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5/270)
  • 205화

    ‘50만 원.’

    1레벨 던전 전담 팀에 속한 정령 검사 김은섭은 부러워하는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봉투에 있는 걸 거침없이 꺼내서 손으로 세 알리고 있는 경박한 놈도 있었다. 모두 2레벨 던전을 클리어해서 얻은 ‘보너스’였다. 그저 사장이 속하지 않은 공략이 성공했다고 회사에서 의미 부여를 해서 주는 돈이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한 달 월급의 절반이나 다름없다.’

    큰돈이었다.

    ‘매주궤 팀장님 때문에 나도 1레벨 전담 팀이나 할까 싶었지만, 역시 2레벨 던전까지 노려볼까…….’

    정령 검사는 샤인이라는 독특한 힘을 다룬다. 특히 은섭은 바람과 관련된 정령술이 잘 걸리는 편이었다. 물량 상대로 나쁘지 않은 포텐셜을 벌써 보여주고 있었다. 1레벨보다는 되레 2레벨에 적합한 인재인 셈이었다.

    절로 동기가 부여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세속적인 장작불은 평범하게는 꺼질 수가 없었다. 결국 돈이 있어야 행복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안정되어 있다는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창술가 오축균과 용 기사 예흠 또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2레벨이 되는 걸 포기하고 전담 팀에 완전히 소속되어 있었다.

    “제기랄, 무슨 던전 클리어했다고 50만 원을 그냥 주냐?”

    “내 말이……. 돈이 썩어 넘치나 보네. 에휴! 나도 그냥 던전 기업 하나 차려볼까?”

    1레벨 전담 팀에서 나오는 수익은 90%가 그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돈을 받는 건 매주궤 팀장이었다.

    토템과 타투! 함정과 버프를 사용하는 주술사 매주궤는 1레벨 전담 팀을 맡기에 최적화된 인재였다. 그 덕에 그는 매달 2백만 원씩은 가져갔다. ‘판타지 쇼크’가 있기 전의 물가로 치면 연봉 5천만 원의 중산층인 셈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많은 돈이었고, 실제로 매주궤는 대부분의 돈을 저축하고 있었다. 일을 하다 보니 게임에 쓰는 돈도 적어지고 가챠보다는 다른 사람의 게임 방송부터 영화 보기 바쁘다. 그리고 아무리 그렇게 써도 50만 원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돈이 축적되자 여자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였다.

    물론 이는 다른 전탐 팀원은 모르는 사실이었다. 팀장의 월급은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1레벨 전담 팀은 월평균 130~150만 원만 받을 뿐이었다.

    이마저도 백만 원보다 많기에 나쁘지 않은 월급이었다. 최저 시급으로 받는 돈이 백만 원이지만, 전혀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게 현재 대한민국이었다.

    “해볼 만하다고 보는데. 1레벨 전담 팀만 굴려도 떨어지는 돈을 생각해봐. 이렇게 월급을 주는데 저렇게 돈을 펑펑 주고 있잖아. 난 저렇게 안 해. 돈 자랑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받는 돈이 아니었기에 오축균은 절로 불만을 토로했다. 동기가 아니라 열등감을 지니게 되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판단하는 게 인간이라는 족속이었다.

    짝짝짝!

    마지막 사람까지 봉투를 받자 박수 소리가 퍼져 나왔다.

    그렇게 끝이 나고, 2차 갈 사람을 보내고, 사장인 태산박은 빠져나와서 카페로 향했다. 10여 분 뒤에 시은이 산박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빨리 앉으세요.”

    산박은 그런 장난에 어울려 주지 않았다.

    “쳇. 요즘 너무 안 어울려 주시는 거 아니에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잖아요.”

    “그게 저와 시은 씨의 위치예요.”

    명확하게 선을 긋자 시은은 맞은편으로 향했다.

    또각. 또각.

    힘을 준 5cm의 하이힐이 소리를 냈다. 늘씬한 맨다리가 보였다. 보통은 스타킹을 신지만, 피부 하나는 철저하게 관리받고 점도 뺀 것이 이시은이었다. 남들은 투자하지 못할 돈을 피부과에 주는 만큼 스타킹을 신지 않아도 새하얀 다리를 뽐낼 수 있었다.

    하늘색의 밴딩 플레어 미니스커트가 흔들렸다. 속이 비쳐 보였는데, 속바지가 보였지만 그런데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여성스러워 보이는 데다 편의성까지 갖추고 있어서 최근에 안 입는 여성이 없는 옷이었다. 물론 좀 추운 날씨였지만 패션에 추위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 위에는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목에는 검은색 리본을 달았는데 리본의 줄 하나가 길쭉하게 내려와서 배꼽까지 닿아 포인트를 확실하게 주고 있었다.

    립스틱부터 시작해서 머리의 스타일링까지, 모두 청순해 보였지만 산박은 동요 하나 없었다.

    ‘고자는 아닌데. 역시 조건을 보는 걸까……. 오늘 햇빛 나오고 한 달 빠르게 봄 날씨라고 해서 기껏 입었는데.’

    남자 홀리는 룩이라고 인터넷에서도 핫했다. 특히 하늘색은 청순미를 돋보이기에 이제까지 섹시함으로 어필한 이시은 나름의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하늘색의 플레어 미니스커트와 색이 같은 하늘색 작은 백에서 이시은이 던전 아이템을 꺼냈다. 손바닥과 비슷한 크기의 직사각형의 무언가였고, 종이로 감싸져 있었다.

    “이겁니까?”

    “네.”

    산박이 종이를 벗겼다. 새까만 형태의 골드바라고 하기에 적합한 모습이었다.

    “블랙 바(Black bars)라는 마녀 기술이에요. 주문을 담을 수 있는 직사각형의 납작한 바죠. 물론 형태를 다르게 할 수도 있지만, 이게 가장 기본 형태라서 굳이 바꾸지는 않았어요.”

    “대단하군요.”

    산박이 단번에 가치를 알아봤다. 즉, 무엇이든지 주문을 부여하면 그만이었다.

    “따로 인챈트 주문이 아니라도 여기에 사용하면 흡수되는 식이에요.”

    공격 주문이 될 수 있었고, 방어 주문도 능히 가능했다. 주문 흡수 아이템인 셈이었다.

    “가히 만능이네요.”

    산박이 절로 돈 냄새를 맡았다.

    “2레벨 이하만 가능하지만요. 또 크기에 따라서 담을 수 있는 양이 달라지죠.”

    “그건 당연한 거고요. 그래도 2레벨 주문을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요.”

    “그 말씀을 들으니까 마음이 더 편안해지네요. 같이할 마음이 가득하시겠어요?”

    시은이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새하얀 치아가 확 드러났다. 산박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될 수 있다.’

    특히 블랙 바는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딱 1kg의 골드바와 비슷한 크기였다. 더 늘릴 수 있지만 이게 표준 규격인 셈이었다.

    ‘무궁무진.’

    “한번 해봅시다.”

    “지금 당장 계약서를 확! 네? 확! 써요?”

    산박이 웃음소리를 냈다. 장난임을 깨달아서였다. 시은도 쾌활하게 웃었다.

    “일단 가격부터 정해야죠. 세금은 뭐, 10% 동결이고요.”

    던전 경제를 키우기 위해서 대한민국이 취한 건 무조건 10% 세금. 그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더 받지 않고 필요도 없었다. 매우 단순한 세금 구조였다. 또한 전산상으로 잡히기 때문에 따로 신고할 필요도 없었다. 법조계에서 크게 반발했지만 정부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 덕에 누구나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거기에 산박까지 팔을 걷어붙인다? 성공하기 쉬웠다. 물론 큰 사업은 아니다. 하지만 사업 성공이 중요했다.

    “크기를 다르게 해서 1, 2레벨 던전에 팔 생각이에요.”

    “좋네요.”

    0레벨에는 팔 수 없었다. 블랙 바의 한계였고, 대부분의 아이템들이 그러했다. 산박의 에메랄드 활력 기술이 이상한 것이었다. 하향 조정이 된다고 해도 던전 제약을 벗어난 기술이었다. 실로 자연의 드루이드다운 면모였다.

    “1레벨은 5만 원은 되어야죠. 이렇게 작으니까요.”

    소비템이지만 그 정도 가격이면 보험처럼 들고 다닐 만했다.

    “2레벨은 10만 원으로 하려고요.”

    “나쁘지 않네요. 근데 처음에는 이런 것도 있다고 홍보를 해야 해요.”

    “30% 세일로 핫 딜에 진입시켜 놓을까요?”

    “오프라인 가게에도 내놓으면 나쁘지 않죠.”

    블랙 바는 작았기에 비싼 값에도 충분히 팔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적다는 게 문제였다. 홍보는 매우 중요했다. 솔직히 퀄리티가 없어도 홍보만 되면 큰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그만큼 홍보는 중요했지만, 거기에 큰돈을 쓰기에는 돈이 없었다. 고로 입소문을 통해야 했다. 입소문을 위해서라면 제법 싸게 내놓아야 했다.

    ‘그래도 다른 상품보다는 낫지.’

    “공격 주문을 넣는 게 좋겠네요.”

    손쉽게 적을 죽일 수 있는 걸 좋아하는 게 던전 사용자들이었다.

    시은과 산박은 세 시간을 회의하다가 이내 헤어졌다. 시은은 볼이 굉장히 달아오른 채로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볼게요.”

    “빨리 가세요.”

    역시 돈 얘기는 시간이 빨리 가고 관계도 돈독해진다.

    산박은 그녀를 배웅하고 어플을 통해서 자신의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벌써 1년 반이 흘렀나.’

    2레벨에 오르는 과정이 제법 길었다. 산박은 손쉽게 도달했지만 다른 팀원이 그러지 못해서 제법 정체했었다. 그 덕에 빚은 다 털었고, +된 잔고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3천만 원.’

    묵직한 목돈이다. 매달 들어오는 돈을 생각하면 되레 적게 느껴지는 돈이었다. 산박은 하나하나 자신이 현재 쥐고 있는 사업을 되새김질했다.

    ‘드루이드 사과 과수원 로열티.’

    현재, 매달 2백만 원씩 들어오고 있었다.

    ‘치료수 사업.’

    백만 원이었던 적이 있었지만 계속 하향세고 현재는 70만 원까지 뚝 떨어져 버렸다. 레벨 업을 해서 더 많이 만들고 있음에도 되레 순이익은 30만 원 줄었다. 수입산 치료수와 국내 치료수의 증가량 때문이었다. 이는 에메랄드 활력 사업으로 대체될 예정이었다.

    ‘생수 로열티.’

    물의 연어 대여료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이건 다른 팀원에게 내어줬다. 물의 묘목 인삼 사업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돈이 들어오고 있지 않았다. 충호의 부업이었다.

    ‘잔잔벼락 로열티.’

    아직 공장 부지를 찾는 중이라서 수익이 제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부산 은행이 그렇게 멍청한 곳은 아니었다. 산박은 계속해서 사업 파트너여야 했다. 아직 제조에 들어가기 전임에도 부산 은행은 산박과의 부드러운 관계를 위해 달마다 3백만 원씩을 그냥 산박의 통장에 욱여넣고 있었다.

    ‘무시무시하다.’

    개천에서 용 나 봤자 이미 용인 놈과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될 수밖에 없었다.

    ‘매달 5백만 원. 던전 수익 제외.’

    산박의 던전 수익금은 사실 회사로 다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하고 있어도 옥시모론 회사는 종종 산박이 돈을 부어줘야 했다. 그게 아니면 적자다. 그런 상황에서 3천만 원을 모은 것만 해도 산박의 알뜰살뜰함을 알 수 있었다.

    ‘또 투자한다.’

    그런데도 산박은 또 일을 벌일 생각을 가졌다. 한번 멈추면 그걸로 끝임을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굴려야 했다. 어느 순간이 오면 돈이 눈덩이처럼 쏟아질 것이었다. 그때, 산박은 또 하나의 힘을 가지게 된다. 금력이라는 힘이다. 그리고 금력은 돈을 쏟아부을수록 크게 돌아온다.

    ‘은행 대출은 하지 않는다. 날 노리는 놈들이 많으니까.’

    목적지는 부동 지구에 있는 고아원이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도 했다. 산박이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게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무뚝뚝해도 밭을 내어줘서 자급자족하게 할 정도로 신경 쓰는 곳이었다.

    산박은 당찼던 고아원 애 두 명을 떠올렸다. 아쉽지만 그들은 산박에게로 오지 않았다. 1년이 지났음에도 오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든 대충 살아 먹고 있으며, 딱히 던전 사용자가 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괴물 죽여서 밥 빌어먹는 데 로망은 없다. 로망은 10레벨이지만 솔직히 거기까지 도달하는 자는 드물었다.

    그는 다음 날 고아원을 방문했다. 하는 김에 밭도 구경했다. 이제는 제법 돈 되는 걸 재배하고 있었다. 더는 월급도 자신의 손으로 주지 않아도 되었다. 훌륭히 자립했다.

    “농업 노하우가 제대로 있으신가 보네요?”

    철심이 박힌 곳을 타고 올라온 고추들을 보며 산박이 수녀님에게 말했다.

    “네. 가지가 그렇게 돈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넓은 땅이라도 너끈히 수확할 수 있고요.”

    그러면서 수녀님은 고추 농사를 망친 경험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고추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해서 허리가 안 아픈 날이 없었다. 그래도 참고 열심히 수확한 걸 팔려고 경매에 내놨는데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농부의 고혈로 만든 중간 거래 산업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제법 농부다운 말을 했다.

    ‘말이야 쉽지.’

    중간 유통 카르텔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숫자가 많다. 대형 마트의 입점도 곤죽을 내버리는 무서운 양아치 깡패 새끼들이 바로 중간 유통 카르텔이었다.

    “이제 제법 살 만하니까, 사업 하나 하시죠.”

    “사업요?”

    “포도요, 포도. 그리고 부업으로 소가죽 팔찌도 어때요?”

    노지 재배의 강자, 포도. 부업으로 소가죽 팔찌도 제작한다면 고아원의 재정은 더욱 살찌워질 수 있었다. 그러면 다른 고아들을 또 불러들일 수 있고, 안정적인 농업 회사로 나아갈 수 있었다.

    ‘기업 농장.’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우뚝 설 수 있다. 100% 온라인 판매를 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싸면 사는 게 소비자고, 비싸도 맛있으면 사는 게 소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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