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1화 (221/270)
  • 221화

    석신(石神)과 벼락의 신은 정기 회의가 끝나고 따로 만남을 가졌다. 그들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야만신은 너무 건방지다.”

    “이번에는 선을 확실히 넘었지. 더욱이, 우리가 했던 수작질도 통하지 않았다.”

    “수작질을 통해서 야만신이 선을 상상 이상으로 크게 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그들은 야만신에 대한 적의를 당당하게 드러냈다. ‘카르마 시스템’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어서 용인되고 있는 것이지, 야만신은 초월자들 사이에서 스스로 고립된 존재였다. 역량이 클 뿐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존재였다.

    스스로 고립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솔직히 단점이 너무 많아서 왜 그런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지 의문을 표하는 초월자들이 많았다.

    “배신자를 그렇게 처리할 줄이야. 태산박은 반드시 우리의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

    여러 명의 배신자를 만들었지만 그중 하나를 산박을 통해서 처리한 야만신. 그 덕분에 두 명의 초월자는 태산박의 가치를 더욱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전투력까지 높을 줄이야. 내가 그간 너무 소홀했다.”

    자신의 손에 들어온 별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게 초월자들이었다. 특히 ‘카르마 시스템’ 때문에 양질의 챔피언을 쉽게 얻을 수 있어서 더더욱 자신의 역량을 뛰어넘는 별을 과잉 확보한 초월자들이 많았다.

    “바쁘니까. 그대가 가진 별의 개수가 지금 서른두 개였나?”

    “이제 서른세 개다. 정말이지, ‘카르마 시스템’에서 배출되는 챔피언의 숫자는 무시무시하다. 거기에 그들은 죽어도 죽는 게 아니야. 소환 덕분이지.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들어오는 카르마를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 흐흐!”

    그들은 마치 공장의 노동자들처럼 카르마의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초월자를 위해 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별을 위해 초월자가 존재하게 된 셈이다.

    “거기에 드루이드는 우리와 같은 자연계 초월자들이 생각해낸 것이다. 드디어 거기서 꽃이 피었는데 야만신이라는 엉뚱한 존재가 채 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석신의 말에 벼락의 신이 크게 동의했다. 자연으로부터 파생된 정신체. 그들에게 있어서 드루이드라는 직업은 중요했다. 하지만 아직 드루이드를 얻는 데 성공한 적은 없었다.

    자연을 다루고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일으켜 세우는 드루이드는 자연에 쉽게 잡아먹혔다. 2레벨에 오르기는커녕 1레벨에서 자연을 벗 삼고 살아간다. 고도로 발전화가 이루어진 인간 사회에서 벗어나고, 운이 좋으면 비슷한 성향을 지닌 가족을 꾸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사회성이 결여된 채 홀로 살아가게 된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드루이드 챔피언이 배출된 적은 전무했다. 그런데 이제야 발견되었다. 싹수가 있는 놈이.

    “어떻게든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하지만 우린 순위권 밖이다. 하려면 편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편법으로는 정석을 못 이겨.”

    야만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은 상당했다. 조금 이상할 정도로 많은 편이었다. 정면 승부는커녕 편법을 써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벌써 계약을 마쳤을걸.”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협박을 해서라도 계약을 무너뜨리게 한다.”

    둘 다 씨익 웃었다. 필멸자 하나 겁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너무 쉬운 일이라서 쉽게 웃음이 삐져나왔다.

    “적당한 놈이 있을까?”

    “쓸 만한 소모품이 있다. 중동에 있지만 대한민국으로 보내는 건 어렵지 않지. 죽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일이 끝나면 죽는 게 더 나아.”

    소모품은 살아남아도 처분이다. 더러운 일에 쓰인 소모품은 싹 소독하는 게 깔끔했다. 그리고 중동의 소모품은 실로 처분하기 좋았다. CCTV부터 시작해서 온갖 전자 장비와 감시 체계 자체가 열악한 곳이 중동이었다.

    “야만신 놈, 반드시 그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다.”

    “하하하.”

    * * *

    사원 내부의 탐사는 하루를 휴식하며 확실히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하고 나서 이루어졌다. 사원 자체가 지니는 지형적 특징 때문이었다.

    ‘내리막길.’

    들어오는 사람은 도망이 힘들다. 반면 쫓는 괴물들은 추적하기 좋았다.

    ‘약간 굽어진 커브 길을 통한 선회.’

    통로의 시야는 확실하게 끝까지 닿지 않고 벽이 보였다. 직선로가 아니면 무조건 시야의 차단이 일어나는 구조였다. 완만하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구조였다. 거기에 어둠 때문에 끝이 보이지도 않았다.

    화르르!

    횃불을 켜고 방패에 걸거나 무기 대신 들었다.

    “벽을 잘 보세요. 보석이 있으면 바로 비밀 방으로 진입해서 클리어해야 합니다.”

    “어둠을 잘 살피세요. 윤곽이 움직이면 바로 정지합니다.”

    이시은이 틈틈이 고려해야 할 것들을 재차 상기시켰다. 한곳에 집중하다 보면 해야 할 일을 안 할 수 있었다. 특히 색적 활동은 배우고 또 배워도 사람마다 성과가 달랐다.

    가장 최선은 해야 할 일을 끝없이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엉뚱한 실수가 나올 수 있었다. 인간은 수치대로 결과를 도출해 내는 로봇이 아니었다. 금방 들었던 명령도 깜빡하는 게 인간이었다.

    “…길이 막혔습니다.”

    사원은 굽은 외길을 진행하는 동안 점차 좁아지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나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쉽게 갈 수 있는 외길이지만 거기에는 하나의 기믹이 존재했다. 비밀 문을 공략하지 않으면 계단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없었다. 순수하게 벽으로 틀어막혀 있었다.

    “지금까지 비밀 문이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게 이상했는데, 되돌아가면서 더욱 꼼꼼히 봐야겠네요.”

    이 팀장이 다시 팀원들을 이끌고 되돌아갔다. 산박은 산책하듯이 걸었다.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적당히 보고 있었기에 남들보다 보석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이 던전을 클리어하고 바로 서 팀장과 함께 또 던전 클리어를 하러 간다. 압도적인 레벨 업 속력을 위해서였다.

    ‘야만신 코인을 탄 이상 전력을 다해서 내달려야 한다.’

    적어도 이런 저레벨 구간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3레벨에 도달하여 레이드 구간에 들어서도 갈 길이 멀었다.

    “찾았습니다. 횃불 그림자에 딱 걸리는 곳에 보석이…….”

    “이런, 제기랄. 이런 곳에 해둔다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바닥과 벽의 모서리 부분에 보석이 있었다. 정말 재수가 없었다.

    ‘운이 없군.’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칭 이후에 바로 진입했다. 발로 보석을 쿡 누르자 쑥 들어가며 단번에 벽이 갈라져 비밀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에는 이글거리는 화염이 켜져 있었고 그 화염 속에 우뚝 솟은 고양이 동상이 있었다. 전혀 새까맣게 타지 않고 금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법 돈이 되지.’

    화염고양이 금상. 금박을 긁어내면 평범한 나무가 있었다. 굳이 불을 붙일 필요는 없고 그냥 놔둬도 효력이 퍼져 나간다.

    ‘효력이 좀 우습긴 하지만.’

    50평 범위 안에 있는 고양이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당연히 고양이 카페에서 대인기였고, 개인별로 구매하기도 했다. 가격이 제법 되지만 소비력 하나는 대단히 높은 게 현대인이었다. 소비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비자 가격은 제법 나간다고 해도 던전 사용자들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30만 원 돈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기업에 넘겨주는 던전 사용자들의 숫자는 적었다.

    ‘보통은 직거래하지.’

    소비자와의 직거래가 성행하는 게 화염고양이 금상이었다. 그만큼 고양이 키우는 사람에게는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발품 팔아서 판다면 백만 원도 너끈히 받을 수 있었다.

    구매자를 구하기도 쉬웠다. 중고 거래에만 올려도 너끈히 팔렸다. 사람의 애묘 정신은 뛰어나다. 그들은 자신이 먹는 식대보다 더 많은 돈을 반려묘에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 모든 던전 아이템은 마모되어서 부서지기 때문에 수요는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었다.

    “적입니다.”

    너도나도 긴장한 채 불빛에 노출된 적들을 바라보았다. 제법 소리가 컸음에도 그들은 팀원들 쪽을 전혀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아마 비밀 방의 통로를 건너거나 공격을 시작한다면 득달같이 달려들 터였다.

    “비스트 미라들이네요. 아무래도 이번 던전은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산박이 입을 열었다. 가장 만나기 싫은 놈 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딱 봐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미친 던전의 괴물이 시끄럽게 벽이 쩍 갈라지는데 쳐다도 보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한 ‘하자’를 안고 던전 사용자들에게 선공할 기회를 건네주고 있었다. 선수 양보를 할 정도로 2레벨 던전에서 보기 싫은 놈들이 바로 비스트 미라들이었다. 보통 룸(Room) 형태의 전쟁터에서 볼 수 있었다.

    ‘무조건 아이템을 소비해서 단기전으로 끝내야 하는 상대.’

    필요하다면 온 힘을 다 쏟아부어야 했다. 즉, 하루를 버려야 한다. 자정을 기다리며 소비한 힘을 회복시켜야 하기 때문. 그렇기에 악명이 자자했다.

    “겪어본 사람 없습니까?”

    모두 대답하지 못했다. 실제로 만나기 힘든 게 비스트 미라들이었다. 하지만 신입들이라고 해도 2레벨 던전을 돌고 돈 던전 사용자들이다.

    ‘한 명도 없다고? 이건 의외인데.’

    정보를 가볍게 생각하는 이들은 많이 겪어봤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과거의 극약이었던 설사약을 아직도 한방이라고 착각하고 그 지독한 냄새를 자연의 것이라 여기며 먹는 자칭 현대인이라는 것들도 부지기수다. 정보를 하찮게 여기는 현대인들은 생각보다 산재해 있다. 하지만 비스트 미라와의 전투 경험이 없는 건 좀 의외였다.

    ‘아니지. 내가 그냥 운이 없는 걸 수도.’

    놀란 표정이 싹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태산박만큼 신중한 자는 보기 힘들었다. 산박이 예외 중의 예외일 뿐이지, 신중한 사람은 애초에 던전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신중하다? 모순이다. 오히려 평범할수록 던전에 몸을 맡겨 버린다.

    ‘상황에 휘둘리니까.’

    강제로 뛰어들고, 그 파도에 휩쓸려 더는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게 일상이 되어 버린다. 죽음 직전까지도. 먹고살 만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비스트 미라들은 사지가 잘려도 움직이는 놈들입니다. 그래서 까다롭고, 가볍게 생각하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아이템과 ‘힘’을 닥치는 대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였다.

    “선공할 수 있다는 장점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놈들의 숫자는 많습니다.”

    2레벨 던전답게 숫자도 많았다. 거기에 인간형이지만 사족 보행도 하고, 야수에 가깝다. 그 덕에 다양한 형태의 공격을 감행한다. 까다로운 적이었다. 덩치 또한 인간과 차이가 크게 없으면서도 힘은 더 좋았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역시 투척물이었다.

    ‘단순한 투석. 하지만 위협적이지.’

    까딱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오로지 적극적인 대처만이 효과적이었다.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합니다.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이 끝이었다. 그다음에 이시은이 나서서 빠르게 정리했다.

    “섬광 단검 투척은 가장 마지막에 멀쩡한 놈에게 쓰겠어요.”

    먼저 섬광 단검의 취급에 대해 정했다. 어차피 사지가 잘려도 움직이는 놈들이라면 멀쩡한 놈들을 노리는 게 베스트였다.

    “세컨더리 힐링 팩을 까고 시작합니다. 움직이는 팔다리를 처리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릅니다.”

    펄떡 뛰는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다. 변수 차단을 위해서는 설치형 힐링 팩이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사용되어야 했다.

    “회오리 화염 철구는 인원수만큼 쓰겠습니다. 바로 투척하는 거로.”

    강력한 화력을 일으키는 수류탄 대체제인 회오리 화염 철구 또한 열 개를 쓰기로 했다. 혹시나 그 영향력 안에 들어갈 수 있기에 연금 불꽃 저항 포션을 밖의 혁대에 걸어 두도록 명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청 팀에도 이는 지급되어 있었다. 던전을 나가면 다시 반납해야 했다.

    “이물질 제거 소가죽을 사용해서 무기 손질을 다시 마무리하세요. 칼이 잘 들어야 합니다.”

    펄떡거리며 공격하는 시체를 자르려면 날붙이를 최대한 날카롭게 해야만 했다.

    “모든 화력을 쏟아부으세요. 아이템을 쓰고, 주문도 거침없이. 멀쩡한 놈이 없어지면 차근차근 피해를 줘서 놈들의 생명력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팀장이 마지막 말을 하며 비스트 미라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죽은 시체처럼 가만히 있었다. 우두커니 서있는 놈들은 등이 굽어 있었지만 덩치가 제법 되었다. 말이 미라지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바짝 메말라 있었다. 그래서 더욱 날렵해 보였다.

    또 어떤 미라는 양손에 돌을 쥐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땅 곳곳에는 던지기 좋은 돌들이 가득했다.

    “주문으로 일 차 타격. 그 이후에 우리에게 달려들면 회오리 화염 철구 투척할게요. 준비.”

    이시은 팀장 또한 주문을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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