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7화 (217/270)
  • 217화

    * * *

    장작용으로 쓰며 주변 대기의 습기를 처리할 허리나무를 모든 이들이 나눠서 짊어졌다. 거기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 다만 체력 수치가 이상하리만큼 낮은 김연정의 몫은 김각두가 짊어졌다.

    그 모습에 임지유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른 여자는 도움을 받고 짐을 덜었는데 자신은 모두 짊어져야 한다니 불공평했다. 공정하지 못했다.

    견동수가 꼼지락거렸다. 반면 주하승은 서슴없이 다가와서 지유 앞에 놓인 생나무를 자른 것을 들어 올렸다. 나무 내부에 물기가 있었기에 제법 무거웠다.

    “어. 고마워요, 하승 씨.”

    “뭘요.”

    그는 쿨하게 한마디만 하고 출발 준비를 하러 앞으로 이동했다. 사제 임지유는 볼을 긁었다. 왠지 낯간지러워서였다. 그 모습을 본 견동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동수야, 쓸데없는 생각 말고 레벨 업과 돈만 보고 가자.’

    젊었을 때 하는 게 연애인데 그는 잘못된 생각을 하며 미래를 기약했다.

    그 누구도 그것을 바로잡지 않았다. 시은은 불만 없이 자신의 짐을 들었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편견’이 시작된다. 커리어 우먼이자 알파 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특히나 사회를 보고 듣고 쓰면서 터득한 케이스라 이런 곳에서는 더더욱 칼같이 선을 지키는 편이었다.

    물론 그럴 마음이 없는데도 은근히 산박에게 눈길을 줬다. 산박은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안 그래도 던전을 남들보다 더 돌아야 하는 그였다. 전투에도 소환수만 보내고 후방에서 대기할 생각이었다.

    “출발하세요.”

    이 팀장의 명령에 선두에 선 하청 팀, 돌핀 워리어스 소속의 전사 3인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전형적인 > 형태로 섰다. 가장 선두는 가장 노련한 김안후가 맡았다. 그만큼 돈도 더 받았다. 위험 수당인 셈이었다.

    그는 이번 던전에 들어온 돌핀 워리어스 3인의 실질적인 리더였고, 고참이었다. 보통은 고참이 뒤로 빠지지만 던전에서는 한 명이라도 죽으면 리스크가 곱절은 커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베테랑이 더 위험한 곳에서 살아남아야지 던전 공략이 편해진다. 그게 던전의 생태계였다.

    “조심해. 무리로 덮쳐 오니까. 조금이라도 낌새가 보이면 말해줘야 해.”

    본래 2레벨 던전의 가장 큰 특징이 ‘다수’의 공격이었다. 그런데 떼 던전은 애초에 던전이 무리 공격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적이 튀어나오는 곳이었다. 그리고 다수를 상대하는 데 소수에게 필요한 건 빠른 대처를 통한 시간 확보였다.

    세 사람은 사위를 살피며 서로 자신이 배정받은 곳을 훑어 나갔다. 후방에는 김각두와 주하승이 있었다. 옥시모론 기업 또한 팔이 안으로 굽는 셈이었다.

    대장삵은 느긋하게 걸으면서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귀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건 야생적인 삵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불꽃두더지 파수병은 느긋하게 돌핀 워리어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어깨에는 할버드를 척 걸쳤다. 중병기인 할버드를 들고 많이 걸어본 경험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정예병이지.’

    산박은 이를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야만신의 소환 주문은 하나부터 열까지 버릴 게 없었다. 외눈붉은곰은 덩치가 크고, 불꽃두더지 파수병은 인간형이지만 중보병에 화염까지 입에서 뱉어낸다.

    “정지!”

    가장 선두에 있던 전사, 김안후가 외쳤다. 방패와 둔기를 쥐고 있어서 수신호를 할 수 없는 게 그였다. 혁대엔 야만적인 투척 도끼가 덜렁거렸다. 다른 돌핀 워리어스도 똑같은 복장으로 통일하고 있었다. 자신을 지키는 데 가장 성공적인 것은 장병기가 아니라 단병기임을 잘 알고 있었다. 실로 이기적인 무기 선택이었다.

    물론 그렇기에 변명거리도 가지고 있는 게 돌핀 워리어스였다. 바로 투척 도끼로 능히 아군을 도와줄 수 있다는 개소리였다. 단검조차도 투척하려면 어깨가 빠지도록 연습해야 하는데, 투척 도끼는 더더욱 어려웠다. 제대로 훈련을 할지 의심스러운 것이 하청 팀이라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이 던전 공략의 오퍼를 받은 이유는 단가가 싸기 때문이었다. 이 팀장은 산박의 소환수를 단단히 믿고 팀의 실력보다는 단가를 보고 팀을 섭외했다. 팀 공략의 모든 지표에서 서 팀장을 이기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이 하청 팀의 수준에도 잘 퍼져 있었다.

    ‘그래도 저 정도면 양반이지.’

    처음 2레벨 던전 공략을 떠올리면 선녀가 따로 없었다.

    ‘이시은은 가볍게 선택하지 않았다.’

    모든 걸 골라보고 확실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모습이었다. 막말로 돌핀 워리어스 세 명은 죽어도 아무 상관 없었다. 그들과 다른 팀이며 다른 기업에 속한 던전 사용자에 불과했다. 통계의 허점이다.

    ‘뭐, 지킬 것만 지키면 살아남는다.’

    서충호만 해도 산박 없이 훌륭히 던전을 공략해 냈다. 운이 적당히 따라와 주면 사람이 죽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걸음을 멈춘 일행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이족 보행을 통한 우월한 시야를 통해서 주변을 훑었다. 전방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용케도 이 소리를 들었네.’

    산박은 전방에 섰던 김안후를 새롭게 봤다. 괜히 하청 팀의 선두를 서는 게 아니었다. 색적 능력이 탁월해 보였다.

    ‘전사 직업에는 색적 스킬이 드무니까.’

    천성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마 김안후는 나중에라도 다시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죽지만 않는다면 꾸준히 성장할 가능성을 지닌 전사였다.

    ‘영입하고 싶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지.’

    지금도 전방과 후방 직업의 파벌이 탄생했고, 그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여기에서 뛰어난 전사를 더 영입한다면 회사 내부는 빠르게 곯아버릴 터였다. 산박이 타락하지 말라, 라고 한다고 썩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도 아니고.’

    아직 파벌 싸움이 본격화되면서 회사 차원에서의 피해도 생기지 않았는데 설레발칠 수 있지만 너무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이시은도 검은 마음을 품을 수 있고, 김각두조차도 검은 마음을 품을 수 있었다. 인간은 간사하기 때문이며, 상황에 따라서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존재라서다. 그렇지 않은 인간은 대나무처럼 부러져서 죽을 뿐이다. 명줄 짧은 놈과 함께 다니고 싶은 마음은 산박에게 없었다. 로망은 있지만, 삶이 없었다.

    “송곳박쥐뱀이다!!”

    산박이 고함을 내질렀다. 허리나무들로 인해서 시야가 잔뜩 차단된 곳을 헤쳐 나오며 날개를 지닌 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숫자는 끝도 없었다.

    송곳박쥐뱀. 척 봐도 긴 이빨이 돋보였다. 5cm에 달하는 깊은 이빨은 어디든지 제대로 박히면 뼈도 못 추릴 것처럼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독은 없었다. 숫자도 많은데 독까지 있으면 감당할 수 없었다.

    푸다다닥!

    날갯짓하는 송곳박쥐뱀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본격적으로 날아올랐다. 박쥐 날개가 허리나무의 얇은 나뭇가지와 곳곳에 들러붙은 나뭇잎을 때리며 소음이 잔뜩 울려 퍼졌다. 고막이 아플 지경이었다.

    “빌어먹을.”

    놈들은 그대로 돌진했다. 무지막지한 호전성. 산박은 외눈붉은곰에게 명령을 내렸다. 외눈붉은곰은 벌써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나무 하나 치고, 놈들을 공격해라.”

    “크어어어엉!”

    외눈붉은곰이 서둘러 나무에 달려갔다. 전이라면 바로 돌진시켰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산박은 외눈붉은곰의 상처를 최소화할 생각을 가졌다.

    ‘망치와 모루.’

    모루는 자신들이 될 것이고, 망치는 외눈붉은곰이 될 것이다. 물론 복잡한 명령을 수행하지는 못하기에 옆에 있는 나무 한 그루에 상처를 내고 다시 적들에게 돌진하게 시켰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회 타격을 하게 된다.

    냉병기 시절의 군사학에서 가장 유명한 전술이었다. 허나 이를 제대로 상황에 대입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건 산박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그는 편법을 사용했다.

    ‘먼저 막고, 그다음 친다.’

    한 방에 태엽처럼 돌아가지 않고 턴제 전투처럼 해버렸다. 그 대가는 모루가 겪게 되겠지만, 다행스러운 건 산박에게는 소환수가 두 마리나 더 있다는 점이었다.

    ‘작은 대지 골렘은 상황 보고 써야지.’

    시작부터 모든 소환수를 뽑아내고 싶지 않았다. 이 팀장이 지휘하는 팀의 수준을 보기 위함이었다.

    “최대한 주문으로 떨쳐 내세요! 전사들 준비!”

    시은이 소리를 치자 후방에 있던 김각두와 주하승이 합류했다. 동시에 사제인 임지유와 법성 사제 김연정이 버프를 걸었다. 둘의 차이는 극명했다.

    “합!”

    임지유는 배에 힘을 꽉 주면서 기합을 내질렀다. 그녀는 0레벨 시절 합기도를 배우면서 머리를 노리는 상단 발차기를 1년이 지나도록 계속 맞기만 할 정도로 센스가 없었다. 허나, 노력하면 능히 2류는 될 수 있었다. 그 덕에 합기도 유단자가 된 그녀는 기합을 지르는 걸 습관처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이 전방 직업들 근처를 맴돌았고 반짝반짝 빛이 몸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단순한 신성력을 다루는 것이 사제였다. 그 덕에 임지유는 누구보다 많은 치료의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힘을 다루는 것이 단순하여서 원거리 무기 등을 소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임지유는 아직 제대로 된 원거리 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양궁을 틈틈이 배우는 여자다.

    “충격 감쇄의 신성 방패!”

    반면 법정 사제 김연정은 시동어를 외쳤다.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충분히 필요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낸 법술을 일행들에게 부여했다. 특히 첫 전투에서 일어나는 피해를 잘 막기 위해서 ‘충격 감쇄의 신성 방패’ 주문을 가장 선두에 부여해 줬다.

    김각두는 양손 망치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척 봐도 체중이 없어 보이는 놈들이다.’

    ‘비행’하는 놈들은 형편없는 몸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새를 잡아본 사람은 잘 알지만, 제법 덩치가 있어 보이는 까마귀를 사냥해도 털을 벗기면 남는 건 거의 없다. 거기에 무게를 가볍게 하려고 뼈까지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게 비행하는 놈들의 단점이었다.

    그렇기에 김각두는 굳이 주문을 사용하지 않았다. 청철 문장을 통해서 사용 가능한 빛의 갑주 주문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팔뚝으로 치기만 해도 떨어져서 몸 가누기 힘든 놈들이다.’

    적이 달라붙어서 이빨을 박아 넣는 것만 조심하면 될 듯했다.

    “목 보호하세요! 죽기 싫으면!”

    산박이 외쳤다. 그 외침에 각두의 투구 속에 가려진 표정이 싹 변했다.

    ‘놀랍군. 어떻게 아시는 거지?’

    후방 직업이라면 모를 수밖에 없는 걸 알고 있었다. 김각두 또한 비행 괴물을 마주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인데 산박은 겪지 않았음에도 알고 있었다. 혹은 그도 겪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 사장님께서는 2레벨 던전 공략 횟수가 한없이 낮다.’

    기괴한 일이었다. 한두 번 근접전을 해서는 깨닫기 힘든 것이 비행 괴물을 상대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이었다. 눈으로 봐서는 모르고 어느 순간 깨닫는, 그런 종류의 깨달음이었다.

    이내 김각두는 생각을 걷어찼다. 무인에게 필요한 것은, 전투를 앞두고 싸울 전사에게 필요한 것은 깊은 고민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본성, 지성이 아닌 본성을 좇는 짐승이 되어야 했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싸움 앞에서 필요한 것은 과감한 결단이었다.

    견동수의 불똥 같은 마법 불꽃이 뿌려졌다. 투사체였으며, 느릿느릿했다. 포물선을 그리고 있어서 눈에도 잘 보여 피하기 쉬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불똥 투척 주문’의 투사체는 스무 개 남짓. 개수만 따지면 상당한 2레벨 주문이었다.

    화르르!

    “키이익!”

    송곳박쥐뱀의 날개가 단번에 화염에 휩쓸렸고 한쪽 날개가 비행력을 잃었다. 몸이 왼쪽으로 팽이처럼 돌아가며 뱀의 입에 허리나무의 나뭇가지가 쑥 들어갔다. 한 번 덜렁거린 나뭇가지가 이내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고, 그대로 떨어진 송곳박쥐뱀은 결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끔찍한 교통사고였다.

    견동수의 주문은 실로 효과적이었다. 워낙 송곳박쥐뱀의 숫자가 많아서 못 맞히는 게 이상했다. 게다가 아무리 가느다란 뱀이 몸이라 해도 박쥐 날개가 붙은 가슴 부분과 척추 부분은 공기를 넣은 것처럼 두툼했다.

    “후우웁…….”

    김각두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내 강하게 고함을 내질렀다.

    “우아아아아아아!!”

    최선두가 아닌 옆에 있는 김각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덕에 순식간에 앞이 시끄러워졌다. 김각두의 고함에 이끌린 송곳박쥐뱀과 그렇지 않은 송곳박쥐뱀이 서로 부딪치면서 뒤엉켰다. 바닥에 떨어졌다가 다시 파다닥거리며 흙먼지를 일으키며 날아올랐다. 대단히 활력적인 놈들이었다.

    ‘으으, 빌어먹을.’

    고함을 확 내질러서 추잡스러울 정도로 엉망이 된 송곳박쥐뱀의 형세를 본 모든 이들이 끔찍한 표정을 내보였다.

    다만, 하청 팀 돌핀 워리어스는 오히려 고함을 내질렀다. 그렇게 고함이라도 지르지 않으면 끔찍함에 심장이고 마음이고 모조리 녹아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달려오는 차 앞에 우뚝 서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순간처럼 오금이 저려 왔다. 그게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달려들 때 느끼는 감정이었다. 죽음의 냄새가 풀풀 풍겨 왔다. 평범한 정신마저도 마약에 전 것처럼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뇌에서 분비됐다.

    “으아아아아!!”

    “아아아아!!”

    그 고함 소리와 함께 전사들이 투척 도끼를 던지고 곧바로 송곳박쥐뱀 떼에 휩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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