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 (220/270)
  • 220화

    ‘사람이 죽었다.’

    2레벨 던전 공략에서.

    던전 사용자의 죽음은 어디에서든지 꾸준히 일어난다. 하지만 언제나 적응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 죽은 방식이 더더욱 팀원들의 정신을 압박했다.

    ‘끔찍해.’

    머리에 돌도끼가 처박혔다. 투구는 찌그러졌다. 땅땅고릴라가 끌고 가면서 남긴 것이 바로 그 투구다. 그것만 봐도 땅땅고릴라의 무서움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심지어 산박조차도 몰랐는데, 방금의 상황은 땅땅고릴라에게 천운이 따라 줬기에 일어난 결과라는 것이었다. 바로 바람. 운 좋게 바람이 땅땅고릴라 방향으로 불어서 일행이 냄새를 늦게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게 땅땅고릴라였다.

    물론 알았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운도 실력이었다. 운이 없어 망한 사업자가 변명할 여지를 사회는 주지 않았다.

    “빌어먹을.”

    휴식하는 분위기는 매우 침울했다. 전방에 서야 하는 자들은 땅땅고릴라의 요행이 만들어낸 완벽한 습격을 떠올렸다. 후방 직업들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렸다. 그 답답함은 자연스럽게 길게 이어졌고, 이내 주먹다짐으로 번져갔다.

    “너 때문에 죽었어! 네가 죽었어야 했다고!!”

    김안후가 마일환의 멱살을 들어 올리고 바로 턱을 후려쳤다. 마일환은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 실제로 색적에 실패했고, 그는 강더준을 죽였다. 초병의 임무를 소홀히 한 병사에게 돌아가는 건 따뜻한 커피가 아니다. 동료들의 지독한 폭력이다.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는 주먹이 법보다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만하세요!”

    이 팀장이 나섰다. 김각두도 산박의 눈치를 살짝 보다가 그가 개입할 생각이 없자 자의대로 행동했다. 우악스럽게 둘을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잘 통하지 않았다. 대신 이시은의 발이 소주 한 병 까고 5,600원의 서비스를 원하는 국밥집에서 숟가락을 놓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난동을 부리는 일용직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용맹한 시민처럼 김안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꿹!”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그가 상체를 수그렸다. 눈물을 찔끔거릴 정도로 아팠다. 이시은의 운동량은 상당히 높았고, 헬스를 통해서 철저하게 근육량을 조절하고 있었다. 힘은 남자와 비교해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썅년이!”

    고통을 감내하며 일어선 김안후가 소리를 내지르며 이시은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대로 김각두에게 양손이 잡혔다.

    “흡! 하! 흡흡하!”

    김안후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숨을 참았다가 힘을 줬다가 다시 숨을 뱉어 내기도 하면서 버둥거렸지만 김각두와 체급 차이부터 이미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그가 힘을 뺐다. 김각두가 거칠게 그를 밀었다.

    “윽!”

    엉덩이가 땅과 부딪혔다. 하지만 김안후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김각두와 힘의 차이가 대단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알고도 덤빌 정도라면 애초에 돌핀 워리어스 기업에 속해 있지도 않았다.

    한번 크게 압박을 받으니 냉정해지기도 했다. 힘 앞에서는 분노 조절 장애 코스프레도 싹 입을 다물게 되어 있었다. 아니라는 사람은 그저 더 강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을 뿐이다.

    “씨익! 씩!”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도 눈을 내리깐 김안후를 보며 시은이 고개를 내저었다. 1레벨 던전을 옥시모론 팀으로 활동하고 2레벨에 다른 팀이 끼어들기 시작하자 던전에 들어오는 자들의 수준이 이토록 벌레 같다는 걸 깨달았다. 상종하기도 싫은 백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블루 오션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죽으러 들어오는 곳이었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개인의 한계는 존재하고, 결국 돈만 있으면 높은 던전에서 나오는 물품을 선점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기업이다. 고레벨을 대우해 주고, 그 힘과 영향력을 다른 이들에게 풀면서 저레벨 던전의 수익 담합에 성공했다.

    “정말 단가가 싼 게 괜한 게 아니네요.”

    시은이 산박에게 잡담을 떠들었다.

    “그러게요. 하지만 오히려 전 만족스러운데요. 신입들 표정 보세요. 저희 기업에 속해서 다행이라는 표정이잖아요. 완벽하게 선을 그어놓고, 돌핀 워리어스 하청 팀과 함께하려고 하지 않아요.”

    애사심이 자리 잡았다. 똑같은 참치 통조림을 만들어도 기업 총수의 판단에 따라서 판이하게 인식이 달라진다. 하물며 이렇게 비교하기 쉬우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극단적이지.’

    다른 회사를 간접 경험 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하청 던전 팀을 전전했더라도 사람이란 것은 간사하기 그지없어서 조금만 상황이 변하면 그랬던 적을 잊어버린다. 언론의 탄압을 받았던 자가 언론으로 다른 사람을 탄압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며, 오히려 그걸 기억하고 반면교사로 삼는 사람을 대단한 인격자라고 부를 만했다.

    “그렇게 보면 또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죽어도 돌핀 워리어스 기업의 손해. 옥시모론 기업에는 사망자가 추가되지 않는다. 그게 이 나라, 이 국제 사회의 던전 법률이었다. 가지지 못한 자를 던전 경제로 이끌고, 거기서 죽여서 서로 나눠 먹는다.

    던전 사용자가 되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었다. 또 고레벨 던전 사용자가 된다면 단번에 중산층이 될 수 있었다.

    고졸이 백만 원도 벌기 힘든 시대였다. 최저 시급 백만 원 챙겨주면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호구 새끼라며 욕먹기 쉽다. 헐레벌떡 상인회에서 나와서 그 돈 회비로 내라고 성화다.

    상인회에 회비를 안 내는 순간, 동네 단위에서 왕따를 시킨다. 어른들의 왕따는 막을 수도 없다. 간사한 뱀의 혓바닥처럼 차갑고,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양심적인 업주들에게 피해를 주며 겨우 백만 원 벌 바에는 그냥 던전에 몸을 내던지는 불나방이 되어 버리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동일본에서는 특히나 1레벨 혹은 2레벨 전담 팀이 되려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진정되셨어요? 아까 때린 건 미안해요.”

    “아닙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표면적으로 서로 사과도 했다. 그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땅땅고릴라가 있다는 건 사망자만 아니었더라도 좋은 소식이었다. 근처 5km 내외에 사원이 있다는 뜻이었다.

    ‘똥 냄새!’

    분변 냄새를 동반한 짐승 냄새를 맡은 마일환이 방패로 땅을 급히 쳤다. 이에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땅땅고릴라는 이번에도 똑같이 전방 측면을 공략했다. 이번에도 그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크윽!”

    순식간에 김각두가 물러났다. 땅땅고릴라가 콧김을 내뿜었다. 실로 나약한 사냥감이었다. 냉큼 한 걸음 더 디뎠다.

    쾅!

    마일환과 김안후가 단번에 방패를 앞으로 들이밀어 땅땅고릴라의 움직임을 방해하며 둔기를 휘둘러서 어깨와 팔을 두들겨 팼다. 마법도 땅땅고릴라를 타격했다. 그사이 김각두가 양손 망치를 능숙하게 휘둘러서 땅땅고릴라의 머리를 꽝 내려찍었다. 상체를 크게 뒤로 뺐다가 앞으로 확 숙였기에 체중도 든든하게 챙겨줬다.

    “컹.”

    땅땅고릴라의 코에서 콧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김각두가 다시 힘을 모아서 양손 해머를 내려치며 고함을 바락 질렀다. 땅땅고릴라가 휘청거리면서 허우적거렸지만 너도나도 놈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섰다.

    땅땅고릴라는 주르륵 미끄러졌다. 크게 움직일 수 없었다. 뒤로 내빼려고 했지만 거기에는 불꽃두더지 파수병 카누토가 있었다.

    카누토의 일격에 두개골이 쪼개지며 땅땅고릴라는 그대로 죽어 버렸다. 강더준을 기습해서 한 방에 죽인 것과 비교하면 실로 허무한 죽음이었다. 인간도 괴물도 허무하리만치 죽어 나자빠졌다. 왠지 모르게 허무함이 스며들어 왔다.

    “부산물은 뭐예요, 사장님?”

    그 속에서 이시은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뼈예요. 마약 중독 해독약으로 쓰여요. 그래서 정말 비싸죠. 한 마리에 2백만 원은 그냥 쳐줘요.”

    “와우.”

    듣고 있던 자 중 하나가 감탄했다. 아무리 담합해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너무 크면 붕괴하기 마련이었다. 땅땅고릴라의 뼈가 그러했다. 오히려 용도에 비해서는 가격이 적은 편이었다.

    “근데 대한민국은 수요가 적어서 백만 원이죠.”

    “에이…….”

    산박이 추가 설명했다.

    “그래도 백만 원이 어딥니까. 마약 중독 해독약은 다른 대체재도 많습니다. 워낙 관심 분야잖아요?”

    마약에 중독시키고 그 치료제로 사람을 치료하면 그야말로 돈벼락이 떨어지는 사업이다. 안 할 수가 없다. 그 덕에 마약 제조와 마약 해독제 제조는 서로서로를 위한 사업 파트너였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순식간에 해체 작업을 했다. 급한 대로 토막 내서 배낭에 넣고 흙으로 덮어서 냄새를 지웠다.

    그다음에 사원을 찾았다. 항상 뭉쳐 다녀야 했는데, 땅땅고릴라 때문이었다. 두 번이나 놈들을 겪었기에 더 이상의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두 마리의 땅땅고릴라를 더 죽이고 팀원들은 사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사원의 크기는 상당했지만 정글에 가려져 있어서 제대로 된 규모를 알 수 없었다. 또 높이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입구는 그 누구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대신 돌로 된 문이 박살이 나있어서 괴기스러웠다. 다른 곳은 멀쩡한데 입구의 석문만 그렇게 무너져 있으니 싸했다.

    ‘어떤 보스가 나올지 벌써 알려주고 있네.’

    산박은 이를 보스 몬스터의 흔적으로 삼았다. 분명 중형급 덩치를 지니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부에 들어가서 하루 보내겠습니다.”

    이 팀장이 인솔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무너진 석문은 적의 흔적이지만 오래되어서 적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석문이 무너진 돌무더기는 은폐물로 쓰기에 적합했다. 내부로 들어가서 자리를 펴기 좋았다. 내부는 어둡고 밖은 항상 낮이었기에 어두컴컴한 내부를 보려면 안으로 가까이 올 수밖에 없어서 딱히 돌무더기가 없어도 쉬기 좋았다.

    휴식 후 산박이 간단히 브리핑을 해줬다. 그가 아는 것을 내뱉자 모두 눈이 제법 초롱초롱해졌다.

    ‘정보는 힘이다.’

    산박의 모습을 보며 시은 또한 시간을 쪼개서 던전 정보를 구입하는 걸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건 ‘팀장’이 되어서 팀원을 고려하게 되면서 깨달은 점이었다.

    산박의 곁에 머물기 위해서 팀장이 되었고, 팀장이 되고 나니 새롭게 보이는 게 있었다. 던전 정보는 항상 산박이 말해 줬지만 이제 시은도 알 필요성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불필요한 정보는 취득하지 않는 게 이시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던전 정보도 그녀가 취급해야 할 정보였다. 사람을 이끄는 방법 중에는 ‘정보’ 또한 훌륭한 카리스마가 될 수 있었다.

    * * *

    어두컴컴한 공간. 종종 울리는 엔진음은 평범한 엔진음과는 달랐다. 완전히 다른 체계의 엔진으로 보였다. 혹은 온갖 힘이 복합적으로 뭉쳐져서 만들어낸 엔진음으로 보였다.

    달칵.

    스위치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어둠이 걷히고 주변 공간이 환해졌다. 수천 평은 되어 보이는 넓은 대전에 고용인들이 들어와서 깔끔하게 청소를 실시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의자에 하나씩 장치를 놓고 그 앞의 테이블에는 명패가 올라갔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하나둘 장치가 기동되며 영상을 출력했다. 보이는 건 그저 상징물. 단순한 빛의 구체이기도 했고, 여우의 모습을 한 상징물도 있었고, 수많은 야만적인 것들이 뒤엉킨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도 있었다.

    ―정기 회의인데 불참석한 초월자가 또 있군. 말이 되는가?

    머리만 있는 석상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를 보며 시체와 뒤집힌 거죽, 탯줄로 뒤엉킨 발을 비추고 있는 상징물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야만신인가. 그는 정말이지 엉망진창인 신이군. 그런 자를 왜 이번 일에 참가하게 했는지 아직도 의문이야.

    죽음의 신이 혀를 찼다. 정기 회의에 참가하지 않는 야만신의 나태함과 게으름은 치가 떨릴 정도로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래도 가장 많은 괴물을 보내주고 있는 게 야만신 아닌가. 가동하고 있는 던전의 개수만 해도 5위권 안팎이지.

    ―차원 전쟁을 생각하면 던전의 생리를 계속 만들어 내는 야만신은 필수다.

    곳곳의 신들이 짜증을 내고 불만을 토로하는 신들을 진정시켰다. 그만큼 많은 자원을 ‘카르마 시스템’에 주고 있는 게 야만신이었다.

    ―애초에 카르마 시스템은 싸우려고 만든 것이 아니오. 신들이 공정한 절차를 통해서 챔피언의 재원을 손쉽게 얻기 위한 것이잖소. 왜 야만신에게 그렇게 거칠게 구는지 모르겠군.

    벼락이 이글거리는 형상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신(天神)이자 벼락의 신이라 불리는 초월자의 말에 너도나도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그만큼 적이 많고, 또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는 초월자가 많았다. 야만신은 실로 편협한 초월자였다.

    ―그만. 바로 본회의로 들어가겠다. 이번에 배출시킨 챔피언의 숫자는 여든두 명. 모두 이 세계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여기에 대한 배분 문제를 제기할 초월자가 있는가?

    답은 없었다. 챔피언에 도달하는 던전 사용자는 말 그대로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계의 전말을 알고 나서 전원 진짜 세계로 향하고 싶어 했다.

    ―그러면 데즈먼드 음필로 투투 사제에 대한 경매를 시작하겠다. 현재 신 열여덟 명이 그를 챔피언으로 삼고 싶어 한다. 경매의 기본가는 1억 카르마부터.

    ―3억 카르마.

    ―7억.

    삽시간에 경매가가 팍 뛰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제 데즈먼드 음필로 투투는 엄청난 순수성을 지닌 종교인이었고 인권 변호사였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그 영혼에 새겨진 흉터의 개수 또한 많았다. 그와 같은 흉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가장 낮은 자를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던전 사용자였다.

    선한 신들이 기를 쓰고 입찰하려는 모습이 이 거대한 대전에 참석한 초월자들에게 새겨졌다. 그건 정말로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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