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4화 (224/270)
  • 224화

    <중동>

    던전에서 나왔을 때 산박은 자신의 물품을 찾은 후 이내 곧 나온 돌핀 워리어스 하청 팀 김안후에게 바로 현찰을 쥐여줬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기믹이 들어 있었다.

    ‘돈이 최고야. 돈은 늘 새로워.’

    삶이 팍팍해서 만나지 못했던 불알친구의 첫 독립, 첫 이사. 그때 줄 선물은 전자레인지 등이 있겠지만, 그냥 돈을 주면 최고다. 돈은 어디에서든지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돈은 최고지.’

    그렇기에 산박은 현찰을 준비했다. 현찰로 바로 박히는 것과 전산으로 입금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기 때문에 그 점을 매우 잘 써먹어야 했다.

    혼자 살아남은 돌핀 워리어스 소속의 김안후는 그저 감사해했다. 그러다 이내 액수를 헤아려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 이거, 사장님? 계산이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10만 원은 큰돈이었다. 적어도 김안후에게는 컸다.

    “10만 원은 팁입니다. 나중에 저 보면 아는 척하셔야 합니다.”

    산박이 미소를 지었다.

    “아하하! 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동료 두 명이 죽었음에도 웃을 수 있는 김안후는 2레벨 던전에서 빠삭하게 구른 사람다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마무리를 잘하면 됐다.

    태산박이 준 팁 10만 원은 김안후에게 있어서 상당한 가치를 지녔다. 무엇보다 회사 사람 모르게 10만 원을 챙길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건 돌핀 워리어스와 채무 관계로 얽혀있는 김안후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일이었다.

    그를 보내고, 산박은 조용히 차례차례 모든 걸 마무리했다. 다만 뒤풀이는 갈 수 없었다.

    “사장님! 그냥 가시게요? 그래도 뒤풀이는 해야죠.”

    “법인 카드 있으시죠? 팀장님이 수고 좀 해주세요. 일 차만 하고 빠지셔도 되니까요.”

    그길로 산박은 그대로 휴식을 취하러 떠났다. 바로 2일 후에 서 팀장이 던전 공략을 하기 때문이었다. 쉴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쉬어야 했다.

    이를 시작으로 산박은 빠르게 2레벨 구간을 주파하기 시작했다. 그 데이터는 차곡차곡 쌓일수록 많은 이들을 놀랍게 했다.

    ‘더 지켜볼 수 없어. 이대로 두면 안 돼! 내 사랑이 사라져 버려…….’

    가장 먼저 이시은이 결단을 내렸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집어 들면 그 너머에 있는 달을 가리킬 수 있는 게 산박이었다. 그가 걸어가는 길은 처음에는 따라갈 만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날갯짓을 하는 새를 보며 새가 곧 날 것으로 생각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시은은 결단을 내렸다.

    ‘3레벨 레이드가 끝날 때, 혹은 그 결과물 앞에서 샴페인의 뚜껑을 따며 자축하는 사장님을 죽이겠어. 그게 최선이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음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이시은은 이미 부산 은행 쪽 정보도 획득한 상태. 출세를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태산박이 송서아를 선택할 것은 확실했다.

    ‘지금 이렇게 무리하는 것부터가 송서아를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야.’

    질투심마저 들었다. 날갯짓하는 매. 사랑을 위해서 자신의 배경을 만들려는 남자. 그 두 가지가 이시은을 재촉했다. 더는 꿈에서 있을 수 없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꿈이긴 꿈이었지…….’

    조금 불규칙하긴 해도 기업에 소속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과 감정의 교류를 하는 척하며 획득한 정보들도 많았고, 감정도 분명 있었다. 그저 살인 충동보다는 약할 뿐.

    ‘결국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한다면, 내 손으로 부수는 수밖에 없어.’

    두고두고 괴로워하는 것보다는 피로 하나가 되는 게 더 좋은 결과였다.

    * * *

    송서아는 산박이 던전에서 나올 때마다 연락했다.

    [또 2일 이후에 가세요?]

    [네. 빨리 3레벨 되려고요.]

    [조심하세요. 잘될 때일수록 돌아서 가셔야죠.]

    문자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2레벨 소비 아이템을 좀 우연히 선물로 받았는데, 사무실로 보내 놨어요. 확인해 보세요.

    “사무실 직원에게서 들었습니다. 부재중 통화가 쌓여 있었는데,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놀랐죠.”

    ―으흡흐…….

    송서아가 웃음 참는 소리를 냈다. 그녀의 습관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산박의 웃음소리도 전화를 통해서 서아에게 들려왔다.

    ―다음에 만날 때는 교토 가는 거 아시죠? 외근으로.

    “예. 그때 뵙겠습니다. 근데 교토 자주 가보셨어요?”

    ―아뇨. 하지만 뭐가 있는지는 잘 알죠. 제가 여행에도 큰 관심이 있거든요. 교토에 뭐가 있냐 하면요.

    속박당한 채 살았기에 여행을 콩깍지 끼고 보는 게 송서아였다.

    내일 일정을 생각하면 잡담도 금방 끝내야 했지만 서아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산박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새벽 두 시 반.’

    지금 잠을 자도 한참 늦었다.

    “아니, 교토에서 한식당을 가자고요? 서아 씨, 그게 최선이에요?”

    ―뭘 모르는 말씀! 퓨전이에요. 한국 5성 호텔 주방장 경력도 있으시고, 바로 일본 가서 또 호텔 주방장 4년째 하시는 분이에요. 아는 사람만 아는데, SNS 많이 하는 사람은 꼭 가는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럼 무조건 가야죠.”

    생각보다 송서아의 말이 길어지고 기대심을 품고 있는 게 보이자 산박은 냉큼 태세를 전환했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반대에서 찬성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던 중에 산박은 전화 너머로 다른 목소리를 들었다. 호통 소리였다.

    ―아직도 안 자고 뭐 하십니까!

    ―아, 그게요, 당숙님. 중요한 업무 전화라서요.

    ―어떤 사람이 지금 이 시각에 업무 전화를 합니까?

    ―제가 걸었어요!

    ―더 큰 문제입니다! 아리가 요즘 노래를 부릅니다. 서아처럼 되겠다고. 그런데 이렇게 하시면……. 거기에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워라밸을 중요시하는데요. 이제 일만 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어서 끊으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산박에게 명확하게 대화가 들려올 정도였다.

    ‘집안 자체가 뭐가 저렇게 기가 세?’

    아무래도 제대로 된 배경 하나 가지지 못한 채로 웃어른을 만나게 된다면 문제가 곳곳에서 튀어나올 게 분명했다. 서로의 기반이 다르면 불협화음은 끝없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물질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물질에 대한 염(念)을 버리라고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되레 그렇게 말하면서도 월급봉투 꼭꼭 챙겨 먹는 모순적인 사람이 많았다.

    ‘집안사람 만나는 건 최대한 물려야겠지.’

    첫 단추는 매우 중요했다. 다행인 것은 서아가 내부에서 잘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직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듯했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지만.’

    레이드 가능한 던전 기업의 사장 정도는 되어야 했다. 그게 산박의 목표였다. 그 이후는 차근차근 상황에 맞게 조정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중에서 당장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전담 팀에 대한 것이었다. 2레벨 던전도 이제는 수월하게 공략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2레벨 전담 기업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서야 다른 업체에 위협을 받는다.’

    1레벨 전담 팀을 하나 더 늘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무엇을 해도 적자인 게 1레벨 전담 팀이었다. 이대로 유지하는 게 좋았다.

    ‘옥시모론 기업을 현직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니까.’

    1레벨 전담 팀이라고 해서 풀로 꽉꽉 채워서 데려가지 않는다. 그중에는 돈을 내고 1레벨 던전을 쉽게 클리어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부모님 덕을 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레벨 업’ 할 수 있는 던전은 젊은 사람들에게 특히나 인기였다.

    ‘환상이지.’

    깨끗한 환상이다. 거기에 매료된 자들이 많았다. 외국에 대한 막연한 로망과 비슷했다. 그곳에는 비일상이 있었고 신비로움이 있었으며, 던전 사용자들은 인류의 가장 선두에 서서 미증유의 현상을 해결하려는 용사들의 모습으로 보이기 마련이었다.

    ‘허나 그런 것은 없다.’

    던전 클리어마다 죽어 가는 하청 팀원들이 그득하고 던전 매물을 담합하여 매입하는 기업들이 판을 치는 곳이었다. 그나마 대한민국이기에 질서가 있어 보일 뿐, 외국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산박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빠르게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 질주는 정글을 누비는 퓨마와 같았고 초원을 달리는 표범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브레이크가 끽! 소리를 내며 그를 멈춰 세웠다.

    * * *

    중동.

    ‘판타지 쇼크’에 의해 현재 중동의 종교 지파는 수십 개를 넘어서서 수백 개에 달하고 있었다. 종교로 인한 분란이 곳곳에 존재했고, 예전보다 더 혼란으로 치달았다. 중동은 이제 매우 위험한 곳이 되었다.

    동시에 세속적인 도시에서는 종교가 빠르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테헤란 도시가 그러했다. 관광 도시의 우뚝 선 경제 덕분에 세속적인 이들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종교는 뒷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종교를 믿는 자들은 있는 법이었다. 소규모 종파인 풀라피파. 스스로를 이맘(聖人)이라 여기는 수하임(Suhaym)의 사원이었으며 수하임은 던전 사용자였다. 동시에 이 사원은 오직 여자 신도만이 허락되고 있었다.

    다분히 의심스러운 곳이었지만 이런 사원 같지 않은 작은 사원에 관심을 두는 자는 적었고, 두더라도 힘이 없는 자에 불과했다.

    그중에서도 다섯의 젊은 여성이 수하임 이맘의 열렬한 광신도였다. 그들은 수하임 이맘에 의해서 세뇌가 단단히 되어 있었다. 동시에 그의 밤 기술 덕분에 깊은 사랑에까지 빠져든 상태였다.

    그녀들은 여성의 몸으로 던전 사용자 3레벨까지 도달했을 정도로 대단한 여성들이었고, 이제 수하임은 던전에 가지도 않고 있었다. 사원으로 모이는 돈만 해도 떵떵거리며 살 만했다. 레이드에 임하는 3레벨 던전 사용자의 재원은 그만큼 상당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중동에서는 던전 사용자의 가치가 더더욱 높았다.

    “때가 왔다.”

    다른 이들로부터는 휴즘 하디(hujum hadi)라 불리는 수하임이 다섯의 광신도를 모아놓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천신(天神)께서 말씀하셨다. 벼락이 말씀을 나에게 전하셨도다.”

    “아아…….”

    그들이 절로 기도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분을 믿게 할 남자를 지명하셨다. 대한민국으로 향하라. 옥시모론 기업의 태산박을 쫓아라. 그를 협박하여 야만신으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너희에게 주어지는 임무다.”

    그렇게 말한 수하임은 기품 있게 일어서서 다섯 명의 여자들에게 축복을 내려줬다. 물론 그 어떤 힘도 담겨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들 모두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후밥 달리야흐(Hubab Daliyah), 네가 상황을 보고, 항상 먼저 나서라. 넌 남 앞에 설 때 비로소 빛나는 법이야. 파지야 말로프(Fazia Malouf), 넌 후밥이 만든 기회를 잘 이용해야 한다.”

    두 명을 비롯한 나머지 세 사람에게도 각각 해야 할 일을 맡겼다.

    이내 그들은 빠르게 한국으로 향했다.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에 상대의 맹점을 찌를 수 있을 게 분명해 보였다. 그 누구도 걱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인은 마초기가 상당한 놈들이었다. 대중가요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다섯 명의 던전 사용자는 비행기를 타고 그대로 대한민국으로 향해 서울로 갔다. 곧바로 세종시로 향하지는 않고 현지에서 정보를 취득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부터 차근차근 파악해 나갔다.

    ‘서두르고 싶지만, 알리바이도 만들어야 해.’

    명소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관광을 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어필했다. 또 사건 당일에 사용할 사진 또한 미리 만들었다. 날씨를 알 수 없도록 밤에 찍거나 실내에서 촬영했다.

    그 작업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산박에 관한 정보를 교차 검증해야 했으며, 또 협박을 위한 최소한의 장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장비는 선박을 통해서 들여온다. 대한민국의 선박 조사는 특히나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돈이 먹히는 공무원을 만날 공산이 적었다. 확률에 기대야 하므로 자연 불법적으로 들어오는 횟수가 적었다. 그리고 그 양도 대단하지 못했다.

    재벌 3세가 가지고 오는 게 아니면 매우 위험한 것이 불법 물품이었다. 그렇기에 보통 중동의 불법 물품을 옮기려면 서일본을 경유해서 대한민국으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땅덩이가 크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불법 물품을 합법 물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한 달 반 뒤에나 그들은 자신들의 전투 물품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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