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8화 (238/270)
  • 238화

    연기 가문은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는 것을 산박에게 보여 주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자원과 영향력을 산박을 지키기 위해 쓴다는 사실을 그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그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며 산박은 흡족해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래서 내가 동맹을 한 거지.’

    딱 자신이 연기 장가(家)에 원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장 노인이다.’

    어르신이라고 부를 만했다. 지금같이 필요한 일에 도와주지 않는다면 함께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도와주지 않았다면? 드루이드 과수원 사업을 같이할 이유가 없었다. 과수원 위탁 계약이 만료되는 순간 남남이다.

    ‘그저 돈만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다.’

    사업 파트너는 더욱더 깊은 관계를 요구했다. 산박은 기반 자체가 없었기에 더더욱 그런 걸 원했다.

    특히 산박은 사업 위탁을 자주 하는 편이기에 연기 장가(家)는 이번 기회를 톡톡히 이용하려고 들었다. 그들을 상대하는 쪽만 큰일이 난 셈이었다. 배둔국만 보고 덤벼든 대가를 치르게 될 터였다.

    또한 산박은 이번 기회를 적절하게 이용하기 위해서 자신의 사업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먼저 서 팀장과 만남을 가졌다. 그는 ‘물의 나무’를 통해서 부업으로 인삼 사업을 하는 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목소리를 좀 내줘야겠지.’

    뜸하기만 하면 안 된다. 자주자주 얼굴을 보고 사업 이야기를 해야지 상대 또한 자신의 사업에 대해서 말을 하며 놓쳤던 것, 소홀했던 것을 고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관리직이 할 일이었다.

    치이이익!

    달구어진 불판에 삼겹살이 올라갔다. 숙성 삼겹살과 간장, 고추장 양념을 각각 또 따로 장사하고 있는 삼겹살 맛집이었다. 테이블에 오는 손님보다는 제육이나 간장을 포장해서 가져가는 사람이 더 많은 편이라 두 사람 근처는 텅텅 비어 있었다.

    “인삼 이야기 하고 싶다고 하시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왜요? 무슨 탐관오리가 됐습니까?”

    간단한 농담에도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웃기지 않을 때도 웃어야 하는 법이었다.

    삼겹살의 붉은 기가 절반 정도 사라지자 충호는 집게로 고기를 집어 불판에 주욱 한번 기름칠을 한 뒤 거기에 김치를 한 집게 턱 잡아서 넣었다. 그다음에 콩나물도 올렸다. 실로 능숙했다.

    그 과정을 끝내고 서로의 빈 잔에 술을 채워 넣었다. 단번에 한 잔 마시고, 각각 안줏거리를 한 입 했다.

    “어떻습니까?”

    본래는 물의 묘목을 은폐하기 위해서 만든 곳이 산박의 개인 낚시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드루이드의 본성, 그 충동을 막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레벨이 높아질수록 드루이드의 특성이 산박을 압박하고 있었다. 충동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낚시터같이 자연스러운 곳이 필요했다. 목재를 많이 쓴 곳이라 다행이었다. 실제로 산박은 현재 오두막과 창고를 오고 가며 지내고 있었다.

    “잘되고 있습니다. 점점 양도 많아지고 크기도 커져서 자주자주 팔 수 있다는 게 아주 좋습니다.”

    “나중에 톡톡히 받아낼 테니까 열심히 하세요.”

    “어우! 얼마나 받아내실 건지, 벌써 두렵습니다.”

    충호가 설설 기었다. 돈주머니나 다름없는 산박이었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장이었으며, 인삼 사업을 그냥 충호에게 던져준 고마운 사람이기도 했다. 돈 때문에 레벨 장비도 구하는 게 어려워서 성장이 막막했던 충호에게 있어서 산박은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보통 한번 구해주고 나면 볼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주 봐야 했으며 돈으로도 엮어 있었다. 교통사고 속에서 자신을 살렸다고 해서 현금 백만 원 주는 사람은 없다. 목숨 한 번 구해 줬다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자신이라고 여기는 사이코패스는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기에 산박은 충호를 확실하게 묶어 두었다.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확실하게 붙잡았다. 그렇기에 그가 설설 기고 있어야 한다.

    “가장 최근 수익금은 어느 정돕니까? 백만 원은 나왔어요?”

    “이것저것 빼서 130만 원입니다.”

    “많네요. 부업이 본업이 되어 버렸네. 축하합니다.”

    “모두 사장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자, 제가 싼 쌈 하나 드셔봐 주십시오!”

    “고맙게 받아먹겠습니다.”

    서로 분위기를 잔뜩 띄웠다. 틈틈이 인삼 사업의 미래에 관해서 묻기도 했다. 이에 충호는 횡설수설하면서도 어떻게든 답변을 마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지.’

    드루이드의 힘으로 하는 인삼 사업이다. 실패할 수가 없었다. 겉멋에 찌들어서 사업 확장을 할 수도 없었다. 물의 나무 덕택에 빠르게 성장하는 인삼의 개수는 한정적이었다. 그 덕에 충호같이 사업을 모르는 이도 충분히 돈을 벌 만했다.

    “그것보다 사장님, 길 주임이 최근 우리 회사에 던전 훈련소가 생긴다고 말하던데, 사실입니까?”

    산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추진하고 있기도 했다. 바로 부산 은행과 부산 금융의 지분을 일부 가지고 있는 동래 가문이 그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잔잔벼락 사업이 지닌 덩치 때문이지.’

    그 보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단순히 돈만 주고 끝낼 거리였지만, 문제는 산박이 지닌 가치였다. 이 때문에 부산은 산박에게 추가로 상을 내렸다. 그게 바로 던전 훈련소였다.

    “허, 대기업만 가지고 있다던데……. 저희가 그럴 덩치가 됩니까?”

    “안 됩니다. 그러니까 천천히 물색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아마 3레벨 던전 공략 전후로 갖춰질 것 같습니다.”

    “아하…….”

    서충호 팀장이 이해했다.

    ‘시기적으로 그럴듯하다.’

    레이드 던전에 속하는 3레벨 던전부터는 확실히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자신의 주문 영창 속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주문이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지, 또 위력이 어떤지에 대해서 데이터를 내고 이를 숙지할 수 있는 게 던전 훈련소였다.

    자신의 능력을 데이터화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공격 습관이나 방어할 때의 습관과 자세 또한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웬만한 던전 대기업은 던전 훈련소를 소유하려고 한다.

    야구 선수가 상세한 데이터를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던전 사용자 또한 자신의 능력을 모두 알고 있어야 했다.

    “너무 연연하지 말고 기다려 보세요. 만약 3레벨 던전 공략할 시점에도 안 되면 다른 곳 대여를 해서라도 데이터 취득 후에 공략 들어갈 겁니다.”

    “예.”

    서 팀장과의 만남 이후에 산박은 와촌리로 향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지.’

    세종시 부동 지구의 옆에 있는 산골 마을이었다. 산박은 그곳에 꿀통백까마귀를 소환하고 거의 버려두다시피 놔뒀다.

    ‘벌에게 온기를 줄 수 있기에 겨울에도 벌이 돌아다니지.’

    설탕물만 있으면 벌꿀을 양산할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만든 꿀은 꽃가루가 없다는 것이 흠이었다. 물론 실내에서 잘 키우면 가능하긴 가능했다.

    ‘꿀벌이 꽃가루를 엉덩이에 잔뜩 묻히고 다녀서 얻은 벌꿀이 진짜 맛이 있는 법이지.’

    풍미도 다르다. 그 사업성을 이번에 확인하러 움직였다. 이전에도 확인했지만 가능성만을 봤고, 이제는 확실하게 어느 정도 물이 올라왔을 터였다. 특히 난쟁이 텃밭꾼 소환 주문이 산박을 와촌리로 향하게 하였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비포장도로에 들어섰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끝없이 귀를 때렸다. 미리 이장 노갑비에게 말을 해놨기에 마을 회관 앞에 차를 대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산박은 시선을 느꼈다. 마을 회관의 입구에 마을 사람 여럿이 모여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이에 산박이 온 것이었다. 그들은 급히 담배를 끄고 대충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한 뒤에 안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죄다 지긋했음에도 산박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는 게 의미심장했다.

    ‘저럴 사람들이 아닌데.’

    촌일수록 웃어른에 대한 꼰대 문화가 많다. 그런데 자신에게 먼저 인사를 하다니? 아무리 까딱 인사라고 해도 인사는 인사였다.

    ‘무슨 일이 있겠는데…….’

    높은 확률로 벌꿀 사업에 대한 문제로 보였다.

    “음!”

    산박은 차 안에 있는 생수를 마시고 목을 가다듬었다. 촌 동네 잡것들이랑 드잡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없이 사는 것들이 이권을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기 마련이지.’

    자기 자식한테 손 안 벌리고 내 손자에게 용돈 쥐여줄 수 있으면 성공한 노년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남의 자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게 교양 없고 지능 떨어지는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를 직감한 산박이 문을 열고 마을 회관에 들어섰다.

    ‘역시. 아예 작정했네.’

    긴 상이 놓여있고 마을 사람 쉰여 명이 쫘르륵 앉아 있었다. 간단한 요깃거리와 술도 마련해 놓은 것이 긴장감을 어떻게든 떨어뜨려 놓으려는 모습이었다.

    “아! 어서 오게!!”

    이장 노갑비가 그를 크게 맞이했다. 포옹하려는 것을 산박이 팔로 막으면서 힘으로 우악스럽게 떨어뜨려 놓은 뒤에 악수를 하였다.

    ‘억! 무슨 힘이……!’

    산박은 레벨 업 시스템의 보조를 받고 있었기에 평범한 사람과는 확연하게 근력이 달랐다. 그 큰 차이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노갑비를 겁먹게 하였다. 출발을 늦게 해서 시비 털었던 소형차에서 레슬러가 튀어나온 격이었다. 그만큼 의외의 충격이 노갑비의 몸을 직접 흔들었다. 물리력만큼 사람 겁먹게 하기 좋은 게 없었다.

    “괜찮습니까?”

    산박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를 대하자 노갑비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를 가장 상석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미 임자가 앉아 있었다.

    걸어가는 내내 마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산박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제법 준비를 했는지 수군덕거리지는 않았다.

    “어이, 박 씨. 비켜봐. 태 사장 왔으니까. 여기 자네 자리 아니잖아.”

    “여기 이름표라도 붙여놨소? 안 붙여 놓았는데 무슨 내 자리, 네 자리요?”

    “전 괜찮습니다.”

    산박이 여유를 부리며 대충 아무 곳에나 앉았다. 그 맞은편에 서둘러 노갑비가 앉았다. 그는 다른 이들로부터 잔을 받아서 산박의 앞에 놓아주고 술부터 찾았다.

    “소주 좋아하나? 전통주는 어때?

    “맥주 있습니까?”

    산박의 말에 옆에서 누군가가 툭 내뱉었다.

    “아흐으! 사내자식이 무슨 맥주! 독한 걸 마셔야 사나이지.”

    꼰대 중의 상꼰대. 가장 피해야 할 인간. 철퇴를 대가리에 딱 내다 꽂아도 시원찮을 술 꼰대가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산박은 피식 웃었다.

    “내세울 게 독한 술 마시는 것뿐인가.”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어어어! 이거 왜 이래? 박 씨! 누가 박 씨 좀 데려가! 많이 취했네!”

    “내가 뭘 취했다고! 너 벌꿀 훔치러 온 거잖아! 저 사람 막아야 한다니까! 마을이 힘을 합쳐서 저지해야지, 왜 이렇게 술판만 벌이고 있냐고!”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그대로 끌고 사라졌다.

    “미안하네. 술에 취해서 아주 인사불성이라……. 미안해.”

    노갑비가 굽신거렸다. 산박은 그의 사과를 쉽게 받아들였다.

    “괜찮습니다. 술 취한 망나니 하나 때문에 고개 숙이지 마세요. 고개 드세요.”

    “고맙네. 여기, 내가 술 한잔 따라주지.”

    젊은 산박에게 이장이 공손하게 술을 따랐다. 산박 또한 그에게 술을 따라줬다. 안주로는 금방 잡아 끓인 백숙이 올라오고 부추전을 비롯한 온갖 전이 올라왔다. 간장 베이스에 후추와 고춧가루 그리고 참기름과 깨가 뿌려진 종지도 하나 턱 놓였다. 취향 차이를 고려해서 소금과 쌈장도 따로 올라왔다.

    산박은 살코기를 젓가락으로 크게 떼어내서 굵은 소금에 콱 찍어 바로 입에 가져갔다. 짠맛이 혀를 지배했고, 텁텁한 닭 가슴살과 함께 국물이 이를 중화하면서 자연스럽게 혀에 얽혀 들어 갔다.

    ‘맛은 있네.’

    제대로 닭 냄새를 잡았다.

    “국물이 조금 탁한데요? 된장입니까?”

    미약하게 된장 맛이 났다.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래. 여 요리하는 사람이 경상남도 출신인데, 무슨 요리든지 된장 내가 나야 하는 사람이야. 하하하!”

    식사하며 산박은 양봉 사업에 대해서 노갑비 이장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까마귀가 양봉을 제법 하지요?”

    이미 전에 한번 왔기에 속일 수는 없었다. 아주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게 아니었으며 지금 이렇게 산박이 온다는 것만으로 마을 사람이 모인 것만 봐도 양봉 사업의 영향력이 이미 와촌리를 집어삼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백까마귀 그놈이 아주 영물이야. 헤헤헤.”

    하지만 노갑비 이장은 돈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백까마귀에 대해서 논했다.

    “벌이 마을을 얼마나 그렇게 들쑤셔 놓는지, 사람 공격은 안 해도 깜짝깜짝 놀라!”

    자신들의 마을이 얼마나 고통받는지,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지를 먼저 이야기했다. 밑밥을 까는 짓거리였지만 산박은 가만히 들었다. 이들이 뭘 말하는지를 보고 박살을 낼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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