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2화 (232/270)
  • 232화

    <교토>

    “이년!”

    “저년!”

    “쌍년!”

    싸움이 끝나고도 서로 손가락질하며 교양 없이 굴기 바빴다. 나이가 들고 손가락질을 해대는 꼬락서니만 봐도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동시에 멍청하기도 멍청했다. 남을 배려하는 것은 높은 지능을 요구하는 일이고, 매우 귀찮은 사고력을 소비해야 했다. 머리가 나쁘면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만들 좀 해! 자꾸 이러면 태 사장한테 말해서 백까마귀를 그냥 데려가라고 할 테니까!”

    이장이 나서자 서서히 조용해졌다. 돈 때문에 하는 일이었기에 그 돈이 날아가 버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진정되는 것도 잠시, 너도나도 역정을 냈다.

    “돈을 얼마나 받아먹었어?”

    “돈이라니, 무슨 소리요!”

    서로 목에 핏대를 세웠다. 배우지 못하고 지능이 낮으며 공부를 하지 않은 늙은이들의 세계에서는 큰소리치는 놈이 장땡이었고 기세에서 밀리는 놈이 패배자였다. 이론과 논리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교양 있는 어르신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허접한 일반화로 계층을 판단하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한 세상이었다.

    개중에는 빈 막걸리 병을 들고 다니면서 시끄럽다고 좀 닥치라고 머리를 때리고 다니는 최고령 노인네도 있었다.

    “여기가 시장 바닥이여? 마을 회관에서 그렇게 서로한테 소리 지르면 다 되는겨!”

    “아니, 저도 이제 칠십입니다! 왜 자꾸 때리십니까!”

    “꽥꽥 소리나 지르는 짐승 새끼가 무슨 칠십 대우 받고 싶다고…….”

    이야기가 순식간에 딴 곳으로 샜다. 이장이 노력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농업 마을이기도 했기에 나이가 깡패였다. 예전에는 자식 수가 많으면 또 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이곳은 자식들이 죄다 독립해서 그마저도 어려웠다.

    결국 이장은 모든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머리가 아팠다. 회의고 나발이고 그냥 손에서 놓아 버렸다.

    “일단은 말했던 대로 돈을 좀 벌어 보자고. 근데 태 사장이 오면 그것도 끝이라는 걸 잘 알아야 할 거야.”

    일단 질러보고 감당은 후일로 미루자는 식의 결론이 났다. 이장의 카리스마와 영향력으로는 그게 고작이었다.

    ‘큰일이야 나겠어?’

    배 째라면 그만이다. 10억 빚이 생겨도 파산 신청하며 법의 테두리에 쏘옥 들어가면 장땡인 것처럼,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었다. 그만큼 인권이 중요해진 세상이었다.

    “자, 그럼 각자 알아서 꿀벌들 모으시오.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해결하겠소!”

    그 말을 끝으로 술판이 벌어졌다. 머리카락을 뜯었던 아줌마끼리도 서로 입에 파전을 넣어주고, 단번에 흥이 피어올라 왔다. 노래방 기계에서 흥겨운 트로트가 빵빵 터졌다.

    “붉은 가슴에~!”

    “사랑! 사랑! 사으어으라아앙!”

    무지막지한 베리에이션이 쏟아져 나왔다.

    * * *

    鄭撥. Teibachi.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패배라는 오명 속에 시체조차도 고국에 묻힐 수 없었던 비운의 장수와 그 가문원들.

    수많은 이들이 공을 세우고 단번에 영웅의 지위에 올랐지만 그의 가문만은 내쳐졌다.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는 왜에 붙었고 교토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일족 전부 자신의 성을 버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테이바치라는 성으로 살아갈 것을 결의했다.

    그 역사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역사를 모르는 가문은 속이 텅 빈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어렸을 때부터 확실하게 교육을 받게 된다.

    그 덕에 테이바치 가문은 교토에 있으면서도 교토의 다른 가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일본인이 아님을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들 가문이 교토의 가장 큰 가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실력. 그것만으로 우뚝 섰다. 교토 하나만큼은 꽉 잡고 있었고 그 이후로는 누구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서로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게 권력자들에게는 더 이득이었다.

    그들 가문이 운영하는 기업, 교구몬에 소속된 이들 중 중진이 한곳에 모였다. 좌식이 아니라 입식으로 의자에 앉은 상태로 서로 깊이 토의했다.

    회장 테이바치 야스시(鄭撥 寧)가 이마를 손으로 긁었다.

    “누구였지? 부산 놈들이랑 거래했던 놈.”

    “아사 상무가 책임지고 했었습니다.”

    “잘해줬다. 잔잔벼락 사업이라니. 허허. 1, 2레벨 모두 사용하는 던전 상품이라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게 1레벨 던전 사용자들이었다. 그다음이 2레벨 던전 사용자였고, 일정 범위에 부채꼴로 흩뿌려지는 잔잔벼락의 무기는 두 곳 모두에서 잘 팔리는 무기였다. 그저 공급되는 숫자가 적어서 매출 순위권 밖에 있을 뿐! 그걸 대량으로 만든다면 수익은 약속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동력이나 그런 건 죄다 부산 쪽이 맡는다고 합니다. 저희가 하는 건 유통입니다. 저희를 너무 못 믿는 것 아닙니까? 부지까지 거저 줬는데 말입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나불거려? 유통 하나면 다 된 거야. 더 볼 것도 없어! 오히려 만드는 것보다 파는 게 더 쉽다.”

    유통 독점이 만들어 내는 이득은 대단했다.

    “이번에 오기로 한 부산 쪽 사람은 벌써 도착했다더냐?”

    “예. 하지만 여기에 오는 건 2일 뒤입니다.”

    “왜?”

    “교토에 왔는데 관광 안 하면 사람입니까? 짐승이죠.”

    스스로 자부심이 있어 보이는 말에 회장은 좋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물론 관광으로 먹고사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감자 키워서 파는 것보다는 편한 일이었다.

    “관광만 내세우지 말고 모든 면에서 좋아야지. 이번에 제조업 쪽 어떻게 되었어? 국뽕으로 밀고 나가라고 했잖아.”

    “잘 진행 중입니다. 일본인들 하면 보수 아닙니까. 내수 최강이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성능이 두 배 차이 나도 자국 걸 사주는 민족입니다.”

    회장이 웃었다. 교구몬이 아니라 다른 자회사를 통해서 수작질하고 있는데 아주 잘 통하고 있었다. 브랜드부터 일본을 연상하게 한 것이라 실패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다른 곳에 맡기는 게 요즘 제조업 추세다. 착실하게 쌓아가라.”

    “예.”

    “그리고 두 사람 오면 잘 대접해 주고. 아사 상무에게 맡겨라.”

    “예!”

    회장이 몸을 일으켜서 사라졌다. 뒤따라서 한 명의 사내가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 정말로 이대로 두실 겁니까? 아버지! 테이바치 가문의 위상이 달려 있습니다. 부산 놈들이 관광을 맘껏 즐기고 저희를 만나다니요. 우선순위가 잘못되었습니다.”

    이에 테이바치 야스시가 멈췄다.

    “그럼, 만약 그들이 잔잔벼락 사업을 다른 곳에 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부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서일본인데 또 어디에 부탁하겠습니까?”

    “한다면 하는 놈들이 부산이다. 수구 꼴통이라고 욕 처먹다가도 자기 자존심 하나 긁히면 도시 전체가 생각을 바꾸는 동네다. 서울 올라가도 유일하게 사투리 안 고치는 꼴통 놈들이 경상도 벌레들이야. 자존심 하나 먹고사는 놈들인데 그 프라이드 네놈이 꺾어서 제대로 목줄 채울 수는 있느냐? 제어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그건…….”

    그 말에 테이바치 즈쿠(Teibachi Zuku, 鄭撥 銑)가 입을 다물었다. 다 쓰까 묵는 도시의 무서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로 그는 붓싼 싸나이와 엮인 적이 한 번 있었다.

    ‘마이 페이스에 미친 또라이들!’

    호불호가 확실하고, 분명 말싸움을 했는데도 고개 돌렸다가 다시 마주하면 웃으면서 다가오는 무신경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어찌 되었든 악우(惡友)로서 자주 만나기는 한다만……. 결코 진심으로 좋아할 수는 없는데도 어쩌다 보니 미운 정이 들어 버렸다.

    “괜찮다. 괜찮아. 자존심만 안 긁으면 된다. 들어오는 돈만 생각해라.”

    “저희 가문이 언제 돈이 부족했습니까?”

    “부족하다.”

    “예?”

    즉답에 교구몬 회사의 사장 즈쿠가 깜짝 놀랐다. 회장인 자신의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라서였다.

    “학습지 회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제법 커졌고 식구도 많다. 우리 자회사만 해도 서른 개가 넘고 사원만 해도 2만 명이다. 커져도 너무 커졌어.”

    “…아버지.”

    “흐허허. 늙으니까 예전 같지 않다. 리스크는 두렵고, 가진 것을 유지하는 것만 봐도 고꾸라질까 위태로워 보이지. 이런 상황에서 불황 속에서도 호황이라 불리는 던전 장비 유통을 하나 가진다면 다른 사업 몇 개쯤은 적자여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

    “분명 그렇게 될 겁니다.”

    “하기 싫은 거, 귀찮은 거, 사소한 것. 모두 남의 손에 맡기는 건 좋지 않다. 지금 서일본이나 동일본이나 고레벨 던전 장비를 너무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나랏돈이 계속 밖으로 향하면 내 곁에 사는 사람이 괴로워진다. 알겠느냐?”

    “예. 명심하겠습니다.”

    “잘 대해줘라. 그래도 인연 있는 가문 아닌가. 결과는 달랐지만…….”

    한쪽은 흥하고 한쪽은 망했다. 그래도 시대를 지나서 이제 협력하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뿌리를 내린 곳이 달랐기에 이용하기 좋았다.

    부산과 교토의 관계는 아주 돈독했다. 외부의 힘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다. 당장 이번 잔잔벼락 사업만 해도 대한민국 국내에서 저항하는 던전 기업 때문에 일본에서 만들어서 수출하는 형국이었다.

    * * *

    그사이에 산박과 서아는 교토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을 잡았다. 당연히 5성 호텔이었고, 대단히 현대식 호텔이었다.

    “이름이 왜 이렇게 길어요? 로열 교토 빌라이언 호텔(Royal Kyoto Villaion Hotel)이라니……. 너무 낯간지러운데요.”

    “5성 호텔인데 이름도 특별해야죠. 여기가 그렇게 인기래요.”

    “그렇겠네요. 해시태그 붙이기 딱 좋은 호텔이에요.”

    짐을 풀면서 잡담을 떠들었다. 대부분 이 호텔에 대한 것이었다.

    “현대식이라지만 곳곳에서 일본풍 시설을 맞이할 수도 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신라 문화지만 경주와는 또 다른 맛이 있죠. 전 더 둥글둥글한 이쪽도 좋아해요. 똑같은 문화인데 바다 하나 건넜다고 이렇게 변하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서아는 아무래도 역사 테마를 대단히 좋아하는 듯했다.

    “첫 번째 목적지를 정해야 하는데요. 가고 싶은 곳이 있으세요? 저도 몇 가지 보고 왔긴 한데요.”

    “당연히 여우 신사죠!”

    “여우 신사요?”

    산박이 모르는 척을 하자 송서아가 눈을 반짝였다.

    “심상(審祥) 신사라고 불리죠. 불교를 처음으로 일본에 전파한 스님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와! 심상 신사! 그래서요?”

    산박이 손뼉을 크게 쳤다.

    “여우도 같이 모시는 곳이거든요! 심상 스님이 처음에는 고충이 많으셨는데 한 날에 여우가 그렇게 스님을 쫓아다녔다고 해요! 그래서 난리였대요!”

    잔뜩 흥분한 모습에 산박도 재미가 붙었다. 그가 허둥지둥 캐리어에서 여행책을 꺼내 들었다. 저렇게 유명한 것이라면 있을 게 분명했다.

    “목차에… 있네요! 780년경에 세워진 신사라니…….”

    이건 순수하게 산박도 놀랐다. 솔직히 그때의 일본은 야만의 나라라고 불러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다.

    “일본치고는 오래 유지되고 있는 곳이에요.”

    서아가 두 손을 모았다. 그 모습을 보며 산박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좋아하네.’

    저런 모습을 보니 반드시 같이 가줘야 할 것 같았다. 애초에 산박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여기는 곳도 딱히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산박은 그냥 ‘풍경’을 좋아했다. 유명하고 말고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옥상에 올라가서 멍하게 주변을 바라보는 것도 상당히 좋아한다. 물론 최근에는 그런 걸 할 여유가 없었다.

    ‘교토의 풍경이라. 내 눈에 담아보는 것도 좋겠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았다. 그렇기에 산박은 서아에게 맞춰 주기로 했다. 그녀가 사랑스럽기도 했다.

    “커피는 마실 거죠?”

    “아, 네. 고마워요. 그럼 저는…….”

    산박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딱히 할 것이 없었다. 이에 산박은 능숙하게 외출복을 들어 올렸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마무리 도와드릴게요.”

    “차가 식기 전에 돌아오세요.”

    “관우 아시는구나! 관우 아는 여자는 정말 드문데요.”

    서아가 웃었다.

    “어렸을 때 병실에 있을 때 남간호사 쌤이 있었는데 삼국지 팬이셨거든요. 전 가후를 가장 좋아해요. 군주가 달라도 자신의 길을 걷고 끝내 성공했잖아요.”

    “기회주의자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그 말에 서아가 검지를 들어 올려 내저었다.

    “그건 삼국지 겉핥기 한 사람이고요. 삼국지를 깊게 판 사람이라면 가후를 저평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특히…….”

    산박이 잠깐 그녀를 진정시켰다. 서아는 생각 외로 역사 덕후로서의 면모를 아주 크게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세계가 점점 산박에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건 산박의 마음을 크게 적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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