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3화 (223/270)
  • 223화

    * * *

    이 팀장이 이끄는 팀은 착실하게 ‘방’을 공략하고 이어서 나선의 통로를 천천히 내려갔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3일이었으며, 비스트 미라 같은 건 처음 이후로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 덕에 방을 네 개씩 세 개씩 털면서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여덟 개의 방을 주파했고, 딱 4일째 되는 날에 보스 방 앞에 섰다.

    척 봐도 고풍스러운 문과 수많은 석상이 통로에 배치되어 있었다. 관도 있었기에 확인을 해봤는데 그저 시체밖에 없었다.

    “귀중품은 개인별로 챙기실 분은 챙기세요. 함정은 없습니다.”

    산박은 추가로 약간의 귀중품을 챙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맡겼다. 딱히 기업 차원에서 이를 거둬들이지 않고 그냥 팀원들의 작은 용돈벌이를 하도록 한 것이다.

    “하청 팀은 휴식 그대로 취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이시은이 말했다. 물론 산박과 이미 상의를 마친 내용이었다.

    두 명 남은 하청 팀 전사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시은과 부딪치고 나서 재미를 볼 생각을 했다면 시은을 호구로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은은 시체를 살폈다.

    “너무 오래되어서 쓸 수도 없어요.”

    시은이 일으켜 세우더라도 제대로 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언데드의 상태가 아니었다.

    “지금 남은 ‘힘’의 현황을 말씀해 주세요.”

    “1레벨 주문 두 개 정도 쓸 수 있습니다.”

    “저는 세 개요.”

    “전 다 써버렸습니다.”

    팀원들이 속속 대답했다. 아이템도 새로 다시 모아서 균등하게 배분했다. 산박이 가장 많이 쓰지 않았다. 소환수에게 전투를 다 맡기고 위기 시에만 쓰려고 했는데 소환수 덕분에 위기 상황이 오지 않아서였다.

    “좋습니다. 그럼 하루를 휴식한 뒤에 보스 공략을 하겠습니다. 보스는 중형 괴물일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곳곳에 중형 괴물이 파괴해 놓은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단서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웠지만 산박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런 조언 정도는 빠짐없이 하고 있는 산박이었다.

    ‘전투는 흠잡을 데가 없다.’

    이 팀장은 실적에 눈이 멀어서 하찮은 하청 팀을 쓰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패할 수 없는 공략이었다. 사망자도 하청 팀에서나 생겼을 뿐이었다.

    ‘돈 때문에 전사 직업을 가지고도 하청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창업할 돈이 없는 엔지니어는 그저 월급봉투에 집착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던전 사용자도 다를 바가 없었다. 당장 손에 들어오는 돈 때문에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 곳에 들어서는 이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물론 돌핀 워리어스 팀 소속 전사들이 실력이 좋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나마 김안후만.’

    척후병의 면모를 강하게 지니고 있고 적을 먼저 알아차리는 감각이 뛰어난 김안후는 제법 눈독을 들일 수 있는 B급 전사였다. 산박은 3레벨에 들어서면 그를 따로 빼 올 생각도 했다.

    ‘이시은과 척을 졌다는 것도 나한테는 좋으니까.’

    휴식하고 난 뒤에 그들은 보스 룸으로 들어섰다. 문은 조금만 건드렸음에도 자연스럽게 열렸다. 내부 공간은 넓었고, 엄폐물이 하나도 없었다.

    ‘제기랄.’

    보자마자 산박이 욕을 날렸다. 덩치가 커다라면 지형지물이 많은 공간일수록 행동에 제약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지형지물이 없다는 것은 팀에게 불리하다는 뜻이었다.

    ‘보스 룸의 장식을 봤을 때는 제법 휘황찬란한 보스 룸일 거라 여겼는데 이렇게 삭막하다니.’

    산박은 혀를 찼다. 다만 그래도 괜찮은 것은 상대가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커 봤자 3m 미만으로 보였다. 물론 크긴 컸다. 사람의 두 배만 했다.

    ‘독특한 놈이다. 정보에도 없다.’

    처음 보는 놈이 산박의 눈에 잡혔다. 굵직한 줄이 달린 호롱불 같은 것을 들었고, 그 굵은 줄이 괴물의 어깨 안쪽의 살을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줄 내부에서 뭔가를 공급하려나.’

    굵직한 줄이 왜 어깨 안쪽 살에 들어가 있는지, 그게 제법 중요한 포인트로 보였다. 분명히 용도가 있어 보였다.

    보스 몬스터는 짐승 형태였고 사족 보행을 하는 것 같았으며 두상은 늑대와 닮았다. 다만 털이 없었다. 방어구라고 할 것도 없어서 공격을 하면 하는 대로 피해를 입을 것 같았다.

    ‘즉, 단기전을 하라는 뜻이다.’

    보스 몬스터의 형태를 통해서 이 전투에서의 스탠스를 확정 지었다. 아직 놈은 자신의 사타구니를 핥는 데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 덕에 충분히 시간이 있었다.

    ‘네 개의 팔, 두 개의 다리. 거미같이 생긴 놈이군.’

    다만 곤충의 형태는 아니었다. 날카롭고 두툼하기 그지없는 손과 발은 인간이라기에는 투박했고 짐승이라기에는 섬세했다. 딱 그 중간에 있었다.

    “덩치가 큰 놈입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외눈붉은곰과 작은 대지 골렘으로 최대한 육탄 공격을 막아 보겠지만 한계가 명확합니다.”

    산박이 나섰다. 보통 놈이 아니었기에 모두 그 말을 귀 기울여서 들었다.

    “호롱불에서 무슨 짓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투척하거나 뭔가를 내뿜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그 두 가지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전투는 별다른 준비 없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다.

    주문을 얻어맞은 놈이 나뒹굴며 괴성을 내질렀다. 화염 주문이 들러붙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큰 피해를 주는 것처럼 보였다. 맞는 대로 상처를 입었다.

    “크아아아아!!”

    “좋았어!”

    너도나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놈이 엉거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기 때문. 하지만 그런 겁쟁이적 면모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쿠아아아아악!”

    소리를 내지르며 위협하던 놈이 사타구니에서 오물을 쏟아냈다. 그곳에서 기생충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크기는 사람 팔뚝만 한 놈들이었으며 새하얀 굼벵이처럼 보였다.

    굼벵이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오물이 묻어 있다는 점이었다. 악취가 심했고 동시에 지네와도 같은 길쭉한 다리 수백 개를 가지고 있었다.

    굼벵이지네는 사방팔방 퍼져 나갔다. 시야가 좁아서 적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는 모습이었다.

    “우읍. 씹…….”

    너도나도 입을 틀어막았다. 척 봐도 굼벵이지네와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똥 오물이 묻은 괴물은 정말 짜증 났다. 현대에는 위생이 많이 발전해 더러운 것을 잘 보기 힘들어서 더더욱 그러했다. 아무리 시체 냄새와 피 냄새에 절었다고 해도 배설물을 거침없이 몸에 묻힐 수 있는 사람은 잘 없었다. 익숙해지기도 힘들었다.

    “전투 준비!! 전사 앞으로.”

    이시은이 전사들을 전방으로 보냈다. 오물이 묻은 굼벵이지네는 그들의 몫이었다. 아무리 고레벨이 되어도 전사들이 하는 일은 그렇게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사이에 산박은 ‘작은 대지 골렘’을 일으켜 세웠다.

    ‘갈래 불꽃을 쓸 정도는 아니다. 차라리 집중성탄을 통해서 보스 몬스터를 노린다.’

    그게 옳았다. 뒷짐을 진 채로 산박이 까치발로 서서 주변을 훑었다. 사람 팔뚝만 한 굼벵이지네는 위협적이지만 제대로 된 놈들이 아니었다. 제대로 뭉쳐서 한 방향으로 오는 게 아니라 사방팔방 흩어지는 것들이었다. 이는 전사들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그사이에 보스 몬스터가 쿵쿵거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겁먹은 것도 잠시, 고함을 질러보니 제법 할 만해 보여서였다. 상처는 입었지만 흥분 호르몬이 대단히 분비되는 놈인지 상처가 없는 것처럼 여겼다.

    그러는 동안 전사와 굼벵이지네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놈들은 거침없이 깡충 뛰어 들러붙으며 전사들을 이빨로 물어뜯기 시작했지만 상처는 나지 않았다. 운 좋게 방호력이 낮은 곳에 들러붙어야지 가능했다.

    “개새끼!”

    “씹새끼!”

    전사들이 욕지거리하며 자신에게 들러붙어 기민하게 몸을 타고 오르는 굼벵이지네들을 내치고 닥치는 대로 주먹으로 때려죽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민첩한 놈들이라 무기는 냉큼 버린 지 오래였고 단검 한 자루 쥐는 게 고작이었다.

    쿵…쿵쿵…쿵쿵쿵!

    ‘끔찍하다!’

    한편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서 보스 몬스터의 속력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제대로 부딪친다면 전사 한 명은 빈사 상태에 빠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청 팀’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산박의 외눈붉은곰과 작은 대지 골렘이 있었다. 놈들은 양옆에서 가만히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가 보스 몬스터가 근접하자 그제야 일어나서 달려들었다.

    “크어엉!”

    서로 고함을 내지르며 부딪쳤다. 가장 덩치가 큰 것은 놈이었지만 곰과 골렘이 힘을 합치자 돌진을 멈출 수는 있었다.

    하지만 보스 몬스터는 보스 몬스터. 순식간에 들고 있던 호롱불이 담겨있는 병을 휘둘러 외눈붉은곰의 머리를 내려쳤다.

    퍽!

    흉악한 소음이 들렸다. 호롱불이 담긴 병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여 외눈붉은곰의 어깨에 부딪혔다. 외눈붉은곰의 어깨가 단번에 움푹 들어가 버렸다. 자세가 틀어지면서 외눈붉은곰이 옆으로 쓰러졌다.

    “달려들어요!”

    시은이 외쳤지만 전사들은 이미 그 전부터 놈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김각두의 양손 망치가 멈춰진 놈의 발목의 툭 튀어나온 뼈를 그대로 가격했다.

    뻐극!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모두 무기를 이용해서 한 번씩은 보스 몬스터를 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산박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소나무 향기 외뿔 주문을 비롯해서 영혼 자극 등을 사용함과 동시에 집중성탄 주문을 완성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그 속에서 외쳤다. 이는 매우 좋지 않은 습관이었다. 주문이 완성되는 시간이 늦춰졌다. 말을 하느라 신경이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모두 뒤로 빠져요! 호롱불!!”

    김각두는 호롱불을 보지도 않고 몸을 내뺐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주하승은 멍청하게 호롱불을 올려다보는 실수를 범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를 본 법성 사제 김연정이 주문을 사용했다.

    “충격 감쇄의 신성 방패!”

    방패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롱불에서 떨어진 검은 독액이 땅으로 떨어지며 잔뜩 튀었다. 거기에 노출된 주하승이 끔찍한 소리를 냈다.

    “끄아아아아아악!!”

    간편한 가죽 방어구가 녹으면서 유해 가스를 배출했고, 고함을 내지르며 이를 들이켠 주하승이 그대로 큽 소리를 내며 기절해 버렸다.

    모두 예상치 못했던 것은 마일환이었다. 빠지라는 말에 너무 급하게 빠지다가 발목을 접질려 버려서 그대로 독액을 맞아야 했다. 소리도 내지르지 못했다.

    주하승을 김각두가 회수하는 사이에 산박의 집중성탄이 정확하게 괴물의 머리를 꿰뚫었다. 상황은 그것으로 끝났다.

    마일환은 죽었다. 사인은 쇼크사였다. 주하승이 독액에 조금만 피부가 노출된 것만으로도 고함을 내지른 건 피부 자극을 통해서 고통을 주는 독액이라서였다.

    ‘기만이었다.’

    산박은 절로 소름이 끼쳤다. 상대 보스 몬스터는 피해를 잘 입었기에 누구나 절호의 기회로 여겼지만 그게 함정이었다. 불나방처럼 달려든 놈들에게 호롱불에 있는 독액을 쏟아내는 것. 그게 바로 호롱불 사괴의 위험한 점 중 하나였다. 물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지만, 산박의 집중성탄이 놈의 머리를 꿰뚫으면서 끝이 났다.

    ‘쯧.’

    집중성탄의 단점. 시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힘이 소모된다는 것. 그래서 신중하게 발사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한 명의 사상자가 더 발생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결국 하청 팀 두 명만 죽었기 때문이었다. 주하승은 때 좋게 기절했기에 특별히 큰 PTSD에 시달릴 것 같지는 않았다.

    “호롱불 챙기세요.”

    “파괴되었습니다. 아니, 사라졌다고 해야 할지.”

    그 말에 산박이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남은 호롱불 사괴의 몸만 밧줄로 감아서 현실로 데려왔다. 처음 보는 놈이라 그렇게 해야만 했다. 물론 산박만 처음 봤을 뿐 이미 정보에 있을지도 몰랐다.

    던전이 붕괴했다.

    [레벨 업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사용자 태산박을 인식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출력합니다.]

    [던전 사용자 태산박의 존재를 특정합니다. 당신은 카르마의 선택을 받은 자입니다.]

    [2레벨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충분한 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업을 위해서 남겨놓을 수 있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새로운 주문과 기술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야만신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야만신과 관련된 소환 주문 혹은 기술이나 주문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야만신의 보상으로 기술 획득.”

    [부정(不淨) 흩트리기 기술을 배웠습니다.]

    바람의 힘으로 부정함을 흩트리는 기술이었다. 주문이 아닌 기술인 이유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서다.

    ‘패시브 스킬인 셈이지.’

    산박은 그 기술을 획득하며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바람이 가지는 특징이었다. ‘흩어짐’에 대한 지식이었다.

    ‘저주 대항책이라고 하기에는 약하다.’

    바람이 부는 곳에서나 효력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던전 클리어 보상은 남긴다.”

    [카르마가 보존됩니다.]

    옥시모론 팀의 사망자는 제로. 돌핀 워리어스 하청 팀의 사망자는 둘. 그게 현대에 드러날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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