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8화 (218/270)
  • 218화

    송곳박쥐뱀들이 곳곳을 물었다. 그 속에서 전사들은 맹렬하게 타올랐다. 악을 내지르고 몸을 꾸준히 움직이며 자신을 보호했다.

    아무리 발악해도 빈틈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꾸준히 던전을 탐험해야 하는 던전 사용자들의 방어구는 썩 두껍고 무겁지 않았다. 아무리 던전 장비라고 해도 무게를 줄이는 중갑옷은 의미가 없었다.

    체중은 그만큼 중요한 조건이다. 서로 부딪쳐서 밀려나는 순간 하자가 생기고 열세로 몰린다. 두껍게 입었는데 가볍다? 입고 있을 이유가 하나 사라지는 셈이었다.

    거기에 그렇게 비싼 장비는 2레벨에 있지도 않았다. 2레벨 던전에서는 2레벨 이하의 장비만 사용할 수 있었다. 굳이 ‘경중량’의 힘을 담기보다는 더 효과적인 다른 주문을 담는 게 일반적이었다.

    ‘사람은 간사한 법이지.’

    이거 되면 저거도 원하고, 저게 안 되면 이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렇게 가벼운 장비를 입게 된다. 다행이라면 돌핀 워리어스는 2레벨 하청을 제법 한 놈들이라는 점이었다.

    “으아아아아악!!”

    가죽 안에 체인 메일을 욱여넣은 돌핀 워리어스 소속의 전사 세 명이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시야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투구는 우박에 두들겨 맞는 것처럼 타격음이 들려오고 흔들거렸다. 단단히 고정한 맞춤형 투구라서 흔들리는 것으로 그쳤지, 보급형 투구를 싼 것으로 끼고 다녔다면 투구가 벗겨졌거나 돌아갔을 터였다.

    까득!

    방어구에 이빨이 막혔지만 송곳박쥐뱀은 꼬리를 휘감으면서 들러붙었다. 순식간에 몸이 무거워졌다.

    그러던 중에 돌핀 워리어스의 전사 중 한 명인 마일환이 갑자기 미끄러진 것처럼 뒤로 넘어졌다. 팔꿈치의 관절에 운 좋게 송곳박쥐뱀의 이빨이 박히자 크게 들썩였다가 발을 삐끗했고, 발목이 땅에 닿으면서 신경이 놀라서 그대로 자빠졌다.

    “……!”

    마일환은 입으로 소리도 못 냈다. 혀를 씹었다. 순식간에 쓰러진 마일환을 향해서 송곳박쥐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유전자에 각인된 것처럼 쓰러진 상대는 잡아먹기 좋다는 걸 아는 듯했다. 야생에서 자라지 않은 호랑이도 사람 목뒤만 보면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과 같았다.

    거기서 마일환의 생존 본능이 빛났다.

    ‘구르고 굴렀다!’

    0레벨 던전 사용자에서 1레벨이 되었을 때, 대출 한번 잘못했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경제학, 민법 그런 거 전혀 알지 못하는 마일환은 호구 중의 호구였다.

    그렇기에 세상 풍파를 제대로 맞아본 마일환의 태세 전환은 재빨랐다. 방패고 나발이고 무기고 지랄이고 바로 내던지고 태아처럼 웅크리며 손으로 목을 움켜쥐고 폐를 보호했다. 출혈보다 질식이 더 위험했다.

    “키이이익!”

    피 맛을 본 송곳박쥐뱀들이 거친 숨소리를 냈다.

    체인 메일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한계는 존재했다. 거기에 ‘돌핀 워리어스 기업’의 2레벨 던전 장비는 알아서 구매해야 했다. 괜히 김안후, 마일환, 나머지 멤버인 강더준이 모두 똑같은 방패와 둔기를 들고 있는 게 아니었다. 최대한 싸게 싸게 구하기 위해서였다.

    방어 마법이 깃든 2레벨 던전 장비는 사치스러웠다. 그거에 돈 쓸 바에는 차라리 대출을 조금이라도 더 갚는 게 이득이었다.

    이자에 싸대기 처맞아 본 사람은 대출 하면 이가 갈린다. 하루에 오뎅 한 조각 먹더라도 이자 덜 나오는 걸 평생의 꿈으로 생각하기 마련! 은행이 원하는, 은행의 VIP가 되어버린 마일환에게 있어서 대출은 그런 괴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누구도 누군가의 VIP가 되지 마쇼!’

    이름만 VIP지, 실상은 호구나 다름없었다.

    “으으윽!”

    마일환은 이를 잔뜩 물었다. 그런 마일환을 도와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먼저, 송곳박쥐뱀이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날아다녀서였다. 아군이 가까이 있어도 어떤 상황인지 볼 수가 없었다. 소리도 날개가 부딪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고막이 아파서 눈을 찌푸릴 정도였다.

    전사는 전투에서 눈에 흙이 들어가도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했는데, 고막의 고통은 신경을 찔끔하게 만들 정도라서 눈을 감지 않으려고 바르르 떨어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A급 전사 재능을 지닌 서충호나 어떤 경우에도 눈을 안 감고 그냥 뜬 상태로 적을 격살할 것이었다. 그 외에는 얄짤없었다.

    어쨌든 그 누구도 마일환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쓰러진 채 제대로 린치당하고 있는 마일환을 시작으로 빠르게 전열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한 놈이 빠졌고, 그만큼 죽거나 다치는 송곳박쥐뱀이 줄어들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전쟁터에 쫙 퍼져 나갔다. 영향력을 행사했다.

    “크어어어어!!”

    그 영향력을 막기 위해서 외눈붉은곰이 그대로 난입했다. 옆으로 달려와서 그대로 돌진하며 닥치는 대로 밀어붙였다. 외눈붉은곰의 몸에 부딪힌 송곳박쥐뱀은 나가떨어지거나 이빨을 곰의 털가죽에 박아 넣고 덜렁거렸다. 허나 깊게 박히지 않았기에 가죽을 뚫고 피를 내지는 못했다.

    훙훙!

    붉은곰이 벌떡 일어나 앞발을 휘두르며 입을 쩍 벌려서 앞을 휙 지나가는 건방진 놈을 하나 콱 물어뜯었다. 외눈이라고 해도 한쪽 눈이 멀쩡히 살아 있었다.

    무식한 외눈붉은곰의 난입으로 단번에 송곳박쥐뱀의 무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정확히 물리적으로 쪼개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리의 방향성이 둘로 나누어진 것이었다. 한쪽은 거칠게 돌격해서 들어온 곰에 정신이 팔렸고, 다른 쪽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 차이는 규합력을 반쪽 냈다.

    번―쩍!

    여유가 생기자 곳곳에서 섬광 단검을 던지며 송곳박쥐뱀의 시야를 빼앗았다. 먼 곳에 회오리 화염 철구를 던지고, 견동수가 다른 동료와 함께 싸우지 않고 엉뚱하게 혼자 툭 튀어나와서 덤벼든 송곳박쥐뱀을 진땀을 빼며 잔잔벼락의 환도로 죽이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 환경 속에서도 산박은 뒤로 물러나서 사태를 관망했다. 당장 대장삵의 워터 샷만으로도 십수 마리를 죽였고 중보병에 해당하는 불꽃두더지는 광전사마냥 날뛰면서 입에서 화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5cm의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송곳박쥐뱀이 턱 힘까지 강한 건 아니다.

    ‘말 그대로 경보병 카운터 괴물.’

    던전 사용자를 노린 괴물이었다. 던전 기후 생각하지 않고 무식하게 떡장갑을 입고 온 두더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 덕에 그의 할버드는 오로지 맹공, 오로지 공격만 하고 있었다.

    ‘피해가 없을 수 없지만, 내가 나설 정도는 아니다.’

    있다고 해도 하청 쪽에서 나올 것이다. 괴물이 후방에 있는 놈에게 무리해서 달려들 이유는 전혀 없었다. 처음 하청 팀이 가장 먼저 휩쓸린 만큼 피해는 그곳에서 나올 게 분명했다.

    ‘뭐가 보여야지.’

    걱정은 되었지만 산박은 자신의 머리를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전투는 그렇게 끝났다. 김각두는 상처를 제법 입었지만 사제만 두 명이나 있는 것이 이 팀이었다. 어렵지 않게 치료받을 수 있었다.

    꼴사납게 쓰러져서 웅크려 있던 놈도 목숨을 부지했다. 법성 사제 김연정 때문이 아니라 일단 신성력을 사람들에게 부여해 놓은 임지유 덕분이었다. 그 덕을 잘 본 셈이었다.

    “소란스럽기만 하지, 생각보다 그렇게 위협적인 놈들은 아니었습니다.”

    김각두는 나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전방을 두루 살피고 마일환을 일으켜 세운 뒤 확인 사살에 임했다. 날개를 다치고 구렁이처럼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뱀들이 아직도 있었다.

    물론 마일환의 표정은 썩어 들어 갔다. 대놓고 자신의 실력이 형편없음을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위협적이지 않은 놈들 상대로 웅크려 있기나 했으니 할 말 다 했다.

    김각두가 그렇게 한 이유는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서였다. 전사가 전사를 나무랄 수 있었다. 이 팀장이 나선다면 전방과 후방 직업의 알력 싸움으로 번질지도 몰랐다. 여기서는 그녀를 보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더 일 처리가 쉽다.’

    반면 시은은 자신의 스켈레톤을 확인하기 바빴다. 서리 해골이자 블랙 스컬 용법이 적용된 시은의 스켈레톤은 제법 멀쩡했다. 딱히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애초에 후방을 지키는 데 사용됐다.

    ‘좋아.’

    그 실용성을 조금 확보한 시은은 다음 전투에서는 전방 측면에 해골을 투입할 생각을 가졌다.

    그녀에게 산박이 다가갔다.

    “이 팀장님.”

    “예, 사장님.”

    그녀가 깍듯이 대했다.

    “송곳박쥐뱀의 부산물은 꼬리입니다. 나머지는 쓸모가 없어요.”

    개당 7천 원에 거래되는 부산물이었다. 2레벨 던전치고는 팍팍하다. 허나 취급도 쉽고, 꼬리 부위는 작았다. 거침없이 많이 담는 게 가능했다.

    수거한 꼬리의 개수는 여든여덟 개. 순식간에 61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물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파다다닥!

    “키이이익!”

    피 냄새를 맡고 또 다른 송곳박쥐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개로 거칠게 나뭇가지를 때리며 거침없이 그들을 공격했다. 결국 그 무리까지 처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부산물을 추가로 획득하지는 못했다. 서둘러 빤스런을 쳤다.

    후퇴하고 난 다음에 대장삵이 물로 피를 씻어내 줬다.

    “흐으! 좋다!”

    땀도 씻겨 내려가자 전사들은 좋아했다. 하지만 정글의 습기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바로 허리나무를 잘라낸 생나무에 불을 붙였다. 생나무임에도 이상할 정도로 잘 탔다.

    연기는 주변 습도를 제거하며 뻗어 나갔다. 그늘에만 있으면 오히려 서늘함을 느낄 정도로 주변 공기에서 습기가 싹 사라졌다. 놀라운 현상이었다. 마치 사막처럼 습도가 사라진 곳에서 팀원들은 숨을 돌렸다.

    “무조건 그늘이니까, 습도만 사라져도 살 만한데요?”

    “나쁘지 않네요. 허리나무가 이렇게 많아도 생나무를 태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이시은이 산박을 추켜세웠다.

    * * *

    세종 공원 인근에 있는 세종 공원 던전 훈련소. 그곳의 관리소장은 연신 허리를 굽혔다.

    “예. 예. 옙!”

    지하 1층에 있는 주문 훈련장을 꼼꼼히 살피는 송서아 때문이었다. 사장까지 호출한 이상 그사이에 최대한 자신의 점수를 높여야 했다.

    “시멘트의 두께는 당연히 두껍습니다. 또 깊이가 어느 정도 깊게 들어가는지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서 몇 레벨 괴물에게 어느 정도의 타격을 줄 수 있는지도 계산할 수 있는 최첨단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습니다.”

    관리소장은 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송서아의 기분을 맞췄다.

    “좋네요.”

    물론 송서아는 딱 한마디만 하고 그를 대단하게 여기거나 크게 칭찬해 주지는 않았다. 대신 먼지 때문에 손으로 입 주변을 휘적거렸다.

    “왜 이렇게 냄새가 나죠? 환기가 제대로 되고 있는 거 맞나요?”

    “예! 그, 그게, 다음 달에 환기구 청소가 예정되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잠깐 나는 것뿐입니다. 격월 주기로 말일마다 하는데, 지금이 가장 냄새가 날 때라서 그렇습니다.”

    그가 능숙하게 책임을 회피했다. 변명거리도 완벽했다. 환기구 청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가장 하찮게 보는 게 환기구 청소였고, 간단한 푼돈으로 영세 기업에 맡기고 있었다. 비용 절감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어서였다.

    “확실해요?”

    “예.”

    그가 냉큼 대답했다. 어차피 조사해야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질구레한 환풍기 청소 주기를 보기보다는 수익성을 보는 게 기업인이었다. 송서아는 훌륭한 기업인으로 보였다.

    “제가 아는 거랑은 다른데요?”

    문제는 이번 일에 대해서는 송서아가 수익성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산박에게 줄 선물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선물에 하자가 있어서는 안 됐다.

    “예?”

    “내가 아는 거랑 다르다고. 몇 번을 말해야 제대로 들으시겠어요?”

    “아, 그게, 저…….”

    그가 어버버거렸다. 그는 이곳의 사장 연줄을 통해서 관리소장 자리에 앉았다. 연줄 덕도 보고 재밌는 나날을 지냈다. 출근도 사실 거의 안 하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젊은 년 때문에 나와서 반말까지 들으니 머리가 띵해 왔다.

    그러나 주먹을 쥐자마자 경호원이 스윽 반걸음 다가왔고, 그는 이내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살짝 숙일 수밖에 없었다.

    “먼지 냄새가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네요. 지하라서 그런지 시원하기는 한데, 습기는 못 잡는 것 같네요. 저거 곰팡이 맞죠? 천장에.”

    “저, 아가씨, 여기 마스크라도…….”

    “고마워요.”

    경호원이 품에서 마스크를 꺼내 건네자 서아는 바로 포장을 뜯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코를 손으로 꾹꾹 눌러서 잘 밀착시켰다.

    그사이에 지하 1층에 사장이 도착했다. 백 사장이었다. 그는 서둘러 관리소장을 올려 보내고 송서아에게 냉큼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잘하는 친구인데 오늘은 긴장을 많이 했나 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자기 자식에게는 한없이 배려심 깊은 아버지 어머니도 남들 앞에서는 그냥 아저씨, 아줌마에 불과했다.

    “괜찮습니다. 긴장, 누구나 하는 법 아니겠어요?”

    송서아는 백 사장을 안심시켰다. 그만큼 세종 공원 던전 훈련소의 입지는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가진 자는 실수해도 쉽게 넘어간다. 그들이 지닌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다. 빵 하나 훔치면 징역 3년이지만 인공위성을 훔치면 집행 유예다. 그게 바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였다. 남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느냐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이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낙하산을 한 대가가 아니었다. 던전 훈련소의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었다. 인수할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어차피 던전 경제에 들어간다면 던전 훈련소를 통해 회사 차원에서 자체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니까.’

    일석이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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