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 * *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던전에 들어서는 기분은 썩 내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산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2레벨 던전.’
이제는 별다른 위협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력을 다했을 때 산박은 사상자를 안 낼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아니지.’
잔인하고,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환수만으로도 산박은 과잉 전력이었고 2인분 이상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굳이 과잉 화력을 투입할 필요는 없지.’
던전 공략에 소환수만 투입해도 사실상 산박이 할 일은 끝이다. 그저 따라다니기만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지만 투 톱 던전 공략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산박은 괴물이 아니다. 그의 체력 수치는 7로 후방 직업치고는 상당히 높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투에 계속 투입되면 정신이 못 버틴다.
싸움은 초인적인 집중력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그렇기에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싸운다면 집중력이 무너지고, 그렇게 되면 황당한 실수로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서 산박은 철저히 제3자가 되어야 했다. 후방 직업이면서 소환자의 포지션을 유지하기로 한 상태였다.
“으, 이게 대체…….”
“이런 던전은 처음 봐요.”
팀원들이 이리저리 둘러보며 한마디씩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최악의 던전이 걸렸으니까.
‘정글.’
모래로, 고온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사막 지형보다도 안 좋은 곳이 정글이었다. 모든 던전 사용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지형이 정글이었다.
사막보다 기온이 현저히 낮으면서도 습도가 높기에 땀이 비 오듯이 몸에서 흘러내린다. 이것만 해도 큰 난적이다. 땀을 배출하는 만큼 물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글 곳곳에 존재하는 습지와 강은 던전 클리어를 위해서 돌아다니는 던전 팀에 끔찍한 경험을 선사해줄 수밖에 없었다. 눅눅한 기분을 느끼며 계속 나아가야 했다. 물에 적셔진 발가락은 퉁퉁 붓고, 그저 뾰족한 나뭇가지에 찔려도 상처가 났다. 피부가 물렁물렁해져서였다.
‘상처가 나면 곯기 시작하지.’
세균이 살기 좋았다. 그렇기에 정글은 지옥이었다. 그런 곳에 괴물까지 나타나니 말할 것도 없었다.
‘정글 던전은 손에 꼽는다.’
잘 걸리지도 않았다. 운이 없으면 만나는 것이 정글 지형인 셈이다. 그렇기에 잘 기억해 놓을 수 있었다.
‘2레벨 정글 던전이라면 떼 던전이지.’
산박은 나무만 보고도 던전의 정체를 파악했다. 정글이기에 나무는 평범하게 크고 쭉 올라가 있었다. 중요한 건 사람의 허리 부근부터 나뭇가지가 있고 나뭇잎이 뻗어 있다는 것이었다. 수풀이 딱히 필요 없을 정도로 무성한 생명의 잎들이 나무에서 뻗어 나와 있었다.
‘시야 방해.’
‘허리나무’라 불리는 것이다. 보기만 해도 열불이 터질 정도로 시야를 막고 있었다. 벌써 칼을 뽑아 들어서 가지를 치고 시야를 확보하는 이들도 있었다.
‘본능적으로 하는 거겠지.’
불편하여서 이를 제거하려는 모습이었다. 노련한 2레벨 전문 하청 기업이라 평가받는 ‘돌핀 워리어스’의 전사들이 남들보다 먼저 기민하게 칼질을 해대었다.
그들은 세 명이었고, 이번에 이 팀장의 오퍼를 받고 이곳에 왔다. 자신들을 포함해서 팀이 두 개뿐이라서 표정이 밝았다. 진짜 끔찍한 곳은 5호 16국을 방불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양반 중의 양반, 상양반이다.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할 마음이 생기는 던전 공략이었다.
‘하지만 어설프다.’
산박은 속으로 코웃음 쳤다. 그들이 쳐낸 나뭇가지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어서였다. 정글 던전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이 분명했다.
던전 정보에는 돈이 들어간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 정보를 돈 주고 사는 풍토를 그 누구도 깨부수지 않아서였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던전이었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기도 했다. 사람이 전봇대에 붙어서 양팔이 절단되고 죽어 버리는 전기공들의 삶보다 오히려 던전이 더 비전이 있고 미래가 있었다. 그 때문에 입에 풀칠하고자 하는 사람 중에는 현대 사회의 부품이 되는 걸 질려 하며 던전의 부품이 되는 걸 선택한 아둔한 자들이 가득했다.
‘그렇기에 돈 쓰는 짓을 하지 않지.’
매달 나가는 카드값을 챙기기에 급급한 소비만 하는 존재가 인간이고 현대인이었다. 산박처럼 해야 할 일 때문에 돈을 쓰는 경우가 큼지막하게 띄엄띄엄 있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그런 소비적인 삶이 더 풍요로울 수 있었다. 던전의 부품이 된 매주궤처럼.
“굵은 나뭇가지는 모아 주세요. 잔가지랑 나뭇잎은 쳐내야 합니다.”
그 한마디에 돌핀 워리어스 하청 팀 세 명이 감탄했다.
“정보를 아십니까? 2레벨은 제법 비쌀 텐데요.”
“예. 그 나뭇가지는 불로 태우면 매캐하게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긴 해도 주변 공기의 습기를 잔뜩 가져가는 효능을 지녔습니다.”
허리나무는 상품성이 전혀 없었다. 생나무였지만 잘 타는 습성이 있어서 현장에서는 쓸 만했지만 나무를 태우면 생기는 끔찍한 연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물먹는 하마를 쓰는 게 50배 이득이었다.
“허, 그런 효능이…….”
“사실 저희도 정글 던전은 처음이라서요.”
애초에 몇 번 경험해도 해당 정보를 모르면 알 수가 없었다. 그만큼 허리나무는 산재해 있었다.
“사장님, 이 던전은 무슨 던전이에요?”
이 팀장이 묻자 산박이 나중에라고 대답했다. 이에 이 팀장은 서둘러 장비 점검을 시작했다. 그사이에 산박은 소환수를 소환했다.
밖에 계속 나와 있는 걸 좋아하는 대장삵은 굳이 소환할 필요가 없었다. 함께 들어온 상태였다. 몽모탄 구릉의 지배자, 늑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위대한 지도자인 대장삵은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불꽃두더지 파수병 카누토가 공간을 화염으로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척 봐도 중갑옷을 입고 할버드를 쥔 카누토는 확실한 한 방을 가지고 있는 전사였다. 특히 중보병은 누구나 하고 싶지 않은 게 던전 사용자의 실태였다.
공략은 오펜스다. 그렇기에 무거운 장비를 입고 배낭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건 매우 힘든 역할이었다. 그래서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싶어 하는 전사들이 많았다. 또 한다고 해도 흉갑과 투구 외에는 딱히 갖춰 입지도 않는다. 반면 카누토는 척 봐도 불편할 정도로 강철을 두르고 있었다.
“와. 중보병.”
주하승이 카누토를 동정했다. 이런 고온 다습한 여름 날씨의 정글에서 중갑을 입고 다닌다? 정말 괴로울 것이다. 지독하게 괴로울 것이 분명했다. 산으로 박격포를 짊어지고 오르는 포병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군대에서 나올 때면 허리 디스크 하나는 훈장처럼 가지고 나오는 것이 포병이었다.
“으윽, 뭐지, 이 빌어먹을 지형은.”
카누토는 소환되자마자 짜증을 표출해 냈다. 습기 때문에 기분 나빴고, 공기 자체가 후덥지근했다.
“하하하! 하하하하!”
대장삵은 단번에 웃으면서 카누토를 놀렸다. 일부러 크게 웃어 보이는 대장삵을 카누토는 가볍게 무시했다. 어울려줘 봤자 형세가 나빴다. 나쁜 형세를 보고도 돌격하는 전사는 그냥 머저리다.
산박은 외눈붉은곰도 소환했다. 야만신이 내려준 매우 입체적인 마법진을 평면에 대입한 소환 북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소환을 이행했다. 주문을 직접 외우는 것과 소환 북에 그냥 힘을 부여해서 소환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
‘공부도 되고.’
숙련된 감각은 나중에 비슷한 힘의 체계에서 산박에게 도움을 줄 터였다. 또 효율성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어? 너무 큰데?”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외눈붉은곰을 처음 본 하청 팀의 세 명이 발생시킨 소음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외눈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3레벨 던전에서나 볼 수 있는 놈이었다. 혹은 2레벨 던전의 보스 역할을 했을 터였다.
눈 하나를 잃었지만 그 덩치는 실로 압도적이었다. 절로 위압감이 서렸다. 특히 털이 붉은 것이 대단히 멋져 보였다. 피처럼 붉어서 이질적이었다.
‘작은 대지 골렘은 싸움을 앞두고 소환해야 한다.’
아티팩트로 소환하는 소환물이며 무생물이었기에 활동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일행이 모든 준비를 끝내자 이시은 팀장이 자진해서 사람들을 모았다. 그녀가 말했다.
“태 사장님께서 던전 정보에 대한 브리핑을 하실 거예요. 모두 경청해 주세요.”
그녀가 공손히 태 사장을 가리켰다.
“이번 던전은 떼 던전(Swarm Dungeon)입니다. 보시다시피 정글입니다. 정글은 그 자체로 매우 불친절한 곳입니다. 거기에 저희들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간단히 지켜야 할 것을 한 문장 내외로 각인시켰다. 이렇게 해도 행동 하나하나에 그 철칙을 적용할 사람은 적었다. 거듭 언급해도 교장님 훈화 말씀밖에 안 된다.
“…그리고 클리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팀원들의 눈이 반짝였다. 하청으로 온 세 명의 전사도 초롱초롱한 눈을 했다.
“하나는 15일 생존입니다.”
“헉.”
너도나도 놀랐다. 보통 다른 던전에 비해서 무려 세 배에 달하는 기간이었다.
“길죠? 그래서 정글 던전이 무서운 던전입니다.”
수익성부터 시작해서 손발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듣자마자 띵했어요.”
시은도 마찬가지로 놀랐다. 보름이라니, 지독했다. 절대 그렇게 오랫동안 이 정글에 있고 싶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데…….’
15일 동안 관리가 전혀 안 되는 상황을 겪고 난 다음에 피부의 상태를 예전만큼 되돌리려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까마득했다.
똑같이 잘못해도 외모가 다르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반응을 보이는 게 현대 사회였다. 괜히 이시은이 피부과의 VIP인 게 아니었다.
“다음은 사원을 찾는 겁니다. 그곳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면 던전은 클리어됩니다.”
그 외에도 자잘한 던전 클리어 방법이 있었지만 산박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번거롭게 던전을 클리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보스를 노려야겠네요.”
이시은이 그런 산박의 마음을 캐치해 냈는지 냉큼 팀의 방향성을 결정했다. 태산박이 이번 공략에서는 그냥 후방 지원 소환사 취급을 해달라고 해서였다.
“나오는 괴물들은…….”
산박이 대충 설명을 이어 나갔다. 팀원들은 괴물에 대한 것에서 매우 큰 집중력을 보여 줬지만 대부분 기억하지 못할 것이었다. 인간의 기억력은 생각 외로 형편없었다.
* * *
검은 세단이 세 대 유료 주차장에 들어갔다. 그것만으로도 시선을 모았다. 이어서 다섯 명의 경호원이 차에서 내렸다. 더더욱 이목이 쏠렸지만 송서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산박과의 사업 관계를 위해서 던전 훈련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세종시는 서울과도 가까웠기에 사설 던전 훈련소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볼 만하다고 여긴 곳은 세종시의 시청 부근에 있는 던전 훈련소였다. 시내에 있는 던전 훈련소는 특히 희귀했다. 입지가 좋아서 하루 임대료만 해도 상당했다.
이용자가 적어도 돈이 되기 때문에 굳이 비용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파괴하면 수복을 해야 하는 던전 훈련소 특징상 박리다매보다는 오히려 이게 더 옳은 사업 방법이었다. 그 덕에 이용하는 던전 기업이 적어서 약속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세종 공원에 있는 유료 주차장에는 공원 이용객들이 많이 보였다.
“어느 쪽이라고 했죠? 세종 공원 던전 훈련소.”
“여기서 도보로 3분입니다.”
이목을 줄이기 위해서 경호원 두 명이 앞서 나가고 두 명은 남았다. 뒤에서 천천히 거리를 벌려 따라올 생각이었다. 한 명만 송서아와 같이 다녔다.
이마저도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경호원이라는 걸 고용해서 다니는 여자는 희귀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자라도 그렇게까지 신변 보호를 하지 않는다. 커리어가 있고 가주의 사랑을 받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불미스러운 일도 있어서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던전 훈련소의 관리소장이 송서아를 깍듯하게 맞이했다. 50평 남짓의 5층짜리 빌딩을 개조해서 던전 훈련소로 쓰고 있었다. 지하는 2층까지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바로 둘러보고 싶은데요.”
“예! 1층은 로비입니다. 굳이 볼 게 없고 휴게실만 있습니…다만……!”
송서아가 말을 들으며 로비의 휴게소로 직행하자 관리소장이 서둘러 따라가며 말을 홱 돌렸다.
“역시! 휴게실이 중요하지요. 훈련하고 나온 던전 사용자들이 휴식하는 곳 아니겠습니까? 자판기부터 시작해서…….”
“몇 년 된 자판기예요?”
“예? 아, 저, 그게…….”
송서아가 가만히 이를 기다렸다. 그러자 관리소장이 서둘러 사람을 불렀다. 이에 직원이 하나 부리나케 달려왔다.
“어어, 이 주임! 이거 몇 년 된 거야?”
“예? 휴게실요?”
“멍청하기는! 자판기 말이야, 자판기!”
“5년은 넘었습니다!”
“헤헤, 5년은 넘었답니다. 그만큼 잘 관리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피식.
송서아가 비웃었다. 그 모습에 관리소장의 표정이 썩어 들어 갔다.
‘건방진 년이…….’
사장의 말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영업용 웃음을 짓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아무리 관리소장이라고 해도 직장인. 일단은 수그리는 것이 좋았다. 사장이 그렇게 펄떡 뛰면서 중요시한 적이 없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여자길래…….’
“자, 여기 소파도 가죽이 아주 잘되어 있습니다. 매번 청소도 하고요. 땀으로 젖은 사람이 앉는 것이기에…….”
“너무 열악한데요. 사장 불러요.”
“네?”
송서아는 두말하지 않았다. 관리소장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주룩 흘러내렸다. 이에 경호원이 그의 어깨를 상냥하게 두드렸다.
“사장님 부르세요.”
“예? 정말로요? 정말로 부릅니다?”
경호를 맡은 소준석이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빨리 부르세요. 아니면 그냥 가버릴지도 모릅니다.”
“예! 자, 잠시만요!”
관리소장이 서둘러 몸을 돌리며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전화를 받은 사장은 까무러치며 5분 내로 가겠다고 했다. 반드시 붙잡아 두라는 소리도 들었다.
“저, 저! 5분 내로 온답니다. 그 전에 지하 1층에 있는 저희 훈련소 최고의 주문 시험장을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최근 후방 직업들에게 주목받는 게 주문 시험장입니다.”
그 말에 송서아가 관심을 표현했다.
‘분명 태산박 씨의 직업이 드루이드였지.’
후방 직업이다.
“안내하세요.”
“예!!”
관리소장은 크게 기뻐했다.
‘무슨 휴게소에 관심을 가지는 큰손이 다 있지? 황당하군, 황당해!’
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사회에서 푼돈이나 버는 부품 따위가 휴식하는 휴게실에서 송서아가 겨우 관심을 돌려서 천만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