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2화 (212/270)

212화

열다섯 명 중 단 다섯 명만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면접에 임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긴장한 기색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한 명씩 안으로 들어가는 건 요즘 면접 트렌드가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진행했다. 트렌디한 면접 기법을 옥시모론 기업에 집어넣을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 결정에 한몫했다.

달칵.

면접을 보고 복도로 나왔어도 표정이 극명하게 갈리지는 않았다. 한국인 특유의 포커페이스다. 무뚝뚝함이 비처럼 뚝뚝 떨어지지만 말 걸면 웃기 시작하는 게 그들이었다.

이처럼 하나같이 무표정으로 밖으로 나섰다. 누구는 전사인데 너무 덩치가 컸고 누구는 궁수인데도 너무 왜소했다.

세 번째 면접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척 봐도 무인(武人)이다. 근육 돼지와도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제법 무도를 배웠다면 가장 싸우고 싶지 않은 스타일이기도 했다. 178cm는 때에 따라서는 아쉽다고 할 만한 키였지만 그 정도면 상위 10% 안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주하승이라고 합니다!”

“앉으세요.”

주하승의 목소리는 제법 컸다. 일부러 크게 내는 게 아니라 원래 목소리가 큰 것 같았다. 충호의 눈이 날카롭게 주하승의 몸을 훑었다.

“프로필에는 체중이 85kg이라고 되어 있는데 원래 그랬습니까?”

“아뇨. 제 키가 어중간해서 체중이라도 키웠습니다.”

그 말에 충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다.’

90kg이라면 ‘과잉 체중’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85kg은 힘도 스피드도 얻은 모습이었다.

또 자신의 장점을 하나라도 만들려는 노력이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현대인들은 근육 돼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머리가 커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몸을 지닌 이들이 아니라면 선택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주하승은 던전 클리어에 대한 마음이 제법 있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특별히 자신의 단점을 꼽는다면요?”

시은이 질문했다.

“싸우면 잘 흥분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적들의 시선을 붙잡아둘 수 있고, 아직 한 번도 중상을 입은 적이 없습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 생각합니다.”

단점을 말하며 바로 이를 가리는 변호를 했다. 자연스러웠다. 시은은 무리해서 한마디를 덧붙이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하자. 서 팀장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 눈치니까.’

무엇보다 현장에서 함께 뛸 수 있었다. 인사권이 있는 현장직이라 압박 면접은 썩 좋은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장점은 뭡니까?”

반면 충호는 시은의 질문을 의식했는지 장점을 물었다.

“싸우는 거. 그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오.”

이를 굳이 이 자리에서 확인할 생각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물론 그 외의 지표를 통해서 어림짐작할 수 있기도 했다.

“병원 신세를 많이 안 지셨네요? 하나같이 경상이고…….”

“예! 싸움은 자신 있습니다!”

척 봐도 혈기가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었지만, 어차피 수준 이상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특히 2레벨 던전은 ‘물량’이 콘셉트다. 잘 싸우는 놈이 제대로 날뛸 수 있는 곳이었다.

‘3레벨은 본인 하기 나름이지.’

산박은 프로필 종이를 팔락이며 시선을 그곳에 뒀다.

직업은 검사. 나쁘지 않다. 물론 범용성이 뛰어난 전사에 비하면 조금 낮은 직업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몸을 다루는 기술을 터득 가능해서 거기서 거기라는 반응도 있는 직업이었다.

또한 주하승이 사용하는 대검류는 장병기 중에서도 파괴적이다. 평범한 롱 소드도 체인 메일을 갈라 버리는 위력인데 그것보다 몇 배는 길고 무거운 대검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뒤로도 면접은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산박은 관전만 할 뿐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이시은은 두 명이라도 가져갔기에 얌전했다. 충호 또한 세 명의 인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사내 정치보다는 면접자들에게 집중했다. 그 덕에 열다섯 명의 면접자들이 순식간에 면접장을 거쳐 갔다.

그중에서 다섯 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3일이 지난 이후에 환영회가 열렸다. 검사 주하승, 전사 전재환, 공성 궁수 성보성, 마법사 견동수, 사제 임지유. 그들은 가장 먼저 사장과 악수를 했다.

“잘 부탁합니다. 저도 던전 사용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함께 던전에 들어갈 겁니다.”

“예!”

모두 우렁차게 대답했다.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 시스템이 깊게 뿌리박힌 2레벨 던전에서 구르고 구른 자들이었다. 사회생활을 못할 수가 없었다.

“여기는 서충호 팀장. 면접에서 봤을 겁니다.”

산박은 직접 이들을 끌고 다니며 옥시모론의 기존 직원들과 인사시키고, 소개해 줬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서 팀장은 벌써 한잔 마셨는지 취기가 올라 있었다. 작지만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었다. 산박을 제외하면 전방 여덟 명에 후방 세 명이었다. 이걸 승리라고 부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덕에 이번 환영회는 승리를 기리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충호는 특히나 전방 직업들에게는 포옹까지 하면서 등을 팡팡 두드렸다. 이를 지켜보는 같은 동기이며 후방 직업 두 명은 괜히 소외감까지 느꼈다.

산박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망했다. 어차피 전방과 후방은 자연스럽게 갈리게 된다. 야구의 선수 출신과 비선수 출신처럼 알 수 없는 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무리해서 줄이고 허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나누어져야 사장이 편했다.

뭉쳐져 있는 직원들? 생각만 해도 두렵다. 머리가 핑핑 아파져 온다. 사람이 모이면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고 권력이 된다. 두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가진 자는, 지배자는 그런 걸 막으려고 애를 쓰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괜히 파벌이라고 안 하는 척하는 충호는 실로 우스웠다. 어떤 측면에서 보냐에 따라서 파벌이 생기는 것은 산박이 원하는 일이 될 수 있었다. 복잡한 사회였다.

그 속에서 훈훈하게 환영회가 이어졌다. 이로써 옥시모론 기업은 총 열두 명의 2레벨 던전 사용자를 보유하게 되었다. 다섯 명의 신입은 신입이라고 해도 당장 2레벨 던전에 들어서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다. 그만큼 경력 있는 신입이었다. 다섯 명 전원이 그러했다.

회사의 철칙. 아니, 기본. 경력 있는 신입을 뽑는 건 회사에 큰 이득이었다. 수습 기간이라고 해서 딱히 일을 못하는 게 아니기에 직원도 좋아하고, 확실한 카드라서 사장도 인력 구매에 대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취직의 완성이었다. 회사도, 구성원도, 취직자도, 사장도 행복해질 수 있는 완벽한 인선이었다. 단 하나, 경력 없는 신입만 패배하여 계단을 뒹굴며 추락할 뿐이었다.

“서 팀장, 이 팀장과 미팅 일정 잡아 두세요. 길 주임.”

“예!”

길강합이 냉큼 소리를 냈다. 그는 아래에 사원 한 명을 두고 경리도 하나 두고 있는 사무실의 으뜸이었다. 그 권력은 또 다른 재미였다. 위 선임이라고 해봐야 산박인데 사무실에 자주 오지도 않았다.

무림을 아래에 두는 천마의 마음. 그런 걸 누릴 수 있었다. 사무실 천마가 바로 길강합 주임이었다. 그의 권력은 오로지 사무실에서만 100% 뻗칠 수 있었다.

단번에 강합이 부하 직원을 시켜서 명령을 내렸고, 순식간에 서 팀장과 이 팀장이 다음 날 예정된 시간에 방문했다.

“이렇게 두 사람을 모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2레벨 던전 공략에 대해서 말할 게 있어서입니다.”

“어떤 겁니까.”

모두 기대하는 눈치였다. 무려 다섯 명에 달하는 2레벨 던전 사용자를 영입했다.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 한 걸음이 아니었다. 무려 다섯 명. 다섯 걸음이나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런데 그 이후에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날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은 산박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투 톱 체제로 나아갈 겁니다.”

“팀장이 나눠서 2레벨 던전을 공략한다는 말씀이시죠?”

시은이 되물었고, 산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는 몇 번의 실험을 해놓은 상태였다.

가장 첫 번째 시험은 제법 과거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1레벨 팀, 오버시어 팀이 있었다. 이를 통해서 복수의 팀을 경험한 것이 산박이었다.

그 이후, 서충호는 산박 없이도 2레벨 던전을 무리 없이 클리어해 냈다. 산박은 이제 확실하게 두 개의 2레벨 팀을 진행할 생각을 지녔다. 수익성을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그럼 사장님은 어떻게 됩니까?”

충호가 물었다.

“전 번갈아 가면서 할 생각입니다.”

총인원 열두 명 중 한 명에 해당하는 산박이 유동적으로 움직인다면…….

“한 팀은 여섯 명, 다른 한 팀은 다섯 명이군요.”

“외부 인사 네 명 혹은 세 명을 집어넣어야 합니다.”

결국 하청이었다.

“옥시모론 기업도 하청을 씁니까?”

“예. 이미 용용 형제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네 명, 다섯 명이 되는 것뿐입니다. 저희가 처음에 갔던 것처럼 막장은 아닐 겁니다.”

“그야 그렇겠습니다만…….”

전력이 뚝 떨어지는 셈이다. 특히 산박이 참전을 안 하는 던전 팀은 상당한 피로감을 느껴야 했다. 원래는 그게 정상이었지만, 이미 산박이라는 드루이드 덕택을 톡톡히 본 입장에서는 아쉬웠다.

“다섯 명은 서 팀장이 가려내세요.”

“제가 다섯 명입니까?”

“네. 저레벨 던전은 전방 직업이 득이 많죠.”

주문 소모 없이 적을 죽일 수 있어서였다.

소환수를 다루고 갈래 불꽃을 현질을 통한 아티팩트로 사용하는 산박이 워낙 존재감이 커서 그렇지 보통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한계가 존재했다.

주문이면 주문, 소환이면 소환, 백병전이면 백병전이다. 시은만 봐도 가진 공격 주문이 변변찮았다. 마녀의 주문은 돈 벌기에 좋고, 네크로맨서는 언데드 소환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와 같았기에 보통은 주문을 다 써도 적이 몰려와서 칼을 뽑아야 하는 경우가 반드시 생긴다. 그 덕에 서충호 같은 전방 직업이 저레벨 던전에서 주목받았다.

“전 불만 없어요.”

시은이 빙긋 웃었다. 여섯 명에 네 명. 총 열 명의 풀 인원으로 2레벨 던전을 공략하는 일이다.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최근 장비를 바꿀 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다. 2레벨 던전에서는 범위 주문이 필수적이었다.

“팀원은요?”

“유동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

산박이 이어서 말했다.

“매주궤 팀장이라고, 1레벨 전담 팀장이 있다는 걸 아실 거예요.”

“예.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요. 나쁘지 않게 하고 있다고…….”

시은이 말을 받아줬다.

“2레벨도 전담 팀을 생각하세요?”

“그래야 제대로 된 던전 사용자를 회사 차원에서 계단식으로 키울 수 있으니까요.”

산박이 자신의 목표 중 하나를 보여줬다. 1레벨 던전 사용자 중 그럴듯한 인재를 영입해서 확실하고 안전하게 계단식으로 키운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전담 팀의 유무였다.

“하지만 사장님, 지금도 1레벨 전담 팀은 적자잖아요.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은데요? 여기에 2레벨 전담 팀까지……. 회사의 적자,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생각은 하고 계세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유지는 확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럴 재목만 가려내세요. 2레벨에 잔류하고 싶어 하는 직원이 있으면 저한테 보고해 주시고요.”

“예.”

반대는 없었다. 하청의 하청의 하청으로 첫 2레벨 던전 공략을 마쳤던 것이 그들이다. 이 정도면 양반이었다.

“자! 그럼 순번을 만들죠.”

산박이 일을 진행해 나갔다. 투 톱 체제를 통해서 옥시모론 던전 기업의 수익성을 올림과 동시에 빠르게 자신의 아래에 둔 사람들을 레벨 업 시키고! 자신 또한 닥치는 대로 포악하게 레벨 업을 할 생각을 가졌다.

“일정에 차이를 좀 둔다면 제가 연속해서 던전을 공략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산박이 툭 던졌다.

“그게 되세요?”

시은이 순수하게 놀랐다. 정말 미쳐버린 성장 속도였다. 감히 따라갈 엄두조차 못 냈다.

“소환수만 사용할 생각이지만요.”

그래도 땡큐였다. 서충호는 당연히 일정에 차이를 두고 싶어 했고 시은은 일정을 최대한 똑같이 하고 싶어 했지만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박과 충호가 던전 공략 일정을 다르게 하려고 해서였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어.’

거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산박의 전력은 강하다. 던전 공략률을 단번에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이를 반대하면 팀 공략의 위험을 자초하는 꼴이었고, 산박의 성장을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내키지 않지만 시은은 겉으로는 대단히 좋아했다.

“사장님! 최고예요!! 자! 박수!”

짝짝짝!

시은이 오버를 떨기 시작하자 충호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일어섰다.

‘어디서 먼저 던전 공략을 하려고!’

“사장님! 사장님! 우리 사장님!”

“아! 하지 마세요. 전 가족 같은 회사 싫어합니다. 이런 아부 안 통해요.”

산박이 이를 말리자 두 사람이 겨우 진정했다. 시은은 흥분하는 걸 멈추면서도 눈 속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내 손을 넘어선다면…….’

거침없이 날아가 버린다면, 그 전에 그를 죽여야만 했다. 시은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으로 ‘애정’을 가진 사람이 바로 태산박이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