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19/270)
  • 219화

    * * *

    “X발 놈아.”

    빠르고 정확하게 휴식 준비에 들어가자마자 하청 팀 돌핀 워리어스의 내부에서는 분란이 일어났다. 하나같이 돈 때문에, 빚 때문에 이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전우애도 없었다. 억지로 전쟁에 동원된 병사에게 애국심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살아야만 했고, 살기 위해서라면 같은 팀원을 버려도 상관없었다.

    “개새끼야, 네가 그딴 식으로 빠져 버리니까 내가 X 될 뻔한 거 아냐, 이 쓰레기 새끼야.”

    “말이 심하다, 강더준.”

    강더준의 말에 마일환이 발끈했다.

    “심하기는, 버러지 새끼야.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

    이에 김안후가 비아냥거렸다.

    “그럼 욕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으라고요?”

    “그래, 이 새끼야. 내가 가장 선두에 있는데 쓰러져서 웅크려 있는 건 대체 뭐냐? 쓰러져도 내가 쓰러져야 정상 아니냐? 비정상인 새끼가 왜 여기 있어? 정신 병원 가야지.”

    이번 공략에 나선 하청 팀 돌핀 워리어스의 인원은 셋. 그들을 이끄는 리더 김안후조차도 마일환을 욕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강더준의 욕설은 쉽게 넘기고 되레 마일환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건 실로 그를 권력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누군가를 지배하고 누군가를 억압하는 것만큼 재미난 것도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통금 시간을 논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입김 속에서 지배당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많은 까닭은 한 인간을 지배하면서 가질 수 있는 쾌락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될 정도로 마약과도 같은 권력의 맛을 주는 게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사회에서 약자라 불리더라도 누구나 사람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은 가족일 수도 있고 협박을 통한 관계일 수도 있었으며 채무 관계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지배는 큰 만족감을 주며 자존감을 높이기도 하기에 그럴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왜 이렇게 소란스럽죠?”

    이시은이 다가왔다. 척 봐도 흉흉한 분위기였다. 다른 이들과는 너무 다른 공기 때문에 그녀가 나섰다. 이에 마일환이 입을 다물고 바닥을 바라봤다. 반면 강더준은 손으로 코를 비비며 히죽거렸다.

    “일 없습니다, 이 팀장님. 갈 길 가세요.”

    김안후가 시은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어차피 그림의 떡인 게 그녀였다. 다른 이들은 혹시, 만에 하나, 그런 기분을 가진 채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녀에게 관대하지만 김안후는 자신이 쓰레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못 따먹을 거면 쳐다도 보지 않는다.’

    간단한 논리다.

    “그게 무슨? 제가 이 공략 팀 인솔합니다. 그런데 저보고 빠지라니요?”

    거기에 돌핀 워리어스는 A급 전사 인력은 없고 빚으로 잡아둔 던전 사용자를 부품처럼 돌리는 악덕 기업이었다. 그곳에 소속된 던전 사용자들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됐다.

    반면 이시은도 물러설 리가 없었다. 산박이 보고 있는데 하청 팀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하면 역량을 의심할 것이었다.

    “어쩌라고요. 어차피 한번 하청하고 나면 볼 일도 없는데.”

    강더준이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시은을 보며 툭 내뱉었다. 무례해도 이렇게 무례할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는 욕설하며 지내도 사회에 나가면 욕 하나 제대로 내뱉으면 안 된다. 가족에게는 욕해도 ‘사회의 나’는 욕을 하면 순식간에 인상이 달라진다. 욕하는 놈들만 달라붙고 꼬인다. 똥 묻은 개에게 엉겨 붙는 파리처럼.

    “이 팀장님, 어차피 저희들 싸게 데려오셨는데, 저희는 그 값어치만 하면 됩니다. 이러쿵저러쿵하실 거면 돈을 더 주고 말씀하세요. 한 50만 원 정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주면 하청하는 의미가 없었다. 결국 이시은은 한숨을 내쉬며 주의만 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세요. 팀 내 분위기 흐리지 말고요.”

    “흐흐흐.”

    김안후가 웃자 이시은이 발걸음을 돌리려다가 다시 그를 쳐다봤다.

    “돌핀 워리어스도 포스코 타워에 종종 오퍼를 받지 않나요?”

    “예?”

    그가 반문했다. 갑자기 거물이 튀어나와서였다. 하지만 마음은 아직도 잔잔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포스코 타워를 운운해도 고작 2레벨 던전에 온 네크로맨서였다. 그 거대 기업의 영향력을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적패 네크로맨서거든요. 그런 식으로 계속해 보세요.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어?!”

    세 명이 모두 깜짝 놀랐다. 흑패, 적패, 황패, 백패로 나누어진 포스코 타워의 계급은 햇수가 지난다고 해서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포스코 타워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어떻게 현대 사회에 자신의 커리어를 내비쳤는지에 달렸다.

    고레벨이 되면 적패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황패는 힘들었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결국에는 사람. 한계가 존재해서였다.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경제 전쟁이 주류가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었고, 영향력이었다. 헤라클레스가 현대 사회에 와도 대기업의 총수가 될 수는 없었다.

    “저, 적패…….”

    적패는 관리직 네크로맨서라 불리며 포스코 타워의 중간 관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가장 많은 곳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또한, 같은 적패끼리는 서로 돕고 도와준다. 파벌이 달라도 외부 세력이 적패 네크로맨서에게 지랄을 하면 힘을 합쳐서 꼽을 주기로 유명했다. 그 덕에 한 인천의 해산물 시장은 물량을 받지 못해서 뒤집힌 적도 있었다. 뭣도 모르는 양아치 깡패 새끼들이 적패 네크로맨서에게 바가지를 씌웠다는 이유에서였다.

    “헤, 헤헤. 조심하겠습니다.”

    오퍼를 받았을 때는 ‘옥시모론 기업’의 ‘이시은 팀장’이었기에 몰랐던 사실이었다. 김안후가 연신 고개를 숙였고, 파리처럼 손을 싹싹 비볐다. 강더준 또한 일어나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다만 좀 불쌍했던 것은 마일환도 고개를 숙였다는 점이었다.

    팀원은 70%에 달하는 초월의 힘을 사용해 버렸기에 꼼짝없이 하루를 보내야 했다. 공격 아이템의 소모도 일어났음에도 그만큼 많은 힘을 소비한 까닭은 송곳박쥐뱀과의 무리한 연속 교전 탓이었다.

    1+1=2라는 건 수학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었다. 한 번 전투하고 송곳박쥐뱀의 꼬리를 자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휴식 없이 바로 비슷한 수준의 적과 마주한 대가는 컸다. 더 많은 자원 소모가 일어났다.

    만전 상태에서의 전투에서는 2의 힘을 소비한다면, 그 이후의 추가 전투에서는 5의 힘을 사용해야 했다. 수지 타산이 안 맞는 셈이다. 지치면 지칠수록 인간은 더 많은 소비를 거침없이 하게 되어서였다. 감정적인 존재는 이처럼 불완전했다.

    자정이 지나자 힘이 돌아왔고, 휴식을 마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던전은 어둠이 내려앉지 않는 곳이라 자정이 지났음에도 밤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태양이 떠있었다.

    ‘정글에 밤? 3레벨 던전에서나 볼 법하지.’

    숲과 다르게 정글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지형이었다. 거기에 밤까지 추가하는 건 해도 너무했다.

    “출발하겠습니다.”

    그 뒤로 마일환은 최전방에 서게 되었다. 김안후가 서던 것이 마일환에게 뚝 떨어졌다. 이시은에게 당한 걸 마일환에게 풀기 시작했다.

    허나 이시은은 굳이 이를 조정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아서였다. 내부가 소란스러워지는 게 문제였던 것이지, 마일환을 지키는 건 이시은이 할 일이 아니었다.

    ‘제법 잘 싸워주고 있다. 그런데 굳이 더 긁는 건 말이 안 돼.’

    적당히 일을 해결하는 게 좋다. 끝장까지 가는 상남자식 해결 방법은 결국 손해만 보고 끝이 난다. 그 이후에 더 좋은 문화가 자리 잡겠지만, 거기에 이시은은 없었다. 이득을 자신이 보지 못하는데 왜 돌핀 워리어스의 꼰대질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는가?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또 옥시모론 기업에 도움도 되지 않았다. 개입하는 순간 호인(好人) 소리는 들을지 모르나 모든 것이 자원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호구나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포지션이 바뀐 돌핀 워리어스의 모습에 옥시모론에 속한 팀원들은 절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정확한 전후 사정이 없어도 마일환이 뭔가를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불쌍하게…….’

    ‘돌핀 워리어스……. 하청 싸게 하더니, 저러니까 싸구나.’

    너도나도 옥시모론에 속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여기는 적어도 감정에 의해서 포지션이 바뀌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팀장이 주도적으로 팀원을 위하는 모습이 크다. 이시은의 언데드로부터 보호받는 후방 직업들은 큰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건이 터져도 스켈레톤이 곤죽이 되지, 자신이 곤죽이 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서였다.

    다만 산박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시은이 실수를 했군. 다음에 돌핀 워리어스와는 연을 끊는 게 좋겠어.’

    한번 허락해 주면 그게 자신의 권리인 줄 아는 것이 사람이었다. 귀찮아서, 이게 편하니까.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선을 넘은 사람들을 강하게 저지하지 않으면 밖에서 꺼내면 안 되는 성기를 노출시키는 벌레들이 틈틈이 튀어나오게 된다.

    돈이 없기에 열등감에 똘똘 뭉친 저들은 자신의 권리가 되어버린 것을 다시 지적하면 오히려 크게 반발하게 되는데,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생각해서였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어.’

    실로 아쉬운 판단이었다. 이를 통해서 옥시모론 기업에 큰 피해가 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돌핀 워리어스는 지금 이 순간 옥시모론 기업의 사장 태산박의 마음에서 떠났다. 돌핀 워리어스의 사장도 모르는 사이에 내쳐진 것이다. 사람을 경시하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가장 앞에 선 마일환은 일생일대의 큰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색적 실패.

    김안후는 잠깐이지만 산박에게 B 등급으로 지정된 전사였고 강더준과 마일환은 C 등급 이하였다. 거기에 김안후는 척후병으로서의 능력치도 뛰어난 편이었다. 헌데 그런 그가 옆에 서고 툭 튀어나온 마일환이 전방을 살폈다.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거기에 이곳은 정글. 허리나무 때문에 어디든지 시야가 녹색으로 물든 나뭇잎에 의해서 차단되어 있었다. 눈으로 아무리 사위를 살펴도 매복하고 있는 상대를 알아차리는 건 힘들었다. 단 한두 걸음의 차이. 그것이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았다.

    마일환이 한 걸음 반을 걸어갔을 때, 김안후는 냄새를 맡았다. 짐승의 냄새다. 수많은 냄새로 가득 찬 정글이었기에 이를 판별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개의 피부에 코를 처박으며 개 냄새를 맡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연습과 숙련 그리고 경험과 재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김안후의 입이 벌려지는 그 순간에 마일환의 옆에 있던 수풀에서 검은 털로 뒤덮인 고릴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털 곳곳에는 툭 튀어나온 바위가 존재했는데, 그 색은 검회색에 가까웠다.

    뻑!

    강더준의 머리에 돌도끼가 처박혔다. 강철이 말 그대로 함몰되고 강더준의 다리에서 힘이 싹 사라지며 무릎부터 땅에 박고 꼴사납게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즉사였다.

    “우! 꾸꾸꾸!!”

    190cm에 달하는 고릴라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돌도끼를 휘적거렸다. 김안후와 마일환 두 사람은 이미 고릴라로부터 멀어진 상태였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에게 전우애는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은 무의식적으로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달라붙는데 그러지 않고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 고릴라에게 공간을 내주었다. 그게 고릴라에게 하나의 선택지를 줬다.

    휘익!

    고릴라는 왼손으로 단번에 강더준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손이 워낙 커서 그런 게 가능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엉덩이를 꿈실거리더니 수풀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 속도가 실로 대단했다. 쿰척거리며 흔들리는 지방질 속에서도 속력은 기민했다. 마치 사람이 경보하는 수준으로 재빨랐다. 허리나무의 나뭇가지가 거세게 흔들리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

    모두가 우두커니 섰다. 쫓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산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땅땅고릴라입니다. 털로 가려져 있지만 곳곳에 돌이 박혀있는 놈이죠. 매복하는데, 짐승 냄새를 풍깁니다. 이제 생각이 났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무슨, 사장님이 죄송해요? 색적 못 한 전방 탓이죠.”

    아무리 산박이라고 해도 모든 2레벨 던전 정보가 현장에서 그때그때 펑펑 튀어나올 수는 없었다. 모두 기억하더라도 그걸 또 모두 실사용에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았다.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결국 이시은이 팀에게 정신을 추스를 시간을 부여했다. 그녀조차도 바로 대응할 수 없었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납치였다. 쫓아가지 않은 이유는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강더준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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