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이시은 팀장이 날 공격했다.’
서충호 팀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견제도 결국은 공격이다. 그로 인해서 피해가 생겼으니까. 응당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했다.
“본래라면 나도 던전 키를 통해서 단번에 기술과 주문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이 팀장의 입김 때문에 내쳐졌다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2레벨 던전을 사장님 없이 클리어해 냈잖아?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탁.
충호가 잔을 내렸다.
“그건 태 사장님의 수완이 좋아서 자연스러운 것뿐이다.”
“아하.”
그제야 김각두의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즉, 시은은 충호를 견제하는 데 충분히 성공했고, 그 여파를 최대한 느끼지 않게 산박이 뒤처리를 했다.
“주객전도나 다름없지. 팀장이 싸놓은 똥을 치우는 사장님이라니…….”
충호는 태산박이 없음에도 그를 높였다. 김각두는 태산박을 대단히 여기고 있었다. 요구하는 것은 적고, 주는 것은 많았다. 능히 믿음을 주기에 좋은 상대가 태산박이었다. 즉, 호구다.
그러나 김각두가 있는 것으로 A급 전사가 두 명이 되었다. 이는 고무적이다. 용용 형제는 외부 인력이니 제외하는 게 옳았다.
“쯧.”
각두는 구질구질한 냄새를 맡았는지 혀를 찼다.
김연정을 지키기 위해서 약자로 살아왔기에 그는 어디를 가서든지 치였다. 사회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법이었다. 누군가에게 스테이크는 매일 먹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것이었다. 고로, 각두만큼 세상 풍파를 제대로 맞은 던전 사용자도 없었다. 그런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게 이런 거였다.
‘이 팀장과 서 팀장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회사란 곳은 현대 정치의 주 무대나 다름없었다. 전쟁이 아닌 경제로 싸우는 것이 보편화한 세계였다.
물론 ‘본격적’으로 부딪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서로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했다. 2레벨 던전 공략이 수월하게 진행되면서 서서히 파벌이 생기기 시작했다.
똘똘 뭉쳐도 툭 튀어나오는 잉여 권력.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게 파벌이었다. 하나가 될 수 있는 세력의 양은 정해져 있었고, 이제는 그 속에서 색이 달라지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세요?”
꽁꽁 언 우예스를 가져오며 김연정이 물었다. 남자 두 명은 어색하게 웃기 바빴다. 충호는 우예스로 시선을 돌렸다.
“어렸을 때 참 좋아하던 것이었는데. 오랜만에 먹네요.”
“나이대에 따라 먹고 싶어 하는 게 다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럼 그때 조금 더 먹을걸.”
웃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우예스는 초코파이류 중에서도 싸기로 유명했다.
김연정이 다시 자리를 비웠다. 김각두가 눈치를 줘서였다.
“서로 죽이 잘 맞네. 결혼은 왜 안 한 거야?”
“한쪽이 죽어도 싫다고 해서.”
“아…….”
단맛에 조금 무신경하게 질문한 충호가 입을 다물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김연정은 분명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생을 살아갈 각두를 생각하고 있었다.
“동거는 용케도 허락해 줬네?”
“저혈압이라서, 컨디션이 안 좋으면 기절할 수 있거든.”
“이제 2레벨인데도 그러면… 못해도 5레벨은 되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응. 하지만 그 길은 어렵겠지.”
후방 직업인데 체력에 능력치를 찍어야 하는 김연정을 누가 데려가겠는가. 그렇기에 김각두는 지금 이 옥시모론 기업에서 최대한 자리를 잡고 싶어 했다. 그가 봤을 때, 산박은 더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투자에 미친 사장이라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부진은 있을지언정 몰락할 수 없었다. 이미 보여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돈이 벌린다면 그게 사장의 배 속이 아니라 사원들에게로 향한다. 이는 기업의 미래로 이어진다.
충호는 적당히 불안감을 조성한 뒤에 다시 입을 놀렸다.
“이 팀장의 뒤에는 포스코 타워가 있다. 세력 두 곳에 몸을 담고 있지. 그래서 날이 갈수록 그녀의 영향력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충호가 술을 들이켰다. 그는 그걸 이번에 확실하게 깨달았다. 무려 1억짜리 던전 키다. 배에 기름 낀 부르주아 새끼들이나 1억짜리 소비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충호는 목돈조차 없었다. 그의 사업 감각은 0에 가까웠고, 산박이 준 인삼 사업조차도 강합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1억 임프 던전 키를 거침없이 태산박에게 조공한 이시은의 면모는 실로 위협적이었다.
‘빌어먹을 돈.’
포스코 타워의 재력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들에게 1억은 껌값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황패 네크로맨서의 라인까지 탄 것이 이시은이었다. 그렇기에 던전 키를 받았다. 파벌에 들어온 축하 선물인 셈이다. 시은이 던전 키를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는 충호는 철석같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정말 빌어먹을 돈이다. 보니까 경매로만 살 수 있다더라. 당연히 회원제고. 회원도 그냥 회원은 안 되고 경매에서 사용한 금액이 일정 이상인 사람에게만 구매권이 있대. 진짜 있는 놈들만 가져가는 아이템이라는 거지.”
던전 키에 대해서 제법 조사한 충호의 말을 각두는 가만히 들었다.
“각두, 5레벨 던전을 넘어가면 전방 직업은 더는 큰 대우를 받지 못해.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영향력을 기업 내에서 확보해야 해.”
“미안하지만, 난 파벌 싸움으로 땀 흘리기 싫어.”
그 말에 충호가 거듭 이야기했다.
“그렇게 태평하게 있으면 안 돼. 넌 특히나 파벌에 속해야 한다고.”
“내가?”
“연정 씨를 생각해야지. 아무리 네가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하자가 있으니까.”
“…….”
“중립국이 왜 중립국이냐? 그만큼 뭔가 있으니까 중립국을 선포할 수 있는 거야.”
“후우…….”
답답한 마음에 김각두가 전통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옥시모론 던전 기업은 계속 성장한다. 이런 회사, 몇 없다. 2레벨이면 누구보다도 잘 알잖아?”
2레벨 던전은 하청 파티다. 수익성 때문이다. 물건의 값은 구매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기업이 담합하면 별수가 없었다. 그래서 2레벨 던전은 하청의 난교 파티로 가득했다.
수많은 던전 기업을 전전한 각두에게 옥시모론 기업은 특별했다. 얼마나 특별하냐면 제의가 오자마자 바로 수락했을 정도였다. 사회인으로서 부끄럽지만, 냅다 받아먹은 격이었다. 그만큼 2레벨 던전 기업의 상태는 메롱이었다.
“전방 직업들이 빠르게 뭉치면 뭉칠수록 더 좋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그건 그렇지만……. 태 사장님한테 말은 해놨어?”
“법으로 하지 말라고 지정해 뒀어? 야구도 파벌 싸움이 심한데, 그걸 다 막냐고. 아니잖아? 그리고 이 팀장을 지금부터 견제하지 않으면? 포스코 타워에서 먹는 족족 여기로 가져와서 풀 텐데.”
그 말에 각두의 마음이 크게 기울었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말이 달랐다. 강대한 적은 빠른 행동을 옮기게 하기 마련이었다. 이시은은 후방 직업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강력한 상대였다. 승승장구가 약속된 엘리트다. 자신과는 정반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에 2레벨 던전 클리어했다고 50만 원 뿌리는 거 봤지? 너도 봤잖아! 똑똑한 놈들, 실력 있는 놈들은 벌 떼처럼 달려들 거야. 아직 덜 알려졌을 뿐이야.”
“하긴, 1레벨 전담 팀 월급만 봐도…….”
월급만 봐도 약간 적자. 소비 아이템까지 쓰기에 그냥 적자 행진을 이어 나가는 게 1레벨 전담 팀이었다. 그걸 왜 유지하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결코 평범하게 중소기업에서 끝날 회사가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가 뭉쳐야 한다고, 지금 당장! 누구보다도 빨리!”
충호는 김연정으로 각두를 불안하게 만들고 이시은으로 압박했다.
‘그뿐만 아니지.’
성장하는 기업 속에서 인재는 계속 유입되며 경쟁이 심화한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요했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건 엿이나 처먹어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차별은 시작됐다.
‘이 모든 걸 버티면 사람 새끼가 아니지.’
당장 충호만 해도 벌벌 떨면서 서둘러 각두를 찾았다. 그가 봤을 때 자신과 비슷한 전투 센스를 지닌 게 성기사 김각두였다. 그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김각두를 움직일 수 있어 보였다.
“좋아. 해보자고.”
각두가 결국 호기를 내비쳤다. 서충호와 김각두의 파벌, 서각파의 탄생이었다.
“연정 씨를 통해서 후방 직업의 분위기를 읽는 것도 중요해.”
“2레벨 던전 수준에서는 후방 직업의 숫자가 적다. 하지만 레이드부터는 확실하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
* * *
해 질 녘의 주홍빛 속에서 산박과 서아는 서로 책이 든 종이 가방을 교환했다. 서아는 산박에게 던전 경제학과 관련된 교양서적을 선물했고 산박은 서아에게 여행책을 선물해 줬다. 그녀가 집에 갇혀 있다고 말했기에 교부문고에서 데이트를 하자고 했을 때부터 미리 생각해둔 것이었다.
“저녁 먹으러 가요.”
가게는 이미 정해뒀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지만 웨이팅 하기는 싫고, 맛있게 먹기는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약이 생명이었다. 물론 예약을 안 받는 맛집도 많았다. 반대로 받는 곳도 많다.
“정말 괜찮으시죠?”
“왜요? 저는 뭐 풀코스 요리만 먹는 줄 알아요? 제가 무슨 외국인이에요? 저도 된장찌개 알아요.”
“코리안 yangnyeom치킨 좋아해요, 외국인 씨?”
“흐흣.”
서로 농담을 하며 숯불소갈비집으로 향했다. 서면곳간이라 불리는 킹스타 맛집이었다. 대로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벌써 웨이팅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1층에 줄을 서있었다. 1층은 전부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을 볼 수 있었고, 내부는 주방도 오픈형이었다. 평범한 고깃집처럼 보였다.
산박은 서아를 2층으로 안내했다.
“1층이 아니라요?”
“네. 룸은 2층에 있거든요.”
룸 예약비로 3만 원을 내야 했다. 4인실부터 있었기에 4인실로 들어섰다. 회식하는 사람들로 2층도 북적북적 인기척이 느껴졌다. 룸이라고 해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식사하며 서아는 산박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교토에 한번 같이 가요. 2개월 뒤, 첫째 주 아니면 두 번째 주에요.”
모호한 일정이었다. 정확하게 잡혀있지 않은 계획을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그녀 또한 자의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봄 여행은 아니죠?”
“네. 일하러 가는 거예요. 원래는 태 사장님을 데려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흥미를 느낀 듯해요. 아무래도 부산 은행과 태 사장님은 체급 차이가 심하잖아요?”
산박이 수긍했다. 아무래도 잔잔벼락 사업 때문에 교토에 가는 듯했다.
“잔잔벼락의 무기를 일본에 유통하려고요. 대충 숙지하셔야 할 건 여기 USB에 담았어요. 나중에 확인하세요. 그렇게 많은 정보도 아니에요. 실수만 하지 않으면 돼요.”
산박이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스틸 재질의 USB를 받아 들었다.
“근데 일본에 잔잔벼락 유통을 맡기셔도 됩니까?”
통수를 많이 하는 민족이 일본이었다. 바닥이 타서 연기가 매캐하게 피어올라도 뚜껑으로 그냥 덮어 버리는 민족이었다.
“일본에 유통한다고 했지 일본인한테 유통하게 한다고는 말 안 했는데요?”
“예? 그럼?”
“피는 좀 섞였을지 몰라도 한국 출신이에요. 테이바치 가문이죠. 부산과는 교류가 잦아요. 관광 도시니까요.”
“테이바치요?”
산박이 머리를 굴렸다. 일본식 발음은 또 다른 외국어였다.
“굳이 깊게 아실 필요도 없어요. 알아 봤자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요. 그냥 임진왜란 때 활약한 가문 정도로만 생각하세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아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옷 사러 가요. 한창 봄일 때 일본 가는데, 제대로 입고 가야죠.”
“양복으로는 안 됩니까? 중요한 자리 같은데.”
“그쪽에서도 교토의 아름다움을 겸사겸사 느끼라며 가볍게 입고 와달라고 했어요.”
“진심이 아닌 거 아닐까요?”
“너무 일본식으로 생각하지 마시라니까요.”
거듭된 말에 산박은 결국 모든 걸 그녀에게 밀어줬다.
“예.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덩치 큰 놈과 덩치 큰 놈의 만남이었다. 산박은 들러리에 불과하고, 호기심 때문에 얻은 기회에 불과했다.
‘일본인가.’
산박은 절로 생각이 깊어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의 눈이 서아에게로 향했다. 육즙이 넘쳐나는 소갈비에 생와사비를 딱 놓고 상추에 싸먹던 그녀가 이내 그 눈길을 느끼고 산박을 가만히 바라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을 내렸다.
“크흠. 술은 못 마시죠?”
“한 잔은 할 수 있어요.”
“그럼 저희의 사업이 첫 결실을 본 것에 대해서 축배나 들까요?”
“전 그것보다는 다른 이유로 축배를 들고 싶은데요?”
“어떤 거요? 다르게 축하할 만한 일이 있었나요?”
“데이트 성공요. 이제 데이트라고 해도 괜찮잖아요? 저만 그래요?”
“…좋아요.”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볼이 달아올랐다. 산박이 벨을 눌러서 직원을 불러 막걸리를 주문했다.
방짜 유기로 만든 주전자와 막걸리 그릇이 두 개 들어왔다. 서로 그릇에 막걸리를 채우고 부딪쳤다.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짠!”
“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