나만큼은 확실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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