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멍하게 있는 비스트 미라를 향해서 주문이 쇄도했다.
이시은은 트위스트 스네이크 로브가 아니라 범위형 주문을 사용했다. 그녀가 이번에 구매하여 착용하고 온 로브는 ‘빌라이언 불바람 로브’라고 불리는 독일제였다.
러시아와 쌍벽으로 기본 과학이 발전된 곳이 독일이었다. 빌라이언 회사는 판타지 쇼크 이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불법 꿀을 감별하는 회사였다. 중국의 가짜 꿀 유통은 국제경찰 노릇을 하는 미국이 매우 중대하게 여기는 범죄였다. 미국이 농업 국가인 것이 컸다.
미국은 빌라이언 회사에 꿀 감별을 의뢰했고, 덕분에 빌라이언 독일 회사는 자연스럽게 판타지 쇼크 이후에도 던전 경제에 투입할 정도의 자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티팩트를 만드는 곳 중에서도 제법 메이저였다.
로브 안감의 우둘투둘한 곳을 잡아당기고 이시은이 시동어를 외쳤다. 안감이 쭉 늘어나며 붉은색을 드러냈다.
“Flamme Einmal(일 번 화염).”
발음이 어려운 편은 아니었고, 시동어에 대한 감응도도 높았다. 순식간에 로브에서 이글거리는 화염이 세 줄기 뽑혀 나가며 적을 향해 쇄도했다.
“바람 소리보다 더 격렬한 파도의 소리와 계곡에서 떨어져 내리는 흉포함! 워터 샷!”
견동수와 대장삵은 물의 주문, 워터 샷을 사용했다. 마법사라는 평범한 직업을 지닌 견동수는 범용성만은 좋은 편이었다. 오대 원소에 닿아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화염부터 물까지 다양한 주문을 소지하고 있는 게 견동수였다. 겉으로 보이는 건 그저 유약하고 의견을 잘 내지 않지만 속으로는 마법사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사제 임지유는 딱히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몸치인 그녀는 양궁을 배우고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주하승의 경우에는 단궁을 꺼내서 화살을 발사했다. 화살은 아티팩트였는데, 단가가 제법 비싼 화살이었다. 1레벨 화염 주문이 든 조악한 화살이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안 쓰는 것보단 나았다. 일만 화살이라 불리는 국민 화살이었다. 단가가 만 원이고 한 번 사용하면 끝이었기에 국민 화살이라고 해도 진짜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법정 사제 김연정 또한 별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건 김각두도 마찬가지였다.
“크아아아아!!”
바짝 메말라 있는 성대가 크게 떨리며 비스트 미라들이 단번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숫자는 서른을 헤아렸다. 사지가 잘려 나가도 일정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으면 계속해서 움직이는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이 무려 서른 마리나 존재했고, 조금 공격을 받은 것만으로도 전체가 적을 인식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간을 봤다가는 큰코다치고 사상자까지 나올 수 있었다.
놈들이 한곳을 향해서 덤벼 오자 이시은이 외쳤다.
“투척!”
“투처어억!”
회오리 화염 철구를 위아래로 잡고 힘을 준 뒤에 반 바퀴를 콱 돌린 다음 그대로 투척했다.
화르르르!
수류탄과 위력을 감히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 범위만큼은 수류탄과 비슷했고 시각적 효과도 뛰어났다. 화염이 비스트 미라들을 삽시간에 덮쳤다.
“키아아악!”
놈들은 자신이 불타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지 고함을 내지르며 발악했다. 팔을 허우적거리는 짐승 같은 놈들이 갑자기 네발로 달리는 걸 멈추고 두 발로 서며 돌을 던졌다.
투덩터더덩!
이를 단번에 전사들이 막아섰다. 막은 다음에 여유가 있는 이들은 섬광 단검을 투척해서 적들의 시력을 빼앗았다. 그런데도 달려드는 놈들은 방향이 어긋나서 서로 뒤엉키며 넘어졌다.
마력 불꽃은 번지지는 않았지만 피해를 서로 겹치게 하기는 했다. 시은은 자신만 보유하고 있는 자신의 제작품을 내던졌다. 화염 물병이었다.
바닥이 타올랐다. 그곳에 엉망진창으로 돌진하고 있는 비스트 미라들이 들어섰다. 발목 뒤쪽의 관절에 있는 힘줄이 타들어 가며 녹아 버렸다. 자연스럽게 놈들의 돌진 속력이 전체적으로 느려지고 서로의 이동 속도가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병목 현상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지자 전사들은 방어, 주문 사용자들은 주문을 쏟아붓고 아이템 또한 다양하게 사용했다. 종종 투척물이 떨어져 내렸지만 전사들의 뒤로 넘어가지는 못했다. 워낙 비스트 미라들이 입고 있는 피해가 컸다.
‘이거, 주문을 더 사용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견동수가 예상보다 빨리 소모되는 적들을 보며 조금 주저했다. 그걸 본 이 팀장이 소리를 내질렀다.
“뭐 하고 있어! 벌써 주문력을 다 사용한 거냐!”
그 윽박지름에 견동수가 찔끔하며 주문을 재차 사용했다. 있는 힘을 모두 사용하기 시작했다.
“크으! 크아아아!”
그곳을 뛰어넘어 도착한 여덟 마리의 비스트 미라들은 순식간에 죽어 버렸다.
“전방, 돌격!”
“아으, 아으, 악!”
산박의 소환물들이 돌진하고 전사들이 그들을 보좌하면서 돌진해 비스트 미라들을 곤죽을 내놓았다.
‘너무 쉬운데? 이렇게까지 소모를 해야 했나?’
몇몇 이들은 아쉬움을 가졌다. 그만큼 손쉽게 상황이 끝나서였다. 하지만 이는 하나를 모르고 둘도 모르는 소리였다. 허투루 접근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었다.
산박은 던전 정보로만 획득했던 비스트 미라에 대한 실전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생각보다 생명력이 높다.’
솔직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산박조차도 사실은 아이템 사용에 대해서 고민했고, 주문 사용에 대한 제한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은 이시은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반면 그녀는 브리핑에 충실했다. 그 결과는 이시은의 손을 들어줬다. 만약 제한했다면 낭패를 봤을 것이었다. 특히 녹아내린 관절 때문에 두둑 떨어진 팔과 다리는 거침없이 땅을 기며 그들을 향해 오고 있기까지 했다.
시은이 제작하고 자신만 소유하고 있는 화염 물약을 땅에 투척하지 않았다면 부상자가 나왔을 것이었다. 100%의 확률로.
‘데이터는 정말 믿을 게 안 된다.’
알고 있어도 실전에서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걸 산박은 깊게 체감했다. 하지만 아마 다시 되돌아가도 똑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 같았다. 그만큼 던전에서의 하루를 버린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욕심이 있는 산박이기에 더더욱 거기에 묶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이시은은 산박의 더블 공략을 내키지 않아 했기에 하루를 버릴 각오를 단번에 했다. 실로 속 보이는 짓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살인을 끝내고 항상 햄버거를 사 먹는 살인자를 보고 햄버거 먹으니까 또 한 명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불가능한 추론이었다.
“정리하겠습니다!”
피해를 고스란히 나눠서 받은 유인원 같은 짐승 머리를 한 비스트 미라들의 시체 사이에는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는 신체 부위가 존재했다. 화염에 취약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퍽!
타격을 통해서 피해를 누적시켜 죽인 뒤에 고양이상까지 회수하여 배낭에 넣었다. 아쉽게도 비스트 미라에게서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은 없었다.
냄새가 나지 않는 통로로 되돌아가서 휴식을 취했다. 그냥 하루를 버려야 했지만 그래도 나쁜 건 아니었다.
산박의 역량을 이용해 대장삵이 일행들의 땀으로 젖은 옷을 빨아주고 물 또한 새로이 보충했다.
카누토는 입에서 화염을 뿜어서 모닥불을 만들었다. 그림자가 드리운 사원 내부는 싸늘하기 그지없어서 휴식하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불꽃두더지 파수병의 불꽃은 꽤 쓸 만했다. 초월의 힘으로 이글거리는 불꽃은 매캐한 유해 가스도 발생시키지 않았고 장작도 불필요했다. 근접이라서 카누토는 딱히 힘을 그렇게 많이 사용한 것도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숨 돌리고, 밥도 먹었다. 시은은 산박에게 착 붙어 있었다.
“왜 이렇게 붙으세요. 다른 사람 눈치를 좀 보세요.”
“일해야죠. 복기할 거 말씀해 주세요. 사장님이 계신데 이런 거 안 물어보면 바보 아니에요?”
“제가 왜 이 팀장을 바보로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 안 하신다면 한번 말해 주세요. 다른 사람도 듣고 싶을걸요. 그렇죠?”
그녀의 말에 흥미를 가진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했다.
‘어차피 하기는 해야 하니까. 근데 이렇게 달라붙을 이유는 아니지.’
산박이 눈에 힘을 주자 이시은도 눈에 힘을 줬다. 누가 보면 삼귀는 사이로 알 것이 분명했다.
“던전에서 오해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조금이라도 옆으로 좀 가세요.”
“네에.”
시은은 순순히 물러갔다. 이미 다른 이들의 눈에서는 흥미가 뚝뚝 눈물처럼 떨어지기 바빴다. 남이 연애하는 것만큼 재미난 것이 없었다. 아는 친구의 동생의 친구 연애 이야기도 귀 기울여서 듣는 게 사람들이었다.
“일단은 결과부터 말씀드린다면 생각보다 비스트 미라의 생명력이 높다는 점입니다. 여러분들은 싸우는 중이라 제대로 못 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산박의 말에 모두가 귀 기울였다. 자신이 겪은 것을 복기하는 과정은 생소했고, 산박은 냉철한 리더였기에 신뢰성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 * *
“하자가 너무 많은데요. 솔직히 실망이네요.”
송서아의 말에 세종 공원 던전 훈련소의 사장이 절로 땀을 흘렸다. 지하부터 시작해서 지상의 끝까지 훑으면서 곳곳을 지적한 송서아는 매출과 돈의 가치에 대해서 빠삭한 기업가였다.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입지 하나만큼은 대단합니다. 리모델링만 하신다면……. 거기에 직원들까지 저희들이 엄선했습니다.”
사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자기한테 떨어지는 돈을 적게 부르지는 못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장이었기에 누구보다도 돈이 소중했다. 푼돈조차도 쉽게 여기지 않는 게 부자들이었다. 있는 놈들이 더하다는 말은 괜한 게 아니었다. 그 덕에 그는 여기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하지만 더는 불가능하다.’
던전 훈련소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기 설비 투자에 비해서 던전 사용자들의 구매력이 낮았다. 또 던전 기업도 굳이 던전 사용자들을 위해서 큰돈을 투자하지 않는 편이었다.
게다가 구매력이 보장된 고레벨 던전 사용자들은 훈련소에 가지 않는다. 실전을 통해서 레벨 업 한 자들이 훈련소에 간다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있기는 있지만 대세는 아니었다.
즉, 투자하는 돈에 비해서 수익률이 매우 낮았다. 그나마 초기에 뛰어든 자들이나 입지가 좋은 이들은 재미를 봤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 그런 상황에서 발 빼기 좋게 기업 하나가 들어온 것이다.
‘부산 은행!’
반드시 구매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그렇기에 사장은 매우 저자세로 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줄 아는가 보지?’
송서아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사장은 손수건으로 손에 나오는 땀을 어찌나 자주 닦는지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빌딩값만 해서 22억에 구매할게요.”
“예? 아니, 그게 무슨! 감정가만 해도 35억짜리 중형 빌딩입니다.”
순식간에 감정가보다 13억을 후려쳤다. 도둑놈도 이런 도둑놈이 없었다.
사장의 말에 송서아는 실로 실망스러워하는 눈을 했다.
“누가 던전 훈련소로 쓰이던 빌딩을 구매하겠어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데……. 연식만 해도 벌써 10년 아니에요?”
“던전 훈련소로 쓰인 지는 이제 만 9년 차입니다.”
“10년이나 9년이나 뭐가 달라요.”
사장은 기가 찼다.
“그, 그래도 살 사람이 많습니다.”
“뭐, 그러면 저는 할 말이 없네요. 그럴 바엔 차라리 100억 주고 대형 빌딩 사서 새로 하는 게 좋겠어요.”
송서아의 스케일에 사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보통은 20억에 대출 껴서 사는 것이 대형 빌딩인데 송서아는 너무 쉽게 말하고 있었다.
“저, 저!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장이 냉큼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판다면 지금 팔아야 했다. 하향가 주식을 쥐고도 가만히 있는 건 어리석었다.
“팔겠습니다. 22억!”
“20억에 해주시죠. 어차피 리모델링을 해야 하니까요.”
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미 물러설 곳이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정글. 야생에서 한 걸음 물러났는데 다시 앞으로 나설 용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20억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중형 빌딩치고는 싸게 넘기는 거지만, 그만큼 손을 털어야 하는 게 지금 상황이었다.
‘특히 빌어먹을 한국의 정치를 생각하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서울이 통째로 폐허가 되었음에도 나라가 유지되고 있을 정도였다. 선비 정신의 보고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국가적으로 저레벨 던전 사용자를 위한 훈련소 건설을 한다 안 한다, 엎어졌다 아니다로 연일 난리였다.
“하겠습니다. 20억!”
“하자 많다고 말씀드렸죠? 18억.”
“아니! 이게 진짜 말이 됩니까!!”
“전 다음에 세종 2청사 근처에 있는 던전 훈련소에 갈 겁니다. 거기 사장님이랑 안 친하시죠? 근데 훈련장 크기부터 아주 비슷하던데요.”
“윽!”
세종 공원 던전 훈련소의 사장이 앓는 소리를 가래처럼 탁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고 송서아가 자신의 경호원인 소준석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가 서류 가방을 올리고 서류를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이를 받아 든 사장의 눈이 미친 듯이 빠르게 서류를 훑었다.
파라라라락!
거칠게 서류를 훑어보던 사장이 단번에 서류를 찢어발겼다.
쾅! 쾅! 쾅!
그는 주먹으로 탁상을 내려쳤다. 서류에는 그가 저지른 범죄 기록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충격적인 것은 바로 뺑소니 사건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정확하게 그의 번호판이 찍혀 있었다.
차량 사고가 나면 큰 벌금과 최고 무기 징역까지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형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살아야 할 어린이가 죽었다. 벌써 1년 전의 일이었다.
“…….”
“…얼마를 원하십니까.”
“저도 양심적인 사람이에요. 부산 은행도 양심적이고요. 15억.”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소준석은 그를 벌레같이 바라보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
계약서에 도장 찍는 순간 놈은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었다. 그게 부산 은행의 방식인데, 세종시의 건물주인 이놈은 그걸 모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