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4화 (214/270)
  • 214화

    산박에게 사업 하나 안겨주고 관계를 증진시키려 했던 시은은 순식간에 태도를 돌변하여 그에게 주어질 돈을 걷어 갔다. 그만큼 산박의 성장세가 두려워서였다. 동시에 이시은에게는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인천 네크로맨서를 통해서 나도 날 키워야 해.’

    산박은 혼자서 알아서 척척 하지만 그건 따라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알아서 강을 타고 백두산 천지로 향하는 꼴이다.

    ‘답안지가 있어도 문제다.’

    문제의 답안지를 산박이 그냥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이시은 또한 우월한 커리어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답안지를 따라가다가는 다리가 찢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포스코 타워에 투자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최소한 급이라도 같아야 해.’

    서충호와 비교할 수 있는 이시은. 그런 타이틀은 얻고 싶지 않았다. 태산박과 비교할 수 있는 이시은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그가 나에게 더 관심을 줄 거야.’

    죽여야 한다는 생각과 그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이 서로 부딪치고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음에도 이시은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은 이시은의 생애에 있어서 처음 찾아온 핑크빛 마음이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없었다.

    그녀가 포스코 타워의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한 네크로맨서가 다가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은 적패님.”

    “여기요.”

    시은은 자연스럽게 작은 슈트 케이스를 넘겼다. 이를 흑패 네크로맨서가 양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웃.”

    무게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들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놀란 것뿐이었다.

    “7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예.”

    시은은 상투적으로 답변해 줬다. 원래라면 권력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하찮은 버러지에게는 대답조차도 무의미했고 비생산적이었지만 그녀는 사회에서 살아남은 괴물, 이 정도의 소셜 스킬은 탑재하고 있었다.

    포스코 타워은 크게 하층, 중층, 상층으로 구분되며 그중에 7층은 하층에 속하는 구역이었다.

    [경중요 납품처]

    그곳이 시은이 향한 곳이었다.

    그녀를 돕기 위해서 나온 흑패 네크로맨서는 당연히 황패 빙췌몽이 내어준 사람이었다.

    ‘이름 정도는 들어 봐야겠지.’

    앞으로 포스코 타워에서 무언가 일을 할 때 자주 보게 될 사람이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며 시은이 물었다.

    “경황이 없어서 이름도 안 물어봤네요.”

    “아! 예! 저는 빙영하라고 합니다.”

    “응? 혹시 빙췌몽 님과 무슨 사이신가요?”

    “혈족입니다만,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닙니다.”

    빙영하가 급히 시은의 오해를 풀었다. 나중에 들킬 오해는 바로바로 푸는 게 중요했다.

    ‘사회생활을 제법 해본 사람이네. 써먹기 좋겠어.’

    시은은 그런 반응에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말하지 않은 오해를 본인이 직접 푸는 모습만으로도 눈치가 있다는 소리니까. 눈치 있는 놈은 살면서 잘 고꾸라지지도 않고 한자리에 끈덕지게 있기 마련이었다.

    “잘 부탁해요.”

    “예! 영광입니다!”

    빙영하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들은 게 있어서 그런지 경계심을 풀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평범하게 생긴 빙영하가 시은을 흘깃 쳐다봤다.

    ‘예쁘다.’

    거기에 대한민국에서는 보기 힘든 색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보기만 해도 퇴폐미가 느껴졌다.

    ‘이런 미녀가 적패 네크로맨서 사이에서 최대의 이슈를 만들고 있다니.’

    미녀에 결과물까지 내놓는 여자.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서리 해골의 경우 처음에는 하위 언데드에 사용됐지만 어제는 중위 언데드에 더 적합하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한기는 강하면 강할수록 큰 효과를 발휘하는데 하위 언데드에는 많이 담을 수 없는 힘을 중위 언데드에는 담을 수 있어서였다.

    ‘그것만 해도 자리는 보장되어 있는데…….’

    보통 하나만 딱 해도 자신의 자리는 보전하기 마련이었다. 꾸준히 효과를 보는 네크로맨서가 있어서 시은은 가만히 있어도 실적이 보장되었다.

    ‘거기에 이어서 블랙 바 기술이라니.’

    네크로맨서는 블랙 바를 만들 수 없었다. 은둔하며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마녀’들만이 만들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마녀 숫자는 대단히 적다.’

    애초에 대량 생산과 전혀 맞지 않는 게 마녀들이었다. 그 덕에 주문이 깃들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블랙 바를 대량으로 확보할 수가 없었다. 보통 시중에 팔리는 블랙 바는 대부분 주문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했는데, 자연스럽게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다.’

    네크로맨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하위 언데드의 나약함이었다. 3레벨 던전부터는 기회가 되면 시체란 시체는 모두 배낭이나 밧줄로 칭칭 감아서 포스코 타워로 가지고 와 냉동 보관 할 정도로 시체의 수준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 네크로맨서들이었다.

    중위 언데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포스코 타워에 있어서 하위 언데드의 나약함은 건들 수 없으며 바꿀 수도 없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블랙 스컬이 이를 해결할 수 있었다. 즉, 저레벨 네크로맨서를 위해서 비싸지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내어주던 평범한 현대인의 시신이 이제는 1인분을 할 수 있는 하위 언데드가 될 수 있었다.

    ‘눈이 돌아갈 만하지.’

    그녀가 연락을 해두면 흑패 네크로맨서가 하나 심부름꾼으로 배정되도록 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처우였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재미를 본 것은 당연히 황패 네크로맨서 빙췌몽이었다. 이시은을 보좌하는 네크로맨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름부터 빙씨다.

    거기에 이번 블랙 바와 관련된 모든 사업에는 빙췌몽의 파벌이 꽉꽉 들어찼다. 이시은부터 빙췌몽 라인인데 그런 사업에 다른 놈이 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빙췌몽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몫을 주장했다. ‘라인’을 타지 않고 지지부진한 지원을 받았다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음을 논하였고, 백 명의 백패 네크로맨서들에 의하여 인정되었다.

    7층 경중요 납품처는 포스코 타워에 물건을 납품하려는 네크로맨서들로 북적였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은 모두 네크로맨서로 보이지 않았다. 모두 한 달 월급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고개 숙이는 것이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서비스는 너무나도 높은 수준을 요구해서였다.

    “블랙 바 스무 개 확인했습니다.”

    직원은 능숙하게 블랙 바에 태그를 붙이고 상자에 따로 담았다. 그리고 상자를 밀봉하고 그대로 이시은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한 개당 15만 원. 한 번에 3백만 원의 돈이 시은의 손에 쥐어졌다. 던전에 안 가고 블랙 바만 만들 시 한 달에 9천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빙영하가 시은에게 말했다.

    “물품은 9층에 있는 블랙 스컬 제작소로 향할 겁니다. 거기서 한번 구경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안내해 주세요.”

    “예.”

    빙영하가 직원에게 바로 블랙 바를 올려 달라고 했고, 직원은 이를 충실하게 이행했다. 이미 위에서부터 행동 방침이 내려온 상태였다. 첫날이기에 가능한 배려였고, 이시은의 뒷배가 대단했기도 대단했다.

    7층에 들어서자마자 경호원이 보였다.

    “사원증은 항상 패용 부탁합니다.”

    그는 빙영하에게 주의를 줬다. 회사 보안은 서로가 지켜야 했는데, 그중에서도 기본 중의 기본이 사원증 패용이었다.

    “죄송합니다.”

    보안 요원 따위가 건방지게 지적을 한다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법했지만 포스코 타워는 아니었다. 보안을 강하게 유지해야 했다. 지배층도 네크로맨서였기에 보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빙영하는 사죄하며 서둘러 사원증을 꺼냈다. 보안 요원은 이를 확인하고 두 사람을 들여보내 줬다. 들어서자마자 연구원 중 하나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시은 적패님 맞으시죠?”

    “네.”

    “안내를 맡은 이용허 연구원입니다. 흑패 네크로맨서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내부는 탁 트여 있었고, 다양한 테이블이 존재했다. 시은은 그중에 한 곳에 안내를 받았다.

    “현재 저희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당연히 블랙 스컬의 신체 능력입니다.”

    “원거리 주문은 따로 생각 안 하고 계신가요?”

    시은이 질문했다. 하위 언데드에게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커진다면? 어떤 힘을 넣고 싶을까. 당연히 공격 주문이었다.

    하위 언데드는 잘 파괴되기도 잘 파괴되었기에 궁수처럼 운용하는 게 베스트였다. 그건 시은이 가장 잘 알았다. 드루이드의 소환물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명백하게 하자가 많은 게 하위 언데드였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원거리 타격 주문을 생각했다.

    ‘블랙 바는 줬지만, 거기에 뭘 넣을지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맡았다.’

    포스코 타워는 이시은에게 블랙 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시간이 많이 없어서였다. 그 대신에 10만 원 받을 것을 15만 원을 받기로 했다.

    성과를 확실하게 내고, 하위 언데드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발전시키려는 이시은에게 적은 돈을 줄 리가 만무했다. 라인을 타면 없던 돈도 그냥 주는데 성과까지 내는 이시은에게 돈을 안 줄 리가 없었고, 적은 돈을 주는 것도 우스웠다. 포스코 타워라는 이름값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사실 포스코 타워 입장에서는 블랙 바에 대한 모든 걸 이시은이 결정하게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시은이 던전에 가지 않을 리가 없고 포스코 타워에도 돈이 썩어 넘치기에 가능한 타협이었다.

    그 뒤에 이시은은 11층에 내려 자신에게 주어진 카드 키를 들어 올렸다. 복도를 걸어서 자신에게 배정된 문을 카드 키로 잠금 해제 하고 들어섰다.

    약 50평에 달하는 개인 작업실이었다. 텅텅 비어 있었는데, 유독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 공부를 위한 책상과 책장이 있었다. 책장에는 딱 한 권의 책이 덩그러니 있었다. 당연히 해골학이었다.

    1레벨 네크로맨서도 10레벨에 도달한 네크로맨서도 평생을 공부해도 아직도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 해골학이었다. 수준이 올라가고 배움이 깊어졌을 때, 완벽하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독하면 또 모르는 것이 생기고 더 알고 싶은 것이 튀어나오는 것이 해골학이었다.

    네크로맨시의 정수가 바로 스켈레톤이며 이를 통달한 존재는 국제적으로 봐도 존재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대가라 부르는 자조차도 해골학을 끝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소리를 하면 동종 업계 사람에게 욕먹기 일쑤였다.

    시간을 정해 놓고 한 시간 바짝 해골학을 탐독한 시은은 이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자다운 걸 놓자. 주변을 속이기 좋아 보여. 바(bar)를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거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특히 불러올 사람도 있다. 도서관에서 친해진 윤예진 적패 네크로맨서다. 그녀보다 네 살이나 많았고 결혼도 안 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무엇보다 적패 네크로맨서라는 게 중요했다.

    ‘미리 닦아놓은 길을 걸어가기 좋지.’

    자신이 할 일이 많은 것이 윤예진이라서 친구 먹기도 좋았다.

    시은은 바로 빙영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라고 내려준 사람이기도 했다.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답변은 곧바로 왔다. 동시에 다른 곳에서도 메시지가 찾아왔다.

    ‘태 사장님이다!’

    시은은 서둘러 메시지를 확인했다.

    [던전 공략 3일 남았습니다. 확인하세요.]

    ‘에이…….’

    [확인했어요.]

    시은이 빠르게 답장을 날렸다. 그녀의 팀도 냉큼 대답했다. 워낙 불규칙적인 일정의 회사라서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 현장직이고, 던전 사용자들이었다.

    [동수 씨? 대답하세요. 동수 씨? 마법사 견동수 씨?]

    [예! 지금 마력 공장에 잠시 들러서 이제 확인했습니다!]

    * * *

    봄이 찾아왔지만 아직도 쌀쌀했다. 그런 상황에서 산박은 허둥지둥 와촌리를 찾았다. 할 일이 바짝 다가왔는데도 가야만 했다. 이장 노갑비가 그를 서둘러 찾아서였다.

    “무슨 일입니까?”

    “왜 이렇게 늦습니까! 빨리 와보소!! 까마귀 때문에 큰일이야, 큰일!”

    “예?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진짜 그런 까마귀는 생전에 본 적이 없어! 그 녀석이 마을 회관을 점령했다니까!”

    산박은 노 이장의 뒤를 허둥지둥 따라갔다.

    ‘백까마귀가 마을 회관을 점령해? 이게 무슨 소리야?’

    산박이 온다는 걸 들었는지 와촌리에 있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나이대가 40대 이상이었고,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았다.

    회관에는 척 봐도 곳곳에 꿀벌들이 잔뜩 날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확인했는지 공격적이라서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산골이라 날씨도 쌀쌀한데 무슨 꿀벌이 저렇게 활동적으로 돌아다니는 거지?’

    황당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