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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233/270)

2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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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는 그래도 사회 인프라가 많이 발달한 곳이었다. 곳곳에 현대적인 면모가 있었고, 특히 관광의 명소인 탓에 돈을 투자해서 전통적인 부분을 더욱 발전시킨 모습도 보였다.

“버스가 아기자기하네요. 이층 버스도 보이고요.”

“그래서 제가 시티 버스를 타자고 한 거죠.”

산박의 말에 송서아가 크게 동의했다. 일본 관광버스, 그중에서도 교토의 시티 버스는 유명했다. 조금 비싸기는 해도 안 가는 곳이 없었고, 원데이 패스권을 구매하면 간단한 먹거리 기념품도 줬다.

두 사람은 버스를 기다리며 노선을 꼼꼼히 확인했다. 실수하면 일정에 큰일이 나기 때문에 서로서로 긴장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류장에 들어선 할머니가 의자에 앉으며 서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일본어였지만 서아는 능숙하게 대답해 줬다.

“안녕하세요.”

“사탕 드실래요?”

“아, 감사합니다.”

서아가 사탕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할머니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산박을 소개해줄 때는 산박도 웃으면서 최대한 부드럽게 인사를 했다. 일본어는 못 했지만 서아가 대신 통역을 해줬다.

버스를 타고 할머니가 사라졌다.

“친절한 사람이네요.”

“서일본에서는 자주 출몰해요. 사탕 할머니였던가? 그런 밈이 있대요.”

“동일본에서는요?”

“몰라요. 그쪽은 가기도 싫어요. 아! 버스 왔다! 저거예요!”

인터넷에서 구매한 티켓의 바코드를 찍고 버스에 타자마자 기념품부터 수령했다. 그다음에 바로 팸플릿을 하나씩 챙기고 2층으로 올라섰다. 버스가 나아가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교토는 번잡했지만 곳곳에 예술적, 문화적 건물들이 가득해서 딴 세상 같았다.

“저기 보세요. 팔각정이에요.”

“직장인들도 즐기고 있네요.”

새것 느낌이 물씬 나는 2층 구조를 지닌 팔각정에 직장인들이 제법 올라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전화를 하거나 업무를 보는 이들도 보였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시티 버스는 곳곳을 크게 돌기 때문에 두 사람은 40분이 지나서야 여우 신사라는 별명을 지닌 심상 신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법 높은 곳에 있네요.”

“작은 산 하나에 지어진 신사인데 규모가 대단하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온천도 있는데 신사 입장권을 보여주면 50% 할인을 해준대요.”

“조, 좋네요. 50% 할인…….”

“엉큼해요.”

“예? 아니, 온천 좋다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오히려 늑대는 서아 씨한테 있는 거 아니에요?”

서로 농담을 하면서 빠르게 신사를 걸어 올라갔다. 케이블카도 있었지만 곳곳이 포토 존이라고 할 정도로 독특해서 걸어 올라가는 것을 택했다.

‘아차.’

산박이 이내 잊었던 것을 떠올렸다.

‘삼겹살에 미친 놈.’

바로 대장삵에 대한 것이었다. 교토에 오면 꼭 소환해 달라고 누누이 언급했던 대장삵. 이렇게 좋은 곳을 보여 준다면 크게 좋아할 것이 분명했지만 산박과 서아는 지금 데이트 중이었다. 대장삵이 훼방을 놓을 수 있었다.

‘적당히 다른 곳에서 놀라고 해야겠다.’

“저, 서아 씨, 제가 소환수가 있는데…….”

그가 사정을 말하자 서아가 웃으면서 대범하게 허락해 줬다. 산박의 변명이 크게 작용했다.

이에 산박이 대장삵을 소환했다. 허공에 물이 소용돌이치며 대장삵이 단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물에서 나왔음에도 털은 뽀송뽀송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대장삵이 두리번거리면서 불평했지만 꼬리는 정직하게 살랑거리기 바빴으며 코는 새로운 냄새를 맡으면서 잔뜩 흥분해 있었다.

‘귀여워.’

송서아는 대장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만큼 삼겹살을 너무 많이 먹어서 뚱뚱해진 대장삵은 귀여움의 이미지가 컸다.

“털이 정말 고와 보이네요.”

“고맙다, 인간.”

말까지 알아듣고 대화도 가능하자 송서아가 자신의 입을 가리며 놀라워했다.

“정말 사려 깊어 보이는 삵이네요. 대화도 가능하면 분명 서로 교감도 깊겠죠?”

“에헴! 나만큼 교양 있는 삵도 없지.”

산박은 당장에라도 반박하고 싶었지만 의외로 대장삵이 칭찬에 약한 모습을 보이자 가만히 두었다. 아무래도 그게 더 이득일 것 같았다.

“좋아하는 건 뭐예요?”

송서아의 말에 대장삵이 즉답했다.

“삼겹살! 그리고 구운 김치다!”

“구운 김치? 그냥은 안 먹어요?”

“언어도단이다. 그냥 김치?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모든 김치는 구워서 먹어야 한다!”

아주 큰일 날 소리를 했지만, 어느 정도 맞는 소리였다. 대장삵이 김치를 먹는 경우는 단 하나, 삼겹살과 함께 먹을 때뿐인데, 이때! 삼겹살 기름과 같이 김치를 구워 버리기 때문에 그냥 김치와는 맛이 아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대장삵에게 있어서 김치는 무조건 구워야 하는 식품이었다.

“삼겹살이래. 흐흣흐!”

서아가 웃음을 참았다. 그녀의 습관이었다.

산박은 대장삵을 들어 올렸다. 몸이 쭉 길어졌다.

“이제 그만 곳곳을 돌아다녀. 우린 우리끼리 다닐 테니까.”

“아! 괜찮아요, 저는! 정말로요!”

“서아 씨?”

송서아가 깜짝 놀라서 손사래를 치자 산박이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어느새 다가와서 대장삵의 등을 쓰다듬다가 옆구리로 손이 이어지더니 살을 슬슬 만졌다. 골골거리는 소리가 대장삵에게서 나왔다. 그러다가 대장삵이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버둥거리며 두 사람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햝햝!

산박과 서아가 만진 곳을 두 번 핥은 대장삵이 몸을 한번 털어냈다. 마치 두 사람이 만진 걸 불결하게 여기는 듯이 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하나도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여기 올라가다 보면 염통꼬치 파는 곳 있는데, 엄청나게 맛집이래요.”

“스님 기리는 신사에서 그런 거 팔아도 돼요?”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요. 그리고 돈 못 벌면 어떻게 신사가 유지되겠어요?”

결국 신사라도 사회 시스템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어찌 종교가 이길 수 있겠는가. 그저 그 속에 속해서 살아갈 뿐이다. 이 심상 신사도 마찬가지였다. 여우 신사라고 불리며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입장료를 통한 수입으로 먹고살고 있었다.

“꼬치?”

대장삵이 관심을 가졌다. 산박 덕분에 닭꼬치를 한 번 먹어본 적이 있어서였다.

“맛있다고요. 닭의 심장을 양념해서 굽는 건데 칭찬 일색이에요. 게다가 여기 산 뒤편 아래에서 닭장도 직접 운영하는데, 닭들이 얼마나 자유롭다고요? 깨끗하기도 깨끗해서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닭들을 모두 풀어서 키운다고 웰빙 하러 이 신사의 염통꼬치를 먹으러 오는 교토 토박이들도 제법 됐다. 닭을 키우는 데 위생을 생각하는 양계장은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덕에 몇몇 지역 음식점에서 굳이 이곳에 와서 닭을 소량이라도 얻어 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다른 곳보다 단가도 쌌다. 그래도 명색에 종교쟁이이기 때문에 큰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이 몸이 맛볼 가치가 있는지 꼭 확인해 봐야겠다. 앞장서도록!”

“건방진 소리 하지 마.”

산박이 대장삵의 머리 위에 손을 턱 얹었다. 대장삵이 슬라임처럼 쭉 몸을 수축시키더니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이리저리 털어냈다. 서아가 산박의 손을 잡았다.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 귀엽잖아요.”

“서아 씨, 건방을 떨어도 너무 떨잖아요.”

산박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에서 힘을 풀며 서아의 손을 딱 잡았다. 서아가 자연스럽게 산박의 손가락 사이에 손을 넣어서 깍지를 꼈다.

“봄이라서 땀이 찰지도 모르는데 괜찮으세요?”

“낭만 없는 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대장삵이 서아의 다리에 몸을 비비적거렸다. 오랜만에 자신의 신봉자를 만나서 서비스해준 것이었다. 순식간에 집사가 된 서아가 대장삵의 몸을 쓰다듬어 줬다.

“고양이 키우시나 봐요?”

“네. 본가에 제법 있어요.”

대장삵의 아래턱을 쓰윽 긁어주며 서아가 삵의 엉덩이를 팡팡 두들겼다. 그사이에 산박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시은 팀장이잖아. 무슨 일이 생겼나? 웬만한 일은 강합 주임과 함께 상의하고 해결하라 지시를 내렸는데.’

산박이 영상 통화를 받았다. 대체 무슨 일이면 영통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이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 급한 일이라도 있나요?”

―사장님! 교토라면서요? 어떻게 그렇게 놀러 갈 수가 있으세요!

스마트폰에서 크게 들려오는 시은의 목소리에 송서아가 움찔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예쁜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기색을 눈치챈 산박이 최대한 자신의 표정을 무던하게 만들었다.

“업무차 온 겁니다.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무슨 일이신데요?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거예요?”

―왜요? 팀장이 몰라야 하는 업무도 있어요?

“이 팀장님, 강합 주임한테 말 다 들었으면 거기서 끝내야지, 영상 통화 걸 이유도 없으면서 왜 저한테 전화 걸었어요?”

―옆에 여자라도 있나 봐요? 칼같이 끊으시네요?

그 말에 산박이 스마트폰으로 서아를 살짝 보여줬다. 딱 긴 머리카락만 보이게 배려해 줬다. 그 소소한 배려에도 서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쁘다.’

서아는 스마트폰으로 보이는 시은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특히 동양인은 가지기 힘든 섹시미를 가지고 있는 글래머다. 반면 서아는 슬렌더였다. 남자는 그냥 자기 눈에 예쁘면 올인 하지만 여자는 서로 비교하기 바쁜 동물이었다.

서아가 단번에 화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산박과 팔짱을 끼고 다른 손으로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와! 업무가 데이트예요? 정말 예쁘신 분이랑, 뭐예요? 대박! 정말 미녀세요!

그녀의 칭찬에 서아도 시은을 칭찬하기 바빴다. 그녀는 한술을 더 떴다.

“눈썹이 어쩜 그렇게 기세요? 피부가…….”

―아니에요. 틴트 색이 정말 외모랑 딱딱 들어맞는데 센스가…….

가만히 지켜보던 산박은 그게 기 싸움이라는 걸 알고 개입했다.

“업무차에 잠깐 관광하는 거예요. 교토에 왔는데 무조건 일만 하다 갈 수는 없잖습니까.”

―애인이에요?

“네.”

―와! 미래의 안주인이신 분!

시은이 가면을 쓰고 잔뜩 호들갑을 떨었다. 서아의 볼이 화끈거렸다. 안주인이라니 너무 대담하고 노골적인 단어였다. 몸이 화끈거려서 손으로 부채질을 해야 했다.

“아무튼, 별일 없으면 끊겠습니다.”

―네~ 길 주임이 아무것도 말 안 해줘서 전화한 거예요. 너무 비밀스러운 일을 한 것처럼 어찌나 그렇게 감싸는지 제가 다 걱정이었는데 큰일은 아닌 것 같네요! 안주인분이랑 데이트 잘하세요!

“신경 쓰지 마세요.”

산박이 툭 내뱉으며 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그 뒤로 등산하며 재잘재잘 떠들었다. 특이한 바위에 대장삵이 냉큼 올라가자 그럴듯해 보여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늠름하게 앞가슴을 드러낸 대장삵은 흡사 호랑이와 다를 바 없었다. 내친김에 서아도 호랑이처럼 서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고, 내키지 않았지만 산박 또한 똑같은 포즈로 서야 했다.

“저기요! 여기 사진 좀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예! 예!”

지나가던 관광객이 그 모습에 크게 흥미를 가졌는데, 이내 서아가 달려들어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대장삵에 산박에 서아까지 바위 하나에 올라서서 호랑이 포즈를 취했다.

“저희도 좀 찍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커플 관광객도 이 콘셉트 사진을 따라서 찍었다. 서아가 무려 세 장이나 다르게 사진을 찍어줬다.

“염통! 염통! 닭의 심장!”

대장삵이 가게 앞에서 소리를 냈다. 이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확 꽂혔다.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삵이라니, 소환수가 분명했다.

순식간에 인파가 제법 모여들었지만 딱히 크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산박만 해도 살갑게 대하기 힘든 사내였고 송서아의 단아함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둘 다 첫인상이 대하기 힘든 인상이었다.

“여기 소금, 간장, 양념 각각 다섯 개씩요.”

시작부터 화끈하게 스타트를 끊었다. 맥주도 간단하게 하나씩 시켰다. 차가운 병맥주가 올라왔다. 물론 대장삵은 제외되었다.

“오옷! 쫄깃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

대장삵이 크게 감탄했다. 다만 꼬치 하나당 양이 적다는 게 문제였다. 열다섯 개를 쌓아 두고도 계속 시켜야 했다.

신사에 도착해서는 사람 몸만 한 큰 경적 복사본을 들고 콘셉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복장까지 대여할 수 있어서 내친김에 아예 제대로 환복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건 무녀님이 도와줬다. 능숙한 것이 사진 공부를 많이 한 듯했다. 물론 돈을 톡톡하게 쥐여줘야 했지만 아깝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녀님이 크게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많은 돈을 쓴 커플이었다. 신기한 삵도 무녀의 고개를 숙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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