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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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벨 던전을 사장 없이 클리어하게 된 옥시모론 기업 내부에는 서충호와 김각두를 필두로 한 서각파라 불리는 파벌이 만들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1레벨 전담 팀에 속해있던 오축균(창술가)과 예흠(용 기사)이 사표를 던졌다. 길강합은 이들을 마주 보며 실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창술가 오축균은 전담 팀에 남든 2레벨 던전을 노리든 나쁘지 않은 자였다.
‘5레벨 전까지는 전방 직업 중에 평범한 놈들도 우대받는데……. 얘가 이렇게 나가네.’
장병기는 3레벨 던전부터 전사들의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좁은 지형이 제법 나오는 던전이라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다. 3레벨부터는 중형급 괴물이 밥 먹듯이 꼬박꼬박 나오기 때문. 그들을 저지하려면 긴 무기는 필수였다. 그렇기에 오축균 창술사는 3레벨 던전부터 빛을 볼 수 있다고 봐야 했다. C급도 B급이 될 수 있었다.
물론 B급은 아무리 날고 기고 발악해도 A급에 닿는 비율이 20%에 불과했다. 인력 시장에서 20%의 확률은 끔찍하다. 철저한 재능의 차이가 그곳에 있었다. 공부도 재능인 것처럼, 80:20의 법칙은 이곳에서도 통용되고 있었다.
“축균 씨, 한 번 더 생각해 보세요. 옥시모론 기업, 보셨잖습니까. 2레벨 던전 클리어한 것만으로도 성과금 50만 원이 주어집니다.”
“일회성이잖습니까.”
“그래도 1레벨 전담 팀에 들어오는 월급을 봐보세요. 다른 곳보다 50%는 더 쳐줍니다. 이런 곳 없어요.”
“제 생각은 확고합니다.”
“2레벨 성과금 클리어당 3만 원 지급으로 결정 났고 3개월마다 몰아서 주는 계획서가 이 팀장을 통해서 회사 내규로 정해질 텐데도 그냥 가시겠다고요?”
“예.”
오축균은 확고했다. 자신이 던전 기업을 만들면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만큼 태산박이 옥시모론 기업 내에서 하는 호구 같은 짓들은 대단했다. 오직 회사를 키우려고 하는 사장이 보여주는 포텐셜이 오축균과 예흠을 홀리게 하였다.
반면 강합은 산박이 다른 사업을 통해 돈을 끌어와서 여기에 풀고 있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이들을 붙잡고 싶었다.
‘곧 값이 오르는 땅을 팔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서류상으로 판단된 두 사람의 실력은 C급(오축균), C-급(예흠)이었다. 예흠의 경우에는 용 기사라서 더더욱 그러했다.
“하루만 더 생각해 주세요.”
“휴, 그럼 내일에는 그냥 문자로만 통보할게요. 됐죠?”
“그래도…….”
“사무직이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어? 사람 짜증 나게. 떠난다는 사람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기 전에 치고 들어오면 몰라도 다 떠난 버스 정류장에서 소리 지르면 버스가 돌아와?”
“뭣? 지금 뭐라고…….”
“가자!”
오축균이 일어섰다. 예흠도 서둘러 따라서 일어났다.
‘개새끼들이.’
결국 두 사람을 보낸 강합이 인상을 썼다. 절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던전 기업에 속하게 되면서 나름 던전 사용자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그였다. 너튜브를 통해서 광고를 끄면서 꾸준히 공부했다. 사무직은 관리직으로도 올라설 수 있다고 여겨서였다. 그게 현재 강합의 비전이고 꿈이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오축균과 예흠은 버러지다.’
오축균은 3레벨은 되어야 빛을 본다. 레이드 던전에 가야 그나마 ‘보통’은 할 수 있다. 예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용도 못 타는 용 기사다. 평생 하자가 있는 클래스였다.
반면 길강합의 클래스는 ‘전사’. 범용적인 직업이기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확실하게 활약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괴물과 싸우기에는 PTSD가 심하지만 그래도다. 그저 ‘운’이 안 좋아서 표적이 되었던 강합이었다. 재능만큼은 꿇릴 게 없었다.
덩치 때문에 B급이었지만 PTSD를 앓으면서 헬스를 시작해서 체중도 올라왔다. 그런 그에게 저딴 식으로 말하는 것부터 그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허벅지의 환각 고통만 아니었어도…….’
“에휴…….”
그는 마음을 지피고 있는 분노를 삭였다. 이제 더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상념이었다.
어쨌든 강합은 산박에게 이를 전했다. 그들의 퇴사는 막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공백이 생기지만, 1레벨 전담 팀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1레벨 던전 사용자는 많았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장님.”
“시건방진 녀석들이네요. 다음부터 그런 놈들은 그냥 당장 사표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매주궤 씨에게 1레벨 전담 팀 현황 보고서 이번 달 내로 해달라고 해주시고…….”
“예. 예.”
“2레벨 던전 사용자 채용 모집하겠습니다. 다섯 명 뽑을 건데, 최종 면접에는 열다섯 명만 오게 하세요.”
“아, 예!”
“면접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팀장 두 명과 함께 협업하시고요. 최종 면접에는 저도 참석하는데, 주된 건 강합 씨와 팀장들이 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말일에 사무실 직원도 한 명 더 뽑으세요.”
“예!”
“아, 그 여경리랑은 잘되면 정직원으로 전환해도 되는데요.”
“…헤어졌습니다. 이번 주까지 인수인계하고 회사를 떠납니다.”
“…힘내세요. 세상의 반이 여자잖아요.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산박이 위로해 줬지만 강합은 눈시울을 붉혔다.
부모님은 자신을 일찍 버렸고, 친척 집에서도 돈 때문에 싸우고 쫓겨났다. 탕만과는 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혈혈단신이었던 강합이었다.
그에게 찾아온 핑크빛 만남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단칸방에서 동거할 때만 해도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순식간에 차를 바꿔서 가버렸다.
“새로운 경리는 구했어요?”
“네. 문자로 보냈습니다.”
“아, 죄송해요. 이제 기억나네요. 여자죠?”
“이제 사내 연애는 안 할 생각입니다…….”
“힘내세요.”
“예. 전 괜찮습니다!”
강합이 호기 있게 외쳤다.
곧 이 소식이 팀장들에게로 옮겨졌다. 수준도 낮고 던전에서 가장 활약다운 활약을 못 했던 매주궤도 ‘1레벨 전담 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동시에 들을 수 있었다. 자기 분수에 맞게 살면 그보다 많은 권한을 쥘 수 있는 법이었다.
물론, 곧바로 답장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보지도 않았다.
“아, 진짜……. 폭탄 카드 한 번만 나오면 이겼는데……. 뭐가 잃어버린 도시야. 모험 모드 하다가 탈모 오겠네.”
그는 일찌감치 출세를 포기하고 놀기 바쁜 한량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던전 갔다 오고는 바로 PC방에 달려가는 남자가 바로 매주궤였다.
반면 충호와 시은의 태도는 확연히 주궤 팀장과는 달랐다. 충호는 먼저 탕만과 각두와 술 한잔을 하면서 이 정보를 풀었다. 대책 회의였다. 전사라고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이모! 여기 소주랑 전통주도 주세요! 오늘은 어디 거예요?”
“광주 전통주!”
“오우. 그쪽 건 좀 독하다던데.”
“괜찮아. 광주 전통주 유명하잖아! 여기 레몬도 서비스야.”
“웬일이래요? 뭔 일 있으세요?”
“몰랐어? 광주 전통주 화재 나서 어떻게든 돕자고 난리도 아니잖아.”
“아, 그래요?”
“거기 술 끓이는 소나무가 있는 산만 해도 다섯 개가 탔다고 하더라고. 돈으로 치면 수십억이 날아갔다더라.”
“무슨 소나무 탄 거로 그렇게 손해가 나요?”
“몰라! 뉴스에서 그러더라!”
“아, 예.”
충호의 단골집이라 제법 이야기가 길어졌다. 고개를 돌린 충호는 씨익 웃으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이 팀장도 움직일 거야. 나중을 위해서 후방 직업을 최대한 가져가려고 하겠지. 우린 그걸 최소화하는 게 중요해.”
“사장님의 의견부터 묻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야 심기를 안 건드리죠.”
“너무 소극적인 거 아닙니까?”
각두의 말에 탕만이 의문을 표했다. 시작부터 태 사장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인원 배분을 묻다니……. 솔직히 가오도 없고 멋도 없고, 낯 깎이는 간신배나 할 짓이었다.
“저희는 5레벨 전까지는 이득 보는 입장 아닙니까? 고꾸라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심기를 거슬렀다가 큰코다치는 것보다는 사장님의 의견을 토대로 욕심을 부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각두가 긴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식이었다. 그 이상한 기류에 충호가 손사래를 쳤다.
“왜들 이래? 파벌 속 파벌이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너도나도 고개를 숙였다.
“벌써 이러면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 이럴 거면 그냥 없던 거로 하고. 나도 나 혼자 살아남는 거 어려운 거 아냐. 나중에 이 팀장한테 밀리겠지만, 난 상관없다고.”
“아닙니다.”
“군대야? 자꾸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한참을 드잡이질 하며 충호는 이런 싸움은 반드시 내부에서 없어야 한다고 거듭 말을 했다. 그제야 두 사람이 진심으로 뉘우친 표정을 지었다.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난리를 쳤으니 그럴 만했다.
질색한 표정을 숨기고 뉘우친 표정을 가진 것만 해도 탕만과 각두는 사회생활 한 티가 났다. 학교에서 많이 혼난 사람들은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가지는 ‘죄송한 표정’. 그걸 두 사람이 내비쳤다. 이에 충호는 만족하며 술잔을 따라주고, 자신의 술잔에도 술을 따랐다. 그리고 서로 건배를 했다.
논의 끝에 전방 직업답게 현재 던전 내에서의 그들의 영향력은 후방 직업인 이시은보다 높았으므로 차근차근, 돌다리 건너듯이 나아가기로 했다.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을 노렸다.
반면 이시은은 이 소식을 인천 포스코 타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강합의 문자를 받은 것.
[안녕하십니까, 이 팀장님. 저 강합 주임입니다. 혹시 통화가 됩니까?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태 사장님께서 2레벨 던전 사용자를 5명이나 뽑는데 그 과정에 대해 협업을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
중층에 속하는 ‘적패 도서실’ 중 한 곳에서 지식을 탐닉하던 시은은 5층에 있는 로비까지 내려와 강합에게 전화를 걸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들었다. 강합과의 전화를 끊은 그녀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이건 기회야.’
현재 A급이든 B급이든 이시은의 마음에 드는 후방 직업은 단 한 명뿐이었다. 바로 드루이드 태산박이다. 당연히 카운트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이번 면접은 자신이 원하는 후방 인물을 아래에 둘 수 있는 기회였다. 그것도 2레벨 던전 사용자를 바로 취업시킨다고 하니 의욕이 생겼다.
‘마녀와 네크로맨서 직업은 당연히 제외.’
네크로맨서의 경우에는 의외일 수 있다.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네크로맨서를 끼워 넣는다면 옥시모론 내에서의 활동에서 재미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
‘포스코 타워의 개입이 싫다.’
안 그래도 황패 네크로맨서의 라인을 탄 이시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옥시모론에 포스코 타워의 입김을 받는 네크로맨서가 들어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평범하게 마법사가 베스트지.’
워낙 인구수가 많아서 단체도 많은 게 마법사였다. 가장 무난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시은이 잔혹하게 웃었다.
‘사제도 좋지. 김연정이 있으니까.’
남자의 등 뒤에서 피를 토하면서 그 바짓가랑이를 놓지 못하는 김연정은 시은이 봤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그냥 죽어 버리면 좋을 텐데, 왜 그렇게 살려고 하는 거지?’
그저 남에게 피해가 될 뿐이다. 아, 물론 의료업계의 수익을 올려주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게 도움 주는 삶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사랑’이라고 볼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이며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은에게 있어서 사랑은 중요한 테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산박의 암살 행위를 보면서 산박에게 애착이 생겼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김연정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그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런 그녀를 괴롭히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삐져나왔다. 시은은 자신의 붉은 입술을 손으로 가렸다. 하지만 반월을 그리는 눈만은 가릴 수 없었다.
‘사제로 하자. 그녀를 볼 때마다 짜릿한 기분이 들 거야.’
비교당하는 삶, 그리고 패배하는 삶을 김연정에게 선사해 주는 것이다. 그건 엄청난 권력이었으며, 볼 때마다 시은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줄 것이었다. 최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였던 그녀였다.
‘상처가 난 채로 버둥거리는 벌레를 보는 건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지.’
간식처럼 먹을 수 있는 볼거리였다.
“실례합니다?”
이시은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전화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로비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있었고, 생각에 빠지며 고개가 숙여진 상태였다.
“네. 무슨 일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너무 예쁘셔서요.”
이마가 좁아서 머리를 확 뒤로 넘긴, 제법 생긴 남자였다. 눈썹은 반영구를 해서 형태가 확실했다. 눈썹만으로도 남자의 외모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피부와 머리 스타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는 남친으로서 나쁘지 않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
‘죽이고 싶네.’
“저기요? 전화번호라도 어떻게 받을 수 없을까요?”
“죄송해요. 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시은이 한숨을 진하게 내뱉자 남자는 쉽게 물러났다. 다만 그녀의 새하얀 목부터 가슴을 지나 쏙 들어간 복부와 운동한 티가 나는 허벅지까지 훑는 건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