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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화 (202/270)
  • 202화

    * * *

    모독 성소에서의 전투는 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산박은 작은 대지 골렘을 통해서 시선을 끄는 한편 갈래 불꽃을 이용한 게릴라를 시작했다.

    ‘아무리 던전 사용자라도 체력은 제한되어 있다.’

    정신 또한 지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산박은 무리하지 않고 팀을 이끌었다. 치고 빠지기를 하는 셈이었다. 거기에서 희생된 소환수는 당연히 작은 대지 골렘과 불꽃두더지 파수병 카누토였다.

    “믿고 맡겨!”

    중갑옷을 입은 불꽃두더지 파수병은 입에서 불꽃을 내뿜을 수 있었기에 임프를 상대로 강력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 덕에 산박은 총 3일 동안 여섯 번의 전투를 했고, 모독 성소를 점령할 수 있었다.

    쿵쾅거리는 작은 대지 골렘 때문에 바닥이 푹 꺼진 곳도 존재했다. 그렇게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서걱!

    멀쩡한 임프 날개를 챙겼다.

    ‘이제 4일째.’

    게릴라는 치고 빠져야 하기에 장소의 이동, 거리의 이동이 발생한다. 자연스럽게 더욱 피곤하게 된다. 산박은 탕만을 확인했다. 눈에 생기가 없었다. 척 봐도 몸은 건강하지만 정신은 피폐해져 있었다.

    ‘이대로 끝내야겠군.’

    아쉬운 일이었다. 아직 아이템도 많이 안 썼고, 지하실에 대한 궁금증도 남았다.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탕만은 그나마 괜찮은 월급쟁이였고, 딱히 하자가 없었다.

    “이대로 빠지겠습니다.”

    “예.”

    “벌써요?”

    “벌써 4일째입니다. 더 욕심을 부릴 순 없죠.”

    탕만은 싱글벙글했고, 시은은 아쉬움을 느꼈다. 임프를 많이 죽이긴 했지만 그렇게 만족스럽게 챙기지 못했다. 6할은 산박이 죽였다. 그래도 반대는 하지 못했다. 탕만이 눈에 띄게 좋아해서였다.

    ‘너무 약한 것도 문제인가.’

    만약 서충호였다면? 아직도 생생할 것이었다.

    그때, 모독 성소 곳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상함을 알아차린 대장삵이 귀를 쫑긋하며 경고를 줬다.

    “뭔가가 있다.”

    그 말에 모두 작업을 멈췄다. 산박이 외눈붉은곰의 털가죽을 움켜잡고 그 몸 위에 올라탔다. 시야가 확 늘어났다. 그리고 단번에 적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스슥, 스으윽!

    그건 흐물거리는 덩어리였다. 임프가 납작하게 된 것처럼 보였는데, 움직이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뭐지?’

    머리를 뒤져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계속해서 지하에서 삐져나오고 흘러나와서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뭐예요?”

    “적입니다. 하지만 저도 처음 보는 놈입니다.”

    산박이 내려와서 앞장서자 탕만과 이시은이 급히 따라붙었다. 다른 소환물도 마찬가지였다.

    푹 꺼진 땅에 차오른 그것은 임프의 시체로 만들어진 액체 같은 것이었다.

    “아시는 게 있습니까?”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가죽이 출렁거리고, 납작하게 된 임프의 눈구멍에서 체액이 주르륵 흘러넘쳤다. 임프를 쭉 짜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기괴함은 끝도 없이 지하의 빈틈에서 쏟아져 나왔다.

    ‘지하실은 이런 놈들로 가득하다는 소리.’

    임프의 시체가 만들어낸 언데드로 보였다.

    “아무래도 싸워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지하에 임프 시체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죽일 수 있을지 견적을 볼 수 있어요.”

    네크로맨서인 시은은 이것이 언데드라는 걸 확신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싸울 생각을 접었다.

    “만약 죽인다면, 큰 보상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산박의 말에도 시은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 많은 체액과 생가죽 뼛조각들을 언제 다 태우려고요?”

    “그래도 카르마를 얻을 수는 있겠죠.”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방도가 애석하게도 산박에게만 있었다. 갈래 불꽃이 아니고서는 별다른 피해를 못 줄 것 같았다. 잔뜩 썩어서 가죽조차도 물컹거리고 찢기고 있는 액체를 태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공격 수단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산박은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불꽃을 토해낼 수 있는 불꽃두더지 파수병과 함께 썩은 누더기 언데드를 태우기 시작했다. 놈은 태워도 아무런 반응이 없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내친김에 다른 무너진 곳에 차오르고 있는 썩은 액 언데드에 회오리 화염 철구를 비롯해서 범위 공격 던전 아이템을 틈틈이 사용했다.

    그런 과정 끝에 산박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세 명 모두 화염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면 시도해볼 만하지만 나 혼자서는 어림도 없다.’

    아쉬움만 남긴 채 그들은 던전을 떠나야 했다. 악마 릴리스의 상을 박살 내자마자 던전이 무너지며 새하얀 공간이 산박의 눈에 들어왔다.

    ‘이런 던전도 있어 줘야지.’

    [레벨 업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사용자 태산박을 인식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출력합니다.]

    [던전 사용자 태산박의 존재를 특정합니다. 당신은 카르마의 선택을 받은 자입니다.]

    [2레벨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충분한 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임프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두 번의 선택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잡았는데도 레벨 업을 못 하는 건가. 예상했지만 레벨 업 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야만신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야만신과 관련된 소환 주문 혹은 기술이나 주문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 비해서 산박은 야만신 코인 덕분에 강력한 성장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그게 산박의 또 다른 강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전략을 잘 짜야겠지.’

    솔직히 더는 소환 주문이 필요하지 않았다. 불꽃두더지 파수병과 외눈붉은곰만 해도 2레벨 던전에서는 2인분, 3인분이 가능했다.

    ‘3레벨 전까지 소환 주문은 필요 없다.’

    즉, 야만신의 선물은 드루이드 기술이나 주문을 획득하는 데 써야 했다.

    ‘그렇다면 기술이냐 주문이냐로 또 나누어진다.’

    판단 하나에도 목적성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지 제대로 된 가치를 지닌 한 걸음을 내뻗을 수 있었다.

    ‘주문.’

    드루이드의 주문은 다채롭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수준과 비교하면 맹탕인 것도 많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주문이 없다는 게 또 백미다.

    최근에 획득한 바람곰의 흉터 2레벨 주문이 대표적이었다. 바람 주문은 한 줄기로 집약시키는 게 국룰이다. 하지만 이 주문은 무려 다섯 줄기의 바람 공격을 하기 때문에 공격력이 크게 줄어든다.

    ‘임프에게도 못 쓸 정도지.’

    고레벨이 된 이후에 약한 생명체를 상대로는 쓸 만했지만, 그마저도 ‘기술’이 받쳐주지 않으면 어림도 없었다.

    ‘드루이드 주문은 복불복이 많다.’

    그 복불복에서 산박이 패배한 전적은 제법 있었다. 푸른 새 변신 2레벨 주문만 해도 그렇다. 아직 한 번도 실전에서 써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업성이 있는 주문도 있지.’

    나무 생육 1레벨 주문. 그 덕에 드루이드 과수원으로부터 로열티를 받고 있었다.

    이처럼 드루이드 주문은 온갖 것들이 걸릴 수 있었고, 그만큼 비효율적이었다. 고로 선택하기가 애매했다.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남들은 한 번에 따내는 효과를 드루이드는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얕은 호수인 셈이었다.

    ‘드루이드의 기술.’

    영혼 자극부터, 정령 부름까지. 하나같이 괴상망측하다. 그나마 눈에 보이는 효과를 주는 기술은 숲지기의 몸 2레벨 기술이었다. 가장 낮은 육체 능력 두 개를 1씩 올려주는 기술이었다. 사실 이 기술은 주문 사용자인 드루이드에게 가장 도움이 안 되는 기술이기도 했다.

    ‘3레벨부터는 후방 직업은 일선에 나서는 일이 없다.’

    그때부터는 열 명~열다섯 명으로 인원수가 늘어난다. 레이드의 시작이며, 중레벨의 문턱이다.

    즉, 드루이드는 기술이나 주문이나 제대로 된 것이 걸리는 경우가 적었다. 고로 모든 건 운에 맡겨야 했다. 거기서 산박은 최대한 확률적 효율을 보고 싶어 했다.

    ‘사업성을 본다면.’

    당연히 주문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또 어리석다.

    ‘기술을 통해서 ‘힘’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기존의 사업을 더욱 크게 할 수 있다.’

    안전 자산이냐 비안전 자산이냐의 차이였다. 거기서 산박은 주문을 선택했다.

    ‘인간은 상황에 의해서 변화하는 존재.’

    자식과 부모의 관계, 친구와 친구의 관계, 애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은 항상 다르다. 모두 제각각 다른 자신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었다. 혹자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나부끼는 갈대 같은 존재라고 폄하하지만 그만큼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태산박이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파악했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해결법은 없었으므로 산박은 상황을 더듬었다. 사업거리를 두 개나 줘야 하는 게 현재 산박이었다. 하나는 시은에게, 다른 하나는 장 노인에게다.

    ‘잔잔벼락의 사업을 부산 은행에 줘버렸으니까. 그렇게라도 실익을 줘서 달래야 한다.’

    아직 연기 장가(家)를 버릴 생각이 없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건 실이익을 주는 것이었다. 생수 공장에 물의 연어 두 마리를 넣은 것만으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래도 기술은 하나 투자하자. 혹시 모르지. 힘이 증가하는 기술을 얻을지도.’

    별의 수련자처럼 작은 별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은 희귀하고 추가 힘을 확보해 주기 때문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산박이 주사위를 던졌다.

    * * *

    송서아는 출근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신의 방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증조부 송공명의 명이었다.

    “후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이 넓었기에 답답함은 없었지만, 하루라도 더 커리어를 쌓고 싶은 게 그녀였다. 그런데 그걸 방해받았다.

    송서아는 TV를 보며 필라테스를 하기 위해서 개인 매트를 펼쳤다. 요즘에는 다양한 필라테스 기구가 있지만 그녀는 클래식한 걸 좋아했다. 무리해서까지 온갖 기구를 써서 거창하게 필라테스를 하고 싶지 않았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송서아는 눈으로만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녀의 경호원 소준석이었다. 바로 전화를 받으며 스피커로 전환했다.

    “말하세요.”

    다리를 찢은 상태에서 그녀가 말하자 상대편도 입을 움직였다.

    ―예, 아가씨. 정기 보고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많이 답답하시죠?

    “정기 보고는 분명 한 시간 십오 분 전인 걸로 기억하는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장이라는 게 그렇게 톱니바퀴처럼 안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건 저도 알아요. 문제는 지각한 걸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회피하려는 사람이겠죠?”

    ―…죄송합니다.

    “사과는 정면 박치기가 가장 좋아요. 사과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은 가장 꼴 보기 싫어요.”

    ―예. 알겠습니다.

    “계속하세요.”

    그녀가 자세를 바꾸었다.

    ―여기는 포항입니다.

    “놓쳤나요?”

    ―예. 이놈들, 포항 지역 카르텔과 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방 도시에서의 연줄은 그 자체로 힘이 된다. 10년 함께 얼굴 보고 살아온 사람이면 살인해도 가려주는 게 지방 도시의 인맥이었다.

    “후우…….”

    송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단서는 없고요?”

    ―포항과 인천 그리고 경기도에서 주로 활동하던 조폭들입니다.

    “경기도? 근처에 세종시가 있잖아요.”

    서아가 산박과 그의 기업을 걱정했다.

    ―예. 아무래도 태산박 사장에게 들러붙어 있던 기생충이 옮겨 온 것 같습니다.

    “겁도 없이…….”

    그녀가 분노했다. 송서아는 최근 자신에게 미행이 붙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래서 최측근인 소준석까지 보내 추적했지만, 그들은 연기처럼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다. 중소기업형, 점조직화된 조폭들의 라인은 솔직히 말해서 소탕하는 게 매우 힘들다. 차라리 유지 관리 하는 게 좋을 정도였다.

    “옥시모론 기업과 연관된 곳을 모두 조사하세요.”

    ―예. 연기 장가에도 협조를 해달라고 할까요?

    “그렇게 하세요. 그쪽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지도 모르는 깡패 새끼들을 가만히 놔두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예. 변동 사항이 있으면 또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걸로 송서아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동래 송가에서 가장 똘똘하다고 칭찬이 자자한 송서아가 차대 가주가 될 것이라고 100% 확신하고 있는 가문 사람들이 철철 넘쳤다. 바로 집 앞에 있는 동래 사적 공원에 산책조차도 못 하게 된 상태였다.

    “으흐으응!! 으으으! 이이이잉!”

    송서아가 매트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아무도 없었기에 가능한 분노 표출이었다.

    송서아는 이내 일어나서 다시 열심히 운동하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 자연 칼로리 소모가 되지만 집 안에만 있으면 칼로리 소모는 매우 더디다. 먹는 게 바로 살로 가게 될 것이었다. 외모 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글로벌 사회에서는 무슨 변명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포기하든가 남들과 경쟁하든가. 선택은 두 가지뿐이었다. 그리고 송서아는 다른 여자들한테 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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