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5화 (215/270)
  • 215화

    <떼 던전>

    “어떻게 좀 해보시오!”

    노갑비가 발을 동동 굴렀다. 마을 회관은 마을 사람들의 돈과 지원을 받아서 만들었기에 TV부터 남달랐다. 간식거리도 냉장고에 있는데, 어느새 벌로 가득한 곳이 되어 버렸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겁니까?”

    산박의 말에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어~! 벌이 종종 있길래 왜 이런가 했더니 갑자기 늘어났지 뭐야!”

    일단은 산박이 접근해 보았지만 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런. 아무래도 나도 해당 사항이 아닌 것 같네.’

    “백까마귀 소환!”

    산박은 역소환을 진행한 다음 다시 백까마귀를 소환했다. 모든 마력을 아침에 다 써버렸기에 제법 비싼 회복 물약을 마셔야 했다. 그걸 마셔도 쓸 수 있는 주문은 한 개에 불과해서 가성비가 안 좋았다.

    그가 가진 ‘힘 회복제’는 무려 11만 원 상당의 물품이었다. 저레벨 힘 회복제를 폭탄 세일 할 때 구매한 것이었다. 현재 살려면 20만 원은 줘야 했다.

    ‘이렇게 급할 때는 무조건 사용해야지.’

    전투를 싫어하는 것이 꿀통백까마귀였다. 그래서 이렇게 양봉에 임하게 했는데, 마을 회관이 벌집이 되어 버렸다. 와촌리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잘 보여도 시원찮은 마당에 이런 대사건이 터진 것이다. 산골 마을에서 사건이 날 리가 없으니 이런 것도 큰 사건으로 분류되어서 몇 년을 갈지 몰랐다.

    “까악? 뭐지?”

    갑자기 역소환되었다가 소환된 백까마귀가 어리둥절해했다. 그런 백까마귀에게 산박이 서둘러 해명을 요구했다.

    “대체 어떻게 하다가 마을 회관에 벌이 자리 잡은 거냐?”

    “깍? 그거까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전투에 쓸 수 없는 대신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 꿀통백까마귀의 장점 중 하나였다. 물론 건방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실제 까마귀도 깡패나 다름없는 놈들이라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건방진 놈아, 너 때문에 마을 회관이 다 엉망이 되어 버렸으니까 책임져.”

    “예, 알겠습니다.”

    백까마귀가 빈정거리더니 이내 날아올라서 마을 회관의 창문을 부리로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거침없는 모습에 산박은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벌들은 희한하게도 백까마귀를 공격하지 않았다. 잠시 뒤, 백까마귀가 나와서 외쳤다.

    “벌들을 모두 데려갈 테니 마을 회관의 천장에 있는 벌꿀들을 모두 가져와라!”

    그렇게 꿀통백까마귀는 꿀벌들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분명 양봉을 하기 위해서 설치해 놓은 곳으로 향했을 터였다.

    “들어가 봅시다!”

    “조심히! 혹시 벌이 있을 수 있으니 장비는 끼고!”

    남자들이 나섰다. 그들은 백까마귀가 말한 천장부터 깠다. 살짝만 천장을 들어냈는데도 벌꿀로 가득했다.

    “이게 대체…….”

    “허. 이게 얼마나 많은 양이야?”

    산박 또한 이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단기간에 이 정도라니……. 벌의 생산력을 생각해도 비정상적이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아니면 그만큼 자연의 힘이 위대한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종종 자연은 믿을 수 없는 일을 보여 주니까.

    어찌 되었든 근 반나절 동안 벌꿀을 덜어내는 데 힘을 써야 했다. 그 과정을 모두 끝내고 나서는 마을 회관에서 저녁을 성대하게 먹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젊은 사람이고, 사건이었다.

    ‘도망칠 수가 없네.’

    산박은 즐기기로 했다. 신부님이 항상 말씀하셨다. 남이 1km만 같이 가자고 한다면 3km를 같이 가주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쁨을 누리라고 하셨다. 배가 고팠을 때는 개소리로 들렸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너도나도 꿀벌 마을 회관 점령 사건을 이야기하기 바빴다. 산박도 그곳에 참가했다. 직접 돌아다니며 즐거운 한때를 만들었다. 그저 젊은 사람과 술 한잔 하고 잡담을 떠드는 것만으로도 이곳의 늙은 사람들은 크게 좋아했다.

    어둠이 내려앉고 나서야 산박은 백까마귀와 마주할 수 있었다.

    “설명해봐. 어떻게 이런 쌀쌀한 환경에서 벌들이 날뛸 수 있는지.”

    차에 기댄 산박에게 차 위에 올라선 까마귀가 부리를 놀렸다.

    “보온의 기운이다.”

    “보온의 기운? 주문인가?”

    “아니다. 내가 가질 기질이다.”

    “기질.”

    “깃털에 깃들어 있지. 이 깃털에 노출된 꿀벌은 온기를 내뿜게 된다. 추위에 강해지지.”

    “꿀벌에게만 해당한다는 건가?”

    “그렇다.”

    말을 하며 까마귀가 날개 안쪽을 부리로 콕콕 쑤시고 비볐다. 간지러운 듯했다. 꿀벌에게서 묻은 꽃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에 산박이 인상을 찌푸렸다.

    “꽃도 안 피는 날씨잖아.”

    “꿀벌이 지닌 온기는 꽃에 전염되거든.”

    “뭘 숨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전혀. 내 깃털에 깃들어 있는 보온의 기운은 꿀벌에만 전파되고, 꿀벌이 받은 온기는 꽃이나 꽃의 씨앗에게 전파돼.”

    “영양분에도 관여를 하나?”

    “모른다.”

    “몰라?”

    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박은 더는 묻지 않았다. 더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야만신의 안배처럼 보이는데…….’

    음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딱히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리송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소환 주문이 있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대체 뭘 노리고 이런 걸 만든 거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야만신의 진의를 가늠하기가 난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꿀만 만드는 데 특화된 까마귀 소환 주문이라니? 그걸 통해서 대체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전혀 모를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확실하다. 내가 알 수 없는 뭔가를 이를 통해서 이루려고 한다.’

    그게 뭔지 산박은 알 수 없었다. 단서가 너무 없었다. 그러나 의심스러워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야만신의 송곳니가 자신의 목에 놓일 수도 있었다.

    ‘과민 반응?’

    세상의 불확실성 속에서 살다 보면 그런 생각조차도 해야 했다. 그만큼 야만신은 무슨 짓이든 가능한 자리에 있었고, 산박을 주시하고 미리 선택한 존재였다. 초월자에 대한 두려움이 산박의 마음을 적셨다.

    ‘오히려 크게 키워 봐야겠다. 그럼 윤곽이 드러나겠지.’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면, 크게 하면 보일지도 몰랐다.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제대로 해봐. 목조 건물을 여기 이 자리에 지어줄 테니까.”

    “정말인가?”

    백까마귀가 깜짝 놀라며 좋아했다.

    거대한 벌꿀 오두막이 건축될 조짐을 보였다.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살 집을 짓는 것보다 단순하고 돈도 덜 들었다.

    ‘이장이랑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예산을 주고 건설해 달라고 부탁할 심산이었다. 앞으로 2일 후면 던전에 들어가야만 했다.

    이 사정을 노갑비 이장에게 했더니 그가 호탕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웬 떡이냐!’

    돈 들어오는 것이 적은 것이 시골이었다. 그런 곳의 이장에게 목돈 주며 양봉 작업 할 오두막을 건설해 달라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 다섯이면 충분하다. 사람도 살 곳이 아닌데!’

    거기에 시골 살면서 목공도 할 줄 모르면 나가 죽어야 했다.

    “잘해 드리겠습니다.”

    안 하던 존댓말까지 하며 냉큼 고개를 숙이고 극진히 모셨다.

    “일단은 천만 원만 보내겠습니다. 던전 갔다 와서 나머지 협의를 진행합시다.”

    “예!”

    이장이 냉큼 소리쳤다. 실로 기분이 좋았다. 마음 같아서는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마을 사람 다섯 명? 그들에게 하청을 줘도 나쁘지 않았다. 돈은 산박의 것이지만 이를 배분하는 것은 이장의 몫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마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의 이장은 별 힘이 없는 존재여서 더더욱 산박의 돈을 원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지만 괜찮다.’

    에메랄드 사업 덕분에 일일 매출금만 해도 대단한 수준으로 올랐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냥 잔잔벼락 로열티 값만 해도 상당했다. 이제 땅값이 크지 않은 곳에 오두막 하나 올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 * *

    견동수는 30분이나 일찍 지하철역 앞에 도착했다. 그는 싱글벙글했다. 옥시모론 기업에 취직했기 때문이었다.

    ‘하청 지옥 구간, 2레벨 던전! 거기를 회사에 속한 상태로 임하게 되다니.’

    매번 던전 갈 때마다 사람 한 명 죽고 세 명이 중상을 입는 곳이 2레벨 던전의 하청 지옥이었다. 산박은 손쉽게 2레벨 던전을 클리어했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죽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수익 때문에 하청을 써야만 하는 배경 탓에 2레벨 하청 팀은 죽기 바쁘다. 그런데도 그런 관행이 유지되는 이유는 ‘하청 팀’이라는 독립 팀의 사망은 오퍼를 낸 갑질 팀에게는 기록으로 남지 않아서였다.

    잔혹한 시스템이었다. 오로지 기업을 위한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잡초는 잡초에 불과했다. 하나로 뭉쳐도 잡초 더미밖에 될 수 없었다.

    ‘흐흐.’

    그렇기에 마법사 견동수는 절로 웃음을 지었다. 실로 고소한 웃음이었다.

    ‘나는 그 지옥에서 벗어났다, 이 말이야.’

    그냥 걸어도 어깨가 들썩거렸다. 남들은 지옥에서 버둥거릴 때 혼자만 쏙 빠져나온 기분은 짜릿했다.

    하지만 이는 견동수가 획득한 승리가 아니었다. 이시은은 평범한 후방 직업 한 명, 김연정을 괴롭힐 사제류 한 명을 원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후방 직업 마법사, 거기에 특출나지 않은 견동수는 시은의 눈에 쏙 들어왔다. 그 덕에 그가 있었다. 요행이었지만 어쨌든 세상의 7할은 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지급 물품까지 공짜라니.’

    그저 회사에서 던전 공략 할 때 지급해 주는 물품. 던전을 공략하고 남은 물량은 다시 회사에 반납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난 후방 직업인데도 무기를 받았지.’

    잔잔벼락의 환도다. 1레벨 던전 무기이지만 광범위하게 쓰이는 물품이기도 했다. 벼락 덕분에 마법적 대처가 안 되어 있거나 마법 방어력이 낮은 상대에게 쓰기 좋았다.

    특히 2레벨 던전은 물량 전투가 주류였다. 후방 직업에게 있어서 칼질 안 하고 근접한 상대를 보내버릴 수 있는 잔잔벼락의 환도는 사용하기 좋은 던전 아이템이었다.

    ‘구하기 어려운 걸 공짜로? 이런 회사, 두 번은 없다.’

    그 기회를 잡았기에 여기서 뼈를 묻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게 그였다. 물론 그건 다른 신입 사원도 마찬가지였다.

    “어? 동수 씨? 진짜 빨리 나오셨네요.”

    “하하, 지유 씨도 진짜 일찍 나왔는데, 어이쿠! 이런? 제가 1등입니다만?”

    “아……. 예…….”

    찐따 같은 동수의 행동에 사제 임지유의 표정이 싹 변했다.

    “아…….”

    그 모습에 동수가 절로 움찔했다. 나름대로 농담을 던진 것인데 제대로 망해 버려서였다.

    “…….”

    “…….”

    두 사람은 조용히 다른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 팀장의 팀에 소속된 신입 중 마지막으로 검사 주하승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신입 사원끼리 만든 톡방을 통해서 자신이 꼴찌라는 소리를 들어서였다.

    “제가 꼴찌가 아닌데요? 뭡니까?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와, 진짜, 커피까지 사 들고 왔는데.”

    숨을 고르며 그가 불평했다. 이에 지유가 냉큼 커피를 하나 잡았다.

    “헤헤. 신입 사원 중에서는 꼴찌죠.”

    “아, 진짜. 같은 동기끼리, 와. 이거 진짜 다 사기꾼들이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승은 지유의 애교스러운 웃음에 껌뻑 넘어간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썸을 타는 것 같은 모습에 찐따 견동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새끼들이 던전 공략 와서 썸을 타?’

    자신 또한 지유를 어떻게 해보려고 농담을 쑥 집어넣은 일은 어느새 기억도 못 하고 욕을 날렸다.

    차례차례로 도착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던전에 대해서 떠들어 댔다. 그러다가 딱 대화가 중단되었는데, 이시은이 도착했을 때였다.

    그녀가 내려서 차 뒷좌석을 열었다. 하위 언데드 스켈레톤이 검은 로브로 칭칭 몸을 만 채 모습을 드러냈다. 포스코 타워의 지원을 받은 시체라서 한 푼도 돈을 쓰지 않았다.

    “현대인 시신은 비싸다던데. 팀장님 돈이 은근히 많은가 봐요.”

    “듀얼 클래스예요. 희귀하죠.”

    그 말에 김각두가 진실을 말해줬다. 마녀와 네크로맨서. 두 가지 직업을 지닌 이시은은 툭 튀어나온 존재였다. 마녀를 통해서 돈을 벌고, 네크로맨서를 통해서 이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신입 사원들이 너도나도 고개를 숙이며 웃음꽃을 피웠다. 억지로 만들어낸 웃음이 아니었다. 이들은 진심으로 시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웃음을 내비쳤다.

    시은 또한 환하게 웃었다. 남자들은 절로 사타구니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섹시함이 돋보이는 이시은이 걸어오면서 웃기만 했는데도 침을 삼켰다.

    그 모습에 임지유는 질투심이 확 일어나는 걸 느꼈다. 똑같은 여자인데도 태도가 너무 달라서였다. 심지어 견동수는 어버버거리면서 고개를 그냥 계속 숙이고 있었다. 미친놈이었다.

    ‘티라도 내지 않든가. 진짜 이 팀장님도 마음씨가 좋아.’

    저런 걸 보고도 그냥 넘어가고 있다니.

    “사장님은 아직 안 오셨나 봐요?”

    “예!”

    “어딘지는 물어봤나요?”

    “아직요.”

    “물어보세요.”

    시은이 오자마자 잡담이 뚝 끊겼다. 포스코 타워에서도 한자리를 꿰차서 회사 내에서 그녀를 어렵게 대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이는 이시은이 일부러 노린 것이기도 했다. 자신과 친해지려고 하면서 선을 넘고 훅 들어온 여자를 죽이면서 자신을 노출시킨 일을 또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 더 반복하게 되면 용의자가 될 수 있었다.

    이시은에게 있어서 대한민국의 형사들은 미친놈들이었다. 야근 수당도 최대로 당겨써서 돈이 더 안 나오는데도 잠복근무하는 정신이 나간 것들이었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게 신념을 지닌 강력계 형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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