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206/270)
  • 206화

    고아원은 싼 인력을 줄 수 있었다. 그것도 안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장 노인이 아니었다면 자급자족 밭을 가는 데에도 월급 65만 원을 주지 않아도 괜찮았지.’

    그저 먹는 걸로 노동력을 얻는 게 가능했다.

    얼핏 보면 정말로 재미난 사업거리 같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 세상은 무관심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었다. 고아들을 상업적으로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 따위, 있지도 않았다. 그게 바로 ‘무관심’이라는 것이었다. 애초에 돈을 쥐여줄 거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평생 사회의 밑바닥에서 ‘발판’으로 남게 놔둘 뿐이다. 그들에게 자원을 줄 이유는 없었다.

    그 상황에서 산박은 악의적인 실험을 시행했다. 자급자족 밭이 그러했다. 뭐,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장 노인의 개입으로 월 65만 원을 까먹는 곳이 되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안 주고 있었다. 가지 사업의 성공 덕분이었다.

    가지를 통해서 수익성을 확보한 고아원의 농사는 산박을 만족하게 하였다. 그 만족은 곧 다음 단계의 사업을 의미했다.

    ‘무엇보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기업이 만들어진다.’

    심지어 기업이 아님에도 여러 사람과 충분히 협력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고아원이 지니는 특별한 속성이었다. 모호하지만 끈끈한 관계였다. 가족도 없고, 친지도 없고, 남은 건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타인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관계에 집착한다. 그 관계를 위해서는 어떤 낭비도 쉽게 할 수 있었다.

    피가 이어져 있지 않음에도 남매로 쭉 50년을 넘게 함께하는 고아들도 여럿 있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같은 고아원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관계는 피보다 짙다고 할 수 있었다. 고로, 기업의 형태가 아님에도 기업의 형태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건 크다.’

    염전 사업에 카운트되지 않는 노예들처럼 무궁무진하게 재미를 볼 수 있었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인력을 돌릴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산박이 악마인 건 아니었다. 확실한 수익성은 보장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방법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으니까, 옥시모론 기업의 품에 안는다.’

    중요한 건 기반도 없는 산박에게 있어서 이번 기회는 기반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었다.

    ‘최소한의 세력.’

    그 시작이 바로 고아원의 포도 사업이었다. 그들은 중추가 되고 핵심이 되어서 산박의 지지대 하나가 될 것이었다. 고작 지지대 하나다. 하지만 그런 지지대 하나가 많은 것을 바꾸게 했다.

    ‘던전 외적인 사업이라는 것도 장점이지.’

    단 하나만 사업하는 사업가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여러 개를 다루는 사업가는 무궁무진한 저력을 지닐 수 있었다. 하나가 망해도 다른 것을 통해서 그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버티고 버텨서 흑자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그렇기에 기반이 중요했다.

    포도 사업의 수익성은 꾸준히 산박에게 위안을 줄 것이었다. 그리고 던전 경제와도 관계가 없었다. 부모님이 노후가 준비된 것만으로도 자식의 부담은 확 줄어든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인데 그걸 안 할 산박이 아니었다.

    “포도 사업…….”

    다만 수녀님은 소극적이었다. 창업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을 걱정하게 하고 불안에 떨게 했다. 산박이 입에 침을 발랐다.

    “어려운 거 아닙니다. 이것저것 농사를 지어 봤으니 이제는 제대로 한번 해보셔야죠. 가죽 팔찌도 좀 만들어서 부업으로 삼는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말로는 통하지 않지. 중요한 건 실질적인 뒷받침이다.’

    농업을 해봤기에 새로운 농업 사업이 위험하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렇기에 산박은 보험을 끼워 넣었다. 바로 소가죽 팔찌에 대한 것이었다. 에메랄드 활력을 끼울 것은 반지 혹은 팔찌였지만 지금 이 순간 팔찌로 결정되었다.

    ‘나중에 장 노인에게 말하면 된다.’

    에메랄드 활력 기술은 오로지 산박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갑질은 쉽다. 동시에 그렇게 많이 생산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이를 가능케 했다. 쥐어지는 돈이 적은 게 소가죽 팔찌였다.

    ‘하루에 열다섯 개밖에 못 만드니까.’

    하나를 만드는 데 2천 원을 준다고 해도 한 달에 90만 원이었다. 사실 2천 원을 주는 것도 사치였다. 450개의 소가죽 팔찌를 만드는 대가로는 그 정도도 과분했다. 부업이라고 하기에는 들어오는 돈이 제법이었다.

    장 노인으로서는 껌값이다. 그런 걸로 각을 세우거나 노이즈를 만들어서 얻을 게 없었다. 동시에 고아원에게는 매력적이다.

    ‘거부할 수 없지.’

    고아원은 자급자족 및 가지를 팔기 시작하면서 실질적인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고아들도 데려온 상태였다. 욕심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건 굉장히 좋네요.”

    수녀님은 바로 소가죽 팔찌를 만들고 싶어 했다. 천연 소가죽이라도 자투리를 쓰면 원가 절감을 크게 할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바느질 따위도 일일이 직접 손으로 하며 돈 쓰는 일을 최대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 포도 사업도 해주세요. 돈은 어차피 제가 투자할 겁니다.”

    “밭을 더 만들어 주신다면야……. 아이들도 좋아할 겁니다.”

    “아뇨. 아이들 말고, 독립한 사람 중에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을 쓸 생각입니다. 한꺼번에 과도하게 사업 확장은 안 할 겁니다. 팔리지 않으니까요.”

    고아원에서 나와서 성인이 된 사람 중에도 농부의 꿈을 키우는 고아가 제법 있었다. 그리고 쓰지 않는 땅은 부동 지구에 얼마든지 있었다.

    “제대로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추천해 주세요. 그 사람과 포도 사업을 함께할 테니까요.”

    “네. 연락처를 전해 놓을게요.”

    그걸로 고아원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그다음에 산박은 송서아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동시에 영천으로 향했다. 포도 하면 영천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은퇴한 사람도 많았다. 농부의 은퇴는 고독하다. 그렇기에 쉽게 농부를 끌어올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움직일 이유는 충분하지.’

    장 노인? 부산? 그들의 손이 닿지 않은 자를 먼저 선점해서 데려와야 했다.

    ‘노지 재배의 깡패 중 하나가 포도지.’

    다년생 나무이기에 한해살이 작물보다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동시에 안전성도 높았다. 한 그루에 3천 개가 넘는 포도가 자라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포도였다. 농부가 열매가 아닌 포도나무를 생각한다면 능히 재미를 볼 수 있는 작물이었다. 물론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 힘들다.

    ‘아쉽게도, 사과 과수원 때문에 나무 성장 주문은 해줄 수 없다.’

    그렇기에 영천에서 은퇴한 포도 농부를 꾀어 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어차피 농부. 자신의 지식을 가르치고 돈도 준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옥시모론 던전 기업의 사장 태산박입니다. 은퇴하셨다지요? 자문료로 한 달에 50만 원 드리겠습니다. 주 3일, 한 달에 열두 번 총 12일만 와주시면 50만 원의 자문료를 드리겠습니다.”

    “월 50만 원? 한 달에 열두 번? 당연히 하겠습니다, 사장님!”

    늙어도 단번에 산박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식들은 모두 결혼하거나 따로 독립했지만 그런데도 부모는 자식 생각뿐이다. 자식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돈 버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기회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리고 늙은 몸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아르바이트였다. 무엇보다 가르친다는 행위는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였다. 혹자는 말한다. 선생이 아니라도 가르치는 삶을 살라고. 그건 실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행위였다.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친환경 포도를 재배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뭡니까?”

    질문을 하나 내기도 했다.

    “그거 모르면 포도 농부가 아닙니다. 갈반병과 애매미충입니다.”

    “다른 건요? 그거 두 개뿐입니까?”

    “친환경 하면 다른 건 그냥 나눠주는 겁니다. 공생이죠. 그리고 요즘 포도는 친환경 아니면 안 쳐줍니다.”

    “있기야 있던데요?”

    “싼 맛에 농약도 같이 먹는다면 말리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포도를 구매하는 구매자만큼 돈을 많이 쓰는 고객도 없습니다. 대한 제국의 소비자는 세계 제일입니다.”

    농부답게 잃어버린 나라 이름을 썼다.

    산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이었다. 나이는 60대에 이르렀고, 소일거리도 이제는 힘들어서 못 한다. 그렇게 포도 농부 목태효는 산박의 손으로 들어왔다.

    ‘실패할 수가 없지.’

    농지를 구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부동 지구에는 노는 땅이 많았다. 아무리 연기 장가(家)라고 해도 혈족이 농사를 짓는 경우는 잘 없었다. 드루이드 사과 과수원이야 수익성이 말도 안 되니까 혈족이 직접 관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땅을 구매하지는 못했다.

    “15년 장기 계약으로 하자고. 가격은 변동 없어.”

    ‘쯧.’

    산박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땅은, 토지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자원이었다. 도시 하나하나에 집중된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은 땅마다 가치가 천지 차이지만 세종시 부동 지구의 땅은 버려진 땅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직 관심을 못 받을 뿐, 충분히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유통을 생각하면 나도 여기 외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장 노인의 입김이 있는 부동 지구는 산박에게 형편 좋은 곳이었다. 또 세종시 사과 유통에 큰 입김을 발휘하고 있는 배둔국에게 포도 유통도 맡길 수 있었다. 여러모로 세종시의 소비력에 기댈 수 있었다.

    “그렇게 합시다. 다만, 임대료는 매년 말에 지급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그거야 마음대로 하게.”

    1천 평을 순식간에 임대했다. 종자부터 시작해서 묘목까지 거침없이 사들였고, 영천 출신인 목태효의 자문을 구하며 최소 네 번 포도를 수확하는 게 이번 해의 목표였다.

    포도 농부 세 명은 옥시모론에 입사했다. 신설된 농업부고, 사무실에 올 필요도 없었다. 이름은 이병근, 이층금, 이편갱으로 모두 남자였다. 여자들은 도시에서의 생활을 꿈꾸기에 고아원에서 독립하면 대부분 임대 아파트를 얻어서 도시로 향했다.

    ‘나에겐 형편 좋은 소리지.’

    여자 농부도 기술의 발전으로 많아지고 있지만 대규모로 농지를 경작하는 게 아닌 대한민국에서는 굉장히 보기 힘들었다.

    “그것보다 에메랄드 팔찌는? 조금 생각해 봤나?”

    “예. 에메랄드의 크기에 따라서 0, 1, 2로 나눌 생각입니다. 0은 건강 팔찌로도 팔 수 있고요.”

    산박의 말에 장 노인이 절로 웃음 지었다. 산박으로부터 받아서 유통만 시켜도 떨어지는 게 많았다.

    ‘좋은 기회야. 해외에 있는 혈족들과 점점 관계가 멀어져 가고 있었는데, 이걸로 돈독히 할 수 있겠어.’

    특히 56국에 있는 혈족들에게 큰 관계 증진을 일으킬 수 있었다. 억 사업인데 당연하다.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럼 이제 슬슬 수익률을 정해야 하지 않겠어?”

    “전 그냥 납품하는 사람인데, 많이 가질 수는 없죠.”

    “음……. 합성 보석 원가랑 인력 알지? 특히 유통 말이야…….”

    장 노인이 운을 뗐다. 어지간히 현금을 원하는 듯했다. 하지만 산박은 이미 마음을 정해두고 있었다. 그는 신경 써야 할 부분을 과감하게 쳐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고 맡겨야 했으며, 많은 수익률을 탐하면 안 됐다.

    그의 목적은 다양한 사업 확보. 돈이 목적이지만 든든한 파트너 그리고 돈과 사업으로 얽힌 관계를 원했다. 내가 죽으면 너도 보통 손해 보는 게 아니라는 식의 관계.

    ‘그리고 레벨 10.’

    “절 뭐로 보고 그렇게 구구절절 말씀하십니까? 전권 맡기겠습니다. 순수익의 3:7 합시다.”

    그 말에 장 노인이 호탕하게 웃었다. 실로 말귀를 알아먹는 친구였다. 버러지같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놈이 살아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코 버릴 수가 없었다.

    “이거 너무 도둑놈같이 가져가서 되겠어?”

    “그럼 포도 농장 임대료라도 줄여 주시죠.”

    “그래! 15년 임대료 제로! 그렇게 하자고. 거기에 5천 평까지 떼어주지! 어차피 놀리는 땅이라서 상관없어! 하하하!”

    그 말에 산박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포도주 사업도 곁들일 수 있겠어.’

    훗날의 일도 마련해 뒀다.

    * * *

    송서아의 연락이 왔다. 2주일간의 격리 끝에 겨우 본가에서 나와서 활동할 수 있게 된 듯했다. 물론 그녀의 경호원은 다섯 명으로 늘어나 버렸다. 세 명의 추가 경호원은 외부 경비 업체에서 구해 온 듯했다. 하나같이 실력이 월등하고, 세 명 모두 외국인이었다.

    [독서를 하다 보니, 산박 씨한테 책 선물 하고 싶어서요. 부산 서면역에서 봐요. 날짜는 산박 씨가 잡으세요.]

    부산에 있는 여러 개의 교부문고 중에서도 복잡스러운 곳이었다.

    [이번 주말에 봐요, 서아 씨.]

    서로 이모티콘을 날렸다. 산박은 부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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