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0화 (230/270)

2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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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히다 하와는 가볍게 삶을 포기하는 여자는 아니었다. 중동의 삶은 끔찍한 야만의 삶이다. 특히 종교색이 짙은 중동에서도 세속적인 인간이 되기 쉬운 관광 도시에서 태어나고 살게 된 나히다 하와였다. 그녀는 진정한 의미에서 모순된 인간이었다.

동시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태세 변환이 미친 듯이 자주 이루어지는 갈대와도 같았다. 그야말로 범부(凡婦). 그저 상황에 휩쓸려서 수하임 이맘을 믿게 되었고, 휴즘 하디에 소속되어서 광신도적인 면모를 보였다. 모두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녀가 대한민국에 내쳐져서 홀로 남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하게 된 것은 생존을 위해서 으슥한 곳을 찾는 것이었다.

이곳저곳 깔끔해 보이는 곳에서 멀어지고 쓰레기 냄새를 따라 관리되지 않아서 페인트가 뜯겨 나간 벽들을 손으로 더듬으며 나아갔다. 뒷골목부터 시작해서 치안이 안 좋은 중동에서의 야만적인 삶에서 배운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대한민국 내에 존재하는 가장 치안이 나쁜 곳으로 향했다.

그 도달점은 세종시 산울리라 불리는 달동네였다. 며칠을 헤매서 도착한 곳이었다. 배가 고프면 종종 무료 급식소나 사회 복지 관련 시설에 들어가서 밥만 얻어먹고 서둘러 도망쳤다.

‘나랏밥 먹는 놈들은 결코 믿어서는 안 돼.’

웃는 얼굴로 할 거 다 하는 것들이었다.

나히다 하와는 43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갈리는 광경을 마주했다. 자신이 있는 달동네의 꼭대기에서 보이는 건너편을 바로 보았다.

새하얀 달빛처럼 보이는 불빛이 건너편 언덕에 가득했다. 그곳은 야밤임에도 불이 켜져 있었다. 이용자가 없어도 그냥 불을 켜놓는 듯했다. 전력 낭비로부터 부유함을 엿볼 수 있었다. 곳곳에 위치한 거대한 조명에는 수많은 전구가 직사각형으로 들러붙어 있었는데 굉장히 비싸 보였다.

골프장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산울 달동네에서는 바람을 타고 쓰레기 냄새, 퀴퀴한 늙은 사람의 악취가 맡아졌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오히려 그런 악취가 익숙하고 편안했다.

‘배고프다.’

그녀는 으슥한 뒷골목의 쓰레기를 뒤졌다. 나오는 게 없으리란 건 알았다. 그냥 심심해서 뒤져본 것뿐이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이내 골목길을 누군가가 슥 지나갔을 때, 나히다 하와는 곧바로 그를 덮쳤다. 그녀는 이 세상에 가장 많은 ‘마법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던전 사용자였다. 겁이 많아도 일반인을 기습하고도 이점을 못 살릴 정도는 아니었다.

“억.”

오히려 어둠 속에서 가지는 냉혹한 존재인 태산박이 너무 대단했던 것뿐이었다.

큰 소리조차 못 내고 쓰러진 놈을 나히다 하와는 발로 수없이 걷어찼다. 그가 꿈틀거리지도 못하자 그제야 품을 뒤져서 지갑을 비롯한 돈으로 쓸 만한 걸 모조리 훔치고 자리를 내뺐다.

10분을 도망쳤다. 없는 놈들은 천 원짜리 한 장에도 멀리까지 쫓아오는 법이었다.

“헉헉.”

10분 동안 말 그대로 전력 질주를 해서 도망친 나히다 하와가 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괴롭혀서 오는 즐거움이 아니었다. 그런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그냥 미친놈이다. 그녀는 순수하게 작전 성공에 기뻐하고 있었다. 갑자기 두들겨 맞은 놈은 상관하지 않았다.

각자도생. 제각기 살길을 도모해야 하는 게 야만의 삶이다. 그녀는 지금 그런 곳에 있었다.

순찰 도는 경찰차는 보기 힘들고 CCTV도 없었다. 그저 뒤숭숭한 소문들뿐이었다. 순찰을 하던 여경이 겁탈당한 동네라더라, 메신저를 통해서 끼리끼리 뭉쳐 다니며 자동차를 훔쳐서 사람이 죽은 동네라더라. 그런 뒤숭숭한 소문이 막연하게 퍼져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싹 사라졌다. 철저한 무관심이 내려앉은 적막한 곳이 되었다.

‘어디…….’

그녀는 지갑을 열었다. 현금부터 빼냈다. 2만 8천 원. 사람 하나 쥐어 패고 피까지 내고 얻은 돈치고는 약하다. 하지만 그녀는 냉큼 챙겼다. 카드도 있었고, 주민 등록증에다가 어디서 찍은 것인지 꼴에 가족사진까지 찍혀져 있었다. 딸처럼 보이는 애 하나와 단출하게 찍은 사진이었는데, 제법 젊을 때 찍은 사진 같았다.

그녀는 그걸 그냥 버려 버렸다. 일단 자신부터 배가 부르고 봐야 했다. 양심의 가책 따위는 그냥 흘려 버렸다. 날카로운 삼각형처럼 뾰족했던 양심은 이미 흐르는 세월처럼 닳고 닳아 동글동글해져서 마음 한구석으로 걷어차기 딱 좋았다.

‘이걸로 뭘 해 먹을까?’

으슥한 골목길에서 숨을 고르며 나히다 하와가 고민했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젊은 놈들을 이용할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실행할 줄은 몰랐다.

‘빈집 하나 건져서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

달동네에는 폐가도 제법 되었다. 써먹기에 좋았다. 그렇게 니히다 하와는 폐가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방 하나를 대충 청소하고 남몰래 지낼 준비를 마쳤다. 편의점에서 사 온 것들을 대충 입에 쑤셔 넣었다.

안방은 쓰지 않았다.

‘쯧.’

그 바닥에 검은색의 얼룩진, 사람이 하나 드러누운 정도 크기의 얼룩이 있어서였다. 시체의 체액이 시멘트에 흡수되면 생기는 것이었다.

작은방도 나쁘지는 않았다. 나히다 하와는 집의 평수에 연연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먼지 냄새가 이렇게 심했나?’

그녀는 자려고 하다가 다시 일어나서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작은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모기가 엉겼지만 억지로 잠을 자려고 애를 썼다.

눈을 감은 채 잠에 빠져들기 직전. 창문을 지나 그녀의 목에 정확하게 석궁이 박혔다.

푹.

“극.”

목젖이 움직였다.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벌떡 일어난 나히다 하와는 손으로 목에 박힌 자그마한 화살을 매만졌다. 힘을 주려고 했지만 조금만 만졌음에도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눈물이 한 방울 찔끔 나왔다.

‘죽는다.’

“커허……. 흐…흐…….”

숨을 들이켜고 싶었으나 피 끓는 소리와 함께 공기 소리가 삐져나왔다. 약간 숨을 쉴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빠르게 피에 가려져서 차단되었다.

쿵.

옆으로 엎어진 나히다 하와가 바닥을 기었다. 뭐라도, 어떻게든 뭐라도 해보려고 버둥거렸다.

‘이, 이렇게 허무하게…….’

질식이 이루어지자 시야도 어두워지고, 그녀는 이내 죽어 버렸다. 산박은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푹!

산박은 나히다 하와의 정수리에 석궁을 한 발 발사해서 확인 사살을 하고 난 뒤 화살을 뽑고 등산 가방에서 락스를 꺼내 거칠게 쏟아부었다. 그리고 자리를 떠났다.

심플했다.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위치는 야만신이 알려줬고, 산박이 한 일은 그저 상대의 목에 석궁 화살을 꽂아 넣는 것뿐이었다.

길이가 짧고 작은 석궁용 볼트는 바람 소리도 나지 않았다. 최고의 기습 무기였다. 애기살도 써보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숙련도를 요구해서 과감하게 포기했다. 다른 대체재가 있는데 굳이 위험천만한 궁술을 쓸 이유는 없었다. 해외에 많이 수출되었던 적도 있지만 위험도 때문에 최근에 연구하는 외국인은 손으로 꼽힌다.

‘마법사라고 했는데, 아무런 준비조차 하지 않았네. 참…….’

황당하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빈털터리였다. 물론 지난번 잡혔을 때 무기란 무기는 죄다 빼앗아 버렸기에 그렇다고 할 수 있었지만, 마법사는 나뭇가지도 아티팩트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물론 바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보는 사람 죽이러 중동에서 대한민국의 세종시까지 오지 않는다.

‘신에게 선택받지도 않지.’

적당히 한 수 있는 놈이 오게 된다. 그런데 이놈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다만, 산박은 그녀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중동의 암살자 수준은 매우 떨어졌다. 레벨이나 종족값, 신에게서 받은 은총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기습 한 방에 모든 게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흠…….’

결국 이 때문에 산박은 쉽게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근처에서 지켜봤다. 하지만 특별히 탁 드러나는 건 없었다. 결국 그냥 물러났다.

그 누구도 산박을 특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시은조차도 이 자리에 없었다. 그만큼 산박의 암행은 급작스러웠다. 냉철한 산박이 하지 않을 짓이었다. 최소 반나절의 관찰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야만신이 준 정보만으로 질주하여 적의 목에 볼트를 쑤셔 박아 버렸다.

여기에는 나히다 하와가 추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어서였다. 대한민국은 하나의 민족으로 그 민족성이 대단히 견고한 편이었다. 홍어를 먹을 줄 아는 외국인과 불닭을 좋아하는 외국인만이 한국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조금만 밉보이면 쯧쯧 소리가 나오는 동네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여기에는 큰 오해가 있는데, 대한민국인은 스스로에 대해서 너무 엄격해서였다.

그 탓에 불법 체류자는 많은 주제에 또 추방당하는 외국인 숫자도 많은 편이었다. 실로 아이러니한 동네였다. 무엇보다 정부의 행정 처리가 너무 빠르게 처리된다는 점이다. 특히 공무원이 되는 사람 대부분이 대한 제국에 대한 향수가 워낙 커서 외국인에 대한 처우가 가장 까다로운 곳이 대한민국이었다.

‘그래서 조금 무리했지만, 야만신은 확실히 호구다.’

정말 쉬운 상대라는 걸 알면서도 꼭 체면치레를 해야 했나 하는 의문이 있을 정도로 쉬운 일이었다.

어쨌든 산박은 보상을 받을 자격을 얻었다. 그 보상은 개인 낚시터에 있는 오두막에서 이루어졌다. 거실에 있는 탁자가 검게 물들어 있었으며 거기서 그림자가 득실거렸다.

득실거리는 그림자에서 어둠이 흩뿌려지며 서서히 옅어지다가 이내 사라지고 있었다. 그곳에 산박이 다가가자 양피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필요한 3레벨 장비의 이름을 적으십시오. 만약 동일한 이름을 가진 장비가 있다면 특징 또한 기입하십시오.]

‘뭐든지라……. 이건…….’

고레벨 던전 사용자가 되어서 챔피언으로서의 역량을 지니게 된다면 ‘소환 의식’을 통해서 죽어도 상관없는 몸이라고 해도 야만신을 위해 곳곳에서 활약을 해야 했다. 그 계약을 생각했을 때 이 세상에 신들이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알짜배기 던전 장비를 모조리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덜컥 겁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신이라는 존재는 ‘인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너무 두려웠다.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신의 면모는 그냥 재앙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산박은 자신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쭙잖게 영웅놀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하는 일은 자본을 잠식하고 이를 자신의 입맛대로 가공하여 하나의 도시를 지배하는 일이었다. 분명 많은 이들이 그 혜택을 받겠지만, 그 반대로 피해를 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아간다. 그게 태산박이다.

그리고 이미 산박은 자신이 구매해야 할 것을 염두에 둔 상태였다.

‘BRC(Big Raid Company)의 것.’

미국의 회사였다. 회사의 자산이 1조 달러가 넘는 초대형 기업이기도 했다. 오로지 3레벨 이상의 레이드 던전 장비를 판매하고 개발하고 연구하는 곳이었다. 회사의 지분 40%가 미국 정부의 것이다.

‘빅 시리즈.’

“빅 오버슈트(Big Oversuit) 그리고 빅점보 프로스트 완드(BigJumbo Frost Wand).”

참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명칭이었지만 그들 외의 회사는 첫 단어에 빅을 잘 쓰지 않는다. 너무 비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특징도 꼼꼼히 써 내려갔다.

‘빅 오버슈트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신 보호.’

3레벨 던전에서 출몰하는 타이트 슬라임을 가공해서 만든 것이 빅 오버슈트였다. 그 탓에 착 달라붙는 보호복은 얇았음에도 방어력이 상당하며 전신 보호가 가능했다.

‘내복처럼 입을 수 있지.’

올 블랙에 신축성도 좋아서 돈 있는 사람은 5천만 원 이상에 팔리는 초고가품인 빅 오버슈트를 무조건 구매하는 편이었다. 기업조차도 대여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기업에 속한 던전 사용자들에게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는다.

‘최근에는 그 효과가 많이 입증되어서 경매장에서 구매해서 가져가야 하지.’

무려 BRC가 주관하는 경매였다. 돈지랄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곳이 BRC였다. 자본주의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것. 하지만 그래도 계속 팔리고 있었다.

‘최고니까.’

두께가 두꺼운 3레벨 방어구와 견주어도 물리 방어력에 한해서는 비슷하다. 그러니 무조건 껴입고 보는 것이다. 특히 레이드 던전인 3레벨 던전부터는 장비의 개수 제한이 사라지기 때문에 쓰는 만큼 안전해진다.

‘펑펑 쓰면 수익률이 박살이 나겠지만.’

빅점보 프로스트 완드의 경우 가장 큰 특징은 한시적이라고는 해도 무려 여덟 가지에 달하는 3레벨 얼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이 두 개만 있으면 주 무기와 방어구는 해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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