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5화 (225/270)
  • 2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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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달. 태산박이 옥시모론 기업 내에서 가장 먼저 레벨 3에 올랐다. 새하얀 공간에서 산박이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좋은 일이었다. 그보다 빨리 3레벨에 오른 자는 많았지만 지원 없이 혼자서 3레벨에 오른 건 산박이 전 세계 1위였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축하를 해주지는 않았다. 기반을 통해서 단기간에 그보다 빨리 레벨 업을 이뤄낸 자들이 많아서 드러나지 않았다.

    ‘추가 능력치는 당연히 지혜.’

    지혜 수치가 14로 올라섰다. 압도적인 수치였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특성을 선택해야 했다.

    ‘2레벨 때 봤었던 특성보다 월등히 좋은 것들이다.’

    [오대 원소 봉신자―오대 원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그 외의 마법에 대한 약간의 혐오가 생깁니다. 과학과 기술 및 지식에 대한 조금 과한 자부심이 생성됩니다.

    지능이 2 증가하며 오대 원소와 관련된 주문의 위력이 15% 증가합니다. 또한 2레벨 원소 주문을 속성을 지정하여 하나 획득할 수 있습니다.]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먼저 기본 능력치를 2 증가시켜 주고, 그 외에도 효과가 추가로 주어지고 있었다. 다만 드루이드의 경우에는 썩 좋은 특성이라고 볼 수 없었다.

    ‘제외.’

    오대 원소 주문은 아이템을 통해서도 사용하기 때문에 오대 원소 봉신자는 분명 효과적이다. 하지만 드루이드에 제한한다면 좋은 건 아니었다.

    ‘앞으로 꾸준히 이득을 볼 수 있지만, 그건 던전에서의 범용성을 높여줄 뿐이다.’

    다양한 원소 주문 던전 장비를 착용하고 이를 통해서 위력을 높일 수 있었으며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아쉽게도 산박은 던전보다는 현실에 더 관심이 있었고, 현실에 더 큰 꿈이 있었다. 그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일신의 출세를 위해서 던전에 몸을 던진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제외.

    ‘드루이드다운 특성을 얻는다. 3레벨에 분명 그런 특성이 있을 터.’

    꼼꼼하게 생각해야 했다. 산박의 눈이 다음으로 향했다.

    [정령의 반려자―자연물에 대한 애착이 심해집니다. 인공 구조물이 많은 곳에서 거주할 경우, 최소한 정원을 가꾸지 않으면 컨디션이 자주 나빠지는 걸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매력 수치가 2 상승합니다.

    3레벨 정령 소환 주문을 무작위로 획득합니다. 해당 정령과의 호감도가 증가하며 정령에게 좋은 첫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령이 보다 더 많은 카르마를 가져가게 되며, 이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확실한 실익으로 이어집니다.]

    ‘정령은 바로 커트.’

    물의 연어 주문을 계기로 정령에 대한 조사를 상당 부분 마쳐 놓았으며 해당 지식을 획득한 것이 태산박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정령은 수준이 낮을 때나 이용 가치가 있었다. 자아가 낮아서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때문이었다. 그 마지노선이 2레벨 이하의 정령 소환 주문이었다.

    ‘그 이상으로 가면 정령의 노예나 다름없지.’

    힘을 원하는 던전 사용자인 이상 정령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정령이 자신의 힘을 통해서 도와주기 때문에 든든했다.

    하지만 자아가 강한 것이 3레벨 이상의 정령들이었다. 산박은 통제 불가능하며 꾸준히 관리를 해줘야 하는 정령은 싫었다. 특히 대장삵이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

    ‘괘씸한 놈.’

    토실토실하고 귀여워서 봐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만큼 대장삵은 통통하고 귀여웠다. 특히 삼겹살을 자주 먹어서 그런지 볼부터 시작해서 뱃살의 감촉이 장난이 아니었다. 고양이 카페에 들어가는 순간 인기 만점 확정이다.

    어찌 되었든 산박은 3레벨 정령을 보유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물의 연어와 같은 단순한 정령이 좋았다. 혹은 잠깐 그 힘을 빌리는 주문이면 충분했다.

    [별빛 구도자―천체와 관련된 취미에 관심을 두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주의 방대함을 좋아하게 됩니다. 대기 오염과 관련된 이슈에 민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천체와 관련된 3레벨 주문을 획득합니다. 초월의 힘 별의 힘을 추가로 확보합니다. 지능과 지혜 수치가 각각 1씩 증가합니다. 천체와 관련된 모든 주문의 효과와 위력이 15% 상승합니다.]

    ‘이거지.’

    산박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다른 건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좋았다. 먼저 3레벨 주문을 획득한다는 것부터 일품이다. 거기에 초월의 힘 종류 중 하나인 별의 힘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즉, 다른 이보다 주문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지능과 지혜에도 보정치가 들어가며 위력 증가 또한 붙어있는 특성이었다.

    거기에 특성으로 인한 취향 변화는 솔직히 산박에게는 거의 통용되지 않는 편이었다. 그가 가진 신념 탓이었다. 누구보다도 타오르는 그 마음속에 들어가면, 그게 무엇이든 차선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산박은 그대로 이를 선택했다. 다른 걸 볼 필요도 없었다. 집중성탄만 해도 2레벨 보스 몬스터의 머리를 단번에 관통할 정도로 강력했다.

    [3레벨 주문, 하늘의 별(Stars in the sky)을 획득했습니다.]

    그는 환상을 경험했다. 쏟아지는 별똥별을 수없이 쫓아다니며 기록한 드루이드의 삶이 지닌 단편들이었다. 마치 책장의 한쪽처럼 보이는 광경들이 수없이 중첩되고 중첩되어서 그 눈에 담겼다.

    그 속에서 별똥별을 쫓던 드루이드는 그것을 포기하고 하늘에 언제나 존재하는 별의 정적인 모습에 집중했다. 정반대를 추구했기에 오히려 얻을 것이 많았다. 거기에서 만들어진 것이 하늘의 별이라는 별의 주문이었다.

    ‘분산과 집중.’

    두 가지의 형태가 존재했으며 타입에 따라서 최대 서른 개체를 노릴 수 있고 열다섯 개체를 노리는 대신에 공격력을 높일 수도 있었다.

    ‘범위 마법은 귀중하지.’

    주문 사용자의 가장 큰 특혜가 바로 범위 공격이었다. 그걸 획득했다는 건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 게다가 거기서 끝나는 주문이 아니었다.

    ‘다음 주문에 영향을 준다.’

    사용 후 사용자가 다음 주문을 시전하려고 한다면 그곳에 스며들어 ‘별빛 강화’ 효과를 주게 된다. 사용 후에도 버프를 주는 범위 주문인 셈이었다. 즉, 범위+버프형 주문이었다.

    ‘최고다.’

    천체와 관련된 주문이라 들으면 딱 봐도 스케일이 컸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3레벨 달성을 이룩하셨기에 드루이드 3레벨 기술과 주문을 획득합니다.]

    [드루이드 기술, 자연 동화 감지를 획득하였습니다.]

    주변 자연물에 감각의 동화가 이루어져 대상을 감지해 내는 기술이었다. 다만 너무 작은 생명체는 잡아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아! 이것은……!’

    그 지식을 주입당한 산박은 깨달음을 얻었다.

    ‘자연에 대한 동화 그리고 땅의 부름.’

    땅의 부름 기술은 땅을 통해서 힘의 회복과 힘의 증가가 이루어지는 기술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땅이 조금 솟아오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모인다.

    그 둘에 대한 지식이 서로 교차하며 얽히고 뒤섞였다. 뛰어난 지혜가 뜨개질을 하며 능숙하게 물건을 하나 만들어 냈다.

    땅에서 발생하는 힘의 보조. 자연에 동화하여 하나 되어 화합하는 지식. ‘대지발 자연 동화(大地發自然同和)’의 진리.

    산박은 눈을 감았다. 조용히 발밑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대지가 연기처럼 가벼워져 땅을 벗어나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다. 곧 자연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산박의 몸으로 들어왔다.

    ‘땅의 부름 강화 버전이지만 그 효과는 세 배에 달한다.’

    자연에 대한 깊이가 적었다. 만약 거기까지 통달하게 된다면 수십 배에 달하는 회복량과 힘의 증가를 도모할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내 산박은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알 수 있었다.

    ‘아아……. 그렇구나. 땅과 자연 사이에는 바로 내가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자연에 대해서 깊이 깨달았다고 해도 대지발 자연 동화의 진리는 산박에게 큰 힘을 줄 수 없었다. 굳건한 대지와 웅대한 자연 사이에 산박이 있어서였다.

    둘을 연결하는 다리가 지나칠 정도로 작은 인간 하나다. 고작 세 배의 힘을 산박이 겨우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수위를 항시 조절해야 했다. 잘못하다간 힘에 잡아먹힐 수 있었다. 잡아먹힌다는 것은 곧 객체로서의 자아 붕괴를 의미했다.

    ‘카르마 시스템도 진리를 회수하지 않았다.’

    빠른 회복을 통해서 연거푸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음에도 카르마 시스템은 회수하지 않았다. 이는 마력 물약이나 던전 사치품을 통해서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

    ‘다행인 일이지.’

    산박이 웃었다. 진리 하나가 산박의 손에 오롯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야만신이 개입했을지도 모르지.’

    약간의 의심도 해보았다.

    [드루이드 주문, 정원사 카멜(Carmel) 드루이드 수호 정령 소환을 획득하였습니다.]

    ‘아, 빌어먹을!’

    산박은 속으로 욕을 날렸다. 안 그래도 정령과 관련된 쓸모없는 기술들 때문에 화가 나는데 3레벨 주문까지 정령 소환이 걸려서였다. 하지만 이내 들어오는 정보를 본 산박은 생각을 달리했다.

    ‘이건 좀 다른 정령 같은데.’

    ‘수호 정령’. 소환한 사용자를 지키는 정령이었다. 평범한 정령이 아무 일에나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면 드루이드 정령은 확실하게 드루이드를 위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자연을 수호하는 드루이드라서 그런가.’

    사실 쥐뿔도 수호하고 있지 않은 게 산박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드루이드라는 직업을 가진 것만으로도 드루이드 정령은 그를 지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게 중요하지.’

    새하얀 공간에 바로 이를 소환해 봤다.

    연두색 나뭇잎이 피어오르며 서로 겹겹이 뭉치더니 이내 여성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몸의 라인이 확 보였지만 슬림해서 야하지 않았고, 애초에 나뭇잎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감흥도 없었다. 이상 성욕에 오래 노출된 자들은 또 다르게 느끼겠지만 적어도 산박에게는 그냥 나뭇잎 여성체 정령이었다.

    “반가워요, 드루이드.”

    차분한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으며, 마치 선선한 가을에 나들이를 나가서 자리를 펴고 누웠을 때의 기분마저 들었다. 주변을 편안하게 만드는 드루이드 수호 정령, 정원사 카멜이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카멜. 이번에는 소환 주문을 획득한 겸 소환했습니다.”

    “그런가요? 조금 아쉽네요. 드루이드가 가꾸는 산을 구경하는 게 제 취미거든요.”

    ‘산……?’

    말은 고분고분하고 온화했지만 그 속에 목적이 뚜렷했다.

    “자연을 지키고 수호하는 드루이드를 돕는 것은 드루이드 수호 정령인 저, 정원사 카멜의 사명입니다. 드루이드께서 가꾸는 영토를 수호해야 하지요.”

    “아……. 예. 다음에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카멜은 그것으로 역소환되었다.

    ‘뭐, 안 보여주면 그만이지. 강력하게 요구할 생각도 없어 보이고.’

    인내심도 강해 보였다. 어찌 되었든 던전 내부에서 전력으로 쓸 만했으며 명령을 거부하거나 딴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했다.

    요구 사항이 있지만 다른 정령 정보를 통해서 이야기되는 그들의 정신 나간 명령보다는 나았다. 어떤 고레벨 정령술사는 매번 막대한 숫자의 돌고래를 방생시키거나 바다에 돌고래를 위한 물고기를 방생하는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수천만 원이 깨지는 건 다반사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특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산박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특성은 자연주의, 다신교, 학자, 균형자, 야수 조련사였다. 이 중에 하나를 강화할 수 있었다. 다만 야수 조련사는 강화할 수 없었다. 거기서 끝인 특성이었다.

    고민 끝에 산박은 다신교를 강화했다.

    [다신교가 주체 다신교로 발전합니다. 지혜가 2 상승합니다.]

    [자신의 종교를 창시할 수 있습니다. 창시하겠습니까? 거부한다면 주체 다신교는 중도 다신교로 변환됩니다.]

    “거부한다.”

    [중도 다신교로 특성이 변화합니다. 모든 종교에 대해서 관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태도를 지닌 자들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끝낸 뒤 이번에도 뒤풀이를 하지 않고 돌아온 산박은 자신의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3층에 있는 집 문 앞에 선 산박은 자외선 불빛이 들어오는 작은 도구를 꺼내서 켰다. 문고리에 발라놓은 형광 물질의 흔적이 사라지고 깔끔하게 닦여 있었다. 누가 미리 닦아 놓았다는 소리였다.

    ‘뭐지? 전혀 짐작 가는 게 없는데.’

    산박은 그대로 몸을 돌려서 계단을 내려갔다. 입구에 다다르자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중동인?’

    이런 동네에서 보기 힘든 여자였다. 이곳은 들어와서 사는 데 제법 비싼 돈을 요구하는 동네였다. 그러면서도 후지다. 욕심만 철철 넘치는 것들이 점령한 동네라 산박에게 딱 알맞은 곳이었다.

    방범 수단이라고 해봤자 저화질 CCTV뿐인 데다 얼굴 하나 구별하기 힘들고 그마저도 없는 곳이 수두룩했다. 다만 비싸서 돈 없는 것들은 들어오지도 않는다. 허술하지만 치안이 좋았다.

    산박이 거침없이 다가가자 중동 여자의 눈이 흔들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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